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Theme] 내 영화의 출발점인 호기심을 풀어내…: 〈남산의 부장들〉
[2월 Theme] 내 영화의 출발점인 호기심을 풀어내…: 〈남산의 부장들〉
  • 전찬일(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 승인 2021.03.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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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에 들어가며

  주지하다시피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은, 역사적 사실들과 그럴듯한 허구들을 적절히 결합해 빚어낸 낸 팩션(Faction=Fact+Fiction)성 휴먼드라마다.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2005)이 그랬듯, 1979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경호실장 차지철, 비서실장 김계원, 그리고 가수 심수봉 등이 동석한 중앙정보부 안가 술자리에서 독재의 끝판으로 치닫던 대통령 박정희와 차지철을 저격·살해한 ‘10·26사태’를 영화화했다. 그 사태 발발 직전 40일 간의 드라마틱한 사건·사연들도 긴박감 넘치면서도, 마치 다큐멘터리적 감성으로 차분히 추적·극화했다. 그 토대는 가천대학교 특임 부총장 등을 맡고 있는 김충식 전 동아일보 기자의 동명 논픽션이다 . 영화는 475만 여명을 동원하며, 홍원찬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제치고 2020년 종합 박스 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일찍이 어느 지면에도 피력했듯,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인 ‘코로나 19’로 인해 세계 영화시장이 초토화됐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경이롭다 평하지 않을 수 없을 대기록이다.

  그 역사적 역병만 아니었다면 봉준호의 〈기생충〉(2019)에 이어 20번째 국산 천만 영화로 등극됐을 공산이 크다. 비평적 성과도 주목에 값한다. 제4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에서 남우주연상 말고도 영예의 작품상까지 가져가는 ‘파란’을 일으켰다. 국내 주요 영화상 가운데 그 포문을 여는 부일영화상(29회) 때만 해도 남우주연상(이병헌)과 남우조연상(이희준)에 그치며 최우수작품상은 〈벌새〉(김보라)에 감독상은 〈유열의 음악앨범〉(정지우)에 밀렸건만….

 도서출판 ‘작가’가 100명 문화계 인사들에게 의뢰해 선정한 ‘오늘의 영화’에서도 그 파란은 재연됐다. 2020년 선보인 한국영화들 중 최고작으로 꼽히면서 ‘쿨투라 어워즈’의 영화 부문 주인공으로 낙점된 것. 아래의 감독 인터뷰는 그 파란의 결과물이다. 참고삼아 밝히면 최고 외국영화는 샘 맨데스의 〈1917〉이었다. 그리고 파란은 2021년에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처럼 이 영화, 무엇보다 연기와 성격화가 단연 큰 주목감이다. 이병헌을 비롯해 명불허전들이다. 이병헌-이희준-이성민 등의 연기 ‘케미’가 일품이다. 이성민의 ‘박통’ 싱크로율에는 감탄을 거듭하지 않을 길 없다. 〈보헤미안 랩소디〉(2018)의 라미 말렉(프레디 머큐리)에 비견될만하다. 김재규를 재현한 김규평 캐릭터도 압도적이다. 가히 김재규의 현현, 이라 할 만하다. 그 점은 김재규의 유족들도 인정·상찬한다. 덕분에 감독은 적잖이 흔들렸던 전작 〈마약왕〉(2018)의 부진을 극복하고, 출세작 〈내부자들〉(2015)로 복귀하는 데 성공한다. 호불호가 꽤 갈리기는 하나, 〈남산의 부장들〉은 여러모로 ‘2020년의 영화’로 손색없다.”

  자, 이제 인터뷰 안으로 전격 들어가 보자.

  인터뷰

  전찬일(이하 전) 코로나 19 와중인데도 시간을 내줘 대면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돼 반갑고 감사하다. 〈남산의 부장들〉에 앞서 〈내부자들〉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2015)을 봤다. 극장판보다 무려 50분이나 더 긴 3시간인데도, 길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3시간이 훌쩍, 지나가더라. 개인적으로는 극장판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내부자들〉은 어떻게 하게 됐나.

  우민호(이하 우)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2016)를 기획하고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8)를 기획·제작한 김원국 대표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김대표가 윤태호 작가의 미완성 웹툰 판권을 구입해 연출을 제안했다. 조승우가 연기한 무족보 검사는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였다. 때문에 적잖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적이긴 원작이나 영화나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웹툰이 언론과 조직폭력세계의 결탁을 중심으로 전개된 반면 영화는 검찰까지 끌어들이면서 훨씬 더 복잡해진 셈이다.

   영화의 구조가 원작보다 한층 더 복합적으로 된 것일 텐데 언론과 폭력계에다 검찰, 정치, 기업까지 다 다루면서 그것들을 응집하는 것이 어려울수도 있었을 텐데, 영화적으로 잘 배합됐다. 영화적 상상력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어쩌면 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내부자들〉이 나온 지 어느덧 5년여가 지났는데, 지금은 어떤 심정인가

   그 이후 한국 사회가 더 드라마틱한 순간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촛불혁명도 그렇고,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도 그렇고. 이런 사건들이 한국영화의 다양한 소재에 영향을 주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 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여러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여전히 언론은 변화가 있었을까, 라는 물음은 생긴다.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을 보면서, 감독이 비판의 화살을 여기저기 쏘지만 주로 겨냥하는 곳은 언론 쪽이라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의 타성과 기회주의적 속성은 쉽게 변할 수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 언론을 더욱 비판적으로 다룬 점이 더 좋았다. 3시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이 매우 짧다고 느껴졌을 정도다. 안상구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 부각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조우진이 분한 조상무가 죽을 때는 통쾌하기까지 했다.

   안상구라는 캐릭터를 이병헌 배우가 매혹적으로 소화했다. 악역이지만 분명 관객들이 빠져들 만한 매력이 있었다. 비록 건달이고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이지만, 그런 인물에 대중의 마음을 실을수 있도록 연출한 점이 주효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이 흥행을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지적받을 수도 있겠지만….

  반면에 〈마약왕〉에서는 〈내부자들〉과 같은 캐릭터가 없었다. 아무리 픽션일지라도, 입체적인 성격을 띤 인물일지라도, 관객들이 ‘마약 밀매상’이라는 캐릭터에 빠져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약왕〉이 관객 동원에 상대적으로 실패한 것은 그런이유 때문이지 않은가 싶다.

  우 사실 〈마약왕〉의 이두삼(송강호 분)보다 더 악인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라고 할지라도, 또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는 영역의 인물일지라도 내 확신이 있었다면 무조건 밀어붙였을 것이다. 관객에게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든 캐릭터일지라도 말이다. 〈마약왕〉은 캐릭터나 소재 선택 측면에서 실패했다기보다는 내 연출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한것이라고 본다.

   이제 〈남산의 부장들〉 이야기를 해보자. 우 감독이 원작을 접한 게 1996년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20년이 넘는 긴 시간이 흘렀다. 실재했던 정치적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고, 또 동일한 사건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이 있어서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작품 준비의 어려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남산의 부장들〉은 1996년도에, 제대하고 그해 겨울쯤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영화를 만들 상황이 안 됐다. 하지만 <내부자들>이 흥행하면서 오래 전에 기획했던 〈남산의 부장들〉을 만들 수 있는 경제적인 여건이 마련됐다. 또한 10·26사태라는 정치적 소재가 다소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이후에는 김충식 교수에게 영화 판권을 살 수 있었다. 다행히 교수님께서 〈내부자들〉을 좋게 보셔서 영화화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남산의 부장들〉을 준비하던 시기에, 2018년 말 〈마약왕〉이 개봉을 한 것이다.

   감독의 커리어에서 20년은 짧지 않은 세월이다. 〈남산의 부장들〉 프로젝트를 그동안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는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10·26 사태를 겪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 사건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포스럽고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북한이 쳐들어온다는 공포가 있었으니까. 당시에는 10·26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얘기도 꺼내면 안 되고. 그런데 원작을 접하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김재규에 의한 김형욱 살해 지시는, 노무현 정부 당시 열린 국정원 과거진상위원회에서 드러났는데, 그 사건이 벌어진 20일 후에 10·26 사태가 일어났다. 그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런 호기심을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서 풀어내고 싶었다.

   〈남산의 부장들〉을 처음 볼 때는 잘 몰랐지만 다시 볼 때는 김규평(이병헌 분) 캐릭터에서 감독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연출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재 인물인 김재규는 논란이 많은 인물이고, 그에 대한 평가가 아직까지 엇갈리고 있다. 그런데 감독은 그에 대한 역사적·개별적 판단을 유보하고 균형감 있게 그려내려고 노력한 것 같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군부독재의 역사속에서 철저하게 없어졌다. 대통령을 죽인 악인으로서 사라졌는데, 그간 그에 대한 재평가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충식 교수의 원작에도 그런 점이 잘 드러나 있다 .

ⓒ쇼박스

   원작을 영화적으로 잘 소화해냈다고 본다. 특히 미국의 지지를 받아 김재규가 다음 대선 주자가 될 거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영화에서 다룬 것처럼, 실제 ‘박통’ 이후 김재규가 차기 대통령을 원했다든지 하는 그런 기록이 있나.

   실제 기록은 없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김재규가 왜 대통령을 죽였는지 네 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 권력투쟁에서 밀려나서. 둘째, 미국의 보이지 않는 압력. 셋째, 박 대통령과의 오랜 신뢰 관계가 무너져서. 넷째, 부마항쟁. 이런 네 가지 주장 중에서 김재규의 최종 발언을 보면 부마항쟁에 대한 언급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그런데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어쨌든 부마항쟁 상황 속에서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과 대화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이 김재규 정보부장이었기 때문에, 영화에서 그렇게 설정한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김재규를 영웅화하는 시도들도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 모습이 보인다. 특히 김규평 캐릭터 묘사는 그런 거리를 유지하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원작과는 관계없이, 오랜 숙성의 결과물이지 않을까, 싶다.

   김재규라는 인물 자체가 굉장히 미스터리하다. 자기 모순적이고 우유부단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욱하는 성격이 있었다. 차지철과 실제로 총을겨눴다는 말도 있다. 계속 본인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복합적인 요인이 한 번에 작용하며 파괴적으로 10·26에서 분출한 것이 아닐까.

   전기성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이 가장 빠지기 쉬운 노선이 바로 ‘미화’다. 김규평을 그릴 때, 조금 더 우호적이거나 조금 더 긍정적으로 그릴 법한데도 그러지 않고, 한 인물을 비판적으로 보기 위해 마지막까지 애쓴 것이 〈남산의 부장들〉이 ‘2020년의 한국영화’로 뽑히게 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김규평을 연기한 이병헌의 연기도,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2005)에서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지만 〈내부자들〉에서 한층 더 입체적이었다. 이병헌과는 요즘 자주 연락하는가.

   평소에 가끔 만나거나 연락하곤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보지 못하다가 〈남산의 부장들〉이 아카데미 국제장편극영화상 후보작으로 출품되면서 다시 소통하고 있다. 함께 영화 홍보를 하고 있으니까. 올해는 코로나 19 탓에 줌으로 매체들과 인터뷰 중이다.

   〈마약왕〉의 송강호에 대해 말해보자. 〈마약왕〉도 그렇고,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 2019)도 잘 안 풀렸다. 송강호는 한국영화에서 절대적 존재임에도. 그에 반해 이병헌은 우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 번 도약했다. 감독을 업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제가 이병헌 씨를 업고 다녀야겠죠?

  나는 감독이 배우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감독 덕을 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라기보다, 감독과의 궁합이 맞는가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마약왕〉의 송강호와는 잘 맞지 않았던 것 아닐까. 송강호의 이미지는 보통 사람, 착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악역일지라도 어떤 식이든 관객으로 하여금 측은하게 여기게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영화를 재밌게 잘 찍었다면 〈마약왕〉도, 송강호 배우도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약왕〉은 내가 잘못 찍은 것 같다. 〈마약왕〉과 같은 소재를 준비 중인 다른 감독이 많다고 듣기도 했는데, 그들은 나보다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마약왕〉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평소보다) 다소 흔들리긴 했다.

   그건 아니다. 송강호 배우는 연기를 잘해주었다. 감독인 내가 흔들려서 그런 것 같다. 〈마약왕〉 때 내 연출이 다소 흔들렸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둘 다 ‘들’로 끝난다. 다음 작품은 ‘들’로 끝내야겠다. 〈마약왕들〉로 해야 했나. 어찌 됐든 상업영화는 대중의 마음을 캐릭터에 실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대중의 감정을 실을 수 있는 캐릭터가 필요하다. 〈마약왕〉에서 이두삼 캐릭터는 그러지 못했고, 이것이 영화 실패의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쇼박스
ⓒ쇼박스

   다시 〈남산의 부장들〉으로 돌아가서, 김규평 캐릭터에 대한 묘사…분노 조절에 힘들어하는 모습이라든가, 그런 연출이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는 김재규 셋째 여동생 내외 등 유족들에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 놀라웠다. 사전에 유족을 만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나.

   제작 과정에서 유족들을 인터뷰하지는 않았다. 영화를 만들 때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김규평 캐릭터의 콘셉트는 ‘불안’이었다. 불안한 남자가 과연 무슨 일을 벌일까 하는 긴장감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이병헌 배우의 연기가 중요했다. 이번 영화는 김규평의 불안한 심리와 감정을 가지고 관객과의 밀고 당기기에 주력했다. 〈내부자들〉은 보여주는 연기였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보여줄 듯 말 듯한 그 선을 배우와 상의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곽상천 캐릭터(이희준 분)에 대해 얘기해보자. 김규평과 달리 곽상천에 대한 묘사에서는 특별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실제 차지철이 그런 인물이었다고 한다. 복합적으로 그려내고 싶어도 워낙 단순한 인물이었다. 차지철은 박대통령을 신으로 생각하고 모신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박통의 신뢰를 얻고 나서는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차지철이 지나치게 전형적으로 묘사되는데, 그 인물을 좀 더 풍성하게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이희준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하는데, 차지철 캐릭터를 달리 그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해석의 여지가 없었다. 차지철은 술·담배도 안 하고 박대통령을 신적으로 모셨는데, 10·26 때는 총에 맞은 대통령을 버리고 도망가기 급급했다. 그 모습을 보면 참, 이율배반적이었다. 그 모습이 다였다.

   박통 살해 후의 디테일이 인상적이다. 가령 김규평이 박통을 살해하고 나가다 흥건한 피에 미끄러지는 ‘삑사리’ 장면 같은 것… .

   대통령을 죽인 사람의 심리는 어땠을까? 분명 엄청나게 불안했을 것이다. 대통령을 죽인 이후에 멋지게 퇴장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건의 현장에서 허둥지둥 빠져나오는 모습을 그려냈다.

   김재규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김재규와 안중근을 동일 선상에서 보기까지도 한다. 영화에서도 그런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 있는데….

   사건이 있었던 날이 같은 10월 26일이었을 뿐이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0월 26일,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인 10월 26일이 우연히 같았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파괴된 사나이〉(2010)에서는 목사가 등장한다.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2000)라는 제목의 단편도 있다. 종교나 목사라는 직업에 대한 어떤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가.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는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종교와는 크게 관계없다. 종교나 목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스토리적으로 그 소재가 필요했을 뿐이다.

   국내 영화계는 오로지 관객의 숫자로만 영화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개인적으로 그 점이 유감스러운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손익분기점을 맞추면 감독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생긴다. 데뷔작 〈파괴된 사나이〉(2010)는 그걸 맞출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감독의 영화 스타일은, 소재도 그렇고 대체로 강한 편이다. 대중 영화치고는 평범하지 않은 소재들을 다뤄왔다. 개신교 목사가 하느님을 저주하고 타락하며 결국 다시 돌아오는 〈파괴된 사나이〉와 같은 스토리는 한국에서 영화화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간첩〉(2012)은 엉뚱하게도, 생계형 간첩들 이야기다. 대중적 시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 것인가.

   그래서 그런가. 나는 사실 욕을 많이 먹는 감독 중에 하나다. 센 소재를 가지고 상업영화를 만들다 보니까, 주변에서는 여러 질타가 쏟아진다. 목사나 간첩이나 〈내부자들〉도 그렇고, 여러 곳에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런데 내 영화는 그저 나의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내가 모르는 대상, 김재규도 그렇고 〈마약왕〉도 마찬가지고. 1970년대 그런 인물이 있었던 것이 맞아, 하는 호기심이 생겨서 영화를 만든 것이다. 〈내부자들〉의 경우는 뉴스에서 봤던 그런 일들이 실제로 있었던 거 아닌가,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내 영화의 인물들은 어둠 속에 있었던 인물들이다. 그런 캐릭터들에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 상업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앞으로 나올 영화에서도 그런 인물들이 주인공인가?

   그건 아니다. 지금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 만들었던 인물들과는 다른 주인공으로 만들 예정이다.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장르영화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피력했는데, 우 감독은 완전히 장르영화 감독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영화 감독을 넘어이 사회, 이 세상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할까. 또 영화적 재미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5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해 나가고 싶은가?

   아직 그런 것은 없다. 그런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장르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다. 내 마음 속에는 어떤 ‘분노’가 있다. 사실 어떤 감독으로 남고 싶다는 그런 생각보다는 계속 영화를찍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어떤 감독으로 남느냐는 선생님 같은 평론가 분들이나 내 영화를 보는 대중이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터뷰를 나가며

  인터뷰는 커녕 우민호 감독과의 만남 자체가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민호라는 이름을 인지하게된 것도 〈내부자들〉을 통해서였다. 장편 데뷔작 〈파괴된 사나이〉를 봤건만 감독에 대해서는 관심을 전혀 갖지 않았었다. 〈간첩〉은 아예 보려고조차 하질 않았다. 이번에야 비로소 그 존재를 알게 됐고,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 기대 이상으로 재밌어, 내친김에 〈간첩〉까지 관람하는 성의를 보였다. 흥미롭긴 해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그럼에도 〈간첩〉은 감독 우민호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엔 모자람 없었다. 인터뷰에서도 이미 짚었지만, ‘간첩’이라는 존재에서 예의 으스스하고 무시무시함을 완전히 빼버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볼 수 있는 생활형 인간상을 부여하려고 했으니, 그얼마나 비통속적이고 생뚱한 도발인가!

 이 순간 이런 시선으로 〈마약왕〉을 다시 본다면, 영화가 안겨준 크고 깊은 실망이 어쩌면 상당 정도 희석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찾아든다.그동안의 모든 인터뷰가 그랬듯, 이번 인터뷰 역시 내게는 크고 깊은 배움의 시간이요 장이었다. 한 감독으로서만이 아니라 인간 우민호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다채로운 자극·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 그는 강변한다. 〈마약왕〉이 실망스럽다면, 그건 송강호가 아니라 자기의 문제라고. 연출을 잘 못했기 때문이지 송강호가 연기를 못한 건 아니란다. 물론 그것은 모순적 발언이다. 연출이 엉성한데, 어찌 연기가 좋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남탓 하지 않고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그는, 귀감이 되기에 손색없다. 나는 언제고 〈마약왕〉을 다시 보고, 감독 우민호론을 작심하고 그려볼 참이다. 한국영화 감독역사에 우민호란 이름을 내 나름대로 위치시켜볼 계획이다.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이 자리를 빌려 감독에게 다시금 큰 감사를 전한다.

 

* 《쿨투라》 2021년 2월호(통권 8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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