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배, '숯'의 패러다임
[INTERVIEW] 이배, '숯'의 패러다임
  • 심은록(동국대 객원교수, 미술비평가)
  • 승인 2021.03.2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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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_2021년 1월 27일 •곳_청도 이배작가 아뜰리에
•인터뷰어_심은록(Sim Eunlog 동국대 객원교수, 미술비평가)
•사진_이승식 작가

  코로나 기간에도 예술은 계속된다. 사실 코로나 기간이기에 더욱 절실하다. 전세계에서 많은 전시가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예술활동이 현저히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쁜 작가가 있다. 바로, 이배(1956~) 작가이다. 작년 한 해 동안만도, 그는 도쿄 페로탱 갤러리에서 《숯 빛 숭고》라는 개인전을 비롯하여, 한국에서 수 회의 개인전, 아부다비 아트페어에도 전시가 있었다. 그는 30여 년째 꾸준히 숯의 다양한 특성과 철학을 탐구해 왔기에, ‘숯의 작가’라고 불린다. 또한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모노크롬 작업을 하기에 ‘포스트 단색파’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1989년 도불 후, 그는 파리의 아틀리에와 청도(경상북도)의 숯가마를 오가며, 유럽, 아시아, 미국,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캐나다의 피 재단(‘Lee Bae: UNION’, The PHI Foundation for Contemporary Art, Montreal, 2021.2.24-6.20)에서 전시가 곧 개최된다. 입춘을 며칠 앞두고 필자를 비롯한 《쿨투라》 팀은 이배 작가의 아틀리에가 있는 청도를 찾았다.

  이배, 숯의 화가

  심은록(이하 심) ‘이배’하면 “숯의 작가”라고 하듯이, 30여 년간 꾸준히 숯 작업에 천착해 오셨습니다. 소변기(뒤샹의 〈샘〉)로 현대미술이 시작되었기에, 흔한 숯도 작품이 된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습니다만, 선생님 작업에서 ‘숯’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배(이하 이) 선사시대 동굴의 벽화에 소를 그리기 전에도 ‘소’라는 존재는 있었지만, 소를 그리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풍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 이미지를 통해, 사유 방식이 다양해지고, 제사를 비롯한 다양한 의례 등 초월성까지 연결되며, 좀더 깊은 교감과 넓은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숯도 마찬가지로, 작업을 통해 그 이미지가 풍성해지고, 이로 인해 새로운 의미와 결과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숯 자체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자연이 준 수단이지만, 이 숯에 메시지를 담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바뀝니다.

  처음에는, 도불 후 어려운 시절에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마티에르(재료)라는 단순한 이유로 시작됐지만, 숯과의 동고동락이 지속되면서 그 의미가 점점 더 풍성해지고, 아시아 문화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달집 태우기, 신생아가 태어난 집에 금줄을 매거나, 한옥 터를 닦을 때도, 된장 간장을 담을 때도 숯이 사용됩니다. 또한 아시아인이라면 누구나 바탕에 자연스레 젖어 있는 먹 색에 대한 개념도 접목시키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양화에서 검정은 모든 색을 다 포함하기에, 빨간 매화도, 하얀 난도, 노란 국화도, 초록 대나무도 모두 검정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코로나 발발 훨씬 이전부터, ‘숯’의 치유적인 면을 여러 번 언급하셨는데, 요즘 더 절실하게 선생님의 작품이 요청될 것 같습니다.

  이 숯이 나쁜 기운을 방어하거나 흡수하는 것처럼, 숯 설치 작업도 차단막처럼, 상징적으로 그런 치유의 메시지를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숯 작업을 하고 남은 가루로 〈붓질〉 연작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서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예의 기본은, 문인화도 마찬가지인데, 자신의 인격을 수행하고 내면을 정화하고 품격을 좀 더 높이도록 연마하고 훈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인격의 수행, 상승감은 미술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입니다. 〈붓질〉 연작을 시작하고 어디로 나아갈지 고민하던 중에 코로나19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재난이 어쩌면 예술가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불안감, 불확실성에서 시작되기에, 답이 없는 이런 상황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 지금이 예술적으로 승화할 수 있는 좀더 집약적인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심 더 높은 곳을 향한 연마(수양, 수행), 정화라는 단어는 숯의 상징성과 기능을 동시에 말하면서, 또한 선생님의 ‘포스트 단색파’의 면모도 느끼게 합니다. 서예와 〈붓질〉의 가장 큰 차이는 ‘내용’의 유무인 것 같습니다. 서예는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면, 선생님은 〈붓질〉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숯가루라는 새로운 수단으로 애를 쓰면서, 동양화적이거나 서양화적인 기법도 아니고, 어떤 높은 경지의 테크닉이 아닐지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제스처를 언어화시켜 소통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습니다.

  심 〈아크릴 메디움acrylic medium, médium acrylique〉(회화) 작업도 일종의 ‘붓질’인데, 최근 작업 〈붓질〉과는 어떻게 다른 가요?

[〈아크릴 메디움〉 작업은 메디움이 섞인 숯가루로 모티브를 그린 후, 이를 투명한 메디움으로 한 층 덮고, 완전히 마르면, 그 위에 이미 그려진 모티브를 따라 똑같이 다시 그린 후, 또다른 메디움 층으로 덮는다. 따라서 메디움을 사이에 둔 모티브들은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처럼 흐려 보이기도, 부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우선 먼저, 〈아크릴 메디움〉이 나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2000년)에서 전시를 하고 난 후, 숯가루를 잔뜩 모아서 공중에 흩뿌리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숯이라는 물성에 나의 작업을 제한시키지 않겠다는 해방의 몸짓이었습니다. 이 당시 붓질과 제스처를 생각하고, 메디움으로 시간과 제스처를 정제시켜서 밀랍(메디움)에 보존시키는 〈아크릴 메디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 언제 메디움을 뺄까 생각했습니다. 〈아크릴 메디움〉에서 메디움을 빼면 지금 하는 〈붓질〉과 비슷한 형태가 됩니다.

  심 거의 20여 년 만에 메디움을 빼게 되었는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이 2019년, LA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이하 LACMA, ‘Beyond Line: The Art of Korean Writing)에서 서예전을 관람하면서였습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한국 미술관에서 전시됐었다면, 감명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한국식으로 기획하면 내러티브한 전시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LACMA는 미국적인 시각으로, 현대적으로 한국 서예를 해석하려는 노력이 있어서, 이미 알고 있던 작품들도 새롭게 보였습니다.

  심 고향 청도에서는 흔한 숯을, 오히려 파리의 한 가게에서 발견하신 것처럼, 서예를 좋아하여 늘 서예작품을 가까이 두고 사셨으면서도, 미국의 서예전에서 ‘서체’를 재발견하셨네요. 어떤 요소가 선생님을 감동시켰는지 조금 더 상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 작년 말에 퇴계 이황(1501~1570)의 도산서원과 서애 류성룡(1542~1607)의 병산서원을 들렸는데, 이곳에서 퇴계를 다시 만났습니다. LACMA나 도산서원에서 봐도, 멀리서나 가까이서 봐도 바로 퇴계(의 서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서체는 시대와 유행을 떠나서 나를 흔들어 댔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퇴계는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설계하고 목수들을 불러 지었는데, 건축모양이 퇴계의 소박한 인품과 깊은 철학이 담긴 서체와 똑같았습니다. 오늘날 저명한 사상가나 훌륭한 의사가 직접 설계를 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조금 전에 ‘제스처의 언어화’에 대해 잠깐 언급 했는데, 퇴계의 행위, 인품, 등이 언어화, 서체화되었습니다. 퇴계의 서체와 건축물에는 높은 인격이 담겼고,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보였습니다. 이는 퇴계뿐만 아니라 추사나 다른 서예가들도 마찬가지로, 내용은 옛날 것이나, 서체는 현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분명 과거인데 과거가 아니라, 수많은 현재가 모여 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나 의미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당시 추사는 과연 예술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뛰어난 영향력 있는 선비가 되고 싶어 했을 테고, 그의 커다란 영향력 하에서 정치 문화적인 다양한 기능이나 역할이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커뮤니티의 어른의 역할과 길잡이 역할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부분을 총체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것이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LEE Bae Bruchstroke-213, 2020 Charcoal ink on paper/ Charcoal ink on paper 162×130cm

  코로나 시대의 미술과 그 이후

  심 코로나 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인간의 의지가 아닌 자연의 의지로 우리의 일상을 전반적으로 멈춰 서게 하기에, 제 지인들도 그렇고 저도 작업을 하다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인류 역사상 특이하고 시간이 흘러도 기억될 기념비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페스트가 서양 일부 지역에서 생긴 전염병이었다면,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인 역병이니까요.

  심 대부분의 예술가나 사상가들이 말하기를, 그동안 너무 숨가쁘게 앞만보고 달려와서 잠깐 멈춰 서서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며 반성할 때라고 합니다. 코로나 시기 동안에 세계 미술의 변화를 느끼셨는지요?

  이 인류가 주어진 환경에 의해서 발전해 왔듯이, 미술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 손에 무엇이 있는지에 따라 내일의 작업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튜브 물감이 나오면서부터, 화가들은 화실을 벗어나 야외로 나갔는데, 물감을 튜브에 담는 기술이 없었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인상을 담은 모네의 〈루앙성당〉 연작도, 외광파 고흐의 화려하고 원색적인 그림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아크릴 물감이 발전되지 않았다면, 뉴욕 현대미술은 경쾌하고 발랄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며, 유럽처럼 두꺼운 유화의 끈적거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러한 수단을 거리를 두고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인간 위주의 외골수 면만 계속 고집한다면, 결국 미래의 또다른 바이러스에게 져서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LEE Bae Bruchstroke-177, 2020 Charcoal ink on paper/ Charcoal ink on paper 102×66cm

  심 코로나를 직접 다루는 작가들도 많아지고, 혹은 비대면을 생각해 AV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부쩍 늘었습니다만….

  이 이 상황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작업도 있습니다만, 바젤아트페어의 온라인 전시에서 인상적인 작품들을 보았습니다. 이 작업들의 공통점은 현대적으로 논리적이고 개념적이면서도, 재료에 ‘흙’과 ‘나무’가 많아지는 등 수단을 바깥에서 구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답을 구하려고 한다면, 예술가들은 과정에 관심을 둡니다. 과학자들은 돌을 보더라도, 그 성분을 분석하고, 돌이 날아갈 때의 포물선과 중력에 관심을 가진다면, 예술가들은 돌을 던질 때나 떨어질 때의 감동이나 감흥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데, 미래는 분석하고 발견하는 쪽보다는, 그 자체의 감동과 감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심 연장선상의 질문입니다만, 많은 분야에서 제 4차 산업혁명을 앞당긴 코로나 “이후”를 전망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후” 미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발상을 역으로 한다면, 코로나가 인류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예술이 큰 역할을 하리라 봅니다. 방금 예를 든 것처럼 기술이나 과학만을 숭배하며 양화된 관점으로 세상을 측정하고 가치를 매기는 현세계에 자연이 경고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지금까지는 새로운 아이디어, 개념, 독특한 발명과 같이 남이 하지 않은 새로움에 대한 환희를 추구해왔다면, 코로나19로 인해서 한 발 물러서서 인간의 삶에 대한 패러다임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자연, 세상, 우주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단순한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데, 이제서야 실감합니다. 이제는 전체를 새롭게 봐야 한다는 것, 거기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어야 하겠지요.

LEE Bae Untitled,1999 Charbon de bois/ Charcoal

  코로나 패러다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배가 30년 동안 꾸준히 해온 숯작업을 통해 어렴풋이 가늠해 본다. 그의 숯 작업은 크게 세 단계의 변화가 있었다. 그는 1990년대부터 시작한 숯 조각과 회화작품을 통해 ‘숯의 물성’을 최대화했다. 〈불에서 나온(Issu de feu)〉의 조각 작품은 통나무 숯에 담겨있는 영겁같은 시간이 허물어지며 영원성이 드러난다(예. LEE Bae ‘Promenade’, 2019.11.2- 2020.2.1, PERROTIN New york). 마치 폐허가 된 고대 그리스 신전에 몇 개 남은 도리아 양식의 기둥처럼, 이 조각품들은 영원을 떠받치고 있기에 그 무게로 허물어지고 있다. 영원성 앞에서 무한히 작아지는 작가는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하며, 영원으로 달아나려는 숯 조각들을 단지 몇 개의 검은 줄로 묶어서 조금이라도 늦추고 있다.

  2000년부터, 이배는 영원성을 떠받치고 있는 무거운 숯의 물성에서 해방되기 위해, 〈아크릴 메디움〉 작업을 시작한다. 이 작업은, 작가의 제스처(신체성)와 시간성을 담은 모티브가 겹쳐진 공간(메디움) 사이로 얼어붙는다. 메디움을 사이에 둔 두 겹의 모티브는, 마치 히로시 스기모토의 사진 작업 〈바다〉에서 매순간 활발히 움직였을 파도가 무한히 중첩되어 초점이 맞지 않은 지평선처럼 보인다. 이때도 숯은 사용되었으나, 작가는 숯의 물성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워졌다.

  2019년부터 “〈아크릴 메디움〉에서 ‘메디움’을 제거한 ‘붓질’ 작업”이 시작되며, 공간성과 공시성 내에 얼어 있던 시간성과 제스처를 해빙시킨다. 붓질이 시작된 ‘처음’과 이를 마친 ‘끝’이 보이고, 작가의 순간적인 제스처도 생생하게 드러나며, 시간성과 역동성이 파악된다.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신체성을 가려왔던 이배 작가가 언택트 시대에 오히려 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꾸준히 창조적 해방을 시도하며, 외부에서 숯과 붓질을 재발견한 이배는 우리에게도 외부에 서보기를 권유한다. D. H. 로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그들을 가려줄 작달막한 양산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양산의 안쪽 면에 천상을 그려내고, 그들의 관습들, 견해들을 끄적인다. 그러나 시인인 예술가는 양산에다가 틈을 내고 천상 마저도 찢어버린다.”(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철학이란 무엇인가』, p.293에서 재인용). 이배는 우리를 가려주고 있는 작은 양산에 틈을 내어, 그 바깥을 볼 수 있도록 하며, 이 틈으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작하라고 요청한다.

 

심은록
프랑스 파리 고등사회과학대학원(EHESS)에서 2002년 「진리연습(L’exercice de la vérité)」으로 사회학 석사(DEA)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2008년 「오감과 유용한 진리(Cinq sens et vérité utile)」로 철학· 인문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8~09년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고, 2008~11년에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으로 활동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나비왕자의 새벽작전 -장 미셸 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리 속의 섬(현대미술동화)』(재미마주, 2012), Daniel Buren, Les Ecrits 1965~2012. Volume2: 1996~2012 (Daniel Buren, Sim Eunlog, et al., Flammarion, CNAP, 2013)『양의(兩義)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이 있으며, 『애니시 카푸어론』 『장 미셸 바스키아론』 『쩡판즈론』 등 다수의 평론을 집필했다.

 

* 《쿨투라》 2021년 3월호(통권 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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