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미학적 기반과 정밀한 귀납적 고찰을 경유하여 한국 현대시사의 계보를 재구성한 비평적 결실: 오형엽 비평집 『알레고리와 숭고』
[북리뷰] 미학적 기반과 정밀한 귀납적 고찰을 경유하여 한국 현대시사의 계보를 재구성한 비평적 결실: 오형엽 비평집 『알레고리와 숭고』
  • 손희(에디터)
  • 승인 2021.05.0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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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오형엽(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의 새 비평집 『알레고리와 숭고』(문학과지성사, 2021)가 출간되었다. 1994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과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한 그는 꾸준히 비평집과 문학연구서를 펴내며 자신의 비평적 방법론의 궤적을 기록해왔다. 텍스트의 ‘문체’를 정밀히 읽고 분석하여 시의 ‘신체’에 도달하려 했던 『신체와 문체』에서 시작되어, 시간의 흔적인 ‘주름’을 통해 ‘기억’을 소환하였던 『주름과 기억』을 거쳐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시에 나타나는 새로운 징후로서의 ‘환상’을 중층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실재’를 파악해내고자 했던 『환상과 실재』에 이르기까지, 오형엽은 변화하는 시대와 시적 흐름에 발맞추어 유연하면서도 깊이 있는 접목과 변주를 지속해냈다. 9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비평집에서 저자는 ‘알레고리’와 ‘숭고’라는 축을 통해 한국 현대시사의 계보를 재구성하며 시적 경향성을 미시적인 동시에 거시적으로 진단하고 평가한다.

  지난 10년간 한국 문학은 문단 내외의 문제적 사건들을 겪으면서 새롭고 다양한 논제가 중첩되는 경향으로 진행되어왔다. 오형엽은 ‘문학의 위기’가 ‘비평의 위기’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자기반성을 거쳐 악화된 비평의 양상을 원점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오형엽의 비평적 논제는 2000년대후반 이후 한국 문학의 중심 논제인 ‘윤리’ ‘정치’ 및 ‘젠더’와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알레고리’ ‘숭고’ ‘멜랑 콜리’ ‘주이상스’라는 네 가지 개념을 상호 침투하듯 결부시키며 복합적이고 심층적으로 시(詩)에 접근하고자 한다.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호 연쇄적인 원환 고리인 ‘보로메오 매듭’의 형태를 닮은 방식으로 이 비평집은 작품의 내부와 외부를 입체적으로 조명해내며 최근 한국 현대시의 시적 경향을 파악하고, 거슬러 올라가 1960년대에서 1990년대의 시를 분석 및 해석해 현대시사 계보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이 비평집은 ‘알레고리allegory’ ‘멜랑콜리melancholy’ ‘숭고sublime’ ‘주이상스jouissance’ 개념을 중심으로 200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를 양식적·정신적, 감응(affect)적, 미학적, 충동적인 문제틀(problematic)로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최근의 시적 경향을 미시적인 동시에 거시적으로 진단하고 평가하려는 의도로 쓰인 이론적 시론(試論)이다. ‘알레고리’가 문학의 양식적·정신적 범주에 속한다면, ‘숭고’는 문학의 미학적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결부시켜 문제틀로 구성한 개념인 ‘멜랑콜리’가 주체의 감응적 범주에 해당한다면, ‘주이상스’는 주체의 충동적 범주에 해당한다고 볼 수있다. 따라서 이 비평집은 ‘알레고리’ ‘멜랑콜리’ ‘숭고’ ‘주이상스’ 개념을 중심으로 200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를 양식적·정신적, 감응적, 미학적, 충동적인 문제틀로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최근의 시적 경향을 미시적인 동시에 거시적으로 진단하고 평가하려는 의도로 구성되었다. 이 의도는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틀을 196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활용하여 현대시사의 계보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와도 연결되어 있다.

  제1부 〈한국 현대시를 읽는 한 방법〉은 전체 비평집의 기획에 대해 설명하는 이론적 시론(試論)으로 시작된다. 오형엽은 200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안내한다. 비평집의 주축이 되는 ‘알레고리’ ‘멜랑콜리’ ‘숭고’ ‘주이상스’ 개념에 대해 풍부한 이론적 정의를 공유하면서, 기존의 한국 현대시 탐구 방식인 문학사적 차원, 주제적 내용적 차원, 형식적 기법적 차원 등의 문제틀과 차별성을 지니는 융합적이며 통섭적인 방법을 지향할 것임을 명확하게 설명하고있다. 「아방가르드와 숭고의 시적 실천」에서는 유하, 함성호, 함민복/성기완, 서정학, 이원 등의 시를 계보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 문화적 전위 시와 그 이전의 연속성까지 일별한다. 「공포와 환상의 시적 계보」에서는 1930년대의 이상, 1990년대 박상순·이수명, 2000년대 김민정·이민하 등의 시에 나타나는 불안, 공포, 환상의 양상을 고찰한다.

  제2부 〈알레고리와 멜랑콜리〉에서의 알레고리는 현실에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순하고 전통적인 의미가 아니라, 수사학적 표현 방식을 넘어 역사의 현실적 차원을 우의적으로 표출하며 세계관 및 역사관까지 포함하는 정신적 개념, 즉 발터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창기의 시가 곤고한 삶의 현실을 아이러니하게 형상화하는 여러 기법(알레고리와 몽타주, 인유와 패러디 등)을 어떻게 상호 결합하여 불가해한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는지 살피고, 허수경의 시력을 네 시기로 나누어 어떤 연속성과 변모의 양상을 띠고 전개되는지 재검토하는 한편 시기별 미학적 특이성과 구조화 원리를 탐색한다. 또한 언어적 파격과 미학적 파문을 통해 시적 저항을 보여준 이연주의 시가 지니는 표면적, 심층적 알레고리의 층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의미 구조에 깊숙이 접근한다. 심보선 시의 중핵을 이루는 특이성을 포착해 그 관계망을 추적하면서 시사적 위상을 되새기고, 신용목의 시에서 메트로폴리탄의 표면을 관통해 실재를 파악하려는 시적기억술을 발견해낸다. 상처와 고통을 강박적이고 히스테릭한 자기 고백적 목소리를 통해 분출하는 김이듬의 시적 특성이 지속되고 변화하는 양상을 추적한다. 황성희 시에서 크고 작은 알레고리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발생시키는 긴장 역시 걸출하게 읽어낸다 .

  제3부 〈숭고와 주이상스〉에서 저자는 여러 시인의 시편을 시적 형식과 내용 양면으로 살펴보면서 주이상스를 통한 칸트 및 리오타르의 숭고와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의 친연성을 확인시킨다. 김명인시의 핵심적 미학으로 숭고의 시학을 제시하고, 김혜순의 시적 여정이 농축된 시집 『죽음의 자서전』에 담긴 ‘죽음의 존재론’을 고찰한다. 최승자 시의 전개과정을 전기, 후기로 나누어 연속성 및 차별성, 시기별 시적 특성과 개별적 시의 특성을 재조명한다. 김민정의 시를 대상으로 통시적이고 구조적인 고찰을 병행한 결과 시적 강도가 강화되고 밀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왔음을 발견한다. 시의 미학성과 윤리성의 융합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김안의 시와, 세계의 불완전성과 불행을 강렬한 부정 의식으로 증언하면서 아이러니의 미학이 빛을 발하는 정한아의 시를 면밀하게 주목한다.

  제4부 〈상징과 미〉는 각각 이건청, 성윤석, 이혜미의 시집과 김광규의 시선집을 다룬 작품론들, 그리고 최동호, 원구식, 최정례의 시인론들로 채워졌다. 반적인 시론에서도 시 세계 전체를 파악하고 미학적근원에 다가가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또한 그가 체계화하는 시인의 계보학이 성실하고 꾸준한 사유와 탐독을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4부의 비평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조건으로 인해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해진 인도어(indoor) 라이프 시대, 오형엽의 비평집을 통해 지금의 시인들을 새롭게 만나는(혹은 다시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 《쿨투라》 2021년 5월호(통권 8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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