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Theme] 크리에이터Creator인가? 터미네이터Terminator인가?
[6월 Theme] 크리에이터Creator인가? 터미네이터Terminator인가?
  • 조래훈(KBS 31기 공채 개그맨, 서일대학교 외래교수)
  • 승인 2021.05.25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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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자들은 앞으로의 시대를 ‘코로나19 이전의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눈다. 하지만 2019년 이후의 세상을 ‘유튜브의 시대’라고 정의 내려도 되지 않을까. 최근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대면 시대를 맞이해 온라인 동영상 시청뿐 아니라 정보 검색에서도 유튜브를 찾는 이용자들이 부쩍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 시청이 일상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 콘텐츠 안에는 선한 영향을 주는 ‘크리에이터(Creator)’가 있는 반면에 수익만을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제작하여 선한 영향을 파괴하는 ‘터미네이터(Terminator)’도 넘쳐난다. 영화 〈터미네이터〉 속 터미네이터가 인류를 파멸시키기 위해 미래에서 온 사이보그라면, 유튜브계의 터미네이터는 인간의 영혼이 품은 작은 우주를 멸망시키는 모든 부정적인 것의 총칭이다.

  약육강식의 생태계

  공중파 코미디 프로그램의 폐지로 인해 KBS, MBC, SBS 방송사 공채 출신 개그맨들은 새로운 돌파구로서 유튜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제작에 있어 기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애용됐던 ‘몰래카메라’ 방식을 차용하였는데, 이는 시대가 요구하는 웃음 창출 방식과 시청자의 개그 취향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였다. 솔직함과 재미를 연계한, 일종의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었다.

  유튜브 진출 초기에는 ‘몰래카메라’ 콘텐츠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일부 콘텐츠의 독과점 현상이 뚜렷해졌고,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선정적인 노출이나 자극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면서 다른 크리에이터보다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았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제물 삼아 번영을 이루어내는 콘텐츠의 약육강식 생태계가 조성된 것이다. 문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강자가 창의적인 콘텐츠를 창작하는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수익만을 중시하는 터미네이터라는 점이다.

출처_피식대학 유튜브 페이지

  다 함께 ‘준며들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비정한 유튜브의 생태계에서 ‘재미’와 ‘의미’를 담아내는 선한 크리에이터들과 그들이 제작한 유튜브 채널이 꽤 많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구독자 114만을 보유한 ‘피식대학 채널’은 개그맨 이용주, 정재형, 김민수가 ‘대학’이라는 포맷을 가지고 코미디 인재 육성의 메카인 ‘피식대학’이란 독특한 컨셉으로 개설한 채널이다. 재밌는 상황 연기, 인물의 특징 패러디, 캐릭터 특징 연기 콘텐츠를 전면으로 내세워 ‘리얼감’을 살린 예능 콘텐츠로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얼굴이 알려져야 예능 프로그램에서 불러준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상파 예능보다 더 재밌는 예능 콘텐츠를 창작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택조’, ‘카페 사장 최준’과 같은 캐릭터 창조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출처_흔한남매 유튜브 홈페이지

  개그맨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가운데 다음으로 소개할 채널은 SBS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흔한 남매〉라는 실제 코너를 그대로 유튜브에옮겨온 〈흔한 남매〉다.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흔한 남매〉는 구독자 수가 자그마치 217만 명이다. 단순히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의 포맷을 유튜브에 가져온 것에서 머물지 않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로 재단장하여 ‘재미있는 교육 콘텐츠’라는 독특한 포지셔닝을 할 수 있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학습만화 『흔한 남매』 시리즈를 출판해 개그맨들의 활동영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슬기로운 유튜브 생활

  개그맨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은시대가 요구하고 시청자가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맛본다. ‘모방도 창조의 어머니’라는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콘텐츠의 구성요소만 살짝 바꿔 새로운 콘텐츠인 양 제작해 저작권을 침해하는 사례도 쉽게 발견할 수있다. 유튜브 콘텐츠에 관한 규제가 세심하게 자리잡지 못한 열악한 상황에서 크리에이터들은 재미, 의미, 교육적 메시지를 담은 창의적인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은 크리에이터의 몫이지만 최고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크리에이터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미디어다. 유튜브를 사랑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긍정적인 댓글과 아낌없는 칭찬이 크리에이터들에게는 큰 힘과 격려가 된다. 시청자들이 콘텐츠에 대해 건설적인 비판이 아닌 무조건적인 비방만 한다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 할지라도 그것의 선한 영향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될 수밖에 없다. 선한 크리에이터와 나쁜 터미네이터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앞으로 크리에이터와 시청자가 서로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슬기로운’ 유튜브 시대가 되기를 고대해본다.

 


조래훈
KBS 31기 공채 개그맨(KBS 개그콘서트),  EBS 〈생방송 방과 후 듄듄〉 프로그램 고정 패널, CBS 〈올포원〉 프로그램 고정 패널, 국방FM 〈조갑경의 오늘도 좋은날〉 라디오 DJ, 서일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 외래교수

 

* 《쿨투라》 2021년 6월호(통권 8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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