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Theme] K-게임을 만드는 게임과 게이머들
[3월 Theme] K-게임을 만드는 게임과 게이머들
  • 이경혁(게임평론가)
  • 승인 2021.03.09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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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이후 한국인들은 이제 세계가 우리를 알아줄 것이라는 자부심에 휩싸였다. 세계 속에 스스로를 내세우기 위해 한국인들이 꺼냈던 아이템은 김치, 불고기, 한복 같은 전통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그런 내세움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애매하다. 동아시아 구석의 작고 가난한 나라는 스스로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로 자랑하고자 했지만, 대체로 자랑이란 딱히 자랑할 게 없을 때 억지로 짜내어 꺼내드는 경우에 머무르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의 20대들이 스스로 느끼는 한국인의 정체성은 다른 의미의 한류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어딜 가도 이미 잘 알려진, 딱히 내가 나서서 자랑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주는 문화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서지 않아도 이미 외국에서 알아주는 한국의 무언가는 게임계에서도 특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세계최강 한국 게이머의 영향력

  전세계 플레이어들이 다 함께 섞여 플레이하는 대전형 온라인 게임에서 한국인의 존재는 대체로 고수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일반적인 게임 매칭 방에서 우리 편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ID가 있다면, ‘이번 판은 이겼네’라는 농담이 손쉽게 흘러나오는 것이 글로벌 게임 판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시작한 ‘게임 최강 한국인’ 밈은 〈오버워치〉, 〈철권〉 등을 거쳐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여전히 성황을 이룬다. PC방이라는 접근성 좋고 저렴한 게임 인프라가 전국에 깔려 있고, 딱히 다른 놀이가 부재한 상황이 만든 두터운 게이머층이라는 상황은 다소 슬픈 구석도 있긴 하지만 한국의 게임실력은 사실상 세계 최상위권으로 인정받는 추세다.

  이는 프로게이머 레벨에서 더욱 현실화된다. 〈스타크래프트〉의 ‘박서’ 임요환, 〈철권〉의 ‘무릎’ 배재민, 〈리그 오브 레전드〉의 ‘페이커’ 이상혁 등은 세계적으로 각 종목을 상징하는 인물이 된 지 오래다. 가장 크게 활성화된 게임 리그인 〈리그 오브 레전드〉는 아예 월드리그의 지역별 편성에서 한국을 동아시아권으로 묶지 않고 북미, 유럽과 같은 수준으로 별도 분류할 정도의 위상을 인정한 바 있으며, 한국 외 지역의 선수 선발에서도 ‘한국인 N명 이하’ 와 같은 조항을 둘 정도로 한국의 게임 실력이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온라인 게임 속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한국의 게이머들은 한국의 위상을 가상공간에 아로새겨 놓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냥 좋은 것만 전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과 함께 어울려 게임을 하거나, 수준높은 한국인 플레이어들의 경기를 관전하는 와중에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욕설을 배워 써먹고 있다는 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모르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인 한국어 욕설 ‘X발’ 같은 단어는 이제 상당수의 게이머들이 영어로 채팅을 치거나 혹은 보이스채팅으로 한국인만큼 자연스럽게 내뱉는 게임 전용 글로벌 욕설이 되어 가는 추세다. 이것도 한류라면 한류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배틀그라운드〉, 한국 게임의 위상을 지켜내다

  가공할 실력으로 가상공간을 장악한 한국인 게이머들의 한류열풍에 비하면 한국산 게임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로서의 한류는 다소 적은 영향력에 머무는 추세다. 콘솔게임이 대세를 이루는 해외 분위기와 달리 한국은 스마트폰 기반의 온라인 게임이 제작의 중심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스마트폰 온라인 게임들은 주로 내수에 집중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해외에서의 반응이 게이머 영향력만큼 뜨거운 편은 아니다. 서로 다른 게임플랫폼 환경 속에서도 가끔 높은 성과와 평가를 동시에 거두는 케이스는 나타난다. 펍지 주식회사가 2017년에 만든 배틀로얄 액션 게임 〈플레이어 언노운즈 배틀그라운드〉 (이하 〈배틀그라운드〉)가 대표적이다.

  미지의 필드에 낙하산으로 뛰어내려 무기를 찾아들고 나를 뺀 99명의 적들과 싸워 최후의 생존자 1인이 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배틀그라운드〉의 기본 룰은 1996년 일본에서 출간된 소설 『배틀로얄』이 보여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개념을 가장 잘 그려낸 게임으로 평가받았다. 스산하면서도 생생한 풍경을 담은 필드 구석구석에서 언제 어떻게 조우하게 될지 모르는 플레이어와의 전투가 만드는 조용한 긴장감은 기존의 밀리터리 액션 게임들이 좁은 맵을 중심으로 하던 것과는 다른, 서바이벌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를 잘 연출해내며 전 세계의 호응을 얻어낸 바 있었다. 게임플랫폼 ‘스팀’의 동시접속자 수 기록을 경신하기도 하며 인기를 끈 〈배틀그라운드〉는 IT인프라가 부족한 중진국으로의 진출을 위해 게임 사양을 낮춰 출시한 〈배틀그라운드 라이트〉 버전을 통해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배틀그라운드〉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크로스파이어〉나 〈던전 앤 파이터〉 같은 많은 국산 온라인게임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적지 않은 흥행을 만들어나가며 K-게임의 이름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게이머를 통해 발현되는 K-게임문화

  게임 한류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특정 콘텐츠가 해외에서 유행이라는 말로 정리되기 어렵다. 게임은 콘텐츠 그 자체보다 플레이하는 사람을 통해 의미를 발현하는 매체이며, 게임 한류라는 말은 실제로도 콘텐츠의 유통량이 아닌, 특정 게임을 플레이하는 한국인과 그 한국인의 문화를 통해 더 쉽게 발견된다. 문화라는 개념이 단지 콘텐츠에 한정되는 개념이 아님을 생각한다면, 오늘날 가장 유명한 한류 트렌드인 아이돌 문화도 단지 아이돌 가수와 음반의 문제가 아니라 팬덤의 문화를 함께 포괄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K-게임이라고 불리는 무언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 게이머들의 실력과 문화일 것이다. 오늘도 많은 서버에서 누군가는 한국 게이머를 상대하며 고통받고, 누군가는 한국 게이머와 같은 팀이 되어 즐거워하는 그 모습 자체가 곧, 한류 게임이다.

 

* 《쿨투라》 2021년 3월호(통권 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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