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Theme] 영화 한류를 이끌어온 K-좀비들
[3월 Theme] 영화 한류를 이끌어온 K-좀비들
  • 윤성은(영화평론가)
  • 승인 2021.03.0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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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영화는 오랫동안 주변부에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겨울연가〉와 〈대장금〉이 지구 반대편에서 인기를 얻을 때, 아이돌들이 아시아를 점령할 때 한국영화는 해외에서 여전히 생소한 존재였다. 물론, 90년대부터 3대 국제영화제를 위시해 몇몇 작가주의 감독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올드보이〉(박찬욱), 〈살인의 추억〉(봉준호),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등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지만 외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지속적으로 얻지는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는 천만 관객이 드는 영화가 등장했으며 멀티플렉스가 자리를 잡아갔다는 점을 생각하면 영화의 한류는 꽤나 더디게 진행되었던 셈이다.

  한류가 한국 문화 콘텐츠의 대외적 신드롬으로서 산업적 파급력, 즉 경제 효과까지 포함한다고 했을 때, 먼저 언급해야 할 작품은 불과 5년 전에 개봉한 〈부산행〉(연상호, 2016)일 것이다. 이 영화는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상영되었을 당시, 엄청난 호응을 얻었음은 물론 세계 전역으로 수출되어 1억 4천만 불의 수익을 거둔 바 있다. 이전까지 한국형 좀비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소수의 마니아층을 가진 B급 장르였다면 〈부산행〉이후, 좀비는 폭넓은 관객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템으로 각광 받게 되었다. 〈부산행〉의 성공 요인으로는 먼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좀비들의 공격이 펼쳐진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마지막 칸으로 이동해야 하는 주인공 일행의 사투는 액션 영화의 스릴과 긴박감을 더했고, 한 칸 한 칸을 지나갈 때마다 게임의 레벨이 높아지는 것과 유사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면서 오락성을 극대화시켰다. 타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좀비도 화제였다. 뛰는 좀비의 출현이 처음은 아니지만, 엄청난 숫자의 좀비떼가 시각적, 청각적 자극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부산행〉의 중요한 셀링 포인트 중 하나다. 비보이 댄서들을 캐스팅해 관절이 기괴하게 꺾이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 주요했다고 할 수 있다.

〈반도〉ⓒ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부산행〉의 시퀄인 〈반도〉는 2020년 여름 시즌 개봉해 국내에서 약 38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코로나19로 극장가가 흉흉하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숫자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최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표방한 이 작품은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특장점을 갖고 있어 개봉 초반 관객들의 평가가 갈리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블록버스터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냈다고 볼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들조차 개봉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반도〉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줄줄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음은 물론이고 캐나다에서도 단 48개관 개봉으로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반도〉가 올여름 유일한 블록버스터가 됐다.’(2020년 8월 13일)고 평하기도 했다. 〈반도〉는 밤부터 새벽까지의 시간, 넓은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과 완전히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좀비들과 맞붙어 싸우던 인물들은 사라졌지만 유령도시로 변한 서울을 묘사한 프로덕션 디자인, 현란한 드라이빙 신 등 블록버스터 다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살아있다〉ⓒ롯데엔터테인먼트

  〈반도〉 보다 약 3주 앞서 개봉한 〈#살아있다〉(조일형, 2020) 또한 K-좀비 신드롬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살아있다〉는 좀비의 활동성에 관한 이 영화만의 규칙을 갖고 있지 않다는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190만 명의 관객이 코로나 시국에 이 영화를 찾았던 이유는 고립과 생존, 고독과 연대라는 주제가 시대와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즉, 〈#살아있다〉를 지지했던 것은 좀비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기 보다 코로나19 시대라는 재난 상황에서 희망과 위로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는 극장 개봉 이후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는데, 이틀 만에 전 세계 35개국 영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K-좀비 열풍을 이어갔다.(플릭스패트롤 제공) 한국 콘텐츠가 미국 및 유럽 넷플릭스 순위에서 1위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K-좀비 신드롬에는 OTT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의 역할도 있었다. 좀비 영화들의 개봉 사이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은 〈부산행〉과 함께 해외에서 K-좀비 신드롬을 이끈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킹덤〉은 탄탄한 구성과 자극적인 비주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시즌2까지 선보였고, 현재 〈킹덤 외전: 아신전〉 및 시즌3까지 제작이 확정된 상태다. 아이티 원주민들의 토속신앙인 ‘부두교’로부터 유래한 살아있는 시체가 문화 콘텐츠의 인기 캐릭터로 정착하게 된 것도 흥미로운데, 현재 한국이 그 콘텐츠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승리호〉ⓒ넷플릭스

  그러나 K-좀비는 이제 영화의 한류를 이끄는 한 축으로 그 자리를 다양한 작품들에 내주고 있다.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한 〈기생충〉(봉준호, 2019)이 그 중심에 있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한국 최초의 SF 블록버스터, 〈승리호〉(조성희, 2020)는 팬데믹 장기화로 인해 극장 개봉을 포기했지만 지난 2월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전 세계 최다 스트리밍 영화 1위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한류에 올라탄 늦깎이 승객이니만큼 한국영화가 앞으로 더 큰 활약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 《쿨투라》 2021년 3월호(통권 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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