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그 언젠가, '보복관람'이 있을까요
[5월 Theme] 그 언젠가, '보복관람'이 있을까요
  • 윤성은(영화평론가)
  • 승인 2021.04.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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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이준익 감독의 신작이 개봉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필모그래프를 장식하고 있는 <왕의 남자>(2005)는 천만 관객이 들었던 영화고, <사도>(2015), <동주>(2016) 등 최근까지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만들어왔는데, 무려 설경구와 변요한, 이정은이 출연한 <자산어보>(2019)는 개봉하면서부터 관객들에게 찬밥 신세다. 영화의 문제도, 홍보의 문제도 아니다. <자산어보>의 대사를 빌리자면, 코로나가 참 힘이 센 것이다. 대중들이 기대하는 상업영화라고 볼 수는 없어도 올 상반기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던 <미나리>(2020) 역시 개봉 한 달 반 동안 100만 명의 고지를 넘지 못했다. 이례적으로 <소울>(피트 닥터, 2020)과 <귀멸의 칼날>(소토자키 하루오, 2020)는 각각 204만 명, 167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울>은 흥행이 보장된 픽사 애니메이션이고, <귀멸의 칼날>은 마니아층이 뚜렷한 일본 TV 시리즈 원작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관객이 많이 들었다고 할 수는 없다. 코로나 이전(Before Covid19)에는 국민 전부가 1년에 영화를 네 편씩 볼 만큼 극장 관객수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던 우리가 무슨 영화가 개봉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극장에서 코로나가 확산된 경우는 1년이 넘도록 전무하건만, 계속 하루에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관객들에게 극장은 여전히 위험지대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B.C 시절, 영화관을 즐겨 찾던 사람들은 코로나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기 때문에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원인은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을 개봉시키지 않는 업계에 있는 것일까? 흥미로운 소재, 아기자기한 유머와 뚜렷한 주제의식이 있었던 <자산어보>가 고전하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으나 어느 정도는 책임론이 있을 수밖에 없다. 1년 넘게 개봉을 못한 상업영화들이 수십 편 밀려 있는데도 개봉 시기를 못 잡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코로나 때문이고, 이차적으로 서로 눈치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영화가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르기를 자처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다 넷플릭스로 간 대작들이 여러 편이다. 한국 최초의 SF 영화라며 제작 당시부터 떠들썩했던 <승리호>(조성희, 2020)가 넷플릭스행을 결정했을 때, 배신감을 느낀 것은 일개 영화평론가 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손익분기점이 아쉬워도 극장에서 상영해야만 하는 영화가 있는 법이다. 코로나 시대의 업계에 영화에 대한 예의나 관객들에 대한 배려 같은 건 없다.

 

  본론은 여기서부터다. 코로나 시기에 극장을 찾은 관객수는 통합전산망이 구축된 이래 최저 수준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TV로, 컴퓨터로, 스마트폰으로. 처음에는 영화관만이 갖고 있는 감수성과 인프라 때문에 불편과 불만을 호소하던 이들도 1년이 지나자 인도어 관람에 점차 익숙해진 듯하다. 공유와 박보검이 출연한 <서복>(이용주, 2019)이 극장과 티빙 동시 오픈을 선언하자 관객들은 이 영화를 굳이 극장에서 돈 주고 볼 필요가 없다는데 고마워했다.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승리호> 때와는 꽤 달라진 반응이다.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듯 명실공히 두 톱스타가 등장하는데도 개봉 첫날 극장 관객수는 4만 6천 명에 그쳤다. 반면, 티빙은 이 영화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끌어들인 신규 가입자들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집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과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소비나 경제의 측면뿐 아니라 영화적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큰 차이를 지닌다. 불특정 다수와 함께 있다는 공공장소의 특성, 영화에 집중하기 위한 자발적 통제 등이 사라진 집에서 러닝타임 내내 집중력을 발휘하는 관객은 거의 없다. OTT 콘텐츠에 탐닉하면서 편당 25분에서 40분짜리 드라마를 즐기게 된 이들은 2시간짜리 영화가 이제 너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이들에게 극장의 추억이나 로망은 ‘라떼족’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

  여의도에 대형 백화점 ‘더 현대 서울’이 오픈하던 날, 이곳에는 정부의 방역 수칙이 무색하게도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교통 방송에서 마포대교에 그냥 서 있다는 차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볼거리를 향해 몰려드는 것을 보면 모두에게 인도어 라이프가 지긋지긋한 것만은 확실하다. 이 백화점에서는 하루 매출이 100억 원이 넘어가는 ‘보복소비’도 이어졌다. 여행도, 취미도, 사적인 모임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답답함을 명품 구입으로 해소하는 대중들의 심리가 빤하게 감지된다. 영화는 어떨까. 그 언젠가 집단 면역이 생기고, 블록버스터가 극장에 걸릴 때쯤, 관객들에게도 ‘보복관람’이라는 것이 있기를. 계속 우리 집 근처에서 조조부터 심야까지 아무 때고 영화를볼 수 있는 영화관이 있어주기를. After Covid19 시대를 향한 단 하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윤성은
영화학 박사. 201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이후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공연과 리뷰》 PAF 평론상 수상.

 

* 《쿨투라》 2021년 5월호(통권 8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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