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 신철규 시인 인터뷰
201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 신철규 시인 인터뷰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18.03.0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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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때 : 2018년 2월 12일 월 오후 5시 / 곳 : 서촌 시민행성 / 질문자 : 함돈균

 

신철규는 조용한 시인이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아이돌처럼 발랄하고 능동적으로 문학행사를 스스로 주관하고 독자와 활발히 소통창구를 열어놓는 것에 비한다 면, 그는 ‘전통적인’ 시인에 가깝다. 말이 별로 없고 차분하며 잡다한 것에 취미를 갖고 있지도 않은 듯하다. 그의 말에 따른 다면 집 바깥으로도 자주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를 ‘전통적인’ 시인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가두어 놓을 수도 없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자연예찬론자나 풍류가객이 아니다. 조용하지만 뜨겁고 끈덕진 열정이 느껴진다. 무엇에 대한 열정인가. 첫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서 잘 나타나듯 그는 지난 수년 간 한국의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문단의 작가들을 크게 고통스럽게 했던, 그래서 문학적 이슈의 중심이 되었던 시대의 정치사회적 불모성에 일관성을 가지고 귀 기울여 왔다.
그의 첫 시집의 열정은 그래서 시대의 우울증으로서 ‘슬픔’이었고, 그것은 고통 받는 타자에 대한 문학적 ‘환대’이자 연대의 몸짓이었 다. 공교롭게도 이 몸짓은 2011년 등단한 이래 그의 활동기가 한국 사회가 민주화 시대 이후 겪었던 가장 참혹한 정치사회적 암흑기였 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첫 시집을 낸 시인의 시가 ‘올해의 좋은 시’로 선정된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 「심장보다 높이」 역시 공포와 외로움과 슬픔의 문제를 타자를 향한 깊은 공감과 연대의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역설적으로 시인은 상처를 통해 단련되고 상처를 통해 자기 시를 완성해나간다는 고전적 명제를 확인하게 한다. 시인에게는 개인의 상처와 타자의 상처, 시대의 고통이 구분되지 않는다. 겨울의 죽음을 넘어선 봄 생명 기운이 문턱을 두드리는 즈음에 시인 신철규를 만나 단도직입적인 질문으로 조용한 대화를 나눠봤다.

 

1. 시인의 내력이 궁금하다. 문청이었는가.

전형적인 시골 촌놈이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한번 고정된 생활 패턴에서 잘 변화시키지 않는다. 대학교 시절에는 학교, 하숙집, 술집 외에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군대에서 전역 후 연애를 하기 전까지 시내를 나가 본것이 2번밖에 안 된다. 학교 주변을 맴도는 생활을 했다. 책을 빌려서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헌책 사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학교 앞 ‘동방서적’이라는 서점에 가서 어떤 책이 있는지 유심히 들여다보기를 좋아했다. 가끔 2000~3000원짜리 시집이나 4000~5000원짜리 평론집 등 초판 희귀본이 있을 때 희열을 느끼며 사기도 했다. 심지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것도 전역 후가 처음이었다. 그때 도서관 대출계 보조 업무를 하고 있던 학생이 “책을 처음 빌리셨네요?” 하면서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 보았었다.
문청의 정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것에 크게 관심이 없이 문학 관련 서적들만을 읽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는 문청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학부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 는데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전역 후 본격적으로 문학 동아리 생활을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시를 까다롭게 혹평하기도 했다. 내 자신 시를 잘 쓰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서는 평가 기준이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었다. 이성복, 최승자, 기형도 등등의 시만큼 되지 않는다면 시를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시에 순교한다거나 피로 쓴다거나 하는 말들을 싫어 했다. 시를 숭배하는 사람들 치고 실제 작품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술자리나 사석에서 문학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2.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는가. 경상도 사람인데 그 지역이 역사적으로 보면 ‘패권적인’ 지역인 것만은 사실이다. 반면 신시인의 시는 패권주의에 정서적으로 도전하는 시다. 자란 지역의 환경이 시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해 달라. 
 

중학교 시절은 내 인생의 황금기 중의 하나다. 걱정 없이 학교만 다니던 시절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면소재지에 학교가 있었다. 여러 골짜기에 흩어져 있던 친구들이 모였고 다들 착했다. 남자 14명, 여자 21명이 한 반이었고 그것이 학년 전체였다. 수업 때 차분히 앉아 있는 학생이지는 않았고 선생님 말씀에 끼어들거나 짝지와 장난을 치다가 혼이 많이 났다. 수업 시간에 너무 시끄러워서 화가 나신 선생님께서 교실 뒤에 벽을 보고 서있는 벌을 받기도 했다. 만화책을 좋아했고(특히 『슬램덩크』) 다른 책에는 취미가 없었다. 여자애들이 소설책 같은 것을 읽고 있으면좀 한심하게 바라보는 편이었다. ‘저게 무슨 재미가 있는 거지?’라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이와 달리 암흑기였다. 중학교 때의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전교생이 1000명에 육박하는 남자 고등 학교의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 때문에 위축되어 있었고 스스 로에 대한 불만과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도 깊어졌다. 교실에는 남자애들의 혈기와 공격성이 꿈틀대고 있었고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선생님들도 폭력적이었다. 돌이켜보면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와 <바람>에서 나오는 교실 분위기가 혼재해 있었다. 나는 교실 뒤편 에서 학교 수업을 팽개친 친구들과 교실 앞쪽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는 모범생(?) 사이의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다. 입시 교육을 혐오 하면서도 잘 적응하는 편이었다. 읍내에서 자취 생활을 했었는데 주말마다 시골집에 올라와 동네 형들과 폐교된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여름에는 장작불 곁에서 동이 틀때까지 졸다가 패잔병처럼 동네로 걸어가는 날도 있었다. 겨울에는 추워서 고스톱, 땡잡기, 포커, 훌라 등 도박에 빠져 살았다. 내가 자랄 때까지만 해도, 시골에는 아이들이 놀 것이 없었기에 어른 들이 하는 것을 이른 나이에 배웠다.
아시다시피 경상도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성격이 강한 지방이다. ‘거창’이라는 조그만 소도시는 자기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 보수 여당의 뿌리가 확고했으며 지지율도 상당히 높았다. 교육열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높았던 반면에 그것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사고로 발전되기보다는 사회적·경제적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끼리 잘 살자’ 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온정주의와 집단주의가 팽배해 있었고 흔히 말하는 ‘삐딱한’ 태도를 싫어했다. 나는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 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그것이 강화된 것은 1970~1980년대 소설을 읽으면서 비판적 시선과 역사적 의식을 조금씩 함양할 수 있었다. 이청준, 황석영, 조세희, 이문구, 전상 국, 윤흥길 등의 소설을 좋아했고 철 지난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 시리즈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소설을 통해 지적 유희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집단과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측면에서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3. 자기 문학의 ‘스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는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가장 좋아하는 국내외 작가는 누구이며 이유는 무엇인가.
 

내 시와 글쓰기의 지표가 될 만한 작가들은 많아서 한 사람을 꼽기는 힘들다. 우선 모교의 은사들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최동호 선생님으로부터는 『문심조룡』 등을 통한 동양 시학의 의미를 배우 면서 거시적 관점에서 문학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뜰 수 있었고, 김인환 선생님으로부터는 한 편의 작품을 엄밀하게 뜯어읽는 일의 소중함을, 그리고 그 작품을 이루는 구조적 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황현산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시인의 창조적 정신과 현실이 어디에서 만나는지, 작품의 내부와 외부가 어떻게 상호 교통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시를 쓰면서 가장 압력을 느끼는 대상은 김수영과 이성복이다. 한 편의 시를 써나가면 서, 그리고 어느 정도 완성한 뒤 퇴고를 하면서 그들이 시와 시론 에서 추구한 어떤 시적 상태에 내 시가 얼마나 근접했는지 스스로 되묻곤 한다. 습작생들이 이성복의 초기시에 탐닉하는 경우가 많은데(나 또한 그랬다), 강의할 때 그의 시 세계의 변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기를 권하곤 한다. 그 내적 필연성을 발견하면 시에 대한 자신만의 시론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 등단 전후에 『아, 입이 없는 것들』을 수차례 꼼꼼히 읽었다.
여러 번 읽은 소설이 더러 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2~3년에 한 번씩 읽고 영미 작가들의 단편은 시가잘 쓰이지 않을 때 뒤적거린다. 레이먼드 카버의 사건에 대한 서술이 중심이 된 건조하면서도 단문으로 된 문체를 좋아한다. 체호프는 1886년에 쓴 편지에서 ‘초단편(미니멀 픽션)’의 형식 요건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첫째, 정치-경제-사회적 요소를 언어로 토로하지 말 것. 둘째, 철저히 객관적일 것. 셋째, 인물과 사물에 대한 묘사를 진실하게 할 것. 넷째, 철저히 간결할 것. 다섯째, 따뜻한 마음을 지닐 것. 이는 시를 쓰는 데도 중요한 지침이 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두번 읽었는데 알레고리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외국 시집으로 제일 많이 본 시집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이다. 문예 비평가로는 발터 벤야민과 테오도르 W. 아도르노를 좋아 한다.
 

4. 아내가 소설가다. 시인과 소설가가 한집안에서 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시인은 이 질문의 대답은 웃으면서 회피했다. 아내도 싫어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물론 ‘수준 없는’ 질문이다.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그러나 두 장르 간 성향이 많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대답은 듣지 못했으나 여전히 궁금함은 남는다.
 

 

5. ‘지구만큼 슬픈’ 제목의 시집을 냈다. 그 내용도 그렇다. 이 시들 전반을 꿰뚫는 ‘슬픔’의 정서가 분명한데, 이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슬픔이 어디에서 오는지 오래 생각해본 적이 있다. 슬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지속적인 슬픔이고 다른 하나는 순간적으로 외부에서 습격해 들어오는 슬픔이다. 지속적인 슬픔은 우리가 유한한 몸과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한계 조건에 의해 필연 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 상태라면, 순간적인 슬픔은 우리가 그러한 한계 조건을 잊고 지내다가 그것을 새롭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모든 애정을 쏟아 부은 상대방에게서 모진 말을 들었을 때, 혹은 반대로 우리가 그런 모진 말을 상대방에게 했을 때, 믿었던 타인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이 세계의 벽과 마주했을 때 등등 우리는 나와 세계의 어긋 남에 직면했을 때 슬픔을 느낀다. 이 슬픔은 주로 내가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는 막막한 무력감을 동반하는데 그것은 주체의 왜소화와 세계의 거대화로 인한 격차를 더욱 실감하면서 우리는 슬픔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진다. 그러한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우리를 더욱 가라앉게 하는 것은 그 슬픔을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나’와 ‘세계’의 불일치 때문에 느끼는 소외감과 고립감에 의해 내면으로 더욱 깊이 침잠하고 타인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자책하면서 괴로워한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슬픔을 느끼는 상태는 슬퍼야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슬픔을 표출 하지 못할 때인지도 모른다.슬픔은 위험하고 독성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나 살아가야 할 이유를 희미하게 하며,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불연속과 불균형을 초래한다. 하지만 슬픔은 병적인 현상이 아니기에 그것을 치료하거나 고칠 수는 없다. 대개 슬픔의 상황은 어떤 현실적인 불가능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친족이나 가까웠던 타인의 죽음을 우리는 돌이킬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슬픔을 특권화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내 슬픔을 알아?’라든지 ‘너는 나만큼 슬프지 않아!’라는 식의 특권화는 어떤 대화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타인의 정서, 그중에서도 특히 근원적인 고통, 상실과 관련된 ‘슬픔’에 대해 서는 그 깊이나 정도를 단언할 수 없다. 측량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힘든 슬픔에 대해서 어떻게든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고 싶었다.
 

6.1 2011년 등단하고 2017년에 시집이 나왔다. 시집 출간이 요즘치 고는 좀 늦었다. 무슨 곡절 같은 것이 있었는가.

우선 내 자신의 게으름 때문이었다. 등단하고 초반에 시를 열심히 썼는데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내가 쓰고 싶은 시인가, 너무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회의가 있었다. 평단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시를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자문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가 2013년 말~2014 년 초에 썼던 시들에서 시의 형식과 발화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호 사건에서 지대한 영향을 입었다. 2014~2015년에 시집에 들어갈 중요한 시들의 대부분을 썼다.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시집을 늦게 냄으로써 득을 본 편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출판사의 사정이었다. 2015년 말에 원고가 정식으로 입고되었고 2016년 봄에 1차 편집본을 받았다. 그 후에도 두어 번의 편집을 거쳤는데 결국 시집 출간 두어 달 전에 다 뒤집어엎고 순서와 부 나누기 등을 새로 했다. 무엇보다 시집의 뒤에 들어가는 평론을 기다리는 데 애를 먹었다. 원고가 너무 늦게 들어와 속상하기도 했는데 막상 평론을 받고 나서는 혼자 정독을 하면서 무한한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도 읽을 수 있었지만 굳이 출력을 해서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천천히 읽었다. 단숨에, 침을 삼키 면서,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면서 읽었다. 읽는 중간마다 숨이 막혀 심호흡을 할 때도 있었다. 이게 나였구나, 이게 내 시였구나,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구나, 탄복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형철 평론가께서 제 등단 소감까지 뒤적여가면서 읽어낸 내 삶과 살아감의 궤적을 ‘천사의 눈’이라고 명명했을 때 그것이 과분한 만큼 그것이 내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욕망 또한 꿈틀거렸다. 시보다 좋은 평론을 받아서 한없이 기뻤고 그에 걸맞은 시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커졌다.
시집이 나오고 나서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제목을 누가, 어떻게 지었냐는 것이었다. 제목은 전적으로 편집자이신 김민정 시인께서 지어주신 것이다. 제목 덕분에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제목과 시집이 잘 어울린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 김민정 시인의 안목에 탄복할 수밖에 없고 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제목을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다. ‘슬프다’라는 형용사가 시집의 전반적인 정서를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지구만 큼’이라는 비교급 부사 구문이 그것을 과장하는 것으로 읽히지는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제목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웃음)

6.2 본격적인 활동 기간이 이명박 정부 후기부터 박근혜 정부 시기 끝까지 걸쳐 있다. 시집 내용도 이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암시하는 것들이 많다. 이 시기 시인으로서 글을 쓴다는 것의 자의식에 대해 설명해 달라. 사실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이 시기 비슷한 자의식에 갇히게 된 것을 보기도 하지만. 블랙리스트에 들어가 있기도 했는데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알려달라.
 

지난 십년간의 포스트파시즘적 체제에서 ‘고통의 무감각’ 때문에 괴로워했다. 사회는 끊임없이 불안을 조장하면서 시민과 약자들의 호소에 눈과 귀를 닫아버렸다. 행복에 대한 전망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저는 우리가 어떤 거대한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 같은 환상에 시달렸다. 수용소에서의 삶은 완벽한 불확실성과 우연성에 좌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날은 칠흑같이 불투명하고, 죽고 사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인간을 더 이상 사고하고 감각하는 생명체가 아니게 만들어버렸다. 말 그대로 ‘발가벗겨진’ 상태로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서만 사는 동물로 타락시키는 것이었 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호도하는 위선적인 인간들에게 우리에게는 여전히 ‘슬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인이 광장에 나오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시의 소재나 대상은 바깥의 현실에 있지만 시를 쓸 때는 자기만의 방에서 언어와 싸우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언어가 타락했을 때 그 언어를 타락하게 만든 검은 힘에 맞서 싸우는 것을 포기해 서는 안 될 것이다. 전 정권이 만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단순히 체제에 비판적인 논조를 취하거나 정부의 시책에 이의를 제기한 단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기준으로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었다. 따뜻하거나 밝은 정서와 분위기에 집중해서 시를 쓰는 시인도 있고, 차갑고 어두운 시선과 지적인 언어로 시를 쓰는 시인도 있었다. 이렇게 다채로운 시들을 불온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불온함을 향한 폭력들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시대의 전위에 서는 것이고,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것이며, 다른 세계를 향해 모험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수영 시인은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 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나는 시가 세계의 가장 어두운 곳에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이 세계를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따뜻한 밝음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다채로운 시들에 검은 페인트를 쏟아 부은 세력들을 향해 진실이 무엇이 보여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일 것이다.
나는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타인을 억압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먼저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가들이 이 세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기생적 존재가 아니라 이 세계가 덜 망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또한 가지고 있다. 나는 블랙리스트가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그리고 그것을 가능 하게 했던 파시즘적 사고방식이 발붙일 수 없는 세상을 꿈꾼다.
 

7.1 <손석희의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눈물의 중력」에서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는 구절을 인용했 다. ‘눈물’은 본인의 시에서 어떤 의미인가.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데 상당히 인색한 편이다. 그래서 눈물도잘 흘리지 않고 아무리 슬퍼도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 때가 많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얼마나 슬프기에 저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면 저 눈물이야말로 슬픔의 가장 객관적인 징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내가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이라고 마음먹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물은 주체가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해 터져 나오는 육체의 떨림이었고 이 세계의 양심 전체에 호소하는 심장에서 길어 올린 몸부림 같은 것이 다. 그것은 절망으로 인한 허물어짐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인간이 라는 것을 증명하고 견뎌내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7.2 작가의 시가 화제의 뉴스프로그램에 인용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자신의 시가 이렇게 유명한 방송의 앵커에게 인용되는 기분은 어떤 것인가. 방송에서 소개된 후와 이전의 삶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것이 방송된 시기가 <뉴스룸>에서 ‘최 순실 태블릿 PC’를 입수해 그 내용을 공개하면서 촛불 시위가 가장 뜨거웠을 때였다. <뉴스룸>의 시청률이 10% 안팎을 넘나들 때였 다. 탄핵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 상황이었는데도 전 대통령은 현실 감각이 없는 언행을 보였다. 시민의 공분과 슬픔이 극도에 달한 시점에 그녀의 언행을 문제 삼으면서 그 구절이 인용되었다. 생방송 으로 보지는 않았다. 담당 작가에게 동의 전화가 왔었지만 방송의 생리가 예정대로 흘러가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 시집도 없었고 그 시가 발표될 당시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에도 그랬다. 실제로 알릴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방송이 안 될 가능성이 크기에 농담처럼 몇 사람에게만 알렸다. 다들 장난치지 말라, 는 반응이었고 농담쯤으로 인식했다. 실제로 방송에서 시 구절이 나오자 나보다는 친구들이 깜짝 놀랐다. 나는 원고 마감이 있어서 커피숍에 있었고 지인들이 캡쳐한 사진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 정도까지의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축하해줬다. 그리고 그 구문의 힘을 느끼고 나에게 감사를 표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했고 또한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빠진 상태로 이 세계를 버텨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실제로 방송을 보니 작가가 구성과 대본을 참 잘썼고 그것을 손석희 아나운서가 예의 그 명석하고 분명한 어조로 잘 읽어주었다. 그 힘이 더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도 내 이름은 모르지만 그 구절과 방송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매스컴의 위력을 절감하게 된다.
 

8. ‘눈물’을 강조하다가 보니 오히려 ‘웃음’과 ‘유머’에 대해 질문해 지고 싶어진다. 마크 트웨인은 평생 유머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천국은 유머가 없는 곳’일 거라는 말도 했다. 작가로서 웃음과 유머가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지.
 

나는 사석에서는 사람들을 웃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심각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어색한 분위기를 싫어한다. 내가 끼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는 잘 가지 않고 자주 보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다.
친한 사람들에게 짓궂은 농담도 잘하고 놀리는 말도 많이 한다. 진지하게 칭찬하거나 심각한 주제나 서로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다. 진심은 잘 통하지 않는다는 회의가 여기에는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시를 쓸 때의 ‘나’는 그것과 달리 진지하고 우울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고통이나 슬픔의 극단적인 상태를 가정하고 시적 대상에 접근하는 편이 다. 일종의 순환 논법일 수 있지만 그러한 주체의 상태에 맞는 시적 대상이 우선 눈에 들어오고 그것들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제 시들은 좀 무겁고 암울한 느낌을 유발하는 것 같은데 제가 이런 시만을 쓰려고 의도적으로 그것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웃음’과 ‘유머’가 있는 시를 좋아한다. 김영승과 윤제림의 시들을 좋아하는데 그들은 건조하고 퉁명스러운 문체로 능청스럽게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김영승은 다소 현학적인 면이 있고 윤제림은 쉽고 평이한 문체를 쓰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에는 심보선 시인이 블랙코미디적인 유머를 구사하는 것 같다. ‘유머’ 를 잘 쓰는 시인들이 부럽다. 나는 시를 쓸 때 상당히 경직되는 편이다. ‘유머’는 스스로 내려놓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내려놓음 또는 벌거벗음은 가식적이고 세속적인 일상 속의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킴으로써, 그리고 시 쓰는 것에 대한 신비화를 걷어냄으로써 획득된다고 생각한다. 강인한 정신을 가진 자만이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 김수영의 시도 크게 보면 유머로 읽을 수 있다.
물론, 그 희화화가 관습화되거나 큰 변화 없이 반복적으로 사용될때 일종의 타성에 젖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약하기 때문에 내 자신이 들키는 것이 두렵다.
 

9. 비평가로서 개인적으로 <No surprises>를 좋아한다. 비평가로서 내가 평론을 쓸 때 가끔 쓰는 나만의 독특한 비평 용어가 ‘하느님’ ‘기도’ 같은 말인데, ‘우리의 기도는 바늘처럼 날카롭다/온몸이 바늘로 뒤덮힌 하느님’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신시인에게 ‘기도’ ‘하느님’ 은 무엇인가.
 

나는 기독교적인 개념의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어릴 적이웃 동네에 개척 교회가 있었는데 전도사에게 반강제로 끌려가 본적이 있다. 사람들이 무릎 꿇고 누군가를 향해 기도하는 것을 참을수 없어서 중간에 도망쳐 나왔다. 그 이후 전도사만 보면 피해 다녔 다. 나는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은 편이라 눈에 보이지 않거나 감각할 수 없는 것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재앙이 닥쳤을 때 간절해지는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한 생각마저 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하는 행동이 너무 무기력하고 보잘것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신을 믿지는 않지만 지금 이처럼 불행한 세계에 신마저도 없다면 인간이 더 불행하고 고독한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의미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신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며 ‘우리 의’ 신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신을 양심과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No surprises」는 내게 의미 있는 작품이다. 앞서 말한 대로 제시가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등단하고 나서 1~2년 동안에 발표했던 시들은 대개 내가 쓸 수 있는 주제와 이야 기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면, 그 시에서는 내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주제를 제 나름의 형식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2013년 말 대선 에서 진보 진영이 패하고 나서 한동안 지독한 패배감에 휩싸였었 다. 그때 라디오헤드의 저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삶을 포기하기 직전의 우울과 이상한 환희가 교차하는 노래로 들었다. 그것은 보컬인 톰 요크의 목소리, 툭툭 내뱉는 듯한 읊조림이 항의를 담은 절규로 바뀌었다가 다시 천천히 침잠하는 노래의 구성에서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시가 직접 적으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는 없더라도, ‘수용소가 되어버린 천국은 과연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세계는 언제부터, 그리고 무엇 때문에 피의 정원이 되었는가?’ ‘테러리스트가 믿는 신과 피해자들이 믿는 신은 과연 동일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순간 세계의 더 크고 낮은 슬픔에 참여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10. 삶의 풍경에 대한 관찰이 유난히 눈에 띈다. 그렇다고 사물 탐구형 모더니티를 보여주는 계열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자기 내면을 그대로 말로 직조하는 서정시와 풍경의 관찰자 그 사이에서 신철규의 슬픈 서정이 올라오는 것 같다. 자신만이 지향하는 ‘작법’ 같은 것이 존재하는가.
 

작법이라고 할 것은 딱히 없다. 만약 있다면 최대한 게으르고 천천히 쓰는 것. 그런데 그것은 제가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라기 보다는 제 성향상 어쩔 수 없는 선택 같은 것이다. 하루에 한 줄 정도를 메모하는데 그것을 모아서 시 한 편이 되는 데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문장과 문장이 만나면서 다른 문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즐기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어떤 문장을 쓸 때의 감정이 많이 희석되어서 나중에 정리할 때는 왜 이런 문장을 썼지 하면서 많이 지우기도 한다. 잡지에 보낼 원고의 마감을 지킨 적이 거의 없는 것은 어떤 문장이 최대한의 힘과 무게를 지니게 될 때까지 시적 상황을 마지막까지 상상하는 데 골몰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처음에는 미숙했던 시들도 어느 정도 ‘시다운 시’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것은 거의 요행을 바라는 도박과 같아서 실패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결국 펑크를 내는 일도 허다하다.
풍경을 이야기하든 내면을 이야기하든 정확한 문장으로 기술하 려고 노력한다. 한눈에 봐도 좋은 문장이라는 느낌이 안 들면 아무리 여러 번 읽든 여러 독법으로 읽든 그 안에 든 의미는 모호한 채로 남게 된다. 명확한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술이나 이미지가 시의 전체적 상황과 교호하면서 풍성하게 읽힐 수 있기를 희망한다. 좋은 문장은 내면이나 풍경에 대한 관조적 거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릴케는 그것을 ‘천사의 시선’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거기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지향한다.
 

11. 소수자의 장르, 무용한 장르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집이 젊은 층에게도 어필하고 거기에 신철규 시인도 첫 시집을 낸 시인 중에서 높은 인지도를 발휘하고 있다. 이런 시의 대중적 유통, ‘소비’ 현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또 첫 시집으로 동료 작가들이 뽑은 올해의 좋은 시집에도 선정되었는데, 본인의 시들이 왜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최근의 시의 소비 패턴이 한 권의 시집이나 한 편의 시에서 하나의 문장으로 옮아간 것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있는 것 같다. 우선, 부정적인 면은 시의 전체적인 메시지나 어조와 상관없이 개개의 문장을 낭만적이거나 감상적인 차원으로 한정해서 소비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에 독자들은 상황에 걸맞은 사진과 문장을 사랑, 이별, 아름다움, 일상의 상처 등의 주제로 갈무리하고 편집해서 서로 공유한다. 시의 전체적인 문맥과는 상관없이 문장을 소비하는 형태인데, 독자의 자율적 판단과 감수성을 창작자가 관리하거나 제어한다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억압으로 작용할 것이고 독자들이 이를 수용할 리도 만무하다. 긍정적인 면은 어떤시 구절이 한 편의 시나 한 권의 시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나 출판사의 입장에서 중요한 홍보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감상적인 문구만을 내세워서 시집의 전체 적인 톤을 왜곡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것이 독자의 눈과 마음을 움직여서 시로 끌어들이는 방편으로 삼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시인들이 이러한 대중의 눈과 시선에 들기 위해 자신이 추구 했던 세계에 대한 맞섬 또는 세계와의 불화를 의도적으로 누그러뜨 리거나 다듬지 않는 것일 것이다.
나는 언론과 SNS의 득을 많이 본 편에 속한다. 좋게 말하면 대중 성과 예술성의 균형일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 둘 사이의 어정쩡한 자리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주 난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 읽고 소비되는 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좀 더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지 못한 것에 대한 스스로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나의 자리를 바꾸고 싶지는 않다. 시집이 나오기 전부터 회자된 「눈물의 중력」, 그리고 시집의 맨 처음에 실린 「소행성」이라는 시가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동료 작가들이 많은 지지를 해준 것에 대해서는 기쁘고 또 부끄럽다. 아마도 첫 시집이라 너그럽게 봐주신 것 같고 애정을 보내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이 발표되 었던 상태는 지금 보면 못 봐줄 정도로 투박하고 엉성한 면이 많다.
동료 작가들의 예리한 시선에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내 자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끊임없이 퇴고한 끝에 그나마 봐줄 만한 ‘꼴’이 된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내 생각의 미숙함과 내 능력의 일천함이 들킬까봐 두렵다.

12. 문학공부를 하는 연구자이기도 한데,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논문 주제는 무엇이며, 왜 그것에 관심을 갖는가.

- 연구자로서의 고민도 많은 시인은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생각 중이라고 한다.

13. 카카오톡 소개 문구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라는 문장을 쓰고 있다. 무슨 뜻인지도 궁금하다.

이것은 하루키의 장편소설 제목이다. 그의 수많은 소설책들 중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데, 내 생각에는 이 작품이 하루 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와 이야기 구성 방식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평온한 일상에 느닷없이 쳐들어오는 어떤 일탈에 대한 욕망, 그리고 그것은 대개 유년 시절에 겪었던 타인과의 희열에 가까운 교감(육체적인 것을 포함해서)의 상태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퇴행적 심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타자는 대개 ‘불구’(심리적이건 육체적이건)로 나오는데 그것마저도 신비로운 상태로 그려진다. 특히, 이 소설에 나오는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인간이 통어할 수 없는 죽음 충동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루 종일 드넓은 평원에서 일해야 하는 시베리아의 농부들이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다가 갑자기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 선을 향해 서쪽으로 한없이 걸어가다가 지쳐서 쓰러져 죽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실재하는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에서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연인이 말려도 듣지 않고 무작정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정신이 통어할 수 없는 무의식의 심연이 거기에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제목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끝, 인간이 상상할수 있는 한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태양의 서쪽’은 앞서 말한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에서 온 말이고 ‘국경의 남쪽’은 멕시코와의 국경이 있는 미국의 남쪽을 가리킨다. 하루키의 미국에 대한 선망이 제목에도 잘 드러난다.

14. 시인으로서, 또 그 외에도 어떤 계획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

시는 안 써도 불행하고 써도 불행한 ‘이중 구속’ 같은 것이다.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하지만 막상 쓸 때는 잘 안 되어서 힘들고, 시를 쓰고 나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니 또 좌절하게 되는. 한 편의 시를 시작할 때마다 이정표도 없는 벌판이나 부표도 없는 바다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끝을 가늠할 수도 없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 지도 모르고 난 두 손을 늘어뜨리고 막연히 앞만 쳐다볼 뿐이다.
요즘은 좀 더 편안하면서도 가벼운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의미를 크게 두지 않은 단순한 말들로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는 시를 쓰고 싶다. 그리고 ‘불투명한 영원’, ‘슬픔의 바깥’이 라는 큰 제목을 가진 연작시를 좀 써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다.
두어 편 발표를 했는데 엉성한 상태로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제와 형식 면에서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그리고 박사논문을 써야 한다. 너무 미루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지만 올해 안에는 끝내고 싶다. 제출 기한이 코앞에 다가왔다. 주위의 걱정과 잔소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서 벗어나야만 좀 홀가분해질 것 같다. 겨울부터는 원고 청탁도 정중 하게 거절하고 있다. 김종삼에 관한 작가론을 준비하고 있는 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시인들에게 사랑받는 시인을 주제로 하려니 부담이 많이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다.
신철규는 겸손한 시인이다. 언론을 통해 노출된 자기 시에 대해, 시인의 존재에 대해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사색을 더해 가면서 시간 속에서 조용히 나타나야 하는 존재가, 갑자기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에 의해 관객들에게 전면적으로 노출된 상황에 대한 당혹스러움. 그러나 그는 사실 저 자신이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나타나는 ‘스타’ 의식을 지닌 시인이 아니라 고통 받는 현장에 자연스럽게 몸이 기우는 연대와 공감의 시인이다. 그의 슬픔은 제 자신의 고독이 아니라 타자와 연동되는 공동감정이다. 그래서 그는 더 진지해지고 더 몰두하게 되고 더 과묵해지는 모습의 시인이 되고 있다. 그래야만 ‘슬픔’을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한계까지 밀어붙여 철학과 미학의 탄생으로, 탐구로 이어갈 수 있기 때문 이다. 인터뷰 말미에 꺼낸 김종삼에 대한 시인의 관심은 그래서 매우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김종삼과 신시인의 시가 꽤 닮은 질감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시가 “누 군가가 구겨버린 꿈”(「심장보다 높이」)에 더 깊이 천착하고 더 깊이 스며들어 “내용 없는 아름다움”(김종삼, 「북치는 소년」)으로 승화되 기를 바란다. 곧 봄이다. 그러나 시는 이미 ‘겁에 질린 아이가 걷는 어둠의 복도’(「심장보다 높이」)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봄을 기다 리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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