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인도어 쇼핑, 모두의 쇼핑
[5월 Theme] 인도어 쇼핑, 모두의 쇼핑
  • 김세연(미디어비평가)
  • 승인 2021.04.28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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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여름, 나는 무심코 페이스북 담벼락을 내리다가 흥미로운 게시물 하나를 발견했다. 나의 ‘페이스북 친구’가 3일 만에 옥수수 7천 개를 팔았다는 것이었다. 내 페친이 구황작물을 심는 농부였는가 하면, 그게 아니라 그는 인문계열 대학원생 출신의 작가였다. 평소 활발한 SNS 활동으로 팔로워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분이기도 했다. 옥수수 농사를 짓는 장모의 부탁을 받고 판매 글을 올렸는데, 구매 요청이 폭주하여 완판 신화를 일으킨 것이었다. ‘고집스럽게 농사를 지어오신 분들’에게 ‘내년을 준비할 힘’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게시물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7천 개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이 아니라 판매의 주체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분이 SNS를 통해 뭔가를 ‘판매’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흔히 인문학자라 하면 상거래에 어둡고, 현실과 동떨어진 근본적인 문제에만 골몰하고 있을 거라는 편견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눈앞에서 뚝딱하고 이루어지는 모습이 내심 신기하게 보였던 것이다(물론 옥수수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얻는 금전적인 이득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사랑받는 사위가 되어 감사했을 뿐이라고 한다).

  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소비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최근 집콕 라이프가 계속되면서 인도어 쇼핑이 급증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온라인 상의 거래의 방식 역시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최근 감지되고 있는 인도어 쇼핑의 새로운 기류를 세 가지로 요약해보려 한다.

  첫째, 정보가 아닌 ‘스토리’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노가영(SK브로드밴드 미디어성장그룹)에 따르면, 요즘 사람들은 최저가 비교 사이트에서 상품을 검색하기보다는 내가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의 콘텐츠에 의존한다. 소셜 피드를 통해 보여준 라이프스타일과 스토리가 합리적 소비를 넘어서는 신뢰감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톱 여배우가 자신이 광고하는 로드샵 화장품을 사용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1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캠핑 고수의 인스타그램에 등장하는 바스켓이며, 딸쌍둥이 유튜브에 나오는 육아템이다. 과거에는 제품의 가격과 스펙, 디스플레이, 인기 연예인을 동원한 CF가 제품의 성공을 좌우했으나, 요즘에는 이러한 기업의 일방적인 홍보가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 소비자들은 연출된 이미지와 정보보다, 실제로 그 제품을 사용할만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듣고 싶어 한다.

 

  둘째, 유통 ‘플랫폼’의 변화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소비자들은 ‘최저가 검색 사이트’에서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로 넘어왔다. 이는 인터넷 쇼핑의 기반이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이동했다는 내용을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어서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라이브커머스에 관한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 라이브커머스는 동영상 스트리밍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모바일 홈쇼핑’이라고 보면 된다. 그간 홈쇼핑의 주요 고객층은 중장년 여성과 주부였는데, 이들의 모바일 기기 이용 시간이 늘어나면서 라이브커머스 시장이 활성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국내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으로는 네이버의 ‘쇼핑라이브’, 카카오의 ‘톡 딜라이브’, CJ 올리브영의 ‘올라이브’, 롯데백화점의 ‘100라이브’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을 이용한 방식도 있다. 라이브커머스의 이점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유통 마진의 절감이다. 이는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촬영 장비와 쇼호스트를 포함해 전문적인 제작환경을 갖추고 있는 기존 홈쇼핑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비용으로 방송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라이브커머스에서는 판매실적에 대한 부담도 훨씬 적다. 소비자들과 실시간 채팅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셋째, 최근 온라인 거래시장에서는 누구나 ‘판매 주체’가 된다. 과거에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상품을 유통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상인’과 월급을 받아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로 나뉘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이나 지식, 노하우 등을 쉽게 돈의 가치로 환산하고 시장에 내놓는다. 이렇게 소비자가 구매의 주체인 동시에 판매의 주체가 되는 것을 ‘C2C(Customer to Customer) 방식’이라고 한다. 중고거래 사이트를 떠올려 보면 쉽다. 그곳에서는 초등학생도 상인이 된다. 집 안에 굴러다니던 불필요한 물건들은 좋은 상품이 될 수 있다. 판매 주체에 따라 ‘네고’도 가능하다.

 

  ‘콘텐츠 판매’에 관한 내용도 적절한 예시가 될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현대인들은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한다. ‘크몽’이나 ‘탈잉’ 등의 오픈마켓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전자책이 판매되고 있다. 그곳에서는 ‘직장에서 막내로 살아남는 법’과 같은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노하우들이 PDF파일로 만들어져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거래된다. 강의도 마찬가지다. 이제 강의는 거창한 교육활동이 아니라 지식 판매이다.
쇼핑 행위가 된다. 누구나 작가, 강사가 되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한다.

  사실 나는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 가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개인 SNS를 운영함에 있어 소극적인 편인데, 그러다보니 항상 최신 기능들에 서툴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나도 ‘판매자’가 될 수도 있겠다 싶으니까 마냥 무지해서는 안 되겠는 것이다. 새로 만든 아이디는 비즈니스 계정으로 설정해두고 이런저런 옵션들을 탐색해본다. 한밤중에 라이브 방송도 켜본다. 말도 안 되는 사업 아이템들을 떠올리다 보면 또 어느새 새벽이 된다.

 

 


1) 노가영 외 『콘텐츠가 전부다』, 미래의 창, 2020, 5~6쪽.

김세연
미디어비평가.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소설집 『홀리데이 컬렉션』이 있다. 현재 동국대 다르마칼리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 《쿨투라》 2021년 5월호(통권 8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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