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한국 최초 우주 SF ‘시리즈’로 발전한다면: 〈승리호〉
[영화 월평] 한국 최초 우주 SF ‘시리즈’로 발전한다면: 〈승리호〉
  • 나원정(중앙일보 영화 담당 기자)
  • 승인 2021.03.2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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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한국 영화 흥행 불문율 중 이런 게 있다. 초등학생들이 보고 싶은 영화로 입소문 나면 대박이 난다는 것이다. 아이가 보여 달라고 조르면 부모까지 따라가야 하니, 관객 수가 못해도 1+1, 1+2 효과다. 동명의 실존 기생충에 상상을 보탠 재난 영화 〈연가시〉와 재회한 작품이다. 때는 2092년, 지구는 황폐화해 빈민가로 전락하고 우주 위성 궤도엔 새 보금자리 UTS가 들어선 미래. 우주 쓰레기를 사냥하며 사는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해적두목 출신 장선장(김태리)과 천재 조종사 태호(송중기), 엔진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유해진)가 인간 아이 형태의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도로시, 한국이름 ‘꽃님이’를 발견하며 모험이 펼쳐진다.

  240억원의 막대한 제작비로 한국영화에선 처음 2092년 미래 우주와 도시 배경을 정교한 VFX(시각특수효과)로 펼쳐냈다.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다국적 우주 청소선들과 인공지능 로봇이 가세한 대규모 우주 전투 액션까지 구현했다. 우주선 선장 역 김태리, 엔진 기관사 진선규, 인공지능 로봇 업동이 역을 맡아 한국 최초 컴퓨터그래픽(CG) 캐릭터 모션캡처에 뛰어든 유해진 등 연기력 탄탄한 흥행 배우들이 뭉친 전체관람가 등급 영화란 것도 여름 방학 가족 관객을 모으기에 유리한 지점이다. 통상 여름철 텐트폴 영화처럼 개봉 첫 주 스크린을 최대한 장악해 흥행 속도로 화제를 모으며 관객이 관객을 끌어들이는 식의 흥행 전략이 통했으리란 짐작도 해볼 만하다. 그러나 코로나19 재확산이 거세지며 〈승리호〉는 결국 극장 개봉 대신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190여개국에 출시됐다. 지난 2월 5일 공개 하루만에 〈승리호〉가 영상 콘텐트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전세계 넷플릭스 영화 순위 1위에 올랐단 소식도 들려왔다. 지난해 6월 국내 극장 개봉 이후 해외에선 넷플릭스로 공개된 유아인 재난영화 〈#살아있다〉가 한국 최초 세계 1위를 달성한 것에 이어서다.

  그러나 해외 주요 평단 반응은 저조하다. 비평 전문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100% 만점에 54%로 깨진 토마토를 받았다. 그간 좀비 장르를 한국식으로 변주한 영화 〈부산행〉, 넷플릭스 사극 〈킹덤〉에 더해 할리우드 장르를 봉준호식으로 재창조한 아카데미 4관왕의 〈기생충〉 등 해외에서 각광받은 한국영화에 비해 평이하단 평가가 주를 이룬다. 〈스타워즈〉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등 기존 할리우드 SF 따라잡기에 그쳤다는 실망이 들려온다. 로튼토마토에서 일반 관객 관람평은 평균 84%로 꽤 높은 편으로 팝콘무비로선 합격점을 받았지만, 한국에선 1년에 두세 편을 넘기 힘든 200억원대 대작의 존재감을 감안할 때 완성도에 대한 반응은 아쉬울 따름이다.

ⓒ넷플릭스

  ‘한국 최초 우주 SF 블록버스터’의 이런 성적표는 특히 한국영화가 지금껏 성장해오며 따라붙어온 ‘한국영화치고’란 수식어를 돌아보게 만든다. 〈승리호〉가 베일을 벗은 뒤 가장 많이 받은 호평이 한국영화치고 VFX 성과가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가성비’ 측면에선 다들 엄지를 치켜든다. 지난해 넷플릭스로 공개된 조지 클루니 주연·연출·제작 우주 SF 〈미드나잇 스카이〉의 알려진 제작비가 1억달러, 한화 약 1100억원. 마블의 우주 무대 히어로물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는 그 두 배가 넘는다. 그 10분의 1 비용으로 실감나는 우주 세계관을 빚어낸 것만으로 국내외 영화업계에선 〈승리호〉를 주목한다. 〈신과함께〉의 저승세계, 〈기생충〉의 감쪽같은 VFX를 담당한 덱스터스튜디오가 〈승리호〉의 VFX도 총지휘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든 한국영화든 관객은 똑같은 비용을 내고 본다. 더구나 콘텐트의 국경이 희미한 넷플릭스에서 〈승리호〉는 ‘한국’을 뗀 SF 액션 영화로 평가될 뿐이다.

  더구나 〈승리호〉는 최근에야 소설·드라마 등에서 SF 장르가 뿌리 내리기 시작한 SF 불모지 한국에서 처음 시도한 극장용 영화로 기획됐다. 손익분기점의 대부분을 한국 극장 흥행으로 벌어들이는 한국영화 수익 구조상 해외 투자까지 받아 마련한 240억원이란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우주 활극(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를 낯설게 느낄 수 있을 한국 관객들을 포섭할 만한 익숙한 흥행코드가 필요하다. 이 영화가 우주 쓰레기 청소선이란 색다른 설정을 UTS 상류층이 뿜어내는 쓰레기로 지구의 빈민층이 위협받는다는, 계급 문제로까지 연결해낸 세계관을 만들어놓고도, 정작 주된 줄거리는 조종사 태호와 도로시, 심지어 악당에게까지 얽힌 가슴 아픈 가족사로 채워넣은 이유다. 이는 한국식 신파로 읽히기도 하는데, 단선적으로 흘러가는 이런 과거 및 감정 묘사가 SF 액션 자체의 쾌감이 차지해야 할 자리를 상당부분 차지한다. VFX 기술은 첨단인데 채워넣은 이야기는 낡았달까. 미래 일상에 대한 철학까지 뻗어나간 요즘 SF 작품들을 감안하면 장르적 새로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태극기를 매단 승리호가 중국·러시아·프랑스 등 타국 청소선들과 경쟁에서 늘 앞선다던지, 악역은 외국인 캐릭터에게 몰아주는 등 자국 중심적인 설정은 할리우드·중국 등 내수시장을 겨냥한 대개의 블록버스터들이 택해온 것이긴 하지만 다소 편향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온우주가 한국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데에 짜릿함을 느끼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이야기와 인물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단 얘기다. 처음부터 한국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로 직행할 줄 알았다면 이런 부분들이 기획 단계부터 다르게 설계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시도가 있기에 이런 평가도 나온다. 오랫동안 SF 불모지로 악명 높았던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기치를 든 조성희 감독과 제작진의 도전정신만큼은 높이 살 만하다. 한국 영화가 주요 작품이 나올 때마다 해외 평가가 들려올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더구나 〈승리호〉는 아이들이 신나게 볼만한 영화를 만들고자 잔인한 장면, 욕설도 최대한 자제했다는 조 감독의 연출 의도도 환영한다. 세계관을 펼쳐놓느라 정작 본론은 다 보여주지 못한 듯한 인상이지만, 만약 한국 최초 우주 SF ‘시리즈’로 발전한다면 또 다른 각도에서 재평가될 수 있지 않을까. 〈승리호〉의 후속작을 기다리게 되는 까닭이다.


나원정
《스크린》 《무비위크》 《맥스무비 매거진》 《매거진M》 등 영화잡지를 거쳐 지금은 중앙일보 영화 담당 기자. 영화의 안과 밖을 들여다보는 게 ‘일’이자 ‘취미’인 성공한 덕후다.

 

* 《쿨투라》 2021년 3월호(통권 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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