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슬기로운 방구석 음악생활
[5월 Theme] 슬기로운 방구석 음악생활
  • 서영호(음악가)
  • 승인 2021.04.28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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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좀!”

  “에이 이놈의 집구석!”

  방구석, 집구석, 촌구석… 대개 ‘구석’이라는 표현에는 가장자리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어떤 공간에 관한 경멸이나 피로감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았다. 구석은 모퉁이이고 후미진 곳이며,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져 숨어드는 곳이고 시시하고 하찮은 곳이었다. 소요가 잦아드는 곳이어서 무슨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은 곳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려면 구석에서 나와야만 했다.

  그러나 초연결(hyper-connectivity)과 1인 미디어가 일상을 바꾸어 놓은 지금, 세상은 방구석에서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우리를 향해 열려있고 ‘방구석’의 위상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구석에서 전 세계 사람들을 향해 메시지를 발신하고 그들과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떤 큰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제 누군가가 세상을 상대로 일을 벌이고자 한다면 방구석의 컴퓨터와 카메라 앞으로 가 앉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온라인 공연에서 팬들과 소통하는 BTS

  음악과 관련해서는 이미 방구석 뮤지션의 시대가 도래한 지 20여 년은 되었다. 이른바 홈레코딩 시스템의 발달은 음원 제작 공정의 대부분을 집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컴퓨터와 몇몇 간단한 장비만 있으면 녹음부터 믹싱, 마스터링까지 프로수준의 음원 작업을 모두 집에서 해낼 수 있다. 거기다 가상악기나 프로그램, 장비는 날로 더 좋아지고 있어 예전처럼 큰 자본이나 스튜디오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일부 혹은 전체의 공정이 집에서 이루어진 음악이 이미 우리의 플레이리스트 도처에 들어와 있다.

  게다가 이제 뮤지션들은 방에서 온라인으로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을 홍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무한한 가능성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하였다. 집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어떤 꼬맹이의 모습이 그의 엄마에 의해 촬영되어 유튜브에 올라왔는데, 이 영상이 화제가 되어 결국 아이는 거대 기획사의 러브콜을 받아 전 세계적인 아이돌 스타가 되었다. 저스틴 비버 얘기다. 한국의 한 고등학생은 아델의 노래를 따라부른 자신의 영상 덕에 미국의 <엘렌 쇼> 방송의 초청을 받아 출연하게 되었다. 커버 영상을 올리던 한국의 가수 지망생 ‘제이플라’의 유튜브 채널은 국경을 넘어 2천만 명 가까운 구독자를 확보하고 그에게 어마어마한 부와 인지도를 가져다주었다.

  음악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더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특히 유튜브 등의 동영상 플랫폼이 주도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홈비디오를 통해 음악향유의 많은 부분을 집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거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음악 즐기기의 양상을 만들어내었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그것도 즉각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음악과 MV의 공유는 물론이고, 음악에 대한 비평과 토론, 패러디를 포함한 2차 창작, 각종 팬덤 활동이 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되어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비록 코로나19 사태라는 불가역적인 상황에서라지만 어쨌든 음악 산업의 가장 큰 축이라 할 수 있는 ‘공연 관람’ 역시 온라인으로 넘어왔다는 점은 방구석 음악생활의 큰 변화 중 하나이다. 하지만 온라인 공연 관람은 단지 ‘현장에서 볼 것을 미디어를 통해 본다’는 단순한 발상 차이 이상의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라이브 현장의 생중계는 이미 저 아날로그 TV 시대부터 행해져 왔다. 그런데 이 ‘매개된 현장성’이나 ‘현재성’의 라이브니스(liveness)는 엄밀히 말해 살아있되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3D의 현장을 2D의 화면으로 평면화시켰다는 점은 물론이고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그리고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식스센스까지, 여러 측면에서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현장에서 온몸으로 ‘경험’하는 공연이 아닌 방에서 미디어를 통해 단순 ‘시청’하는 공연은 심지어 특별한 조치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떤 사전녹화된 사건의 ‘재생’인지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인지 그 동시성을 확인할 길조차 없다. 그래서 처음 온라인 공연을 기획한 이들이 이 화면 속 공연에 현재성을 부여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는 디지털 미디어의 양방향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공연 도중에 끊임없이 관객과의 실시간 소통의 기회를 끼워 넣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한 새로운 소통에의 발상은 결국 온라인 공연이 현장 공연을 모방하던 입장에서 아예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쪽으로 특화되도록 했다. 이제 팬들은 공연을 보면서 다른 관객과 실시간으로 채팅을 통해 즉각적인 감정을 공유하고, 증강현실 기술로 구현된 SF적인 무대를 즐기거나, 헤드폰을 통해 현장에서보다 더 명쾌하고 엄정한 사운드를 즐긴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응원봉을 통해 현장이 보내온 리듬의 신호를 받는 것은 방에서도 계속되고 뮤지션과 화상통화를 통해 개인적인 대화의 시간을 부여받기도 한다.

  ‘온라인 공연 관람’의 방식과 내용은 더 진화할 것이고 결국 현장 공연의 대체제를 넘어 별도의 지위를 부여받을 것이다. 공연 관람은 물론 일상의 음악 즐기기는 더 다채롭고 새로워질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측면에서 우리의 방구석 음악생활을 얼마나 더 슬기롭게 만들어줄까.

 

 


서영호
음악가. '원펀치'와 '오진은서영호'에서 활동. 《쿨투라》 신인상 공모에 '영화음악평론'으로 당선. 주요 앨범으로 〈Punch Drunk Love〉, 〈작은 마음〉 등이 있다.

 

* 《쿨투라》 2021년 5월호(통권 8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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