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라이프 02] 내 마음의 집은 어디인가
[MZ 라이프 02] 내 마음의 집은 어디인가
  • 함은세(본지 객원 기자)
  • 승인 2021.05.05 0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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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나의 집?

  2020년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삶의 방식이 전 지구적으로 도래한 전무후무한 시기였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에 의해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 변모했고, 이전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허점이나 각계각층의 다양한 문제점 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사람 간의 만남과 이동이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진 시대에 ‘일단 발목이 잡히는’ 경험은 시민들의 괴로움과 답답함을 일으켰다. 인천공항은 바로 전년도에 역대 최대 이용자 수를 달성한 게 무색할 만큼 고요해졌으며(당장 나만 해도 지난해 6월에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눈물을 찔끔 흘리며 취소했다) 스포츠 경기장이나 콘서트장 등도 하염없이 방문객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학교가 더 익숙할 정도로 암흑 같은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타의적이고 낯선 생활은 단순한 절망의 심볼이 아닌 새로운 감각과 본능을 일깨우는 계기로도 자리 잡았는데, 특히 ‘집’, 더 나아가서 ‘고독’에 관한 인식의 변화가 그러했다. 이전에는 만사가 귀찮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탓에 본인의 거주지를 벗어나지 않는 내향적인 사람을 ‘집순이’ 또는 ‘집돌이’로 보는 인식이 강했던 반면, 이제는 집을 온전히 본인 자신에게 집중하며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확연히 늘어났다. 그리고 그 전환의 필두에는 “이불 밖은 위험해!”를 외치는 우리들, MZ 세대가 있다.

  무용성의 중요성

  그런 물결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가 ‘오늘의 집’과 ‘넷플릭스’의 흥행이다. 우선 ‘오늘의 집’은 유저들로 하여금 다양한 인테리어 사례나 사진들을 함께 공유하는 경험을 촉발시킴과 동시에, 앱 내에서 가구나 집, 또는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정보와 상품 등을 제공한다. 재미있게도 ‘오늘의 집’을 이용하는 유저의 대부분은 MZ 세대로, 이는 곧 사용자들의 비율 중 상당수가 ‘자가(自家)’를 소유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들이라는 뜻이다. 즉, 이들은 결국 언젠가는 떠날 공간에서 기약 없이 일시적으로 거주함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만족스러운 주거 환경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MZ 세대는 그 금액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코로나 이전에 비해 더 늘어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간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다른 세대에 비해 훨씬 입체적으로 실감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들에게 집은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보편적인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밖에서는 드러내지 못하는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다.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윗세대가 요구하는 일반적인 니즈(needs)에 본인을 구겨 넣던 이들이 해방감을 느끼는 유일한 탈출구가 다른 무엇도 아닌 ‘집’이 된 것은 비단 코로나 사태 때문으로만 보기는 어려우며, 그 어디에도 쉽사리 정착하거나 마음을 내어줄 수 없을 만큼 과도한 경쟁 시스템에 지쳐버린 MZ 세대가 정신적 안식처를 갈망하던 시점에 코로나가 맞물려 그 효과가 극대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하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집’의 마케팅은 무척 영리했다. 이제껏 많은 인테리어 브랜드나 플랫폼이 주거 자체에만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다르게, ‘오늘의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곳을 넘어 “사랑할 수 있는 아지트”로서의 집을 강조하며 개인의 색깔을 발현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망을 일깨웠다. 벙커형 2층 침대부터 벽에 다는 CD 플레이어와 커다란 드림캐쳐까지. 없어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고집스럽게 내 집 한구석을 차지하게 만들고 싶은 것들이 유통되는, ‘살고 싶은 집’, 더 나아가서 ‘살고 싶은 삶’의 실체화를 이야기하는 플랫폼인 ‘오늘의 집’의 행보에 MZ 세대가 반응한 것은, 꿈꿔왔던 모든 것들을 허상처럼 여기게 만드는 각박한 현실 앞에서 한 줄기 희망을 붙잡는 움직임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AKA. 얼마나 붙잡을 게 없으면 집이라도 꾸미겠어요….)

  ‘넷플릭스’의 성공 역시 맥락이 일치된다. ‘유용’과 ‘무용’을 완벽하게 구분하는 사회에서 MZ 세대는 언제나 4차 산업 혁명의 주체이자 글로벌 시대를 이끌 미래 인재라며 일종의 ‘세뇌에 가까운 대상화’가 되어왔다. 차후 국가를 지탱할 리더가 될 존재들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마땅한 대가나 권리는 돌려주지 않는 어른들의 방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도 그것에 반박하거나 저항할 의지나 기력이 없는 청년들이 태반이었다. 그때, 지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마저 나태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문화에 그저 수긍하며 살던 이들 앞에 코로나가 나타났다. 일상이 멈추고 세상 전체가 정지된 상황에서 학생들의 등교나 직장인들의 출근 등 생산적인 활동마저 강제로 중단되었다. 뜻하지 않게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는 도리어 MZ 세대가 이제껏 원해도 무용하다고 여겨져서 할 수 없던 ‘휴식’을 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휴식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들 또한 ‘무용한 것들’로 채워졌다. ‘넷플릭스’나 내가 사용하는 ‘왓챠’ 등의 OTT 플랫폼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투자에 상응하는 실용적인 결과물을 취득하는 건 어려운”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컨텐츠를 아무리 시청해도 이용자들이 얻을 수 있는 실재적 이득은 크게 존재치 않는다. 하지만 그 무용성이야말로 MZ 세대를 주축으로 하는 유저들에게 온전한 휴식을 취한다는 감정을 가져다주는 가장 거대한 원천이 된다. “놀고 싶을 땐 놀아야죠. 쉬고 싶을 땐 쉬시고요.” 같은, 건강한 삶에는 효율이 결여된 즐거움도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넷플릭스’ 등의 OTT 플랫폼에 MZ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가 이어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예시로 내가 있다. 왓챠 만세!)

  멈출 수 있는 시간, 멈출 수 있는 공간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MZ 세대에게 ‘쉼’을 죄악시하는 인식을 계속해서 심어왔다. 집이란 공간에서 본인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을 곧 내성적인 몽상가들, 더 나아가서 사회에 스며들지 못하는 음침한 존재들로까지 프레이밍(framing) 해온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다가온 코로나는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이 바쁘게만 달리던 MZ 세대를 휴식처인 집으로 밀어 넣었다. 도태되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인해 원하지 않음에도 뒤섞일 공동체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던 청년들은 비로소 처음으로 멈춰 서서 삶을 둘러보게 되었다. 하기 싫어도 해왔던 것들로부터 멀어지자 다른 이들이나 사회에 의지할 필요 없이 자기 자신이 온전히 존재하고 평안함을 느끼는 공간인 ‘집’은 이전과 달리 사랑해야만 하고 사랑하고 싶은 장소로 자리 잡았다. 그렇기에 무용한 돈을 들여 꾸민 집에서 무용한 시간을 들여 있는 그대로의 휴식을 취하는 행동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가장 일상적이고 중요한 방식이며, 더불어 이제까지 외면해오던 ‘나만의 템포’를 향한 근원적 욕망의 발현이기도 하다.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숨 돌릴 틈을 주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그리 반가운 형태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렇게 반갑지 않은 멈춤이 있고 나서야 MZ 세대가 ‘가장 사적인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본인이 원하는 속도, 본인이 원하는 방향, 본인이 원하는 다양한 것들을 내비치거나 이야기하는 게 금기시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처음으로 멈출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본인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고민해보게 된 MZ 세대에게, 집이란 어쩌면 공간으로서의 존재감 이상으로 ‘자기 자신 그 자체’로 인식되는 “내면의 아지트이자 아지트 속 내면”일지도 모른다.

 


함은세
고등학교 자퇴한 걸 자랑하고 다니는 02년생. '인생 재미있게 살기 프로젝트'라는 명목 하에 삶을 모험하며 세상을 읽는 눈을 키우는 중이다.

 

* 《쿨투라》 2021년 5월호(통권 8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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