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별 하나에 캠핑
[4월 Theme] 별 하나에 캠핑
  • 김익겸(출판평론가)
  • 승인 2021.04.01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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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였을까? 위험과 고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캠핑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 ‘집 떠나면 고생’이고,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어느 때보다 성행하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역대 최대의 캠핑 인구 600만(2018년 통계청) 시대를 맞고 있다. 얼마나 인기인지, 고생은 싫지만 캠핑은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에어컨과 난방 그리고 싱크대, TV 등 집 안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글램핑까지 생겼을까 .

  사실 캠핑은 자연의 계절적 요인들이 숙박하는 시설물(텐트)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기 때문에, 춥거나 덥고, 밝거나 어둡고,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는 등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환경 감성을 오롯이 전달해준다. 오랫동안 머무를 목적이 아니기에, 목초지를 찾아다니는 노마드(유목민)처럼 1일 1캠핑하며 지역을 옮겨 다니는 경우도 많다. 휴대전화, 전기차, 드론, AI 등 문명적으로 가장 발달한 21세기에 사는 현대인은, 물질의 풍요와 영혼의 빈곤 속에 쉴 새 없이 떠다니는 진짜 노마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작했던 것 같다. 7월 말~8월 초 전국민 여름 휴가 주간을 위해 마련된 숙박 시설을 벗어나 진짜 쉼을 찾아서. 일평생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될 순 없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자연과 친화한 환경에서 피톤치드를 맘껏 누리고, 자연이 차려준 최고의 밥상으로 빈곤한 현대인의 영혼을 채우고 싶었는지도.

  사방을 둘러봐도 산과 논밭이 전부인 파주 시골에서 나고 자란 탓에, 나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토요일, 동네 친구들과 낮은 언덕에 오르곤 했는데, 산의 끝자락이자 길게 팔을 뻗고 누운 것처럼 생긴 언덕은 작은 풀과 나무뿐이어서 땅꼬마들의 놀이터로 충분했다. 산등성이에 올라 저 멀리 우두커니 서 있는 산과 큰길 위를 다니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그중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나를 실어 어디론가 데려가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언덕 위에 나란히 앉아 먹었던 부뚜막 솥에서 갓 퍼담은 밥과 김치뿐인 도시락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소풍의 주인공, 소시지 김밥과 환타보다 맛났고, 자연에서 즐기는 식도락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2008년 여름, 하루치 숙박료면 텐트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경제성 때문에 시작했던 캠핑은, 노마드 감성을 채우고 빈곤한 도시 노동자의 영혼을 충전하는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첫 캠핑지였던 충남 태안은 해마다 거르지 않고 찾아가는 전용 별장지이자, 당시 다섯 살, 세 살 아이들에게 책과 영상이 아닌 두 눈과 손발, 온몸으로 배우는 자연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도, 아내와 나도, 자연도 더불어 자라간다는 것을 한 곳에서 캠핑을 하며 배웠다 .

  처음 캠핑하기로 결정한 뒤, 좋은 곳을 찾기 위해 발품도 팔고 여기저기 블로깅도 하고 계곡과 산에도 가봤지만, 나의 원픽은 바닷가였다. 아이들을 위해 깨끗한 물, 얕은 수면, 안전한 모래사장을 찾았는데, 정말 그런 곳이 있을 줄이야. 나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다. 황해라는 이름의 서해 바다에 하얀 모래사장이라니. 물은 맑고 얕아서 하얀 조개와 내 발등이 선명하게 보였고,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은 일몰과 해무가 밀려올 때면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광을 보여주는 갤러리가 되었다. 바위틈에서 주운 조개와 고둥, 뿔소라를 넣은 라면맛은 바닷바람과 파도와 함께 즐기는 4D 극장이나 다름 없었다.

  캠핑을 시작한 지 6~7년쯤 되었을까. 태안을 갈 때마다 어느 한 구멍가게에 들러 아이스박스용 사각 얼음과 고추장, 물, 호미, 간식 등을 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분들의 얼굴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어디에서 왔어요?”
“수원이요.”
“우리 아들이 거기 사는데… 반갑네 그려.”
“할아버지는 어디 가셨어요?”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할머니는 더는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고 당신도 그렇다고. 건강하시라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마음을 전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고향 같은 곳이 되었던 것일까. 마음 한구석이 시려왔다. 이듬해, 구멍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쥐어주시던 할머니 손이, 뭐 하나라도 더 살 게 있는지 둘러보던 구멍가게는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한 번은 새로운 중학교에서 적응하기 어려워하던 사춘기 조카와 같이 캠핑을 했던 적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아내는 언니 딸의 상황을 살피더니 캠핑을 같이 가자고 권했다. 텐트 하나에 어른 둘, 중학생 하나와 꼬마 둘. 텐트는 좁았지만 하늘과 넓은 바닷가에서 고기도 굽고, 불멍도 하고, 파도 소리와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리며 우리의 공감 영역은 커져만 갔다. 특별한 솔루션이 있던 것도 아닌데, 그 뒤 조카는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쳤고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되었다.

  타향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며 지은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은 저 멀리 떠나보낸 캠핑의 시간을 소환한다. 별 하나에 이야기를 담고, 별 하나에 시간을 담고, 별 하나에 사람을 담고, 별 하나에 아이들을 담고…


김익겸
한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에서 신문잡지 석사학위 과정을 수료했다. 《빛과 소금》 기자, 《행복한 동행》,《좋은생각》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북이십일에서 출판기획과 마케팅,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출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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