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문화] 바다를 누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시인 고광이
[미주 문화] 바다를 누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시인 고광이
  • 김준철(미주문인협회 회장, 본지 미주특파원)
  • 승인 2021.04.26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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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는 우리에게 산보다 훨씬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산이 가진 한계성이 바다에는 없다. 일반적으로 바다에서 하는 레포츠들이 산에서 하는 레포츠에 비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큰 자유로움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레포츠는 ‘leisure’와 ‘sports’의 합성어로 여가를 즐기며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운동이다. 요즘처럼 스스로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시기에 자연과 함께 하는 레포츠가 있다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싶다.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레포츠는 낚시(Fishing)를 기본으로 서핑(Surfing), 스쿠버다이빙(Scuba diving), 스노클링(Snorkeling), 카약(Kayak), 패딩 보드(Padding board), 패러세일링(Parasailing) 등 무수히 많다.

  바다가 주는 자유로움을 즐기며 시를 쓰는 재미시인협회 회장 고광이 시인을 만나 그의 즐거운 일상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필자가 사는 L.A.에서 남쪽으로 약 35마일 정도 운전을 하고 가니 샌 패드로(San Pedro)에 있는 Cabrillo Way Marina라는 요트 정박장이 나왔다.

김준철(이하 준)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시죠?

고광이(이하 고) 네, 반갑습니다. 저는 늘 이렇게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요트로 초대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올해 재미시인협회 회장에 당선되신 것도 축하드립니다.

 별말씀을요. 너무 늦게 초대해서 죄송합니다. 또한, 부족한 사람이 재미시인협회 회장직을 맡게 되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재미시인협회는 1987년에 설립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L.A.를 대표하는 시인협회입니다.

 네. 저 역시 처음 L.A.에 왔을 때,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한 곳도 재미시인협회여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자, 그럼 제가 오늘 바다로 나갈 때 탈 보트는 어떤 것인가요?

 보통 낚시할 때 주로 타는 피싱 보트(Fishing boat)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다른 보트들도 있나요?

 종류야 너무 많죠. 저는 10여 년 전에 바다와 인연이 닿아 이렇게 빠져 지냅니다.

 바다와의 인연은 어쩐지 조금 더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배를 몰고 다니는 것은 더더욱 그럴 것 같고요. 고 회장님 덕분에 저 역시 오늘 바다와 인연을 맺게 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러시면 너무 좋죠. 바다와 어우러진 인연은 길고 깊게 가는 것 같거든요.

 줄곧 이 피싱 보트를 타셨나요?

 아니오. 피싱 보트로 바꾼 지는 이제 2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처음에는 제트 스키(Jet ski)를 가지고 다니는 작은 보트로 시작을 했고, 쉘 보트(Shell boat)와 크루즈 보트(Cruise boat) 등을 거쳐 지금 제게 가장 실용적인 피싱 보트로 바꾼 거죠.

 보트의 종류는 어떤 식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워낙 종류가 많지만 제가 타 본 보트를 기준으로 본다면 돛을 이용해서 바람으로 즐기는 쉘 보트 종류와 레저, 파티, 숙식까지 간편히 해결할 수 있는 크루즈 보트, 그리고 낚시를 목적으로 가볍게 사용하는 전 천후 피싱 보트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어떻게 바다의 매력에 빠지게 되셨나요?

 사실 제가 워낙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가, 이민 생활이라는 것이 아시다시피 너무 외롭다 보니 여기저기 많이 쏘다녔죠. 처음에는 등산이나 캠핑에 빠져 지냈고 그러다 10여 년 전에 아는 분 소개로 바다를 경험하면서 그 매력에 빠졌습니다.

 산과 바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지금 저로서는 한마디로 말씀드린다면 한계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계성의 차이, 살짝 이해가 가면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저로서는 정확히 이해가 안 되는데요.

 먼저 산의 경우, 목적성을 갖게 되죠. 올라가야 한다는 것.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오름에 대한 한계가 오게 되요. 체력이 떨어지면 예전에 잘 다녔던 산도 다시 오르기 버거워집니다. 시력이 떨어지면서 시야도 점점 좁아지고요. 나아갈 수 있는 범위가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하지만 바다의 경우, 나이를 먹더라도 등산에 비해 육체적 제약이 별로 없죠. 바다는 탁 트여 있기 때문에 한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물론 정말로 한없이 간다면 어딘가 다른 육지에 닿겠지만 말이죠… 하하… 그리고 그렇게 가다가 멈춰서 낚시를 하든 스쿠버다이빙을 하든 음식도 구해서 먹을 수 있고요.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탐험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제 한계를 넘어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출발했다. 보트는 빠르게 샌 패드로 정박장을 벗어났다.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길을 돌아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들이, 길 없는 바다에서는 순식간에 다가왔다. 우정의 종(Korean Bell of Friendship. 미국의 독립 200주년을 맞아 한미 두 나라의 우의와 신의를 두텁게 하는 뜻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미합중국 국민에게 기증한 우정의 선물-편집자 주)을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바라보자 비로소 색다른 자유로움에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았다.

  육지에서와 달리 파도가 금방 높아졌다. 보트가 출렁이며 높이 떴다가 내려앉자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잠시 배를 멈추자 놀랍게도 그 옆으로 고래의 등이 불쑥 올라왔다.

  ‘고래라니!’ 하지만 고광이 회장은 이미 많이 봐왔던 풍경이라 슬쩍 눈길을 주곤 웃었다. 다시 눈을 바다로 돌리자 펠리컨 무리가 낮게 날다가 자맥질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한쪽에는 보트를 멈추고 패딩 보드에 올라 노 젓는 사람도 보였고, 배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배는 얼마나 자주 타세요?

 대중없어요. 일이 없는 날은 종일 배에서 지내기도 하고요, 또 어떤 날은 잠깐 타고 한두 시간 드라이브 하듯 돌다 들어오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거나 싱숭생숭한 날에도 어김없이 배를 타고 바다로 향합니다. 그러면 어느새 그 모든 일이 거짓말처럼 잊힙니다.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가장 즐거운 기억 중, 하나는 카탈리나섬(CatalinaIsland)으로 갔을 때였어요. 여름이면 배를 몰고 카탈리나섬으로 갑니다. 섬 주위를 돌다 보면 정말 기가 막힌 히든 스팟(Hidden spot)의 해변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그럼 그중 한 곳에 배를 정박하여 해변에 텐트를 치고, 고기를 잡고, 수영도 하면서 그 누구도 없는 곳에서 그야말로 지상낙원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거죠. 이번 여름에 1박 2일로 함께 가시죠.

 좋습니다, 약속하신 겁니다. 벌써 기대되네요. 카탈리나섬은 예전에 마릴린 먼로를 비롯해 많은 스타가 살았던,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잖아요. 자연 환경 관리도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수상스포츠와 휴양지로 잘 알려진 곳이죠. 그곳에서의 스쿠버다이빙도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하던데요.

 바닷속 풍경은 마치 그랜드캐년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죠. 그 안에서도 협곡과 계곡이 이어지고, 거기서 물고기는 새처럼 날아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하하

 이 배로 어디까지 갈 수 있죠?

 여기서 출발해서 멕시코 인근 연안까지 가죠.

 제가 잘 몰라서 드리는 질문인데, 혹시 바다에도 통행금지가 있나요?

 태풍 등의 기상 문제 외에는 밤새 바다에 있어도 상관없어요. 바다에서 바라보는 육지의 야경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바다에 비친 육지의 불빛이 얼마나 선명한지, 손 내밀어 따서 옆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질 정도랍니다.

 바다는 고 회장님의 문학에 어떤 영감을 주나요?

 글쎄요. 사실 제 작품엔 바다에 관련된 글이 거의 없습니다. 저도 그게 참 신기한데요. 어쩌면 바다는 제게 ‘(안 좋은 일이나 감정을)버리고 지우는 공간’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새로운 힘을 충전하는 곳이고, 제게는 생활 그 자체가 된 곳이니까요.

 이번에 재미시인협회를 이끌어 가게 되셨는데, 마지막으로 포부도 전해주시죠.

 잘 아시겠지만, 협회 회원들이 전체적으로 연로하시고 여러모로 정체된 부분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젊은 시인들을 발굴하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패턴적 변화도 추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오늘 바쁘실 텐데 근사한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보트는 정박지로 돌아왔다. 배 뒤편으로 필자보다 훨씬 커다란 물개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애교를 부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고광이 회장에게 요트는 바다와 자신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요, 문학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문학을 그 안에 녹여서 노래하진 않지만, 그것은 어쩌면 그가 그렇게 온전히 요트를 즐기며 또 같은 방식으로 문학도 누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헤어져 돌아오는데 내 마음은 어느새 그와 약속했던 여름 바다로 달려가고 있었다. 덤으로 ‘시(詩)’라는 대어를 낚게 될지도 모를 그 찬란한 여름을 기다려 볼참이다.

 

 

붉은 갑각류의 비명


                                고광이

 

너는
햇살을 밀어낸 영역을 좋아한다
달빛 묻어나는 선상에서
사다리 타고 오르는 박동수

 

어둠을 뚫고 울려 퍼진다

 

단단한 갑옷의 붉은 몸뚱이는 노을을 닮았다
팔딱이는 저항
해석할 수 없는 암호의 비명

 

바다는 비밀스럽게
억울한 울부짖음도
태연히 삼켰다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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