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와
[드라마 월평]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와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1.04.2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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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강림〉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외모가 미흡한 여자와 외모가 우월한 남자, 그리고 두 남녀 사이에 싹트는 사랑. 최근 종영한 드라마 〈여신강림〉은 2018년에 방영된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과 비슷하다. 무엇보다 두 편에서 배우 차은우가 ‘얼굴 천재’로 외모를 뽐내는데, 3년이란 시간이 흐른 만큼 〈여신강림〉에서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잘생김’을 선보인다. 웹툰의 그림체를 그대로 가져오는 듯한 CG 덕분에 차은우가 맡은 주인공 이수호는 만화를 찢고 나온 진정한 ‘만찢남’으로 등장한다. 이제 현실계의 잘생김만으로는 로맨스물의 남자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여신강림’이 아니라 ‘남신강림’이라고 드라마 제목을 바꿔야 할 판이다.

 

  남자주인공의 자격과 물질 자본

  그동안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본부장이나 부회장 직함을 가진 ‘능력남’의 몫이었다. 물질 자본은 로맨스 남주가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이었고 그의 경제력은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순정의 깊이와 비례했다. 〈시크릿 가든〉(2010)의 김주원 로엘 백화점 대표는 자신이 입은 트레이닝복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뽐내며 평범한 츄리닝과 구별되는,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수놓은” 명품이라는 걸 강조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명품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그의 재력은 제대로 된 가방 하나 없는 여자 주인공 길라임의 경제적 빈곤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그녀를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증명한다.

  10대 고등학생도 사랑과 물질 자본의 상관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한민국 상위 1% 재벌가에서 자란 10대 고교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상속자들〉(2013). 극 중 상반된 성격의 배다른 형제는 둘 다 가난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이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지에 따라 주연과 조연으로 극 중 비중이 구분된다. 드라마는 고등학생 김탄이 재벌 아버지의 방해와 협박,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멸시와 차별로부터 가사 도우미 딸 차은상과의 사랑을 어떻게 지켜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재벌 후계자 자리를 내려놓음으로써 K-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되어 전 세계 모든 여자의 마음을 소유하는 최고의 능력남으로 등극한다. 아, 이민호.

Ⓒ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블록버스터의 저주

  물질 자본을 통한 로맨스 남주의 매력 발산은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에서 절정을 이룬다. “어떻게 사람이 무능할 수가 있지?” 더 이상 남자의 재력은 둘만의 사랑을 방해하는 외부 요인으로부터 여자를 보호하는 충성심 강한 혹기사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에 든 여자를 유혹하는 자본주의적 큐피드이자 사랑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값비싼 기폭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영준 유명그룹 부회장은 비서 김미소에게 퇴직선물이라며 그녀가 꿈꾸던 데이트 로망을 완벽히 충족시킨 서프라이즈 데이트를 준비한다. “난 김 비서한테 놀이공원, 레스토랑, 유람선을 통째로 빌린 블록버스터급 데이트를 보여줬어. 그러니까 이제 평범한 남자를 만날 수 있겠어?”

  평소 그의 애정 공세에 꿈쩍도 안 하던 그녀였지만 돈가스집에서 신문사 기자와 소개팅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자꾸 그와의 럭셔리 데이트가 떠오르는데…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시끄럽고… 비좁은 테이블 간격 탓에 옆 사람의 가방에 머리가 부딪치고… 어느새 그녀는 그를 향한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깨닫는다. 아, 박서준. “블록 버스터의 저주”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김 비서’로 만드는 사랑의 주문이다. 아, 내 심장이 왜 이럴까.

 

  ‘외모’능력주의와 매력 자본

  로맨스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부유한 집안의 안하무인 남자와 캔디와 신데렐라를 절반씩 섞은 가난하지만 명랑한 여자, 그리고 그들의 충격적인 첫 만남. 이때 반드시 나오는 대사가있다. “날 이렇게 함부로 대한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

  〈여신강림〉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주경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려고 옥상에 올라간다. 이때 수호가 몸을 던져 구해준다. 그 과정에서 안경을 벗겨지는 바람에 주경은 눈이 잘 안 보이게 되고, 수호에게 ‘아저씨’라고 부른다. 누가 봐도 차은우, 그러니까 훈남 고등학생인데, 말끝마다 아저씨 아저씨 부른다. 날 아저씨로 부른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 ‘얼굴천재’ 수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저씨!” 이 단어는 로맨스 남주가 갖추어야 할 자격요건이 물질 자본에서 매력 자본으로 확장되고 있단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이 자신이 입은 명품 트레이닝복, 그러니까 자신의 재력을 눈치채지 못하는 길라임의 우매함을 탓했다면 〈여신강림〉의 이수호는 자신의 미모를 알아보지 못하는 임주경의 심미안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나보고 아저씨라고? ‘외모’능력주의 시대 최고의 능력남을 몰라보고!

Ⓒ 〈최고의 사랑〉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꽃미남의 이름으로

  “대서양에 버뮤다 삼각지가 있고 우주의 블랙홀이 있다면 우리 학교에는 한 번 빠지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출구 없는 회전문 매력의 두 남자가 있지.” 그렇다. 최근 종영한 〈여신강림〉(2021)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남신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이수호는 유명 배우 아버지를 둔 “시크한 냉미남”이고, 한서준은 아이돌 연습생 출신의 “거친 야생마”다. 극 중 두 사람은 대놓고 잘생겼다는 찬사를 한몸에 받는 꽃미남들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대놓고 미남’이 로맨스 드라마의 남주 자리를 독차지하게 된 것일까. 언제부터 미모가 남자의 능력으로 인정받았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미모’를 앞세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매력 자본가들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최고의 사랑〉(2011)의 독고진은 인기 절정의 톱스타로 압도적인 아우라를 자랑한다. 그는 걸그룹 출신이었다가 비호감으로 전락한 여자 연예인 구애정을 지키는 순정적인 남자로 열일한다. 그는 자신이 가진 매력 자본을 이용해 사랑하는 연인을 악플과 루머, 그리고 악의적인 비난으로부터 보호한다. 아, 차승원.

  매력 자본 능력남의 계보는 작년 가을 방영된 〈청춘기록〉(2020)의 사혜준으로 계승된다. 극중 그는 모델에서 배우로 전업하여 톱스타의 자리에 오르는데, 무명 시절 함께 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 안정하를 향한 한결같은 사랑으로 뭇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아, 성격도 잘생긴 박보검, 아니 사혜준. 그의 연인 안정하는 처음에는 그의 팬이었다가 나중에는 여자친구가 된, ‘성공한 덕후(성덕)’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사혜준이 가진 매력 자본의 최대 수혜자로 등극한다.

 

  하늘에서 온 그대

  물질이냐 매력이냐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있다. 넘사벽의 존재,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신이적 존재다. 〈별에서 온 그대〉(2013)의 400살 외계인 도민준은 지구에서의 오랜 연륜을 활용해 부와 명예 둘 다 축적한 희대의 ‘초’능력남이다. 그는 위기에 한 천송이를 구하러 순식간에 공간이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를 괴롭히는 성인 남성을 가볍게 던져버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도깨비〉(2016)의 도깨비 김신 역시 엄청난 재력과 함께 자기 마음대로 날씨를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는 기분에 따라 비와 눈을 자유자재로 내리게 하면서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라는 마지막 인사로 세상의 모든 계절을 겨울로 만들어버리는 환상의 마법을 선보인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죽음을 초월한 불사(不死)의 몸으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로맨스의 얼굴을 한 판타지 드라마랄까. 판타지는 우리 안의 결핍이 만들어낸 가상의 리얼리티다. 영원불변의 매력을 소유한 신이적 존재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통과하는 동안 변함없이 내 옆에 있어 줄 누군가의 사랑과 믿음을 향한 우리 안에 잠재된 욕망의 발현이다. 아, 이래서 요즘 중국 선협물에 자꾸 눈길이 가는 거였구나. 세 번의 생(生)에 걸쳐 한 여자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최고 존엄 신들의 이야기. 아,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린다.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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