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영화 속 캠핑, 캠핑 중 영화
[4월 Theme] 영화 속 캠핑, 캠핑 중 영화
  • 박미경(씨컬처 대표, 콘텐츠큐레이터)
  • 승인 2021.04.0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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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캠핑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네 가족이 이때다 하고 제 집마냥 술상을 벌인 날은 집주인 박사장네가 캠핑을 간 때였다. 짜파구리를 끓여내야 하는 동시에 술상을 원상복구할 절체절명 8분은 비가 퍼부어 캠핑을 할 수 없던 가족이 캠핑지에서 돌아오던 길에서 집까지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박사장네 아들은 다시 마당에 텐트를 친다. <기생충> 속 캠핑은 집을 비우는 계기이자 불시에 돌아오는 빌미가 되며 사건을 점화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또 비가 새지 않는 텐트, 비에 무방비인 집으로 대비해 보면 빈부의 단차를 드러내는 소구이기도 한데, 부자의 텐트는 가난한 이의 집보다 안전하다.

  상남자의 상징과도 같은 카우보이, 동성애가 금기던 시대 두 카우보이는 양떼 방목하는 일을 함께 하는 산 속 천막에서 부대끼다 격정에 빠져든다. 캠핑이라고 부른다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텐트는 일터이며 집이고 사랑의 공간이자 이별의 장소다. 야생같은 격정, 한 시절의 거대한 공간이다. 천막 속 공기와 함께 서로를 오랫동안 그리워했을 듯하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의 텐트는 태풍에 날아가고 텐트 조차 없는 여행을 통해 청년들은 잉카의 역사 유적과 정치 격동 속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현실을 맨눈으로 목격한다.

  영화 속 캠핑에서 텐트를 친다면 텐트 안도 영화고 텐트 밖도 영화다. 영화니까. 우리들의 캠핑에서라면 영화같은 일이 늘 벌어지진 않으므로 캠핑을 영화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텐트 속 혹은 텐트 밖 야생의 배경에서 영화를 보는 것 아니겠는가. 캠핑이라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좋고 영화를 본다면 어떤 영화라도 좋다. 한가지, 캠핑지의 경관, 동행, 무드를 함께 고려해 영화를 고르면 영화덕분에 그날의 캠핑이, 캠핑이어서 그 영화가 더욱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캠핑 중 영화

  봄날의 혼캠이라면 <4월 이야기>가 좋겠다. 인생이 계절이라면 초봄같은, 대학 초년생 그녀의 짝사랑과 수채화 같은 장면장면을 따라가면 벚나무 아래가 아니어도 벚꽃이 흩날릴 것이다. 혼자라도, 혼자여서 처음 마냥 설렐 것이다. 조금 무거운 무드를 견딜 수 있다면 <이지 라이더>나 <인투 더 와일드>도 좋다. 캠핑의 본질을 ‘문명’과의 거리두기, ‘야생’을 살기라고 한다면 ‘본질적’으로 살다 죽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혼캠의 공간을 홀연, 삶의 본질 그 한가운데로 데려다놓는다, 충격적으로. 연인과 함께라면, 게다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의 캠핑이라면 <노바 블랙홀 아포칼립스>를 함께 보시라, 두번 보시라. 중력과 파동 같은 우주나 물리의 개념보다 별 하나 나 하나, 별의 탄생과 우리의 소멸이 별 다를 바 없이 펼쳐지는 장면들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 밤의 캠핑은 소멸하지 않는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만 같다. 타카쿠라 켄이 죽은 아내의 유골을 들고 유언을 따라 아내의 고향 바다로 산골하러 가는 교도관으로 출연한 유작 <당신에게>는 로드무비다. 남편에게 남긴 아내의 마지막 편지에는 무슨 말이 적혀있을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나가사키 어촌의 풍광들을 따라 영화의 엔딩에 이르면 ‘삶’에 대한 메타포 같은, 타네타 산토카의 하이쿠가흐른다. 캠핑지에서 그 하이쿠를 따라 읊어보시라, 아내의 마지막 인사와 하이쿠가 함께 연인들, 애정의 뼈에 각골난망 새겨질 것이다.

  아이들과의 캠핑이라면 <화이트라이언 찰리>를 보겠다. 런던에서 남아공으로 이사해 사자농장을 운영하는 가족과 흰사자 찰리가 가족으로 살며 사랑하며 배우고 성장하는 이야기, 라고 쓰면 짐작할만한 동물영화, 가족영화 같겠지만 아프리카의 풍광이나 반려동물이 사자라거나 사자와의 동거라니 하는 요소들이 어우러지며 그려내는 장면과 감정은 울림이 다르다. 야생의 캠핑장에서라면 울림의 반경도 가없이 넓어지겠지. <지구의 밤>을 보며 가족의 밤을 만들어도 좋겠다.

  격의 없는 벗들과의 캠핑이라면 <데이비드 애튼버러 :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가 좋겠다. ‘재미는 없고 계도의 목적의식만 뽀족한 환경영화’라는 건 편견일 뿐이지만, 그런 영화가 있다 치면 그 다큐는 아니다. 지금 어디, 나는 누구…인지 궁금한 21세기 인류라면, ‘꼭 봐야할’이라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는 편인 나로서도 누구라도 꼭 봤으면 하는 콘텐츠다.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으로 평생을 일한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이 체득한 문명의 현재를 근거자료와 함께 명료히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문명의 다음, 지속가능한 공생을 위한 실천가능한 대안까지 제안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땅끝, 파타고니아를 전세계에 알리며 여행문학의 시작으로 불리는 책 『파티고니아(In Patagonia)』를 쓴 브루스 채트윈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있다. 친구이자 감독인 베르너 헤어조크가 만든 <유랑:브루스 채트윈의 발자취를 따라서>는 브루스 채트윈이라는 매혹적 인간과 그의 유랑같은 삶과 여행,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담은, 유랑자의 참고서다.몰랐다면 보고 가시라. 못봤다면 가서 보시라. 여행자라면, 캠퍼라면.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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