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풀과 꽃과 사랑으로 피어난 K-Poem 나태주 시인
[INTERVIEW] 풀과 꽃과 사랑으로 피어난 K-Poem 나태주 시인
  • 손정순(본지 발행인)
  • 승인 2021.05.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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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꽃」 시인 나태주, 그의 시들이 OTT 영상매체의 힘으로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를 장식하고 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등 상위 10권 중 무려 7권이 나태주 시집이다. 신간뿐만이 아니다.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2017), 『오래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2015년) 도 순위권에 올라있다. 나태주 시인은 지난달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시심과 입심을 과시하며 호평을 받았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이 나태주의 시집을 추천한 사실도 공개됐다. 이처럼 예능 프로그램 출연과 연예인 추천 또한 책 판매 상승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등단 50년을 맞이한 나태주 시인을 공주풀꽃문학관에서 만났다. - 편집자 주

  공주풀꽃문학관 초입으로 들어서자 풀냄새 꽃냄새가 확 진동한다. 주차장 앞에 자리한 들꽃 자전거 포토라인을 지나 현판이 보이는 현관에 도착하자 가랑비 속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태주 시인이 막 당도했다. 반겨주는 선한 그의 미소가 고향에 온듯하다.

  손정순(이하 손) 선생님 빗길이 미끄러울텐데 자전거를 타고 오셨어요.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올해가 선생님 등단 50주년이라 매우 뜻깊습니다.

  나태주(이하 나) 반가워요. 비를 맞아서 감기 기운이 조금 느껴져요. 엘리자베스 여왕이 즐겨마셨다고하는 동방미인차인데 좋은 사람하고 마시다보니 많이 마시게 돼요. 차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 나눠요. 근데 송수권은 어떻게 알아요?

  손 제가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는데 그때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이십니다. 3인(송수권 나태주 이성선) 시집 『별 아래 잠든 시인」을 내실 당시 송 선생님께서 제목 관계로 전화를 주시기도 하셨어요.

  나 아 그래요. 송 선생은 좀 빨리. 돌아가셨어요. 나보다도 머리카락도 안 빠지고 쌩쌩하더니. 담배를 너무 많이 태우셔서… 그러니까 폐가 안 상해. 나는 술을 마셨고, 송 선생은 담배를 피웠고. 이성선 선생은 술도 담배를 안하고. 일찍 돌아가셨어. 이 선생은 우울증이 있었어요.

  손 네 그러셨군요. 저도 두 분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우울증이 심각해지면 대인기피증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어디서 오냐 하면 내가 볼 때는 언밸런스 할 때 온 거예요. 그런데 그걸 없애는 것이 좋아요. 임승천 선생님(정년 후 고향 공주에 내려가 살고 있는 시인. 이날 함께 동행했다.)처럼 이렇게 시골 고향에 내려와서 채소 가꾸며, 농사 지으면 그런 건 없어지죠. 나도 여기 있으면요. 그거 없어져요. 나는 자전거 타고 늙은 마누라가 있는 집에 가는 것이 하루의 행복이예요. 현대 한국 사람들은 심각해요 아주 심각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인들이 의사 노릇을 전혀 못하고 있어요.

  손 네 저도 이곳에 와서 푸른색을 많이 보고 마시니 마음이 편해져요.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입니다. 선생님께서 내려주시니 차맛도 더더욱 향기롭습니다. 최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앤드)를 출간하기도 하셨는데요. 50년 간 시인으로 살아오신 선생님의 이력이 더없이 아름다운 영화의 필모그래피처럼 느껴집니다. 감회가 어떠신지요?

   이렇게 50년 동안 시를 쓸 수 있도록 제 시를 사랑해준 독자들에게 늘 감사해요. 나는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국민의 지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신뢰해야 되는 자국민에게 얼마나 헌신하는가”입니다. 꿈같지요. 순간과 영원이 같이 있다고 할까요. 톨스토이가 성장이라는 인생의 화두를 가지고이야기할 때 소통과 몰입, 죽음을 기억하는 삶, 세 가지입니다. 세상과 소통이 없으면 시가 안 떠올라요. 시 속에서 시를 찾으면 안 돼요. 바닷물도 막아 놓으면 생명들이 모두 죽지만, 조금이라도 열어놓으면 살아요. 그게 소통이에요. 제가 계속해서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소통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몰입하기 때문이죠. 『논어』에 ‘좋아한다’는 말이 가장 많이 나와요. “나는 호학(好學)하는 사람이다, 성인이 아니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고 말해요. 저는 50년 시를 썼는데, 몰입까지는 아니지만 좋아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좋아하는 건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요. 저는 시 앞에서는 받들 듯, 시를 썼습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기억하는 삶인데요. 순간을 영원처럼, 영원을 순간처럼. 순간을 함부로 살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저는 돌아보면 50년이 꿈같아요.

  손 이번에 선생님께서 일평생 쓴 5천 페이지의 방대한 시 가운데 엄선한 400여 페이지의 시를 책으로 내셨는데요. ‘한 시인의 일생이 담긴 시집’이라 너무 귀하게 느껴집니다. 선생님께서는 “꼭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길이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가지 말라는데 한사코 그 길을 간 사람도 있다. 아마도 이 시대의 문인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기도 할 것”이라고 책머리에서 밝히며 ‘이 한 줄의 문장’이 일생을 붙잡아 왔다고 고백하셨는데요. “가지 말라는데 한사코” 간 그 길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권장하지 않았고 칭찬해주지 않은 길입니다. 글을 쓰는 일이 내겐 그랬죠. 다만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입니다. 그것도 일생 계속해서 그랬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부정이지만 나에게는 긍정의 길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쓸모없는 일이었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일이었고, 끝내는 무엇보다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은 일이 되었어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내가 진정 좋아한 외국 시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특히 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줍니다. 어떻게 사는 인생이 좋은 인생인가 하는 걸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나의 시 「그리움」에 나오는 길은 프로스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프로스트의 길이 선택과 갈등에 대한 것이라면 나의 길은 부정과 긍정에 관한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부정이 끝내 긍정이 되었고 나의 인생이 되었다는 얘깁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입니다. 결론이고 반전이고 하나의 변용입니다. 시는 본래 ‘경전의 문장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 단어 한 문장도 거짓이 없어야 하고, 더하지도 못하고 빼지도 못하는 문장이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경전과 같은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죠. 책이 나오고 독자들이 많이 사랑해주니까 부끄러움과 고마움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그리움」은 몇 년 전 배우 박보검 씨와 송혜교 씨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남자친구〉(tvN 2018. 11. 28.~2019. 01. 24.)에서 두 사람이 심정적으로 공유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애시처럼 독자들에게 각인되기도 했다. 시인의 인생 전체가 이 한 줄의 문장에 요약되어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들어간 학교에서 무턱대고 시를 쓰기 시작한 일부터가 그렇다. 부모나 주변의 반대에도 막무가내로 밀고 온 길이 나태주 시인의 길이 되었다.

  나태주 시인은 소박한 언어로 명징한 심상(이미지)을 표현하는 짧은 시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새로운 현상인 OTT 세계로 들어서며 그의 시는 인터넷 모바일과 영상을 통해 놀라운 기세로 퍼져갔다. 「풀꽃」을 시작으로 입소문을 타고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그의 시들은 드라마와 CF에서, 그리고 영화에서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더 유명해지며 아름다운 풀꽃 세상으로 번져 나갔다. 이 OTT 영상매체의 힘은 코로나19 팬데믹시대가 무색할만큼 서점가도 점령하며 국민 시인으로 급부상했다. 지난달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을 때 그는 시심과 입심으로 진정 국민시인임을 국내외에 알렸다.

  손 저는 선생님이 진정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선보인 K-Poem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내 묘비명은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로 정했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풀꽃 1」을 묘비명으로 하려 했어요. 그런데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1)의 마지막 장면에서 「풀꽃 1」이 묘비명으로 나오는 바람에 묘비명을 다시 구상해야 했어요. 새롭게 정한 묘비명은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입니다. 나는 매일을 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아침저녁으로 시 원고를 봅니다. 나는 ‘보고 싶은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문제였어요. 돌아가신 사람 보고 싶고, 이별한 사람 보고 싶고, 멀리 있는 사람도 보고 싶어요. 한 예로 내가 앞에 조그만 묘비를 세워요. 거기다 써놔요.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그럼 내 묘비 앞으로 누가 찾아오겠어요. 우리 딸, 아들이 가끔 오겠죠.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 여기 왜 왔냐, 보고 싶어서 왔지? 그래도 조금만 참아 너도 조금 있으면 죽을 거야.” ‘메멘토 모리’를 얘기한 거예요. “너도 언젠가 죽을 거니까. 열심히 살아라, 좋은 일 하며 살아라.”는 것이죠.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를 그대로 간직한 그의 묘비명에 애틋해진다. 한편 아득해지기도 한다. 나 역시도 언젠가 떠나갈 이를 그리워할 테니까.

  “오랫동안 짝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제 시가 조금씩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고맙게 생각해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제 시를 읽는 것이 좋아요. 오랫동안 나를 기억해줄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인을 할때도 정성껏 한 페이지 가득 채워주려고 노력합니다.”

  시인은 그의 『풀꽃』 시집에다 손수 시를 써서 사인해 주었다. 그의 정성과 노고가 시보다 아름답다. 돌아오는 길 그의 시집을 펼쳐본다. 독자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시로 ‘풀꽃’ 연작시를 기억할 것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시상의 내부 깊은 곳, 웅숭깊은 사유에 고인 맑디맑은 정수와 그 안에 열리는 풀꽃 같은 순수무구한 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나는 그의 등단작 「대숲 아래서」에도 관심이 갔다. 그는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준 시이자 초기에 시를 쓰던 나의 마음이 담겨있는 시라서 의미가 깊은 시”라고 소개했다.

  “바람은 구름을 몰고 / 구름은 생각을 몰고 /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 (중략) /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 자국 /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대숲 아래서」 중에서

  시인은 “시는 세상에 보내는 러브레터, ‘연애편지’와 같다”고 밝혔다. “연애편지에는 사랑하고 아끼고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예쁜 마음이 담긴다. 이는 시를 닮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코로나 블루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는 힘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화내지 말고 살아보자’ ‘너는 귀한 사람이다’ ‘아름답다’ ‘사랑받고 있다’고 말하며 그들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인은 평소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시를 쓴다고 말했다. 그는 걷거나 열차나 차로 이동할 때, 중간에 떠오르는 시상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바로바로 적는다고 한다. 이날도 촬영을 하고, 내일도 수원으로 올라가는 스케줄이 있는데 오가는 어떤 장소에서도 틈나는대로 시를 쓸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멀리서 온 후배 시인을 위해 직접 풍금을 치며 〈고향의 봄〉 〈엄마야 누나야〉 〈꽃밭에서〉 등 향수어린 애송곡들을 들려주었다. 중간 중간 노래가사와 곡들에 대해 설명하며 추억에 젖기도 했다. 또한손수 가꾸는 문학관 뜰을 보여주시며 풀꽃들과 인사를 나누게 해주었다. 너무나 꿈같은 순간들이었다. 나태주 시인과의 대화는 잃어버렸던 먼 순수의 세계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손정순
고려대학교 국문과에서 「박목월 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과 저서로 『흰 그늘의 미학, 김지하 서정시』 『목월 詩의 현대성』 『문화예술현장에서 통섭적 글쓰기』 『문화예술현장에서 오늘의 영화를 읽다』 등이 있다. 현재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문화잡지 《쿨투라》 발행인이다.

* 《쿨투라》 2021년 6월호(통권 8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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