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당신의 민낯을 보여줘: 〈며느라기〉, 〈산후조리원〉
[드라마 월평] 당신의 민낯을 보여줘: 〈며느라기〉, 〈산후조리원〉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1.03.05 14: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느라기〉ⓒ카카오TV
〈며느라기〉ⓒ카카오TV

  드라마 〈시그널〉에서 다른 시대에 사는 두 사람은 그 동안 해결이 어려웠던 장기 미제 사건을 무전기로 소통하며 함께 해결해나간다. 극 중 80년대 강력계 형사 이재한은 ‘지금 여기’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에게 간절하게 묻는다.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렇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달라졌을까. 모든 한국 여자의 장기 미제 사건인 결혼 이후의 ‘나’다운 삶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며느라기〉와 〈산후조리원〉은 기혼여성의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란 호평과 함께 수많은 ‘82년생 김지영’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아, 이건 반가움인가 쓸쓸함인가.

 

  결혼의 민낯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며느라기〉는 “현실과 싱크로율 95%”라는 극찬을 받으며 방영 당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극 중 “대한민국의 흔한 남자와 흔한 여자”로 태어나 같은 대학교 같은 과를 졸업한 민사린과 무구영의 일상은 결혼을 경계로 확연히 달라진다.

  첫 변화는 시어머니 생신날 찾아온다. 퇴근 후 사린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댁에 와 하룻밤 자며 정성 들여 생신상을 차린다.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첫 생신을 함께 보내려던 사린의 계획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간다. 사린을 앞에 두고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는 구영네 가족들. 대화에 낄 수 없어 밥만 먹다가 사린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이 식사하는 동안 혼자 후식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예정된 순서처럼 가족들이 과일을 먹는 시간에는 혼자 설거지를 한다. 아, 이게 무슨 노동의 개미지옥이란 말인가. 이건 며느리인가 살림 도우미인가. 드라마를 보면 왜 비혼주의를 지향하는 여성들이 많은지 저절로 알게 된다. 아, 결혼은 미친 짓, 아니 손해 보는 짓이구나.

 

  남편의 민낯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라는 광고 카피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며느라기〉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명의 아내를 내세워 가부장적인 가족 이데올로기의 허점을 짚어낸다. 사린이 아침에 혼자 생신상을 차렸다는 얘기를 들은 올케 혜린은 “자식들은 가만있고 갓 결혼한 동서만 했다면서요. (중) 동서는 출근도 해야 하는데 다들 너무 했다.”라며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혜린의 태도에 대해 구영은 “엄마도 포기했어. 그냥 형이랑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라고 비아냥거리고 “우리 부모님께 싹싹하게 잘 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라며 사린에게 칭찬 아닌 칭찬을 건넨다.

 시할아버지 제삿날, 친구네 돌잔치에 들렀다가 도와주러 가겠다는 구영이 말을 듣고서야 사린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시할아버지 제사인데 누가 누굴 도와준다는 말인가. 제사 준비로 혼자 뼈 빠지게 고생한 사린에게 구영은 엄마를 도와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감동하고 그런 구영의 태도에 사린은 혼란에 빠진다. 연애 시절 보온병에 미역국을 담아와 생일을 세심하게 챙겨주던 그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 이놈이 그때 그놈이 맞나. 이건 결혼이 아니라 사기 아닌가.

 

  시월드의 민낯

 결혼, 남편, 그리고 시월드까지 〈며느라기〉는 식탁에 빙 둘러앉아 밥을 먹는 평범한 에피소드를 통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재생산되어 우리 안에 내면화되는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아들에게 갈치 한 토막을 자애롭게 챙겨주던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양념에 조린 무만 달랑 접시에 놔주고, 딸 출장 갈 때는 보양식을 챙겨주면서도 며느리 출장 소식에 아들 밥 안 챙겨 주면 어떻게 하냐고 가지 말라고 만류한다. 한때는 누군가의 며느리였을 시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자기가 경험한 불합리한 시스템을 고스란히 계승하는 가해자의 입장에 선다. 아, 여자는 딸로 태어나 며느리로 자라 시어머니가 되는구나.

 사람은 시스템을 만들고 시스템은 사람을 만든다. “나는 며느리라고 생각 안 해요 항상 딸이라고 생각하지.” 딸 같은 며느리. 이건 면죄부를 받기 위한 자기 합리화인가. 사회 부조리를 은폐하는 거짓 최면인가. 〈며느라기〉는 사린과 친구들, 그리고 그녀와 대척점에 서 있는 시누이의 삶을 통해 여성의 고통이 여성에 의해 대물림되는 가족제도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아, 누워 서 침을 뱉는구나. 애통하다, 애통해.

〈산후조리원〉ⓒtvN

  출산의 민낯

  드라마〈산후조리원〉는 아내와 며느리에 이어 엄마라는 ‘부캐’를 추가하게 된 ‘본캐’ 오현진을 통해 출산 이후 여자의 삶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임신을 계기로 최연소 대기업 상무에서 최고령 산모가 된 그녀는 생명을 잉태한 아름다운 임산부가 아닌 출산이 임박해 배꼽이 툭 튀어나온 기괴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이 기다린다는 “산후세계” 입문으로서 출산과정 5단계를 몸소 보여준다.

  1기는 ‘굴욕기’로 현진은 출산하기 전 남편이 있는 병실에서 관장 당하는 치욕을 경험한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똥과 방귀. “굴욕이란 감정은 그나마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아주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단 깨달음과 함께 그녀는 2기 ‘짐승기’에 접어 들어 난생처음 경험한 엄청난 통증에 괴로워하며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한 마리의 짐승이 된다. 폭풍전야와 같은 3기 ‘무통기’를 지나 그녀에게는 드디어 저승사자를 알현하는 4기 ‘대환장 파티기’가 찾아온다. “죽은 건가요? 노산이라 위험하다고 하긴 했는데.”

  죽을 고비를 넘기고 힘겹게 맞이한 5기 ‘모성의 축제’에서 그녀는 예상과 너무나 다른 아이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뭐가 이렇게 빨갛지?”

  갓 태어난 아이가 괴상한 얼굴로 마구 울어대는 건 둘째치고, 왜 애를 낳아도 배는 안 들어갈까 당황해하는 현진을 배경으로 의미심장한 나래이션이 흐른다. 

  “나만 즐겁지 않은 알 수 없는 축제가 시작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축제의 센터는 바로 나였다.”

  아, 결혼은 여자와 남자가 하는데, 출산은 왜 여자만 하는 걸까. 이건 특권을 빙자한 저주일까. 고난을 이겨내고 쟁취한 은혜로운 영광일까.

 

  육아의 민낯

  “출산은 고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매일매일 깨닫게 되실 거예요.” 은 산후조리원이란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임신은 고달프고 출산은 잔인하고 회복의 과정은 구차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허허, 이거 참. 산후조리원은 바깥세상과는 질서가 완전히 다르다. 엄마의 나이, 경력, 학벌, 여기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최연소 대기업 상무 현진은 산후조리원에서 모유 수유 하나 제대로 못 하는 무능한 엄마인 동시에 양 가슴에 유축기를 달고 모유를 짜내는 인간 젖소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업주부 조은정은 “모유 수유, 2년 완모, 쌍둥이 자연주의 출산, 독박육아 6년차”라는 화려한 타이틀로 산후조리원의 여왕으로 대접받는다.

  결혼 이후 여자의 삶이 시댁과 남편에게 자발적으로 헌신하길 요구받는 ‘며느라기’로 정의된다면, 출산 이후 여자는 오로지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한 인자한 엄마의 역할만 강요받는다. 산후조리원의 여왕 조은정의 일상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아이를 돌보고 남편을 내조하느라 자기의 삶을 상실해버린, 엄마와 아내라는 부캐에 의해 ‘조은정’이란 한 인간의 본캐가 잠식되어 버린 불쌍한 사람일 뿐이다. 오, 그대여. 아이 이름 대신 내 이름을 불러주오.

 

  기혼여성의 민낯

  유명 배우 한효린은 임신 후 급격히 불어난 체중 때문에 고도비만이 된다. 기자들을 피해 숨어지내는 그녀에 대한 온갖 악성 소문이 난무한 가운데, 그녀는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을 나서며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아쉬우시겠지만 여러분 소설 속 비련의 여주인공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꼭 약속드릴게요. 국민 여신은 살 속에 파묻혔지만 더 성숙한 국민배우가 돼서 돌아오겠다고요.” 아, 여자 안에 ‘사람’ 있다.

  산후조리원 송별회 날, 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공통 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여자사람들이 모인다. 엄마란 이름으로 기쁨과 슬픔을 나무며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 그들은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라는 평범하지만 지켜내기 어려운 진실을 갓난아기처럼 소중히 가슴에 품고 산후조리원을 나선다. 아, 여자 안에 사람 있고 사람 안에 ‘나’도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오늘은 꾸밈없는 ‘나’의 민낯을 정성껏 들여다보자. 

 

김민정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창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에서 스토리텔링콘텐츠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 드라마 인문교양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소설집 『홍보용소설』, 이 사람 시리즈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등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 《쿨투라》 2021년 2월호(통권 80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