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군복무 시 야영 생활의 추억
[4월 Theme] 군복무 시 야영 생활의 추억
  • 하정열(한국안보통일연구원장,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0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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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야영(텐트) 생활을 하는 집단을 손꼽으라면 단연 군대일 것이다. 그러나 군대의 야영은 민간의 야영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다. 통상 민간의 야영 생활이 개인의 취미활동이거나 휴가 등을 위해 잘 다듬어진 휴양시설이나 텐트촌 등에서 하는 것에 비해, 군대의 야영 생활은 야외훈련이나 부대공사 등의 과정에서 산이나 혹은 들판에서 실시하게 된다.

  군대에서 하는 야영은 분대 단위의 소부대훈련에서부터 사단급의 대부대 기동훈련까지 각종 훈련 시에 은폐와 엄폐가 잘 된 산이나 숲에 텐트를 치고 실시한다. 이러한 훈련은 공격이나 방어 등 훈련의 진행 과정에 따라 수시로 장소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신속하고 완벽하게 텐트를 치거나 걷어서 타 주둔지로 이동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군대에서는 전투준비태세 차원에서 수시로 텐트 설치 및 철거훈련을 한다. 이러한 훈련에서 병사들은 2명이 1개 조가 되어 개인용 텐트를 치게 되며, 대대급 이상 부대에서는 24인용 텐트를 쳐서 상황실 등으로 활용한다.

  훈련 외에도 부대가 야외에 나가 공사를 하거나, 체육대회나 하절기 휴양 등 각종 행사를 할 때도 텐트를 치는데, 이때는 통상 분대가 한 텐트에서 생활하도록 10인 이내의 인원이 들어가 생활할 수 있는 분대용 텐트를 설치하거나, 24인용의 큰 텐트를 설치하기도 한다. 특히 영하 10도 아래에서 혹한기 훈련을 실시할 때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땅을 1미터 이상 파고 들어가 그 위에 텐트로 덮고, 그 안에는 러시아 말로 ‘페치카’라고 하는 벽난로 식의 난방장치를 만들어 온기를 유지한다.

  군인들이 사용하는 텐트의 특성은 적이 숙영지를 쉽게 정찰하지 못하도록 위장이 잘 되어야 하기 때문에, 민간에서 사용하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텐트보다는 주변의 숲과 어울리는 녹색 계통의 텐트를 주로 사용한다. 가을에는 그 위에 낙엽이나 나뭇가지를 덮고, 겨울에는 눈을 덮거나 흰색의 위장망을 만들어 덮어주기도 한다.

  민간인들은 휴가나 야영을 즐기기 위해 불을 피워서 고기를 굽고, 떠들썩하게 놀면서 몸과 마음을 휴양하기 위해 산이나 물 주변에 통상 가족 단위 텐트를 친다. 그래서 텐트는 화려하게 노출되고 불빛은 가능한 한 밝으면 좋다. 출입과 생활이 편하도록 텐트도 높이 치고, 때로는 캠핑카를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군인들은 훈련 시에는 생존을 목적으로 텐트를 활용하기 때문에 군인들이 훈련목적으로 텐트를 칠 때는 서로 적당한 거리와 간격을 유지하면서 (군에서는 이것을 산개 혹은 소개시킨다고 한다)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도록 낮게 친다. 소대급 이상의 훈련을 할 때는 대부분 주변과 같은 색으로 위장을 하고, 텐트 주위에 철조망을 치거나 초소를 만들어 경계병을 배치하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적의 접근이 차단된다. 그리고 적에게 노출을 피하기 위해 산의 전사면보다는 후사면 즉 뒤쪽에 숙영지를 마련한다.

  독자들도 그런 경험이 있겠지만, 텐트 생활은 날씨가 좋으면 그런대로 할만한 또는 재미있는 추억이 될수 있다. 하지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은 작은 텐트에 들어가 생활하는 것이 고역일 경우가 많다. 군에서는 물이 텐트에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텐트주변에 물골을 내지만, 큰비가 올 때는 텐트 안까지 물이 스며드는 것도 다반사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간부들은 산사태의 위험은 없는지, 침수 피해는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병사들이 곤히 잠든 밤에 홀로 순찰을 하기도 한다.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비 오는 날에는 텐트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즐긴 적이 많았다. 비발디의 〈사계〉를 떠올리면서, 이런 것도 군인만이 누릴수 있는 경험이 아닌가 생각하며 시를 쓰기도 했다. 혹한기훈련 중에는 추운 겨울밤에 외딴 산골에서 찬란히 빛나는 별빛들을 바라보면서 윤동주 선배님의 〈서시〉를 읊으며 군인으로서의 사생관을 되뇌기도 했다. 낙엽이 지는 가을에는 산골짜기에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낭만에 젖어 직업군인이 된 것이 참 잘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자위하기도 했다.

  군대에서 텐트 생활 중 기억에 특히 많이 남는 두개의 사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군에서 야외훈련이나 공사를 나가면 텐트를 치고 생활했는데, 반합에 물을 넣고 나뭇가지 등을 모아 밥을 해서 먹어야 하는 때가 많았다. 통상 은밀하게 한다고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나는 걸막기는 어려워서, 상급부대의 점검관으로부터 지적을 받곤 했다. 밥을 먹고 나면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별도로 위장할 필요도 없었다. 반합에 하는 밥이라 타거나 덜 익은 경우가 많았는데, 반찬 한 가지에 먹는 밥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입에 침이 고이며 흐뭇해지고는 한다. 요즈음은 대부분 전투식량을 주거나 혹은 대대 단위로 취사를 해서 차량으로 운반해주기 때문에 군대가 참 편해졌다고 생각도 든다.

대규모 훈련용 텐트(위장망)
분대용 텐트

  둘째, 나는 육군사관학교 생도 1학년 때 독일사관학교에 파견 가서 3년 동안 독일 사관생도들과 함께 생활했다. 독일 사관생도는 실무부대에 가서 신병들과 함께 3개월 동안 기초군사훈련을 하는데, 나는 산악보병으로 알프스산에서 영하 30도에 가까운 추운 날씨에 동계훈련을 한 적이 있다. 하루 종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잘 타지도 못하는 스키를 타면서 30킬로미터 이상의 산악 행군을 해서 알프스산 중턱에 있는 숙영지에 도착했다. 스키를 잘 타지 못했던 나는 맨 마지막 그룹에 속해 도착했는데, 먼저 도착한 중대원들이 눈으로 이글루를 지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위스키 한 잔을 하고(독일 산악보병은 혹한을 이겨내기 위해 잠들기 전에 독주 한 잔을 하는 전통이 있다) 이글루 안으로 기어들었다. 이글루는 실내의 열을 보존하기 위해 입구를 낮게 파서 기어들어야만 했다. 이글루 속에는 촛불 3개가 켜져 있었다. 침낭에 들어가 누웠는데도 눈 위에 이글루를 지어 등이 무척 차가웠지만, 피곤해서 쉽게 잠이 들었다. 곤히 자다가 뭔가 너무 춥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녘에 눈을 떴는데,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 보이는 것이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하늘인가! 추위도 잊고, 잠도 잊은 채 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알아보니 이글루를 덮은 눈이 세 자루 촛불의 열기에 밤새 녹아 조그만 구멍이 난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내가 직접 이글루를 만들고 독일 병사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알프스의 강추위를 이겨내는 숙영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지금도 이글루에서 별을 하나둘 세던 추억이 아련하다.

  결론적으로 군생활에서 야영을 한다는 것은 민간에서의 야영과는 달리 전투와 훈련을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고되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대 주둔지 내의 병영(침대)을 떠나 야외에서 뛰고 뒹구는 것도 군생활의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은 그것만의 아름다움과 독특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군대에서 배운 텐트 치는 실력으로 가장이 되어 가족들 앞에서 텐트를 멋지게 치며 뽐낼 수 있으니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한다. 텐트와 함께하는 야영 생활은 민간에서뿐만 아니라 군대에서도 낭만이 물씬 풍기는 삶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하정열
한국안보통일연구원장,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예비역 육군 소장, 북한학박사, 시인, 화가, 소설가, 칼럼니스트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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