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힐링인 듯 킬링인 듯, 〈바퀴달린 집〉 김정선 작가를 만나다
[INTERVIEW] 힐링인 듯 킬링인 듯, 〈바퀴달린 집〉 김정선 작가를 만나다
  • 박나경(방송작가)
  • 승인 2021.04.2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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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한국영화사에서 빠지지 않는 명장면이 있다. 2000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가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한 채 “나 다시 돌아갈래”라며 절규하는 장면.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힌 후, 폭주하는 바이러스에 맞서 “나 다시 떠나갈래”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 하늘을 찌르는 봄. 그 마음이 전해지기라도 한 듯 tvN의 리얼버라이어티 〈바퀴 달린 집〉의 시즌2가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6월 첫 방송부터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한 시즌을 마친 뒤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시작하는 시즌2에서는 성동일, 김희원과 임시완이 호스트의 자리를 채운다(원조 호스트 여진구는 드라마 촬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여기에 배두나, 공효진, 오정세, 김유정, 김동욱 등이 집들이 손님으로 예약 중.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할 때는 용어조차 없었으나 프로그램이 윤곽을 드러낼 무렵 세상을 휩쓸기 시작한 코로나19의 여파로 장소를 바꿔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언택트 차박 캠핑의 진수를 보여준 〈바퀴 달린 집〉. 그 집의 제작에서부터 출연자들의 케미까지, PD와 함께 큰 그림을 그려온 김정선 작가를 만났다.

  “처음에 바퀴 달린 집을 지으면서 진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수시로 도면이 바뀌고 사람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바라는 것도 다르고, 디자인도 마찬가지고…. 사람들이 집 짓고 나면 수명이 줄어든 다고 하잖아요.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겠더라고요. 우리끼리 ‘이렇게 작은 집을 짓는 데도 서로 맘이 상하는데 도대체 큰 집 짓는 사람들은 어떻게 짓는 거지?’ 할 정도였죠. 그런데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건 ‘바퀴 달린 집’은 저희 프로그램 제4의 멤버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연출팀에도 ‘이 집이 나와야 한다. 사람들은 이 집이 궁금하다. 이 집에서 물은 어떻게 사용하고 하수구는 어떻게 나가고 화장실은 어떻고 잠자리는 어떤지에 대해 꼭 보여야 한다.’ 매번 얘기를 했어요. 집이 주인공이 되도록 엄청나게 신경 썼죠, 티저 영상도 집 위주로 찍어달라고 부탁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바퀴 달린 집이 처음 달려간 곳은 강원도 고성이다.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바퀴 달린 집을 세워 놓고, 다음 날 눈을 비비며 일어나 누운 채 일출을 감상하는 세 남자의 표정이란.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뭘까, 회의를 할 때마다 그 얘기를 나눴어요. 그때마다 계속 나오는 말이 씬(Scene)이었어요. 아침에 눈 떴을 때, 눈뜨고 창문을 열었을 때, 커튼을 올렸을 때, 텐트의 출입문을 걷었을 때, 바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숲이면 진짜 근사할 것 같다 입을 모았죠. 이런 씬을 찾아야 한다. 어디에 이 집을 세워야 그런 풍경을 만날 수 있을까. 많이 찾아다녔어요.”

ⓒtvN

  첫 방송을 앞두고 가진 제작발표회에서 프로그램을 맡은 강궁 PD는 ‘어떤 날은 동해안이 우리 집 앞마당이 되고, 한라산이 우리 집 뒷산이 되는 그런 삶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프로그램’이란 소개를 했다. 그 말처럼 강원도 고성의 바닷가를 앞마당 삼았던 첫 기억이 김정선 작가에겐 아직도 생생하다.

  “솔직히 첫 촬영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어요. 출연자들은 처음이라 부담스러워서 긴장한 데다 체력도 다 소진됐고, 제작진은 안전을 먼저 신경 쓰다보니 숨기로 했던 카메라들이 바닷가에 다 나와 있고…. 정신없이 촬영을 하다가 나중에 보니까 방송분량이 안 나올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미리 준비해간 게임을 하자고 했어요. ‘이거 안 하면 큰일납니다.’하면서 출연자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게임을 했는데 후반 작업에서 그 부분은 결국 편집이 됐어요. 오히려 프로그램을 살린 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 예를 들면 화장실에서 물이 샜을 때 혜리 씨가 ‘물이 샌다아아아’하고 외치잖아요. 그런 극적인 현장. 결국 리얼함을 이길 수 있는 구성이나 무기는 아직까지 없는 것 같아요.”

  20여 년간 예능작가로 활동하면서 〈짠내투어〉, 〈시베리아 선발대〉, 〈바닷길 선발대〉 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며 매번 확인하게 되는 건 출연자들이 직접음식을 만들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무심히 대화하며 걷는 자연스러움이 욕심을 내서 만들어내는 상황보다 훨씬 더 힘이 세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이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의 마음이 더해지는 거죠. 〈바퀴 달린 집〉은 전국 유랑 집들이 프로그램이잖아요. 저희는 진짜 오신 분들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거든요. 문경에서 다 같이 패러글라이딩을 한 것도 성동일 씨가 평소에도 자녀들과 함께 즐기신다면서 해보자고 해서 시작됐어요. 아이유 씨한테도 ‘안 해도 돼요. 근데 한번 해보지 않을래요?’ 하고 물었거든요. 그랬더니 자기는 원래 하지 않을 생각으로 왔대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느냐며 선뜻 나서주는 거예요. 정말 감동 받았어요. 좋은 그림을 만들고 싶은 제작진의 마음과 그걸 해주고 싶은 성동일 씨의 마음과 받아들여준 출연자들의 마음이 잘 맞아떨어진 거죠.”

ⓒtvN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은 여행으로라도 잠시 집을 떠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아무리 놀기 위해, 쉬기 위해 떠난 여행이어도 가는 곳마다 텐트를 쳐 스스로 잠자리를 마련하고, 재료를 가져다가 직접 요리를 해야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캠핑이라면야 더 할 말이 있을까. 다만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하는 마음 맞는 친구, 가족, 동료들이 있다면 그 노동의 고단함마저 잊을 수 있지 않을까.

  “〈바퀴 달린 집〉 현장에 가보면 진행하는 진행 PD있죠, 조명팀, 카메라팀, 동시녹음팀에 배차 기사님들도 계세요. 작가들은 몸이라도 가볍죠. 다른 분들은 어른 몸집만한 기계를 들고 뛰어다니시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절대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구나,아무리 잘나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되죠. 이게 결국은 팀플레이이거든요. 프로그램이 잘 안 됐는데 자기만 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팀웍이 되게 중요해요.”

  그렇다. 캠핑도 결국 사람의 문제다. 막내 여진구가 두 시간 걸려 찌개 하나를 끓여 내도 진득하게 기다려주는 두 형님이 있기에,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마, 당황하지 마’ 두 동생을 안심시키며 너른 품으로 손님을 맞는 성동일이 있기에. 난생 처음 텐트에서 잠을 자고 낯설고 서툰 캠핑의 날들을 보내면서도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김희원이있기에 〈바퀴 달린 집〉 시즌1의 캠핑 이야기는 해피엔딩일 수 있었다.

  물론 해본 사람은 안다. 야외 캠핑은 만만치 않다. 호텔 델루나의 성실한 완벽주의 호텔리어 여진구가 집에서 만들어온 식혜도, 갖은 커피 메이커와 시럽까지 챙겨와 만든 캐러멜 마키아토도, 집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어서 당혹스럽다. 화장실 물이 넘쳐 앞마당에 묘한 냄새가 퍼지고, 무방비로 열린 창을 통해 벌레들의 테러가 계속되더니 세워둔 자동차에서 갑자기 경보기까지 울리는 난리법석은 캠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던가. 그때 성동일은 이렇게 묻는다. “이게 킬링이지 힐링이야?”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았다. 그 킬링이 힐링이 될 수도 있음을. 그렇기에 오늘도 초보 캠퍼들은 캠핑의 로망을 접지않을 것이다.

 


박나경
방송작가. 현재 KBS 클래식FM 〈출발 FM과 함께〉, KBS 월드라디오 〈김형중의 음악세상〉 집필 중.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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