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Theme] 사람들은 다 노래가 되기 위해 살아요 그 노래를 받아 적고 싶었어요
[2월 Theme] 사람들은 다 노래가 되기 위해 살아요 그 노래를 받아 적고 싶었어요
  • 유희경
  • 승인 2021.01.29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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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오늘의 시’ 수상자 허연 시인
인터뷰어_시인 유희경

  시인 허연의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문학과지성사, 2020)는 2020년 하반기,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시집이다. 고작 열 평 남짓한 작은 서점에서의 베스트셀러가 무어 그리 대단한 의미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이 시 ‘좀’ 읽는다 하는 독자들은 물론 시인들, 시인을 지망하는 습작생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서점이며, 그들의 적극적 구매 덕분에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 가벼이 여길 성과는 분명 아니겠다. 그에 더해, 늘 새로운 발화, 낯선 상상력을 옹호하는 시 독서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데뷔 30년차 (그렇다. 2021년은 시인 허연이 데뷔 3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시인의 신간이 이토록 열정적 지지를 받는 것은 의외적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외가 아니라 예외이다. 시인 허연은 세대를 불문하고 두루 지지를 받는 몇 안 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니까. 그리하여 나는 가끔 그의 시집들을 펼쳐보며 그의 시가 가진 불구의 생명력을 탐구하곤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2021 오늘의 시’ 수상자인 시인 허연을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만난다. 며칠 전 폭설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겨울 밤. 참 그와 어울리는 때에, 조금이나마 그의 감각을 살펴보고 싶었다.

  시인 유희경(이하 유) 2020년 한 해를 돌아봤을 때, 가장 인상 깊은 시를 선정하는 쿨투라 ‘2021 오늘의 시’의 주인공이 되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더불어, 2020년이라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한 해가 시인께는 어떻게 기억되실는지 여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인 허연의 다섯 번째 시집이 나온 해이기도 하거든요.

  시인 허연(이하 허) ‘오늘의 시’에의 선정은 특별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여러 문학상이 있지만, 동료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은 찾아보기 힘드니까요. 의미 있고 기분도 좋아요. 2020년은 번쩍이는 빨간 경광등, 그 경고 아래 세상이 놓여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한 해기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호출될지 모른다는 기묘한 공포에 시달렸고, 호출된 다음에는 ‘부활공장’에 들어가듯 어딘가에 갇혀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왔죠. 그중 몇몇은 돌아오지 못했고요. 이런 상황들이 일 년 내내 계속되는 걸 보면서 당연히 힘들었습니다. 괴롭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게도 되었어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불교에서의 ‘제법실상(諸法實相, 일체 만법의 진실한 체상 즉, 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면모를 의미하는 불교 교리-편집자 주)’이라고 할까요. ‘세상 모든 일에는 벌어진 그대로 의미가 다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코로나19’라는 이 역병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제법실상’의 기준으로 보면 현실은 진실이니까 우리의 고난에도 되새겨볼 것이 있고, 우리는 이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졌지요. 어찌되었든 인류가 이 어려움으로부터 ‘어떤’ 가치를 찾아내는 해로 기억될 거라고 믿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인류가 굳게 믿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 결코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애써 서로 컨텍트(contect)할 수 있는 문명을 만들었는데, 서로 만나려고 온갖 것들을 궁리해내었는데, 그걸 하지 말라니, 자유를 포기하라니, 구태의연함도 신태의연함도 없다는 거죠.

   저의 2020년 한 페이지는 시인의 새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가 장식했습니다. 덕분에 정말 많은 독자들이 이곳을 찾아왔거든요. (웃음) 시라는 장르는 언제나 갱신을 염두에 둡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넘어서려고 하죠. 이번 시집이 전작을, 전작들과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헌데 『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2008)에서 『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지성사, 2012)를 거쳐 『오십 미터』(문학과지성사, 2016)로 이르는 일련의 흐름, 시적 여정이 이번 시집에서 배반되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것을 역류한다고 할까요. 가장 눈에 띈 것은 첫 시집의 음악성이 부활한 지점이었습니다. 앞선 세 권의 시집들은 서사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시인 허연의 삶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반면 이번 시집은 첫 번째 시집 『불온한 검은 피』(세계사, 1995)에서와 같이 살아 있음에 대한 감각 그 자체를 그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기조는 이번 시집 출간 이후 발표되었으며 ‘오늘의 시’에 선정된 시 「가여운 거리」에서도 발견됩니다. 이러한 변화와 시집을묶어나갈 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당연하게도, 시에는 시를 쓰는 당시 시인,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게 되지요.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집 속의 시를 묶어 시집을 내기까지의 저와 다름없지요. 지금까지의 제 시집에 대한 개괄을 해보자면,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는 소주병을 깨서 세상의 옆구리를 찌른다는 심정으로 썼던 도발, 두 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는 돌아온 탕아의 ‘돌아왔음’에 대한 선언, 세 번째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는 ‘시와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고 하는 화해. 네 번째 시집 『오십 미터』는 나는 이제 시 쓰다가 죽는 사람이 되어 버렸구나. 그러나 도망치지 않겠다. 라는 포기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는 온 세상이 다 노래, 숨 쉬는 모든 것들은 다 노래였구나 라는 특수한, 보편적이지 않은 깨달음이 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음악성에 대한 지적은 인정할 수 있겠습니다.

  시는 영물이지요. 김수영의 언어를 빌리자면, 제 아무리 비시적(非詩的)인 단어나 구도 시에 얹히면, 그럴 수 있게 되면 시적인 것이 됩니다. 노래가 되는 것이지요. 뒤집어 생각해보면, 시 위에 올려두었는데도 노래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아직 시가 될 준비가 안 된 거겠지요. 그래서 이번 시집 속의 시들을 쓸 때 정리할 때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읽었어요. 내 시를 말이죠. 힘을 실은 문장이나 구여서 빼고 싶지 않더라도 호흡에 반(反)하거나, 심장 소리에 반하거나, 음악적 흐름을 끊으면 과감하게 삭제하기도 했어요. 물론 전 작업 때도 그랬지만, 이번엔 보다 주의를 기울였어요. 결국 제목도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가 되었죠. 사람은 다 노래가 되기 위해 살아요.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네요. 호스피스 병동을 다룬 작품이었어요. 곧 세상을 떠날 사람들은 정말 웃을 일이 없죠. 너무 고통스럽기만 하니까. 그런데 유일하게 웃는 순간이, 간호사가 헤드폰을 귀에 꽂아주고 그 사람이 좋아했던 노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노래를 들려주는 때에요. 술자리에서 한때 마음을 흔들었던, 노래를 부르면 열 명 중 다섯 명은 울잖아요. 나는…… 무조건 울고. (웃음)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에서 ‘의도적 거칢’을 느꼈습니다. 과감한 감정 노출이나, 직설적인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싶어졌어요. 시인의 어둡디 어두운 (웃음) 첫 시집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한 것이었죠. 이 변화가 앞으로도 유효할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더, 더, 더 정직하자. 수사적인 꾸밈을 넣기 보다는 보다 날것의 사유를 감정과 감각을 살리자. 정리하면서 생각했어요. 앞서 말했듯, 이전에 시집을 꾸릴 때와 각오나 과정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보다 더 밀어붙였습니다. 그게 더 시라고 생각했어요. 많이 던졌고, 앞으로는…… 글쎄요 어떻게 될까요? 사실 저 시를 쓸 수 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지요. 다른 일에 빠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렇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지만, 덜컥 겁도 납니다. 시인 허연의 독자들을 협박하시는 거예요. (웃음) 여하간, 저는 그 거친 지점들이 유독 좋았습니다. 도발적이기도 했고요. 이제 ‘오늘의 시’인 「가여운 거리」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금껏 시인 허연의 시에서 변함없는 정서가 있다면 ‘연민’입니다. 개인적으로 문학의 본령은 바로 연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서이면서 감정이고 태도고 사상입니다. 올해의 시에 선정된, 「가여운 거리」는 제목부터 ‘허연’답다고 해야겠습니다. “거리에는 장례식이 있었다.”라고 특정했는데, 이 시는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요.

   「가여운 거리」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거리를 감정을 제거한 채 들여다보려는 노력으로 쓰였어요. 데실 해밋(Dashiell Hammett)이나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의 하드보일드 같은 느낌으로요. 시집에 실리지 않은 비교적 최근작이죠. 감정을 배제할 만큼의 거리를 두기 위해 한 발짝 물러선, ‘넓어진 연민’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것은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제게 연민과 두려움은 실상 같은 것이에요. 두려움은, 상상력에 의해 태어나죠. 많이 두려워하는 사람은 많이 상상하는 사람이에요. 많이 상상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고요. 연민이란, 내가 남을, 남의 입장과 처지를 상상하는 방식이지요. 그의 고통을 상처를 상상함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이 둘을 품고 살면서 거리를 갖기란 쉽지 않죠.

  어느 순간부터 온 세상이 가엾더라고요. 내가, 내 생, 내 주변 친구들도, 심지어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난 적 없는 이들마저도요. 혼자서 최선을 다해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나고 초등학교 때 몸이 심하게 아팠던 친구가 외롭지 않게 잘 죽었을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어요. 어느 날 가까운 친구가 내게, “아, 너는 이제 가엾음주의자가 되었구나” 하더라고요. 정말 그런 것 같았어요. 이런 가여운 세상에 뛰어들어 시를 쓰기보다, 거리를 두고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

   이 시에서 제가 느낀 웅장함이 그런 까닭이었구나 싶었어요. 19세기 후반 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묘사해놓은 퍼레이드나 개선의 장면들을 연상했거든요. 소리 없이 깃발이 나부끼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생드니 거리」처럼, 온갖 감정들이 가득하지만 그림은 조용하죠. 그것이야말로 창작자의 시선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 침묵으로부터 ‘죽음’이라는 것을 느끼곤 하는데요. 「가여운 거리」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고 명명하셨는데, 실제로 이 시의 건조함은, 생의 종착점인 ‘죽음’을 소름 돋을 만큼 간결하게 언급하고 있어요.

   죽음이라는 건, 우리 모두의 공통된 결과, 공통된 종착역이죠. 그러니 저의 시선을 ‘연민’이라해도 좋고 ‘위안’이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그 속에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니까, 두렵죠. 가까이 가서 그것들과 다 마주치기에는, 너무나 복잡다단한 두려움이라는 게 있어서, 한발 물러서는, 한발 물러나 있는, ‘견자(見者)’의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속으로 뛰어들어서, 끼어들어서 두려움을 해결하려면, ‘저울’을 달 줄 알아야 하죠. 옳고 그름이라든지, 먼저 할 일이나 나중에 할 일이라든지…… 그런데 저는 그런 것들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 순간이라는 한 컷의 그림에 의미가 있죠. 그래서, 견자의 자리를 택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울질하게 되거나, 무게를 달거나, 경계를 나눌까봐요. 충분히 두렵지만 ‘들어가’지는 않는, 그런 일에 습관화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항상 누구의 편도 안 드시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게 불편하지 않으세요?

   불편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외롭죠. 외로우니까 편하고. ‘왜 너는 말하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비정치적인 것 안에 정치성이 있듯이, 이 또한 발언이 아닐 수 없죠. ‘무기’가 있으면 ‘나비’가 있고, 또 그 사이가 있는 것처럼 그냥 진공상태로 있는 게 제 성향에 맞아요. 은행원이었다면, 교사였다면, 농부였다면, 좀 달랐을 거예요. 하지만 시인이고 시를 쓰기 때문에 이 자리를 원하는 면도 있어요. 혹시 누군가가 나의 시를 ‘개성’ 있는 것으로 여겨준다면, 그 이유는 제가 견지하고 있는 이 자리 덕분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조금 집요해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허연이란 사람의 시인됨의 출처를 ‘거리’라는 키워드로 찾아보고 싶어요. 물론 이 시의 ‘거리’라는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로 거리(距離)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실제로 하드보일드라든가 견자라는 단어도 사용하셨지만, 표면적인 의미로는 ‘스트리트(street)’이니까요. 마침 혜화동입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바탕이 되는 거리는 우리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는 ‘혜화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혜화동이 ‘시인 허연’을 만들게 된 이야기들, 그러니까, 혜화동 거리가 시인을 어떻게 키웠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혜화동은 제게 고향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죠. 지금 과학고가 있는 자리에 보성고등학교가 있었어요. 그곳을 졸업했습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자식들을 앉혀놓고, 원하시는 각자의 진로를 말씀하시곤 했어요. 누나에게는 대학 교수가 되라고 했고, 저에게는 신부나 수사, 동생에게는 의사가 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죠. 그때는 그 소임이, 책무가 너무 행복했어요. 모범생이었지만. 학교보다 성당이 더 좋았죠. 혜화동 성당 뒤편에 있는 가톨릭신학대학 신학부는 이제 곧 내가 갈 곳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이따금 그곳에 찾아가 대학로를 내려다보면 범속과 탈속의 경계를 알 것만 같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아주 멋지게 신을 배신했고, 세상의 기대를, 부모님을 배신했어요. 단지 진로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다른 모든 것들이 같이 무너지더군요. 신부가 되지 않겠다는 선택 하나로 모든 관계와 그 관계에 따른 믿음이 무너지는 경험은, 예민했던 어린 나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충분했어요. 최선을 다해서 막 살기로 했고 정말 그렇게 했죠. 파노라마 같은 나의 이야기를, 모든 것을 다 본 거리가 ‘혜화동’입니다. 새벽 미사의 복사(카톨릭에서 사제의 예식집전을 보조하는 평신도를 말한다-편집자 주)를 하기 위해 걸어가던 초등학생인 ‘나’가 걷던 거리도, 상장을 받고 우쭐해하고 전교 1등 상으로 빵을 얻어먹었던 거리도,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수업을 빼먹고 배회하던 거리도 주저주저했던 첫사랑을 경험했던 거리도 여기지요. 이곳이지요.

   다소 억지스러울 수 있겠지만, 그 모든 기억을 가진 이곳을 한 단어로 표현하실 수 있을까요 .

  허 글쎄요. 음. ‘연대기’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네요. 어쨌든, 시정잡배가 된 자의 연대기. 속된 연대기. 아마, 이 서점이 있던 자리였던 것 같아요. <킬리만자로>라는, 당시엔 보기 드문 원두커피 가게가 있었어요. 커피 공부를 제대로 한 아저씨가 주인이었던 가게였죠. 수업을 빼먹고 자주 앉아 있었어요. 이 앞의 분수를 보면서 커피를 마셨죠. 얼마나 이상해 보였겠어요.

   신기해요. 이 자리가 커피숍이었거든요. 지금까지, 다소 무채색의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이번에는 시인께 기쁨에 대해 질문해보고 싶습니다. 기쁨이란 감정은 붕 떠 있고, 가볍고 밝고 환한 느낌이죠. 하지만 시인의 기쁨, 특히 허연 시인의 기쁨은 좀 다를 것 같아요.

   사전 질문지 중 가장 고뇌하고 장고하게 만든 질문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기쁘지 않더라고요. 기쁨과 슬픔은 나도 모르게 왔다 가는 감정이죠. ‘7시 5분부터 슬플 거야’ 같은 건 불가능하니까요. 막심 고리키(Maxim Gorky)의 소설 『어린 시절』(1913)에 ‘기쁨과 슬픔은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바꿔 앉았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두 감정에 대한 저의 생각과 흡사합니다. 생각해보면 시를 쓸 때 기뻤던 것 같아요. 나를 울리는 시를 한 편 쓰게 되면, 그 다음 날까지 배가 고프지 않았었어요. 30대까진 그랬죠. 지금 나의 기쁨은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간혹 들 때 그 순간 찾아오네요. 갑자기 약속이 취소되었다거나, 뜻밖에 착하고 순한 바람이 분다던가, 버스를 탔는데 그 안에 운전수와 나만 남아 있다던가, 그날따라 비가 내린다던가, 그런 ‘휑뎅그렁한’ 진공 상태 안에 있게 되면 기분이 좋아져요. 저는 그런 게 기쁜 것 같아요.

   갑작스레 궁금해지네요. ‘이런 사람이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집) 사이에 어떻게 시를 안 쓰고 살 수 있었을까’ 하는 것과 ‘도대체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었지’ 하는 것요.

   워낙 유별났어요. 덕분에 주변에서 적당히 포기해준 측면도 있고요. 물론 포기해줄 만큼의 성실함은 갖추고 있었습니다. 거슬리지만, 자르기는 뭐한, 그런 존재였겠죠. 시 쓰기의 공백기는, 첫 시집을 냈을 때의 비판이 한몫했어요. 그들이 보기에 병든 미학 취향의 무국적자였나 봅니다. 시 제목을 영어로 쓴 것도, 본문에 노래의 일부를 차용한 것도 작심한 듯 비판했죠. 그때 저는 ‘니들이 나를 알겠니’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무렵에 신문사 시험에 붙었으니까, 바빴죠. 술도 마셔야 했고, 사랑도 해야 했고…… 안 썼어요. 안 쓰다 보니까, 운동선수 들 몸이 안 올라오듯이, 쓰는 법을 잊어버렸고.

   그런데 그 사이에, 젊은 시인 지망생들에게 허연이라는 이름이 점점 더 회자가 되고 했던 건 알고 계셨었나요?

   그건 나중에 알았어요. 검색해서 무언가를 알게 되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으니까요. 일부러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요, 전달해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도 가끔은 원고 청탁이 와서 신기했었죠. 나, 시 안 써요! 하고 거절하고 그랬어요. 시 때려치운 게 언제인데. 청탁을 하고 그러냐고. 그렇지만 시는 한 번 발을 담구면 뺄 수 없게 만드는 물 같아요. 저는 술 마시고, 노동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바둑도 하지 않고, 장기도, 골프도, 포커도, 고스톱도, 배드민턴도 해보지 않았거든요. 공부를 해보자고 대학원에도 가보았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죠. 그러면 여행을 다니자. 휴직까지 하면서. 휴가를 막 붙여서 가고. 하지만 열네 시간 비행기 타도 곧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게 되더라고요. 다시 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기도 했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 하네요. 올해, 2021년은 시인으로 데뷔하신 지 30년입니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여쭙고 싶어요. 요즘은 시인의 활동 영역이 다양해졌거든요. 매체가 다양해지기도 했거니와, 여러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도 같고요. 젊은 독자들에게 특별한 지지를 받는 시인이시니, 쓰기 외에 다른 영역에 관심이 있는지도 알고 싶고요.

   어떡하죠. 아무 계획도 없어요. 하지만 지금의 현상에 대한 레이아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옛날의 지식인들은 ‘산속에 들어간 장자가 되느냐’,아니면 ‘세상에 뛰어들어 싸우느냐’에 대해 고민했겠죠. 그런데 이제는 들어갈 산이 없어요. 6, 7년 전쯤 이집트에서 수단까지 여행한 적이 있어요. 이집트 남부의 아스완 댐을 지나서 수단 국경의 사막을 지나가는데, 문자가 오더라고요. “서울 시내 전역 대리운전 1만 5천 원”. (웃음) 결국 이제 모두, 소통의 선상 위에 내팽개쳐진 거고, 그게 시대정신이라면시대정신이겠죠. 거기서 도망칠 생각은 없어요. 독자들이 찾는다면 어떤 형식이든, 이런 형식이든 저런 형식이든 해보고 싶어요.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무엇보다, 시인으로서 ‘허연’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동인(動因)이자 요소는 독자니까요. 계보도, 평단의 열렬한 지지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쓰고 시집을 낼 수 있었겠어요. 독자들의 힘이죠. 다른 시인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저는요. 메일링 서비스나 유튜브까진 아니어도 소통의 장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어. 부끄럽지만, 그래야겠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이 솔깃해지고 맙니다. 올해 시인님을 괴롭힐 여러 일들을 모색해보아야겠어요. 긴 시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쿨투라》 2021년 2월호(통권 8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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