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집은, 集입니다
[5월 Theme] 집은, 集입니다
  • 박인학(월간 《인테리어》 발행인)
  • 승인 2021.04.28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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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답은 항상 질문 안에 들어 있다.” 물론 온종일 쏟아지는 크고 작은 질문들 앞에서, 동문서답을 하는 이도 있고 우문현답을 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묵묵부답 끝에 찾아가는 자문자답이기에, 《쿨투라》에서 보낸 ‘인도어 라이프 Indoor Life’라는 물음표에 필문필답을 펼쳐 보려 우선 ‘질문’ 속으로 들어가 본다. 어차피 돌아다니지도 못 한 채 집안에 박혀 살고 있는 신세이니…

  ‘표리부동(表裏不同)’은 말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모든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처신을 의미하는 사자성어였으나, 오늘은 모두가 제 마음에 있는 것을 그 무엇 하나 표출시키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러한 인간적 ‘겉과 속’ 외에 또 다른 ‘겉과 속’이 있으니, 그것은 시간적/공간적 ‘겉과 속’이다.

  얼추 10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레트로(Retro, 복고 문화)’는 과거의 것들을 진화시킨 ‘뉴트로(Newtro, 新복고 문화)’를 낳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그 무엇도 가미되지 않은 원조를 찾아 ‘백트로(Backtro, 歸복고 문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러던 차에 우리 앞에 들이닥친 것은 “거듭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라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시대와 시간의 단절’을 선언하는 ‘공적’ 메시지였다. 과거와 끊어지고 미래와 이어질 것도 확신할 수 없는 동강난 토막의 현재를 살게 된 것이다.

  통상 ‘코로나19’라 지칭하고 있긴 하지만, 원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즉 ‘COVID(Corona Virus Disease)’에는 우리의 오늘을 사는 모습들이 낱낱이 담겨 있었다.

  ‘COVID’가 창궐하며 인류는, ‘C=Confusion(혼란), O=Opposition(반항), V=Variant(변이), I=Impossibility(불가), D=Depress(침울)’이란 깊은 늪에 빠져 들었고, 세상은 ‘COVID’ 뒤에 ‘Blue, Red, Black’라는 원색적 단어들을 붙여 이를 적당히 얼버무려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다. 또 어렵사리 개발했다는 백신주사로 이 팬데믹을 잠재우려 하고 있지만, 우리 인간은 몸 외에도 마음이란 것을 갖고 있는 존재이기에 육체적 치료만이 아닌 정신적 치유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대한 방책으로 ‘문화’에 의한 처방을 생각하게 되었다.

  서양에서의 문화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로 본래의 뜻은 ‘경작’이었으며, 동양에서의 ‘文化’는 자연과 대립되는 ‘인위’ 또는 야만과 대조되는 ‘문명’이란 개념이 어원이다. 결국은 ‘인간이 지어낸 문명의 총합’이 바로 문화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만연되어 있는 현대문화는 이미 심각한 오염 상태임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즉 우리가 영위하고 있던 문화도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통째로 봉쇄해야 하는 코호트 격리 대상의 중증 확진자였던 것이다. ‘COVID’에 걸려있는 우리 문화와 문화인들의 실태는 자못 심각했다.

  C=Create, 기성 문화의 무조건적 파괴에 의한 독선적 창의력의 남발되고 있는 문화였다.

  O=Over, 단기적 유행과 감각적 경향만 추구하는 과도한 경쟁 구도 속의 문화였다.

  V=Visuality, 인간의 내적 심성을 무시하고 내세운 외식적 만족만을 지향하는 문화였다.

  I=Individuality, 대중을 간과하고 특정 계층의 사욕만을 중시하는 시장논리에 빠진 문화였다.

  D=Development, 자연환경을 파괴하며 추진한 발전 강행으로 인한 폐해를 낳은 문화였다.

  우리가 자랑스레 여기며 만끽하고 있던 대중문화는, 약이 아닌 독 그것도 거의 마약의 지경이었다.

  ‘3밀(密)’ 즉 ‘밀집, 밀접, 밀폐’를 피하며 살라고 한다. 모이지도 말고 가까이 하지도 말며 한 장소에서 함께하지도 말고, 그저 혼자 살란다. 그러지 않아도 혼밥과 혼술을 멋으로 여기며 1인가구, 나홀로족을 나만의 자유요 권리라 자부하던 이들에게, 이젠 ‘나홀로’가 사회적 의무를 넘어 법적 강제조항이 되었다. 결국 집에 들어가, 컴퓨터와 핸드폰의 유리화면만 들여다보면서 혼자 버텨내라는 것이다. 지금 전 인류는 80억 명이 함께 살고 있으나 마치 무인도에서 홀로 사는 것처럼 외톨이가 되어야 하기에,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위한 터전을 새로 제안할 책무가 공간디자이너들에게 주어졌다.

  ‘Design’을 뜻하는 ‘설계(設計)’는 ‘베풀 설(設)’과 ‘꾀할 계(計)’의 합자이니, 뭔가 도움이 될 대안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특히 ‘집’이란 의미는 사적 영역의 차원을 넘는 공적, 나아가 공공적 공간환경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위해서 ‘POST COVID’ 시대의 주거공간 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가장 밑바탕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첫째는, 물질적 ‘HOUSE’의 개념이 아닌 정서적 ‘HOME’의 철학에 의해 계획된 집이 우선이다. 둘째는, 행동만을 담는 형태가 아닌 사고를 담을 수 있는 분위기의 집을 지어야 한다. 셋째는, 심미 감성적 충족의 차원을 넘어 첨단문명의 기능적 효율도 염두에 둔 집이 필요하다. 넷째는, 친환경 자재의 적극적 사용과 반려동식물과의 동반 공생도 고려한 집을 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의식주로부터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모아 담을 수 있는 빈 그릇과 같은 집만이 내 집이라는 사실이다.

  주거공간의 원초적 개념이 ‘피신처(Shelter)’라는 라는 것은 분명하나, 인간의 평온한 일상을 담는 본연의 ‘제 집’으로 언젠가 되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의 모습만은 유지되어야 한다. 즉 우리의 집에 대한 현재 당면한 지상과제의 처결도 중요하겠으나, 어제를 내일로 이어줄 오늘로서의 영구불변의 가치만은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다시 함께 어울리며 살아갈 것이다. ‘人’은 약할지 몰라도 ‘人間’은 강하기에, 우리는 인간·시간·공간 속에 있는 그 ‘間’만은 반드시 되찾아야 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게 무참히 패했던 드골 장군은 외쳤다. “우리는 전투에는 졌지만, 전쟁에는 아직 지지 않았다.”

  집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멋대로 더할 수도 맘대로 뺄 수도 없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영원무궁한 ‘集’이다.

 


박인학
월간 《인테리어》 발행인. 가인디자인그룹 대표이사. 한국실내건축가협회 명예회장. 한국공공디자인학회 명예회장.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이미지 제공
리타 하우스 -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 melloncolie fantastic space LITA / www.spacelita.com / 김재화

자료 제공
월간 《인테리어》 / www.interiorskorea.com

 

* 《쿨투라》 2021년 5월호(통권 8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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