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시인의 군산통신 2] 내 마음 속 등대, 장항제련소
[강형철 시인의 군산통신 2] 내 마음 속 등대, 장항제련소
  • 강형철(시인, 사)신동엽기념사업회 이사장)
  • 승인 2021.02.0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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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제련소 옛모습

  다시 해변을 서성거린다. 눈이 오면서 이곳 체육 공원 옆의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조금’ 때는 바닷물이 해변 가까이 오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왔다가 간다, 헤어진 연인들처럼. 대신 해변의 뻘 위에 내린 눈을 공손하게 받아둔다. 그때 뻘 끝에서 바닷물은 추억처럼 아련하게 조잘댈 따름이다. 그 순간 옛 장항의 제련소 굴뚝은 참으로 당당하고 의젓하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신기촌이란 이름으로 불리웠다. 1930년대 식민지 시절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만들었고 그때 바닷물이 닿아있던 곳에 새로이 몇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었을 것이다. 그때 집 옆으로 솟아있는 산에 오르면 멀리 장항의 제련소 굴뚝이 보였다. 그럴 때면 그 굴뚝 너머로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당시는 먼 곳 서울에 가는 일은 상상도 잘 못할 일이었지만 어쩌다 가게 되면 군산과 장항을 오가는 배를 탈 수 있는 도선장으로 갔고 거기서 배를 타고 내려 한참을 걸어 장항역에 도착하였다. 다시 기차를타고 7-8시간 쯤 지나면 서울에 도착했다. 그래서 나에게 장항은 먼 곳으로 가기 전에 들러야하는 필수적인 곳이었고 돌아와서는 다시 먼 곳으로 가기 위해 들르는 필수적인 이정표로 마음 속에 아로새겨졌던 곳이다.
  그래서 장항하면 장항제련소가 먼저 떠오르게 되었고 그런 점에서 장항의 제련소는 마음 속의 등대였고 이정표였다. 그러나 그곳 제련소가 있는 장항은 70년대 초반 고속버스가 생기면서 버스와 기차라는 탈 것에 따라 필수코스에서 선택코스로 바뀌게 되었다. 더구나 군산 하구둑이 생기면서 기차역으로서의 장항역은 군산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작아졌고 군산 장항간의 연락선(배편)이 없어지기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지만 나는 군산으로 돌아오면 장항의 제련소 굴뚝이 보이는 선창가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나 맥주 한잔을 마시고 나오면서 귀향을 실감하는 일은 거의 빼놓지 않았다. 물론 그때 항구의 바람에 실려오는 짭짜름한 갯내음과 비릿한 생선 내음이 먼저 나를 받아주었지만….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옛날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해변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얼마 전에 깜짝 놀랄 뉴스를 접했던 순간이 떠른다. 숙연해지고 착잡해진다. “환경부, 옛 장항제련소 환경오염 피해자 42명 추가 인정”이란 제목의 2020년 12월 29일자 ‘뉴스1’ 기사 때문이다.
  기사는 환경부가 제 23차 환경오염피해구제심의회를 개최하여 “2009년까지 제련소 반경 4km이내에 5년 이상 거주한 주민들 중 구리, 비소, 납, 니켈 등 오염 중금속과 역학적 관련성이 있는 51종의 질환을 보유한 42명의 주민을 피해구제 대상자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2017년 8월~11월에 환경오염피해구제 선지급 사업을 시행하여 76명의 주민에게 카드뮴 피해를 인정했던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놀라다 못해 망연자실해졌다. 우선 주민들이 중금속 오염으로 막심한 신체적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그 질환의 종류를 보면 “신장병 골다공증 등 12종의 카드뮴 관련 질환을 위시하여 호흡기 질환 7종(천식 기관지염) 순환기 질환 8종(고혈압 등) 내분기계질환(당뇨병 등) 비뇨생식기 질환 3종(만성신장병 등) 신경계질환2종(파킨슨 병 등)기타질환 14종(빈혈 등) 등 51종의 질환이 열거되고 있었는데 이르러서는 눈앞이 다시 캄캄해졌다.
  그래서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서 주변의 삶에 내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닫게 되었고 내 삶 전체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난문(難問)에 까지 이르렀다.
  2008년 1월의 연합뉴스 기사는 주민들 집단 암발병 논란에 장항제련소 반경 1.3km지역 대상으로 2007년 7월부터 실시한 토양 및 지하수 오염 조사결과 반경 500m내외의 토양에서 kg당 최고 1008.58mg의 구리가 검출되었다. 토양오염 기준치인 50mg의 20배를 초과하였고 구리 외에 카드뮴 비소 납 아연 니켈 등 6개 항목의 중금속이 토양우려 기준을 초과했다. 이에 정부 관계부처는 이를 토대로 종합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수십 개의 관련기사를 더 보았다. 문제는 일제가 조선의 광물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장항에 조선제련 주식회사를 설립(1936년)하면서 시작되고 있었다. 또한 해방 후 미군정 시기를 거쳐 1948년 이후에는 정부가 소유 운영했다가 1971년 민영화, 현 LG 그룹(당시 럭키그룹)과 대한전선이 인수했다. 2003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된 LS그룹이 포괄적으로 권리의무를 승계한 상태(2010,10.11 파이넨셜 뉴스)이며 제련소는 1989년 용광로를 페쇄, 운영이 종료된 상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60여 년 동안 제련소 굴뚝을 통해 중금속 등을 유출, 환경오염과 주민건강피해를 불러왔고 결국 제련소 주변 토양은 농산물은커녕 사람도 살 수 없는 땅이 됐다. 이후 제련소 반경 1.5km 지역의 토지는 정부가 매입하였고 1.5-4km 지역의 토양까지 포함하여 2013년부터 재생정화작업을 시작하여 2020년 4월까지 토지정화사업을 마쳐 이제는 ‘오염정화토지 활용방안’등 여러 계획을 수립, 시행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작고한 소설가 박태순 선생의 말씀 중에 ‘찾지 않는 한 현장은 없고, 세우지 않는 한 역사는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나에게 장항 제련소는 추억의 풍경이었고 유소년 시절엔 마음의 등대였지만 현실에서는 굴뚝으로 내뿜는 연기를 통해 주변의 농수산물은커녕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고 이제야 가까스로 회생의 자리에 돌아온(?) 근대문명의 생생한 현장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또 다른 난문(難問)이 앞을 가로막는다. 벌써 31년째 가동되지 않는 장항의 제련소는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그것으로 끝인가? 우리에게 구리나 니켈 등의 금속은 이제 필수적인 자원이고 그게 필수적인 자원인 이상 어디에선가 다시 제련되어 우리 삶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 아닌가. 제련소 굴뚝에서 공기로 나오던 오염물질은 소위 후진국의 어느 곳으로 가서 다시 생성될 것이 아닌가? 그럼 그곳의 사람들은 지금 제련소 인근에 살던 사람들처럼 병을 앓을 터인데 그것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니 괜찮타는 말인가?
  소위 지구촌 시대에서 가난하고 물정모르는 사람들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몫을 감당하고 소위 선진문명국의 꿈으로 살아갈 것이다. 감당할 몫은 그대로이나 다른 사람으로 교대하는 것이라 셈하며 시치미 떼면 그만일까?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이란 책의 ‘성장시대의 종언’이란 글에서 김종철 선생이 “그간의 근대문명이라는 것은 장구한 인간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매우 비정상적인 시기였다. 근대문명을 뒷받침해왔던 ‘성장’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이제 비로소 인류사회가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 길로 들어서게 됐음을 알려주는 희망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을 가까스로 떠올린다.
  눈이 쌓여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가 만만찮다. 일부 녹은 자리를 향해 발판을 밟는다. ‘장항제련소라는 등대’ 대신 새로운 불빛을 찾은 것 같은데 앞은 여전히 막막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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