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월평] 랩, 새로운 시의 영역을 넘보다: 〈원효대사〉
[음악월평] 랩, 새로운 시의 영역을 넘보다: 〈원효대사〉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1.03.05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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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자로 쓰인 텍스트가 주가 되기 시작한 근대 이후, 시는 리듬과 낭송의 미학을 잃어버렸다. 현대에 와서 시, 특히 한국 현대시는 산문화되었고 대체적으로 시의 형식보다 의미를 강조하는 쪽으로 발전하였다. 소리가 사라진 시는 눈으로만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시각 예술이 되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새롭게 탄생한 음악 장르인 ‘랩’은 시가 잃어버렸던 낭송의 즐거움을 다시 찾아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랩 장르를 보면 고대그리스의 시인들이 하프를 뜯으며 시를 낭송하던 것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배경음악에 리듬을 맞춰 음률이 제거된 시를 낭송하는 것이 랩의 기본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랩은 시의 본령에 가장 가까운 형태일지도 모른다. 변화하지 않는 예술은 없다. 시 역시도 마찬가지로 변화하고 있고, 변화해야 한다. 랩 장르는 그동안 시에서 잃어버렸던 ‘소리’를 되찾아오면서 새롭게 시의 범주에 포함될 준비를 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랩은 한 제목 아래 동일한 의미 범주의 가사를 품고 있다 하더라도 각 문장들 간 의미의 연결성 자체는 느슨한 편이다. 따라서 의미보다는 형식에 중점을 둔 형식주의 시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랩은 음악의 한 양식이기 때문에 필히 형식의 제약을 받는다. 랩을 하기 위해 랩과 함께 깔리는 배경음악인 ‘비트’의 시간과 루프는 ‘한 곡’이라는 형식 아래 제한되어 있다. 또한 현대 음악에서 고정된 형식으로 굳어지고 있는 1절, 후렴(혹은 훅), 2절, 후렴 등, 곡 안에서의 시간적, 공간적인 제약이 있다. 주어진 시간과 리듬 공간 안에 가사가 자리를 잡기 때문에 형식의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종의 형식주의 시라고도 볼 수 있는 랩 장르에서 최근 나에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오는 아티스트가 바로 래원이다. 얼마 전 종영한 <SHOW ME THE MONEY 시즌9>에서 3위를 차지한 재능 있는 이 랩퍼는 형식주의 미학의 극한을 달리고 있는 아티스트다. 아티스트들과 리스너들 사이에서조차 “가사에 의미가 없다.”, “문장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래원의 랩은 극도의 라임 메이킹에 집중되어있다. 동일한 소리의 연속체만이 그의 랩을 묶어주는 유일한 통일성이다.

래원이는 원효대사 now
잃어버린 대사관엔
루머에 가린 패싸움 달인
이름 모를 그 사나이
- 〈원효대사〉 가사 중에서

  위의 가사에서 각 줄의 앞부분인 ‘래원인(이는)’, ‘잃어버린’ ‘루머(에) 가린’, ‘이럼(름) 모를’에서 둘째 음절인 ‘원’, ‘어’, ‘머’, ‘럼’은 모두 동일하게 모음 ‘ㅓ’의 라임을 갖는다. 또 4번째 음절은 대체로 ‘ㄴ’의 종결로 끝나면서 동일한 라임을 가져간다. 각 줄의 뒷부분인 ‘원효대사 now’, ‘대사관엔’, ‘패싸움 달인’, ‘그 사나이’에서는 중간에 위치한 ‘사’, ‘사’, ‘싸’, ‘사’가 가성으로 강조되면서 동일한 라임을 이룬다. 텍스트를 참조하지 않고 곡을 감상할 경우 이 모든 가사가 거의 동일한 소리로 들려올 만큼, 각 부분은 정교하게 조합되어 있다. 이렇게 동일한 소리 연속체(라임)들은 가사 텍스트를 보며 이 곡을 듣는 리스너들에게 곡의 통일성을 전달한다. 동일한 소리들의 연쇄 속에서 이제 우리는 래원의 가사의 내용에 주목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어떤 문장을 볼 때 그것이 얼핏 서로 호환되고 있지 않아 보여도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탐색하며 조합하는데 몰두한다. 즉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언어의 연속성을 추구하고 그 안에서 조합된 의미를 끄집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보아뱀 닮아버린 반 페르시
부합해 루시퍼 베드신
발포해 리스폰
페르시아 완패를 시켜
- 〈원효대사〉 가사 중에서

  위의 가사를 보았을 때, 우리는 먼저 ‘보아뱀’과 ‘반페르시’라는 단어를 보면서 어떤 이미지, 혹은 그림을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곧장 우리의 머리는 이 두 이미지를 혼합시키면서 안정성 있는 의미를 도출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두 개의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순간적으로 합해지면서 우리 머릿속엔 어떤 하나의 독특한 이미지, 혹은 그림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

 예를 들어, 독자인 나는 이 가사를 보면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이미지에 유명했던 축구 선수인 반 페르시의 얼굴이 합쳐진 것을 떠올리고, 악마가 베드신을 하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총을 쏘고 다시 리스폰(죽은 지역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고대의 병사였던 페르시아의 병사가 현대의 무기인 총을 맞고 패배를 당하는 장면과 연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페르시아는 한때, 알렉산더 대왕을 상대로 코끼리 병사를 사용했던 국가였으므로, 맨 처음 사용되었던 단어 ‘보아뱀’에서 연상된 코끼리와 페르시아의 의미가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무한한 상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어떻게든 이 이미지들을 조합해봄으로써 안정적인 하나의 ‘의미’를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특히나 이 가사들이 정교한 통일체인 라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통일성이 주는 믿음 속에서 허우적대면서 ‘의미 있는 의미’를 찾아 헤매려 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연속성 가운데 있지 않다. 아주 산발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우리의 머리를 공략한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애써 합쳐 놓았던 이미지들은 금방 다음 줄의 가사에서 곧바로 깨어진다. 그리고 이것들은 곡 내내 합쳐지고 깨어지고를 반복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우리에게 상당한 흥미를 준다. 동일한 형식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시시각각 합쳐지고 깨어지는 이미지를 상상하는 형식주의의 미학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만들어지고 깨어지는 이미지의 움직임이 매 초마다 반복되는 래원의 랩에서 의미와 무의미는 부단히 교차한다. 랩을 듣고 가사를 읽으 면서 이미지를 상상하고 파괴하고 다시 상상하게 하는 작업을 리스너에게 요구하는 그의 랩은 시의 영역에서 ‘소리’를 다시 되찾아가고 있는 형식주의 시로서의 랩이 어떻게 기존의 시의 영역을 넘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준행

음악가. 락 밴드 벤치위레오 보컬, 기타로 활동 중.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박사과정 재학. 시와 음악의 연관성을 탐색하는 중.

 

* 《쿨투라》 2021년 2월호(통권 8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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