[북리뷰] ‘봉테일’을 더 디테일하게! 두 평론가의 예리한 봉준호 읽기: 황영미·김시무 『봉준호를 읽다』
[북리뷰] ‘봉테일’을 더 디테일하게! 두 평론가의 예리한 봉준호 읽기: 황영미·김시무 『봉준호를 읽다』
  • 양진호(본지 에디터)
  • 승인 2021.01.2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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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한 해 동안 BTS와 함께 언론으로부터 가장 많이 호명되었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봉준호 감독일 것이다. 그런 그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세계 영화 팬들의 찬사를 받은 <기생충>(2019)까지 봉준호 감독의 장편영화 7편을 영화평론가 황영미·김시무가 『봉준호를 읽다』(솔출판사)에서 밀도 있게 분석했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특별한 수식어 없이도 그 이름만으로 모두가 수긍할 만한 감독이 되었다.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4개 트로피를 품은 그의 영화 세계를 조명한 비평이 작년부터 쏟아져 나왔는데, 『봉준호를 읽다』는 단순 비평에 그치지 않고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탐구한다. 이 책의 저자 숙명여대 교수 황영미와 김시무 평론가는 봉 감독의 단편부터 장편 전작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그의 영화의 출발부터 현재,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세계까지 정확히 포착하고 분석해낸다.

  이 책에서는 봉준호의 장편영화의 굵직한 흐름을 분석하고 핵심 주제와 논의에 대해 서술하는 동시에 <백색인> <지리멸렬> 등 봉준호 감독의 단편들도 빼놓지 않고 살펴보며 ‘봉준호 유니버스’ 전체를 조망하고 있다. 또한 각 장편영화들에 대한 두 평론가의 각기 다른 해석 및 분석으로 다양한 관점과 비평 지점을 제시해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기존의 익숙한 시선에서 벗어나 독자들에게 봉준호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선사한다. 봉준호가 이뤄낸 독자적인 영화적 구조와 미래에 대해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두 평론가들의 비평적 안목 덕분이다. 서로 다른 관점으로 작품을 분석하면서 단순한 감상으로 끝나지 않고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평론의 묘미가 책에 가득 담겨있다. 시나리오의 교과서라 불리는 대표작 <살인의 추억>과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4관왕에 이른 <기생충>을 라캉과 지라르의 이론으로 재해석한 심층 분석 또한 색다르고 다채로운 비평의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해 두 평론가는 영화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분석하는데, 이렇게 드러난 새로운 지점들을 통해 관객이 놓칠 수 있는 영화의 중요한 의미들이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차기작을 준비중인 봉 감독과의 최신 인터뷰도 만날 수 있다. 두 평론가가 봉 감독과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짧은 언론 인터뷰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작품 제작 과정, 특정 시퀀스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끌어내 흥미롭다. 봉 감독의 목소리를 통해 그가 스스로 정립한 영화 문법과 ‘봉준호만의 디스토피아’를 소개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창작의 즐거움과 흥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수백 명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나가는 전쟁과도 같다”는 그의 말에서 영화를 대하는 자세도 느낄 수 있다. 또한 “(반복되어 나타나는 영화적 설정 등을 통해) 어떤 인장을 찍는다거나, 시그니처를 남기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사실은 그 반대”라면서 “작가 겸 감독이다 보니까 결국은 내가 애쓰지 않아도 어찌 됐든 나의 찌꺼기가 나올 것이다. 흔적은 저절로 남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봉 감독이 언급한 부분도 흥미롭다. 그는 두 평론가의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자신이 새로운 영화 작업을 할 때는 더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고민을 더 많이 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오히려 제일 처음에 이 스토리나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자신을 흥분시켰던 게 뭔지, 그 충동이란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창작자의 입장에서 최초 충동 같은 게 있는데, 그것을 사실 많이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한 편의 영화를 찍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1년, 2년, 4년이란 긴 작업을 하다 보면 자기를 흥분시키고, 들뜨게 했던 그 최초 충동을 잊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아요.
  -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 중에서. 본문 15쪽

  제가 장르에 대한 충동이 많잖아요. 장르영화를 사랑하고, 어릴 때부터 장르영화와 호흡하면서 제 혈관이나 세포 속에 장르영화의 영화적인 흥분이나 장르 컨벤션에 대한 사랑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장르영화를 찍는 것처럼 막 가다가도 결국 막판 끄트머리에 가서는 부조리에 대한 관점을 이기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장르가 부조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해야 되나?
  -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 중에서. 본문 53쪽

  봉준호 영화에서 공간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유난히 컸다. 그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일상 공간은 공포를 주는 공간으로 돌변해 공간의 이중성과 일상 속에 잠재한 공포성을 드러냈다. 인류 마지막 생존자들이 탄 〈설국열차〉의 공간은 자본주의적 속성으로 구분돼 있다. 돈을 내고 탄 앞칸 사람들과 무임승차한 꼬리 칸 사람들이 계급별로 나뉘어 사회적 갈등이 마그마처럼 내재돼 있다.
  - 본문 197쪽

  각 영화에 숨어 있는 의미와 관람객이 갖고 있던 의문에 대한 감독의 설명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봉준호를 읽다』의 독자들은 감독의 창작 의도와 세계관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또 영화 제작에 얽힌 배우들과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감독의 관점도 엿볼 수 있어 이전에는 접하지 못한 봉준호 세계의 새로운 이면을 읽을 수 있다.

 

 

황영미 평론가는 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으로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교수와 교양교육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대학교양교육연구소협의회장도 맡고 있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회장 및 한국사고와표현학회장을 역임했고, 칸, 베를린,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심사위원과 춘사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김시무 평론가는 한국영화학회장, 부산국제영화제 전문위원, 청룡영화상 심사위원, 대한민국 영화대상 심사위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홍상수의 인간희극>, <스타 페르소나>, <영국의 영화감독> 등이 있다.

 

 

* 《쿨투라》 2021년 1월호(통권 7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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