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영혼을 위한 이모의 옥수수 수프: 바바라 오코너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
[문학 월평] 영혼을 위한 이모의 옥수수 수프: 바바라 오코너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1.04.2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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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와 제목만 바꿔도 책에 눈길이 간다. 사람으로 치면 얼굴과 옷차림이 바뀐 거니까. 내용 (혹은 성격이야) 그대로라도 겉모습이 달라지면 아무래도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 장편 소설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2017년 1월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위시』의 개정판으로 올해 2월 다시 나왔다. 영어 원제목 ‘Wish’를 음차한 ‘위시’는 간명하긴 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은 아니었으니까. ‘소원’이라고 담백하게 제시하기보다는 거기에 뭔가를 덧붙여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자. 출판사는 그렇게 의도한 모양이다. 그 전략이 먹혀든 독자 중 한 명이 바로 나다. 덕분에 《쿨투라》 지면에 소개할 마음도 먹었고. (출판사 여러분, 개정판 마케팅은 적어도 저에게는 유효했습니다. 계속 힘내주십시오.)

  그래도 요즘 ‘뒷광고’ 문제가 심각한 만큼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여야겠다. 나는 해당 출판사와 아무 관계없다. 편집자나 마케터와 어떤 연락도 주고받은 적 없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광고가 아니라 본심에 근거한다. 이 작품의 메시지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최소한 《쿨투라》를 손에 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리라 판단해서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위안을 얻으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고. 잘못된 견해가 아니지만 완전히 맞는 견해도 아니다. 네이션(nation) 형성과 결속에 기여하는 커다란 소임을 떠맡은 소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자아들을 탐색하는 소설, 자아와 세계가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소설만 세상에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이런 소설의 가치야 두말없이 인정한다. 그렇지만 늘 진지한 비평이나 연구 대상으로만 취급되는 소설만 읽어야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질리는 법이다. 몸에 이로운 음식만 먹고 살면 될 것 같지만 우리는 몸에 해로울 걸 알면서도 맵고 달고 짠 음식을 찾는다. 이쪽이 맛은 더 강렬하니까! 실은 그래야 몸에 이로운 음식의 진가도 알게 된다. 나름의 경험에 바탕을 둔 비교로 절묘한 균형점을 설정한다고나 할까. 물론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은 몸에 해로운 음식 같은 자극적인 소설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영혼을 위한 따뜻한 닭고기 수프』(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에 가까운 작품이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자꾸만 영혼을 상하게 하는 날들이 지속되는 세상에서는 닭고기 수프를 좀 더 먹어도 괜찮지 않나.

  그럼 소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개정판 제목에서 이미 눈치챈 분이 있을 듯하다. 이 소설은 『개를 훔치는 방법』으로 이름을 알린 바바라 오코너의 작품이다. 미국에서는 2007년 출간돼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는데, 독특하게도 2014년 김성호 감독의 연출로 한국에서 영화화됐다. 이레·이지원·홍은택 등 아역 배우와 김혜자·최민수·강혜정·이천희 등 성인 배우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영화니까 한 번쯤 관람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경제적으로 위태로운 가정을 지키려는 열한 살 소녀의 귀여운 분투기를 그리고 있는데,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의 주인공 역시 열한 살 소녀다. 그런데 지은이는 왜 굳이 열한 살로 주인공 나이를 정한 것일까?

  바바라 오코너가 청소년 소설 작가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글쎄…… 사실이긴 한데 모자라다. 차라리 이 같은 답변은 어떨까. 미국 나이로 열한 살, 한국 나이로는 열세 살인 초등학교 고학년에 속한 이맘때가 인간의 가소성이 가장 충만한 시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짐작. 생득적 성질과 상관없이 후천적 노력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아이의 잠재적 상태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면서,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이 아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소설가의 목적도 그러면 자연스럽게 달성된다. 또한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은 동심을 유지하면서도, 동심만으로는 세상을 살기 쉽지 않음을 차츰 깨달아가는 시기이기도하다. 순진한 병아리에서 영약한 중닭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한 속성을 갖는다.

  ‘샬러메인 리스’가 그런 열한 살 소녀의 이름이다. 그러나 샬러메인은 자기 이름을 싫어한다. 그녀는 본인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직접 지었다. 소녀는 스스로를 ‘찰리’라고 부른다. 영화 〈레이디 버드〉(2018) 주인공의 유년기 버전이라고 할까. 찰리는 남몰래 소원을 빈다. 그 소원이 무엇인지는 소설의 맨 뒤에 밝혀지는데, 이것이 찰리의 가족과 관련된다는 정보 정도는 발설해도 될 것 같다. ‘쌈닭’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는 별명에 걸맞게 지금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이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시달려 찰리를 돌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점도 덧붙여서 말이다. 그래서 찰리는 이모 부부에 맡겨진다. 원치 않는 위탁이었으므로 당연히 찰리는 이곳이 못마땅하다.

  예상하다시피 이 작품은 여기에 잠시 머무는 거라고 되뇌면서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을 하는 찰리가 점점 성숙해가는 성장 소설의 틀을 따른다. 마을을 떠도는 개 ‘위시본’을 키우기로 결심하면서, 심성이 비단결인 소년 ‘하워드’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더불어 이모 부부의 그야말로 하늘 같고 바다 같은 끝없는 사랑에 감동하면서, 찰리가 마침내 자신이 끊임없이 빌던 소원을 이룬다는 줄거리다. 식상하다고? 그럴 수도 있겠으나 디테일이 식상하지 않다는 게 핵심이다. 이모와 찰리 사이의 에피소드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찰리는 하워드의 신체장애를 비하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한다. 하워드에게 못된 말을 했다고 털어놓는 찰리. 한데 이모는 찰리를 꾸짖지 않는다. 옥수수 수프를 권할 뿐이다.

  하워드에게 무슨 못된 말을 했는지 안 물어볼 거냐는 찰리의 말에 이모가 대꾸한다. “응. 안 물어볼 거야.(……) 저지른 잘못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면 안돼. 어떤 식으로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지. (……) 게다가 나는 주워 담고 싶은 말을 한 적이 없는 줄 아니?”(156~157쪽) 그러면서 이모는 식탁 너머로 손을 뻗어 찰리의 손을 토닥인다. 이상의 대화만으로도 이 작품은 책값을 다한 셈이다.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은 세상이 냉혹하기만 한 듯 보여도 실은 그 속에 따스함이 간직돼 있다고, 인간의 선의를 신뢰하고 이를 꽉 붙들어야 우리가 새로운 인연을 맺으며 세상을 버텨낼 수 있다는 진실을, 닭고기 수프보다 따뜻한 이모의 옥수수 수프로 건넨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와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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