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쳐 비평] 잠들지 않는 소년과 소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020)
[서브컬쳐 비평] 잠들지 않는 소년과 소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020)
  • 양진호(영화평론가, 본지 에디터)
  • 승인 2021.03.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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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적인 소년만화

  〈귀멸의 칼날〉은 끝없는 전투가 반복되는 소년만화의 클리셰를 답습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런데 눈여겨볼 점은 전체 서사 구조가 무너지지 않는 가운데 전투와 드라마가 독특하게 공존한다는 것이다. 싸움의 한가운데에서 서정적인 드라마가 펼쳐지고, 드라마의 한가운데를 불꽃 튀는 칼날이 가르고 나온다. 그런데 이 둘은 하나의 서사 안에서 서로 섞이지 않고 양립한다.

  귀살대(사람을 잡아먹는 오니들과 싸우는 집단)의 일원인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의 주된 관심사는 싸움보다는 오니로 변한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탄지로는 오빠라기보다 로맨스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에 가깝다. 아버지의 능력과 의무를 이어 받아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는 게 아니라, 오니가 된 동생(네즈코)을 한없는 사랑으로 돌보며 그녀를 인간세상과 이어주는 ‘남자친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지로의 검술은 계속 향상된다. 점점 강해지는 오니들로부터 동생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지로도 자기 자신의 힘에 ‘기대고’ 있는 것이라, 전통적인 소년만화의 검술과는 느낌이 다르다. 말하자면 그의 검은 무기라기보다 보호막 같은 역할을 하는 건데, 아마도 이 점이 일반적인 소년만화의 주인공들, 그리고 소년만화 안에서 가끔 순정만화 주인공 처럼 행동하기도 했던 〈이누야샤〉나 〈란마 1/2〉의 남자 주인공들과는 다른 점일 것이다.

  전투를 통해 레벨업하는 소년의 ‘투지’와 동생을 걱정하는 순수한 ‘감성’을 함께 지닌 탄지로라는 캐릭터는 일본 서브컬처가 직면한 사태, 즉 ‘파워 인플레’와 ‘로맨스 과잉(끝나지 않는 로맨스 서사)’과 같은 문제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답으로 제시된 것일지도 모른다.

 

  꿈의 시차, 그리고 탈주하는 소년과 소녀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TV판에서 제시됐던 두 개의 시간(인간/오니)을 다시 네 개(열차의 시간, 승객의 시간, 승객의 꿈속 시간, 열차 바깥의 시간)로 분화시키고 있다. 영화는 시간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열차의 시간은 오니의 시간을 확장한 것이다.

  이 작품은 다이쇼 시대, 즉 산업화가 폭넓게 진행되던 시기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니는 식인으로 에너지를 축적하고 그것을 ‘힘’과 ‘속도’를 통해 발현시킨다. 오니의 능력은 근대의 속도에 대해 두려워했던 중세인들의 상상을 재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소년’ 관객은 이 능력에 끌릴 수밖에 없다. 힘과 속도는 소년만화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걸 극대화한 ‘무한열차’는 전투의 무대이자 오니 ‘엔무’의 몸 그 자체인데, TV판의 배경인 야외보다 더 좁아서 오히려 전투의 박진감을 상승시키는 조건이 되었다. 그런 열차의 시간과 대립하는 것이 바로 승객들의 시간이다. 승객들은 일행과 대화를 나눌 때 열차의 속도를 잊게 된다. 탄지로와 렌고쿠의 만담, 이노스케와 젠이츠의 투닥거림 등은 열차와 분리된 느릿한 시간을 자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달콤한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정지시키는 순정만화의 방식을 닮았다. 그리고 나머지 두 시간, 즉 승객의 꿈속 시간과 열차 바깥의 시간은 TV판에서는 제시되지 않은 시간이다. 열차를 지배한 오니 엔무는 혈귀술(오니들의 특수한 능력)로 사람들을 꿈속에 빠트린다. 그는 좋은 꿈도, 나쁜 꿈도 만들어낼 수 있다. 불행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열차의 차장과 네 명의 소년·소녀들은 꿈을 꾸기 위해 엔무의 하수인 역할을 한다. 차장은 엔무의 피가 묻은 천공기로 열차표에 구멍을 뚫어 모든 승객을 잠들게 하고, 그 틈에 소년·소녀들이 귀살대 일행의 꿈속에 들어가 ‘정신의 핵’을 부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을 부수면 꿈의 주인은 폐인이 되어 버린다.

  이 꿈에 대한 설정은 서브컬처에 대한 작가의 반성적 태도를 반영하는 것 같다. 정신의 핵을 부수러 들어간 소년·소녀들은 무비판적으로 서브컬처를 소비한 오타쿠들 그 자체(이면서 작가 자신)이다. ‘감정’과 ‘폭력’이 반복되면서 애니메이션이 본래 갖고 있던 지향점, 즉 ‘현실 바깥의 이상에 대한 감각’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현실을 잊게 해줄 꿈을 꾸기 위해 다른 이들의 꿈을 망가뜨린다. 그리고 결국 꿈(오니)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망각’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그 뒤의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애써 밀어내고 있는 ‘꿈 바깥의 시간’, 즉 열차 바깥의 시간 앞에 네즈코가 서 있다. 네즈코는 오니이기 때문에 혈귀술로 잠들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의 편이기 때문에 귀살대 일행을 깨우려고 한다. 말하자면 네즈코는 ‘시차적’인 캐릭터인데, 인간도 오니도 아닌 시간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네즈코는 전투(오니)와 로맨스(인간)의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 캐릭터에 대해 낯설어하면서도 매력을 느낀다. 네즈코를 통해 하나의 서사 안에서 양립할 수 없는 두 세계를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전투의 무한루프가 예전의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네즈코는 귀살대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열차 바깥의 시간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마침내 열차의 속(꿈)이 아니라 겉(현실)을 볼 수 있게 된다.

 

  열차의 진화 혹은 퇴화

  엔무는 꿈에서 깨어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탄지로에게 계속 망각의 주문을 걸지만, 꿈속에서 자기 목을 끊임없이 칼로 베면서 탄지로는 잠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각한 다른 동료들의 도움으로 그는 꿈(시간) 기획자이자 열차 자체, 무한루프라는 시간성 자체인 엔무의 폭주를 멈추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열차가 멈췄는데도 전투가 끝나지 않고, 엔무보다 더 강한 적인 ‘아카자’가 등장해 또다시 전투를 이어간다.

  엔무가 현실을 꿈으로 막는 존재라면, 아카자는 다가오는 현실을 온몸으로 가로막는 자이다. 그는 현실과 가상 사이의 균열 앞에 선다. 그리고 관객인 소년·소녀들을 이야기의 시작 지점으로 데려가 가상 세계의 존재 이유를 상기시킨다. 애초에 현실 세계에는 “넌 실패할거야”라고 말하는 아버지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현실에 대한 소년·소녀의 냉소에는 단순한 분노나 절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지향점이 있다. 현실에 대한 감각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이다. 상현(상급) 오니인 아카자는 귀살대의 주(최상급 대원)인 렌고쿠에게 무한한 전투를 가능하게 하는 불사의 세계로 들어올 것을 권한다. 비록 가상의 공간일지라도, 아카자도 렌고쿠도, 그리고 다른 소년·소녀들도 거기서만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한 전투의 끝에는 현실 세계에 대한 궁극의 부정이 자리하고 있다. 오니들의 목적은 ‘인간 동물’로 완성되는 것이다. 가장 강한 존재가 되려는 이유는 오니들의 수장인 ‘키부츠지 무잔’의 소망처럼, ‘죽음마저 이기기 위해서’이다. 탄지로의 꿈이 현실에서 버림받은 소년·소녀의 잠재성을 무한 긍정하는 것이라면, 무잔의 꿈은 가혹한 전투로 그들을 단련시켜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본능 그 자체이다. 그들의 목적은 ‘회복’이 아니라 ‘초월’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카자의 목적이 무잔과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강해져야 한다는 대의를 내걸고 있을 뿐, 실제로는 싸움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계속 싸운다. 이것은 어른이 되지 않고 학교(꿈) 안에서만 성장하는 소년만화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아마도 그 반복에 지쳐 있으면서도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사적 완결성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정말로 무잔의 이상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악(惡)을 권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상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오옴진리교 사건’ 같은 현실 세계의 파국을 전제로 한 사건들을 겪었으며, 이것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IS나 큐어넌(QAnon) 등의 반사회적 집단이 보여주고 있다. 서사 공간에 한정되어야 할 음모론이 현실로 튀어나와 극도의 증오를 넘어 어떤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년만화 적 무한루프, 즉 아카자의 수련과 전투는 서브컬처의 욕망이 현실로 나가는 걸 막는 규제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까지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 무한루프의 세계에 끝이 있음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싸움에 회의를 느낀 〈에반게리온〉의 신지와, 연인 라무와의 연애가 실체감 없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우루세이 야츠라〉의 아타루는 이제 그것을 모르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며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뛰어난 작화, 짜릿한 액션 신, 맥락을 방해하지 않는 드라마적 요소, 그리고 이것들을 공존시켰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서브컬처의 상태를, 그 균열 지점을 유령화시키기 않고 그대로 드러내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편이면서도 오니의 몸을 가진 네즈코는 연인 같은 오빠인 카마도 탄지로, 그리고 필멸의 전사인 귀살대에게 의탁해 자신의 세계에 불안하게 머물고 있다. 이 위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게 일본 서브컬처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 바깥에 있다고 가정되는 빛나는 무언가가 지금의 서브컬처를 절망 속에서도 걷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 《쿨투라》 2021년 3월호(통권 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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