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요론 요론”, 섬에서의 하룻밤
[4월 Theme] “요론 요론”, 섬에서의 하룻밤
  • 김민수(섬 여행가, 캠핑 여행가)
  • 승인 2021.04.01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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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론 섬(ヨロン島)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안경〉(2007)의 배경이 되었던 섬이다. 이야기는 조용한 곳에서 힐링을 즐기고 싶었던 여자 주인공이 작은 섬 하나를 찾게 되면서 시작된다. 떼어버리지 못한 그녀의 도시적 습관은 갈등으로 이어지지만 결국 사색을 미덕으로 여기는 섬사람들과의 동화를 통해 진정한 치유를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를 본 한 네티즌이 “지루해서 못 참을 것 같은 순간부터 5분만 더 견뎌내면 점점 더 그리워지는 영화”라고 평했을 만큼 내용은 시종일관 굴곡 없이 잔잔하다.

  가는 길은 조금 복잡하지만

  ‘느림의 미학’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섬’ ‘사색의 섬’ ‘치유의 섬’ 요론 섬은 가고시마현의 최남단 아마미제도에 속해있다. 섬의 면적은 21km², 우리 나라의 덕적도와 비슷한 크기임에도 약 6천 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또한, 오키나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아열대기후를 보이며 연중 평균기온은 20℃를 상회한다. 요론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나 여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비행기의 경우 오키나와 나하에서 40분밖에는 걸리지 않지만, 항공료가 2,500엔으로 매우 비싸다. 그래서 일반 여행자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여객선을 선호한다.

  아마미군도는 국정공원에 속해있다. 따라서 캠핑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요론 섬의 캠핑장은 ‘유리가하마캠프장’ 단 한 곳뿐이다. 캠핑장을 이용하려면 일단 요론정 상공관광과에 전화 예약을 하고 당일에 방문해서 접수해야 한다. 단 공항이나 항구에서 연결된 대중교통이 없으므로(택시나, 렌터카는 있음) 상공관광과(요론정 사무소 앞)까지 도보로 이동(5km)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결국, 요론 섬에서의 캠핑 일정은 ‘배에서 내린 후 시내까지 걸어가서 상공관광과에 접수하고 부근 마트에서 식자재를 구입한 다음, 섬 일주 버스를 타고 캠핑장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유리가하마캠프장

  오카네쿠는 섬 최대의 산호 해변으로 길이만 2km에 달한다. 유리가하마캠프장은 영화만큼이나 아름다운 오카네쿠 해변의 풍경 속에 오붓하게 들어서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부터 사이트와 시설을 보호하고 안정된 아우팅을 배려하기 위해 캠프장과 백사장 사이에는 촘촘한 방풍림 울타리가 조성되어 있다. 캠프장은 2층 침대가 놓이고 1~4명 의 숙박이 가능한 6동의 코티지구역, 그리고 2동의 트리하우스가 들어서 있는 캠핑 구역으로 나뉘며 차량은 공히 별도의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비가 많이 내릴 경우를 대비해 각각의 캠핑사이트를 그라운드보다 높게 만들어 놓았다. 물론 이런 구조는 일본의 해안이나 섬 캠핑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텐트가 침수될 걱정이 없다.

  유리가하마는 오카네쿠해변의 앞바다 1.5km 지점에 있는 풀등으로 봄과 여름철의 한사리(만월)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유리가하마가 열릴 시간이 다가오면 오카네쿠 해변에는 많은 여행객이 모여 들고 삼삼오오 글라스 보트에 올라탄다. 수심 2~3m의 바다는 바닥과 물고기들이 또렷하게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풀등은 보트가 다가서는 사이에 점점 더 면적을 넓혀간다. 보트는 풀등과 적당한 간격을 두고 멈추어 선다. 사람들은 허벅지까지 차는 바닷물을 헤치고 섬으로 상륙한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허락된 천상의 시간을 누린다. 유리가하마의 모래는 플랑크톤의 사체가 퇴적되어 쌓인 것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별 모양을 하고 있다. “나이 수만큼 별 모래를 주우면 행복해진다.”

  캠핑은 여행을 위한 수단

  요론 섬의 둘레는 23km 다. 이 작은 산호섬에는 크고 작은 해변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백사장에는 흑화라는 꽃들이 피어있다. 흑화는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기묘한 바위들을 일컫는 이름이다. 유리가하마 캠프장을 베이스캠프로 정한 여행자들은 섬을 걷기 시작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캠핑은 여행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어른 키 위로 자란 사탕수수밭을 기웃거리다 빨간 히비스커스를 머리에 꽂아보기도 한다. ‘느림의 섬’에서는 걷다가 멈춰서야 할 이유가 많아서 트레킹은 늘 계획된 시간을 넘어서게 된다.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의 요론 섬은 다이빙이나 스노클링 등 해상 스포츠의 천국이다. 또한, 사잔크로스센터에서 요론의 역사, 문화, 자연에 대해 알아보거나 ‘아카사키 종유동’을 탐방하고, 식물원 ‘윤누낙원’에서 아열대의 정취를 느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주일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바다를 향해 멍하니 앉아있어도 괜찮다.

  요론 섬이기 때문에.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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