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쉼표도 음표다!
[4월 Theme] 쉼표도 음표다!
  • 김재열(세계여행스토리텔러)
  • 승인 2021.04.01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캠핑카는 고고한 자태를 이끌고 오후 2시경에 생각보다 아담한 소백산 오토캠핑장에 들어섰다. 우리는 사전 예약한 오붓한 자리에 야무지게 주차를 하고 여장을 풀었다. 아니 여장은 우리가 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캠핑카였다. 캠핑카는 야외의자와 식탁 그리고 바비큐 장비와 음식들을 우리에게 순순히 내어주었다. 이내 어닝으로 우리에게 쉘터를 만들어주었고 이제까지의 이동수단에서 근사한 숙박수단으로 자신의 기능을 멋지게 바꿔주었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며칠 전의 혹한이 무색할 정도로 날씨는 계절답지 않게 따뜻했고 햇살은 영롱했다. 하지만 만약 날씨가 나빴더라도 우리는 그리 실망치 않았으리라.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난 1년 여동안 대부분의 해외여행 및 강연행사일정 등의 취소로, 타고난 유목민 본능을 힘겹게 잠재우며 사무실에서 연구와 칩거를 해오던 내가 모처럼 감행한 친구와의 캠핑카 여행은 행복했다.

  캠프는 ‘들, 평원’이라는 뜻의 라틴어 ‘캄포스(Campos)’가 어원이다. 즉, 캠프는 편안한 평상과 편리한 문명 속의 안락한 보금자리와는 정반대 개념이다. 그런데 왜 이 코로나의 시대에 다소 엉뚱하게도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캠핑이 부상하는가?

  인류역사상 가장 유명한 캠프는 모세가 이끈 출애굽의 광야 캠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 초대받은 이방인으로 정착한 후 400여 년의 세월 속에서 노예로 핍박을 받았다. 그들은 리더 모세를 따라 자유를 찾아 홍해를 건넜다. 그러나 자유의 영광과 해방의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안정적이었던 이집트 정착 생활에 비한다면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식량과 물 부족, 그리고 모세의 리더십에 대한 불신 등으로 점철된 고난 그 자체였다. 노예의 땅 이집트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입성하기 위한 중요한 경유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의 장막, 즉 캠핑의 각고를 뼈저리게 견뎌야 했던 것이다 .

  로마는 성을 쌓지 않고 길을 닦았다!

  기원전 8세기 중엽 로마의 일곱 언덕에 자리 잡은 라틴족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포에니전쟁의 승리를 분기점으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후 최초로 해외식민지를 통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절실했던 제국의 인프라 스투락투라(인프라 스트럭처)는 식민통치의 기본이 되는 군대 파견을 위한 도로의 건설이었다. 도로의 황제라고 일컬어지는 아피아 가도를 시작으로 로마는 24만 킬로미터의 크고 작은 도로들을 제국에 건설했고, 멸망할 때까지 끊임없는 전쟁의 서정을 이어갔다.

  전장에서의 로마 군대의 가장 커다란 차별점은 완벽하고 철저한 군영지의 건설이었다. 단 하룻밤을 묵더라도 로마군은 완벽한 캠핑지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첫 장면에서,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휘하의 막시무스 장군의 로마 군대와 매우 야만적으로 그려진 게르만족 군대와의 스펙터클한 전투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전쟁은 천신만고 끝에 로마군의 승리로 끝난다. 그리고 『명상록』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패악한 아들 코모두스는 이 전쟁 승리의 공을 막시무스 장군에게서 가로채며 로마로 개선한다. 이때 원로원 의원들이 장군의 공적을 가로챈 황제를 비아냥하는 말을 나눈다.

  개선은 목숨을 건 군영지의 캠프 생활을 승리로 마친 황제와 장군의 영광스러운 본토귀환이다. 서양의 군주는 어떤 형태로든 조정의 궁궐에서 좌시하지않고 전쟁캠프에서 진두지휘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후에 서양은 특유의 캠프본능으로 영토 확장의 야망을 불태우며 경쟁적으로 지속적인 모험과 정복을 서슴지 않았고 결국 신대륙발견을 통한 아메리카대륙의 점령에 이어 서세동점의 식민지경영으로 동양을 압제하고 압도했다. 제국의 수성(守城)보다는 제국의 경영과 확장을 꿈꿨던 로마의 전장 군영지 캠프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다.

  마네의 인상주의 캠프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는 살롱전에 1861년 겨우 입선하여 수상한 바 있으나, 당시 너무도 낯설었던 마네의 인상주의 작품은 여러 차례에 걸쳐 낙선을 거듭하였다. 그러자 마네는 1863년 당시 프랑스의 미술작품 등용문이었던 제도권의 살롱전에서 낙선한 문제작 〈풀밭 위의 점심〉 등의 작품들을 세느 강변에 설치한 초라한 인상주의 캠프에 전시하는 낙선전(落選展)을 열어 미술계에 인상주의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과감히 강 건너에 자신들만의 새로운 리그캠프를 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많은 프랑스 화가들은 당시 살롱전 입선 화가 보다는 바로 이 인상파 화가들이고 아울러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작품도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이다. 마네의 인상주의 캠프는 제도권 예술에의 반란을 통쾌하게 성공시켰다. 캠프는 제도권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선거권의 전략본부를 우리 시대는 선거캠프라고 부른다.

  캠프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의 표상으로 시작해서 인류 전쟁의 대명사가 되었고, 모험과 도전의 교두보이자 제도권을 벗어나 독립을 시도한 장르 개척의 상징에서 정치권 선거전략의 교두보가 되었다. 더불어 어느새인가 전 세계 야외교육의 대명사가 되었다. 교육캠프! 영어캠프! 견문과 교육을 위한 캠프라면 영국의 그랜드 투어를 빼놓을 수 없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대학 졸업 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유럽대륙으로 약 2년간의 여행을 떠난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한 장편 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가 간행되자 영국 사교계가 술렁거렸다. 발행인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바이런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유명해져 있었다(I awoke one morning to find myself famous).”

  영국은 300여 년 전 17세기 중반부터 상류층 귀족 자제들이 주축이 되어 당시 문화적 사회적 선진국으로 일컬어진 프랑스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지 유럽대륙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주도 하였다. 전통적으로 교육을 중시하는 영국의 그랜드 투어는 이후 영국의 어마어마한 제국확장과 산업혁명을 이룩한다. 엘리트교육의 종착점은 그랜드 투어이다!

  캠핑은 이제 태생적 모험의 본색을 넘어서 틀에 박힌 삶에 지친 도시인의 탈출 방편으로 확산 중이다. 이 현상이 주는 아이러니는 다름 아닌 캠프에 동반되는 불편함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해왔다. 건축을 통해 쾌적한 주거지 문명을 만들어왔다. 냉난방 통한 온도 조절, 수도, 전기, 조경, 전망, 경비, 홈오토메이션 등 편안함을 추구하는 주거혁신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 안락한 주거지를 벗어나 들로 바다로 캠핑을 떠나고 싶어 안달을 하다니 이것은 엄청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하긴 미국 대통령의 전용 별장의 이름은 캠프 데이비드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 대통령도 다윗의 장막에서 휴양을 즐긴다.

  Nature라는 영어 단어는 ‘본성’과 ‘자연’이라는 두가지 뜻을 동시에 지닌다. 캠핑은 인류의 본성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자연 친화와 야성으로의 귀환본능을 실현해주는 근사한 수단이다.

  미국의 록밴드 이글스의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Mirrors on the ceiling, The pink champagne on ice And she said, 'we are all just prisoners here, of our own device' And in the master's chambers, They gathered for the feast. They stab it with their steely knives, But they just can't kill the beast

  현란한 연회를 즐기고 있는 현대인들은 행복한 것 같지만, 자신이 고안한 도시 문명이라는 시스템에 스스로 갇힌 죄수이고, 그것은 그들이 단단하고 예리한 칼로도 물리칠 수 없는 괴수이자 멍에다

  캠핑카 너머로 펼쳐지는 산등성이의 석양 실루엣의 향연이, 이 여행이 끝나면 또다시 치열하게 펼쳐질 현실의 만만찮은 걱정거리들을 마비시키고도 남을 만큼 영롱하고 아름답다. 적어도 지금 나는 너무도 행복하다! 고교 학창시절 여간해서 박자를 맞추지 못하던 우리의 박자개념 없는 연주에 당신의 답답함을 지휘봉 끝에 실어 일갈하던 음악 선생님의 충고가 갑자기 내 머리를 스친다.

  “이 바보들아! 쉼표도 음표야!”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