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Theme] K-문학,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3월 Theme] K-문학,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 장동석 (출판도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출판평론가)
  • 승인 2021.03.09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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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을 자주 하던 때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말로써 이겨보려는 하나의 레토릭에 가까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한국적인 것이 하나둘 세계적인 것이 되기 시작했다. 한국 젊은이들이 부른 노래가 동남아시아를 휩쓸고, TV 드라마들이 저 멀리 중동까지 전파를 타면서 한국적인 것들은 하나둘 세계적인 것이 되어갔다. 그 파장은 서서히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문학도 세계인들의 시선을 붙잡기 시작했고, 어떤 작품들은 평단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기도 했다.

  세계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작품들이 없지 않았고, 이승우나 신경숙처럼 주목을 받은 작가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세계인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끈 작가와 작품은 아무래도 한강의 『채식주의자』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2016년 영국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채식주의자』의 판권은 30개 가까운 나라에 판매되었다. 『채식주의자』 열풍에 힘입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흰』 등의 판권도 해외 여러 나라에 판매되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견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최근 한국 문학은 K-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세계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대표주자는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었다 . 2018년 12월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2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82년생 김지영』의 일본 내 인기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편이다. 세계 공통의 현상, 즉 유리천장에 갇힌 여성들의 삶에 일본 독자들이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는 의견이 많았다. 더불어 젠더 차별의 원인이 개인의 서사가 아닌 사회 구조에 있음을, 즉 사회적 소설로 읽힌 것이 일본 내 열풍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한편 『82년생 김지영』은 미국 《타임》이 선정한 ‘2020년 꼭 읽어야 할 책 100권(The 100 Must-Read Books of 2020)’에도 선정되었다. 《타임》은 『82년생 김지영』이 “여성들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된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82년생 김지영』은 20개 가까운 나라에 판권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K-문학의 새로운 붐을 이끌고 있는 작품은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국내에서 20만 부 가까이 판매되면서 입소문을 탄 이 작품은 중국과 일본, 대만, 스페인 등에 판권이 판매되었다. 일본의 경우 최대 SF 출판사인 하야카와 출판사가 판권 계약을 맺으며 높은 선인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 등지에서 김초엽의 작품이 인기인 이유는, 단순하게 말하면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도가 쓴 SF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SF소설은 다소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곧 우주여행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높아진 시대다. 김초엽의 작품들은 그 지점을 예리하게 파고들면서도, 독특한 캐릭터들과 그것을 직조한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과학도 출신은 아니지만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천 개의 파랑』은 과학의 발전과, 그것이 일상의 삶에 어떻게 접목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서사를 구축함으로써 읽는 이들로 하여금 다가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게 만든다. 로봇 기수가 등장해 말과 교감하는 대목은, 로봇과 인간의 교감에만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우리 시대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고도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천 개의 파랑』은 현재 일본에 판권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동식의 『회색 인간』은 일본에 판권이 판매되었고, 러시아에서는 한국어 교재로 출간되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가 러시아에 판권이 판매되었다.

  K-문학에 있어 손원평의 『아몬드』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2017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아몬드』는 미국과 프랑스, 중국, 일본, 이탈리아, 대만 등 15개 가까운 나라에 판권이 판매되었다.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소년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아몬드』는 국내에서 25만 부 이상, 일본에서 3만 5,000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20년 7월, 일본 서점 직원들이 직접 투자를 통해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서점대상에서 ‘번역소설 부문’을 수상하면서 대중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이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면서 K-문학은 점차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K-문학이 세계인들에게 시나브로 읽히는 이유는 좁게 보면 K-팝 등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BTS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나라인 한국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없고, 한글을 배우며 한국말을 익히며 궁금증을 해소해 나간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다양한 문화, 그중 문학까지 관심의 폭을 확대할 것이다. 드라마 한류도 그런 역할을 했고, 떡볶이로 대표되는 한국의 음식들도 그 역할을 적잖이 감당했다.

  하지만 K-문학의 세계적 인기를 그 좁은 틀에 가둘 수는 없다. K-문학은 그 자체의 힘으로 세계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K-문학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동시대성’이다. 한국 문학은 그간 전쟁, 가족 등의 서사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게 읽히는 한국 문학은 전쟁이나 가족 등 진부한 소재는 사라지고,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주제와 서사를 구축해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단지 한국적인 현상이 아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젊은 세대는, 특히 여성은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감정을 잃어버린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현시대 청소년들의 자화상이다. 감정 따위는 없는 듯 입시만을 위해 내달려야 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그것이 꼭 입시가 아닐지라도, 전 세계 공통 현상이다. 이제 한국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K-문학도 그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세계적인 것 역시 한국적인 것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와중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학의 상상력, 나아가 책의 상상력을 계속해서 더듬어가며 우리 미래를 찾아가는 일이다.

 

* 《쿨투라》 2021년 3월호(통권 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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