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먹자 마시자 읏짜!
[4월 Theme] 먹자 마시자 읏짜!
  • 정태겸(여행작가)
  • 승인 2021.04.01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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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은 먹는 게 절반이다. 아무리 자연을 벗 삼는다고 해도, 불멍으로 치유의 시간을 갖느니 어쩌니 해도, 뭘 어떻게 먹었느냐가 캠핑의 재미를 담보한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금강산도 잘 먹은 후에야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라고 했다.

 

  캠핑은 먹는 게 절반

  짐을 꾸리기 전에 늘 고민한다. 이번엔 뭘 먹어야 하나. 이건 지난번에 먹었고 저건 매번 먹어서 지겹다. 고기를 굽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삼겹살로 시작해서 목살, 항정살, 가브리살을 거쳐 고급지게 소고기까지 구워 먹고 나면 오리고기, 닭고기 마지막은 양고기까지 거치게 된다. 캠핑 좀 다녔다는 사람 중에는 아예 돼지 다리를 통으로 사서 캠핑하는 내내 구워 먹기도 한다지만, 그건 여럿이 함께하는 캠핑일때 이벤트성으로 하면 모를까 모두가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크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절반도 못 먹고 올가능성이 클 테니까.

  지난해부터는 사정이 좀 나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캠핑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이런 트렌드를 놓칠세라 기업마다 캠핑을 위한 온갖 아이템을 쏟아낸 덕분이다. 마트에 가면 쉽고 편하게 요리해 먹을 밀키트나 HMR이 종류별로 구비돼 있다. 머릿속이 시끄러워 내일 캠핑이나 갈까 싶으면 아무 생각없이 대형마트 식품 코너로 직행하면 된다. 거기서 오늘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담고 안주에 맞출 술을 몇병 챙기면 캠핑 준비는 대략 끝난다. 심지어 특정 소셜커머스에 들어가면 전국의 내로라하는 식당이 준비한 시그너처 메뉴까지 구비돼 있다. 골라 담고 결제하면 다음 날 새벽에 내 집 문 앞에 떡하니 와 있으니 이 어찌 신세계라 하지 않으리오. 캠핑 다니기에 이렇게 좋은 시대가 또 있었나 싶다. 캠핑에 도전하겠다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여기서 잠시 개인적인 캠핑 연대기를 언급하려 한다. 워낙 먹는 걸 밝히고 맛있는 거라면 한번은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 탓에 몸무게가 세자리로 넘어가는 시절이 있었을 만큼 먹는 것에 진심인 편이다. 요리도 좋아해서 요리사들과 친분을 쌓으려 노력하고, 술자리에서 감언이설로 꼬드겨 얻어낸 레시피를 가족에게 선보이며 흐뭇해하는 ‘관종’이기도 하다. 고백하건데, 캠핑을 시작한 건 요리로 가족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데, “네가 요리하고 나면 주방이 초토화된다.”라는 꾸지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마구 채를 썰다 바닥에 좀 떨어져도, 볶음요리를 하며 주변을 기름범벅으로 만들어놔도 내 부엌이 아니니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니까. 암튼, 그렇게 캠핑 가서 온갖 것을 다 해 먹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캠핑이라고 고기만 구워 먹는 우매한 짓은 그만 해야 한다는.

  밀키트는 사랑입니다

  그럼 다음부터 캠핑장에서 무얼 해 먹었느냐. 회를 사서 무쳐 먹었다. 카르파초(carpaccio)라는 게 있다. 이태리 음식인데, 우리 식으로 하자면 회무침이다. 소금과 후추, 향신료 따위를 적당히 뿌리고 살짝 매콤하게 페페론치노를 잘게 잘라 올린다. 양파를 얇게 총총총, 제철 나물류도 송송송 잘라 넣고 레몬즙 쪽 뿌린 후 우아하게 무쳐주면 완성이다. 이렇게 간단한데 동석한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요리도 별로 없다. 일단 엄청 있어 보인다. 상큼하니 맛도 좋다. 회가 아니어도 문어나 갑오징어 숙회 같은 걸 응용해도 된다. 소고기 육회를 써도 좋다.

  카르파초 하나를 예로 들었지만, 예전에는 참 이것 저것 연구해 가면서 많이도 해 먹었다. 그때는 밀키트 같은 게 없었으니까. 이제는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 밀키트가 있으니까. 캠핑문화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상당히 빠르게 바뀌어 가는 게 이런 지점에서 엿보인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 하고 있다. 요리에 자신 없는 이에게는 캠핑가서 무언가를 해 먹는다는 게 크나큰 고민이 될 테니까. ‘캠린이’인 것도 서러운데 ‘요린이’라 밥 한 끼 먹는 것마저 고역이라면 캠핑문화는 이렇게 고성장을 하지 못했을 거다.

  찾아 먹는 재미가 있는 지역의 맛

  이쯤에서 “캠핑 음식은 제발 사드세요.”라고 말하며 아름답게 끝을 맺고 싶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서 원고를 조금 더 써야 할 것 같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고 캠핑문화를 위한 작디작은 제안이다. 밀키트도 좋지만, 기왕이면 캠핑을 하는 지역의 식당이나 로컬푸드를 이용해주자는 거다. 여행을 다니면서 곳곳에 숨어 있는 맛있는 식당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런 곳의 요리를 포장해서 캠핑 중에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굳이 식당 앞에 줄 서지 않아도 되니 좋고, 밀키트처럼 먹는 것이 절반인데 포장 쓰레기가 나머지 절반인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기왕이면 그 동네의 주조장을 찾아 지역 막걸리나 전통주를 함께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캠핑을 다니면서 지역의 현지인은 캠핑족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걸 자주 느낀다. 시장에서 장이라도 보면 좋겠는데, 요즘은 아예 캠핑장까지 밀키트 박스가 배달되니 캠핑하러 온 사람은 지역의 전통시장에 가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점이 갈수록 서운함으로 쌓이는 듯하다. 자꾸만 노지 캠핑장이 막히는데에는 이런 면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캠핑 후에 나오는 쓰레기는 더 큰 문제다. 캠핑이 끝나고 쓰레기봉투를 얌전하게 잘 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매주 나오는 양이 엄청나다. 우리가 떠나고 난뒤에는 동네 길고양이며 야생동물이 그 쓰레기봉투를 다 뜯어놓는다. 그러니 캠핑하러 오는 사람이 반가울 리 만무하다.

  굉장히 사회운동스러운 캠페인 거리를 하나 툭 던져놓고 있어 보이는 척 마무리를 하려니 눈치가 보인다. 물론 선택은 캠핑가는 이의 자유다. 구워 먹든 무쳐 먹든 끓여 먹든 캠핑의 재미는 먹는 데에서 나오는 법. 어차피 먹는 거 기왕이면 그 동네의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먹어보자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면 “충북은 먹을 게 없어요”, “대구는 맛이 없어요”, “경상도는 뭘 먹어야 하나요” 같은 이야기가 조금씩 사라지리라 생각한다. 먹어보면 대한민국에 맛없는 동네는 없다. 캠핑을 하며 먹을 것도 그만큼 많다.

 

정태겸
몽상가이자 여행작가. 주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고 가끔은 라디오에서 여행이야기를 한다.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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