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Theme] K-드라마, 코리안 선비 스웩이 먹혔다
[3월 Theme] K-드라마, 코리안 선비 스웩이 먹혔다
  • 김세연(미디어비평가)
  • 승인 2021.03.0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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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호미가 대박을 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갸웃했다. 드라마 〈킹덤〉을 본 외국인들이 ‘ㄱ자로 된 원예도구’를 많이들 찾았다고. ‘미국 아마존’을 ‘미국 아줌마’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대장장이의 말처럼,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우리는 한류의 새바람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한류 팬들의 새로운 습관에 대해 들었을 때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Oops 대신 ‘아이구’라는 감탄사를 쓰고, 뜨거운 라면을 후루룩 삼키며, 스킨로션을 바를 때는 뺨을 때리듯이 올려붙이는 습관……. 그것들을 만든 것은 바로 K-드라마였다. 한국 문화는 이미 세계인들의 생활 곳곳에 침투해있었다.

 한류의 중심에는 처음부터 드라마가 있었다. 90년대 말 〈질투〉가 하얼빈에서 방영된 것을 시작으로 〈사랑이 뭐길래〉, 〈별은 내 가슴에〉 등 여러 작품이 중화권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2천년대 초반 〈겨울연가〉가 일본 시장에 진출해 욘사마 신드롬을 일으켰고, 〈대장금〉이 방영되며 한국 드라마의 전성시대가 열렸다1. 〈별에서 온 그대〉로 인한 치맥 열풍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견인했으며 현재 〈사랑의 불시착〉, 〈미스터 션샤인〉, 〈이태원 클라쓰〉 등 다양한 콘텐츠가 주목을 받고 있다. 〈킹덤〉과 〈스위트 홈〉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도 스트리밍 순위 상위권에 있다.

〈미스터 션샤인〉ⓒtvN

   K-드라마의 특징을 정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 드라마는 연애 드라마라는 과거의 편견과 달리 소재와 구성이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비교 대상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팬들에게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드라마는 정서적인 면을 매우 중요시한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녀가 눈이 맞으면 다음 장면이 침대로 바뀌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사랑은 육체적 관계로 단순화된다. 러브라인도 자주 바뀐다. 유명한 〈가십 걸〉의 주인공 세리나도 툭하면 썸을 타고 새 애인을 만들지 않던가. 무리 내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로 커플이 탄생하는 모습은 동물의 왕국을 방불케 한다. 반면 한국 드라마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매우 섬세하게 보여준다. 대화와 눈빛으로 무르익어가는 사랑을 그려내고, 클라이맥스에서야 겨우 키스신이 등장한다. 〈미스터 선샤인〉은 그마저도 없는데, 절절함이 배가되어 지루할 틈이 없다. 섹스에 지친 해외 시청자들은 한국판 로맨스의 순수함에 매료된다. “K-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손을 잡을 때 우리는 미쳐버리지”라는 후기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런 만큼 K-드라마는 등장인물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촌스럽고 뚱뚱한 삼순이 아름다운 희진을 이기는 무기는 삶에 대한 성실한 태도다. 이 드라마는 언뜻 평범한 여자가 재벌가 아들을 만나는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사실은 상처를 가진 남자가 솔직하고 따뜻한 여자로 인해 치유되는 이야기다. 〈또 오해영〉 역시 ‘예쁜 오해영’이 ‘평범한 오해영’을 이기지 못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오해영’은 특유의 착하고 천진한 성격으로 도경과의 사랑에 골인한다. 이런 서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둘째, K-드라마는 가족주의적이다. 부모의 결혼 반대는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구제불능인 부모 형제도 자주 등장한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리정혁은 부모 뜻에 의한 정략결혼과 형제의 죽음을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수업〉의 오지수는 학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 포주 노릇까지 하지만 그 돈마저 아버지에게 빼앗긴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은 부모 빚과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책임지느라 과로에 시달리고, 아저씨는 삼형제의 과한 우정 때문에 이혼의 위기에 처한다. 외국인들이 의아해하는 부분이 여기 있다. 한국인은 왜 자기 인생을 살지 않고 가족에게 얽매이는가. 효(孝)란 무엇인가2. 〈나의 아저씨〉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데, 늘 아저씨의 어려움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천덕꾸러기 같은 그의 형제들이다. 이지안이 할머니 장례를 도와준 형제에게 신세를 갚겠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그렇게 깔끔하게 살지마’라고 답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철저한 공동체주의에 기반한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기에 서로에게 기대어 자신을 지탱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다.

  셋째,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정이 있다. 〈미스터 선샤인〉, 〈킹덤〉 등 한국적인 배경이 도드라지는 드라마의 인기는 어느 정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정의로운 주인공은 국가에 대한 충정과 개인의 삶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태양의 후예〉 강모연은 대한민국 육군 특전사를 애인으로 둔 탓에 마음고생을 한다. 그녀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 일을 하는 유시진과의 이별을 결심하기도 하지만, 끝내 그를 응원하기로 한다. 온전히 내 것이 아닌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불안하고 힘들다. 그러나 이웃과 평화를 수호하려는 마음이 곧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으며,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K-드라마에서는 정신적인 가치의 소중함, 가족과 이웃에 대한 의리가 부각된다. 도덕(道德) 그리고 효(孝)와 충(忠). 나는 이것을 코리안 선비 스웩이라고 부르고 싶다. 뜨겁지만 절제된 사랑. 남을 위해 기꺼이 나를 내어주는 용기. 부와 명예보다 정직을 택하는 단호함. 우리 몸속에 녹아들어 있던 고매한 선비 정신은 K-드라마를 통해 재전유된다. 한국 드라마가 보수적이라는 평가는 결코 욕이 아닐 것이다.

  이번 K-드라마 유행은 코로나 상황과 더불어 OTT 플랫폼(넷플릭스)으로 인한 접근성 강화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다. ‘K-드라마가 백신이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지금 세계인들은 한국 콘텐츠에 푹 빠져있다. 코로나 이후가 더 기대되는 이유는 ‘나중에 박서준 같은 남자친구를 만나러 한국에 가겠다’는 일부 반응들 때문이다. 콘텐츠 산업의 호황이 지금과 같은 선순환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국에는 아파트 동마다 박서준이 한 명씩 있단다. 관광 많이 오렴^^’ 베스트 댓글에 ‘좋아요’를 눌러본다.


1.조용상 외, 「중국 내 한류 드라마의 스토리와 캐릭터 분석」, 『글로컬 창의 문화연구』 5. 2016, 86~87쪽.
2.김기덕 외, 「한류 드라마에 나타난 가족주의」, 『문화콘텐츠연구』2.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2012, 18쪽.

 

* 《쿨투라》 2021년 3월호(통권 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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