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시인의 군산통신 3] 아, 태평천하 그리고 채만식
[강형철 시인의 군산통신 3] 아, 태평천하 그리고 채만식
  • 강형철 (시인, 사)신동엽기념사업회 이사장)
  • 승인 2021.03.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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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읽다가 혼자 가슴이 더워진다. 그의 대표작으로 『탁류』와 함께 거론되는 작품이다. 예전에 읽으면서도 웃다가 울고, 때로 가슴이 서늘해지는가 하면 머리가 먹먹해지기도 했다. 다시 읽어도 그 감동은 여전하다. 그는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숨길 수 없는 굵은 이정표다. 물론 근래의 논란을 감안하고서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말하기로 한다)

  『太平天下』는 1938년에 잡지에 연재되면서 되었고 1940년에 3인 장편소설집으로 나왔다가 1948년 단행본으로 재간행 되면서 제목도 태평천하로 변경되었다. 처음 소설집으로 나왔을 때 오자 복자 투성이였던 작품을 저자 스스로 바로잡아 고치고 다듬어서 마음이 후련하고 다행이다라고 밝혔다. 그 판본이 저본이 되어 오늘날의 창비전집판 『태평천하』를 이룬다.

  소설은 ‘만석지기’ 윤직원 영감의 세상살이를 기본 축으로 그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또 그 부자의 지위를 이용하면서 그 지위와 소유를 세세토록 유지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지를 그 자신의 삶은 물론 그의 자식들과 처, 그리고 첩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특히 손자 둘을 하나는 군수로 하나는 경찰서장으로 키우기 위해 바치는 윤직원 영감의 노력, 그리고 그 가족들의 구체적인 생활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은 오래전 모습인데도 지금 이 시절에도 여전히 뼛속 깊이 공감을 얻을 만큼 적확하다.

  시대가 달라지고 이른바 초기 자본주의의 기본행태가 여러 겹의 환골탈태를 거쳐 여러 모습으로 변화되었지만 자본주의라는 원칙은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기본적인 원칙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공감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가 만나는 것은 그러한 거창한 말을 가뜬히 뛰어넘는 삶의 진실에 촘촘히 박혀있는 웃음과 눈물 그리고 깨달음이다.

  명절 연휴가 끝나는 날에 나는 채만식 문학비가 세워진 곳으로 간다. 그의 문학비는 1984년에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문인들과 당시 군산의 주요 기업인들이 힘을 모아 ‘도도히 흐르는 바다를 굽어보는 자리’즉 월명공원에 세워졌다.

  내가 사는 소룡동에서 월명공원에 가는 길은 두 개의 길이 있다. 은적사 쪽에서 이어지는 ‘구불길’로 들어서서 월명호수 둘레길을 따라 가는 산길이 하나이고 다른 길은 해망동을 돌아 내항 쪽으로 가는 현대식 차로다. 나는 버스를 이용해서 월명공원으로 가기로 한다. 명절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승객이 거의 없다. 두 명의 승객이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다. 전북외국어고등학교를 지나 상원쌍떼빌 아파트 앞에서 승객 한 명을 더 태우고 다시 희망루 아파트에서 손님 세 명을 태운 뒤 ‘해망자연마당’을 거쳐 수산물센터, 해양경찰서를 지나 동산중학교 정류장에서 내린다.

  예전에 군산시 공회당으로 사용되던 곳은 사라지고 새 건물이 섰다. 해신동 동사무소란 이름을 달고 있다. 길 건너편에는 군산시청소년문화센터가 현대식 건물로 당당하게 서있고 그 옆으로는 한국전쟁 때 피난민 수용소로 사용된 적 있는 서초등학교가 있다. 건너편에는 감리교 교회건물과 흥천사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나는 사찰 건물 앞을 통과하여 채만식 문학비가 있는 군산공원으로 향한다.

  공원 입구에서 올라가면 금방 도착하리라 생각했지만 올라가도 다시 낮은 조망대를 지나 ‘수시탑’을 거쳐 바다조각공원을 지나야 문학비에 도달할 수 있다. 가파른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도중에 숨이 가쁘고 다리가 허청거려 잠시 쉰다. 바로 윗쪽에서 어린아이 혼자 뒤뚱거리며 계단을 내려온다. 가파른 계단을 아이 혼자 내려오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여 조마조마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젊은 아비가 ‘잘 내려오네’라며 칭찬하는 말을 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공원의 산책길에 오르니 가파른 계단을 통해 수시탑을 거쳐가는 길과 그렇지 않고 오르막이지만 평탄한 길을 통해 바다조각공원 가는 길 두 갈래로 나뉜다. 나는 계단을 거쳐 가는 길을 택하여 군산시의 상징조형물로 만들어진 배의 형상인 수시탑에 닿는다. 예전에는 군산은 항구도시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리했을 것이다. 수시탑을 뒤로하고 내려오니 바다조각공원이 나온다. 그 곁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아직 피지 않은 영산홍 더미 너머로 문학비가 보인다. 문학비가 설치된 곳에는 안내 표지판이 없다. 반대편으로 가서 보아도 문학비가 세워진 곳 가까이에 안내 표지판은 없었다.(시청은 뭘 하느라 바쁠까?) 대신 평화매점 간판만 보인다.

  길을 통과하여 오가는 사람은 가끔 눈에 띄었지만 문학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정담을 나누며 걷는다. 그곳에 안내판이 있었어도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문학비 앞에서 잠시 묵상을 하고 전면을 읽어본다. 탁류의 머릿글이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에서부터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참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예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다.(…)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채 얼려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문학비 후면은 작가의 생애 연보와 문단활동, 그의 대표작 등이 소개되어 있고, ‘『탁류』는 한 시대의 역사적 현장으로서 세태의 혼탁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인간의 탐구에 크게 기여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별도의 비에는 문학비를 세운 추진위원회 명단과 도움을 사람들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을 짓누르고 다시 밑으로 내려온다. 문학비 전체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시멘트로 된 의자가 놓여있고 의자 위엔 누군가 앉았다 간 흔적으로 보이는 찢어진 종이박스가 놓여있다. 나는 그 자리에 앉는다. 몇 개의 꽁초가 어지럽게 놓인 것으로 보아 누군가 문학비를 보고 담배를 피웠으리라 생각한다. 그가 태운 것은 담배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Covid-19 마스크를 다시 쓴다. 문학비 주변과 의자 주변에 버려진 꽁초를 조심스레 주워 비닐 봉지에 담는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 자기 앞에 할당된 삶을 산다. 그러나 홀로 산다고 생각하는 순간의 그 주변에는 가족과 그가 사는 마을이 있으며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모습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국가나 민족이라는 팻말도 숨어 있고 지구라는 행성도 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가족만으로 금을 긋고 그들만 잘 살면, 아니 실제로는 그렇게 살기도 죽을 힘을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태평한 세상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요 환상이라는 말을 윤직원 영감의 생애로 말했던 채만식은 지금 이렇게 외롭게 한쪽에 문학비로 숨어있다.

  만사 태평인가?

 

 


강형철
1955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숭실대 철학과. 동대학원에서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5년 『민중시』 2집에 『해망동 일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해망동 일기』『야트막한 사랑』『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환생』과 평론집으로 『시인의 길 사람의 길』『발효의 시학』 등이 있다.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사)신동엽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치다 정년하였으며, 현재 고향 군산에서 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쿨투라》 2021년 3월호(통권 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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