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꿈을 꾸며 끊임없이 꿈을 그리는: 캐릭터 아티스트 김미란
[INTERVIEW] 꿈을 꾸며 끊임없이 꿈을 그리는: 캐릭터 아티스트 김미란
  • 김준철(미주문인협회 회장, 본지 미주특파원)
  • 승인 2021.05.26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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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말 즈음 신문 기사를 통해 김미란 씨를 알게 되었다. 기사에서는 그녀가 출간한 책에 대해 짧게 다루고 있었는데,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월트디즈니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캐릭터 아트의 담당자가 총 2명인데, 그중 한 명이 바로 그녀라는 것이다. 그 뒤로 내가 사는 LA 인근에서 그녀가 근무한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때부터 줄곧 그녀를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그녀를 만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상황이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터뷰 요청을 드려 보았다. 그녀의 바쁜 일정을 배려해 질문지를 먼저 보내드렸더니, 100여 개의 메시지 녹음 파일로 답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그의 직장 근처 카페에서 만나 추가 인터뷰를 나누었다. 짧게나마 삶과 일, 그리고 현재 OTT 시장의 추세에 관한 얘기를 그녀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김준철(이하 준) 먼저 선생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미란(이하 김) 안녕하세요. 저는 Walt Disney Imagineering, Consumer Product의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 김미란입니다.

독자분들이 캐릭터 아티스트에 대해 잘 모르실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 거죠?

2019년에 출간했던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라는 책에서도 자세히 소개했었는데, 캐릭터 아티스트는 디즈니의 모든 상품에 들어가는 ‘캐릭터 아트’와 관련된 작업을 합니다. 작은 사탕이나 연필, 메모지부터 자동차, 집, 호텔 리조트 등 디즈니의 모든 상품에 들어가는 캐릭터 아트가 제 손을 거치게 되는 거죠.

 그렇군요. 캐릭터 아티스트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 그리고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 긴 이야기가 될 텐데요, 저는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월트디즈니 컴퍼니 산하의 예술 대학인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캘리포니아 예술학교/칼아츠)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 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3년 만에 조기 졸업했어요. 이후에 〈아이언 자이언트(The Iron Giant)〉로 유명한 브래드 버드(Brad Bird) 감독의 스태프로 뽑혔지만, 체류 신분 문제로 함께 일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 후에도 많은 곳에서 포트폴리오를 확인한 뒤 저를 채용하려고 했지만, 같은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5월에 학교를 졸업하고 서너 달 동안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워너브라더스에 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한번 지원해 보지 않겠냐고 말이죠. 저는 당시에 애니메이터 일을 지망하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건 ‘캐릭터 아티스트’였어요. 근데 교수님도 캐릭터 아티스트가 정확하게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에 대해 잘 모르고 계셨죠.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 일을 거절하면 저에게 남은 선택지는 한국에 돌아가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지원하신 거네요.

김 그런 셈이죠. 그 후 추가 심층 심사까지 받고 합격하게 되었어요. 체류 신분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바로 해결해준다고 하더군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캐릭터 아티스트 경력을 시작하셨으니, 적응도 쉽지 않으셨겠네요.

김 적응은 둘째고, 너무 속상했죠. 오랫동안 꿈꿔왔던 애니메이터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거의 1년 내내 울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훌륭한 태도와 실력을 확인하며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갔어요.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면서부터 마음을 다잡게 된 거죠.

마음을 다잡으셨다는 건 적응하셨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꿈을 바꾸셨다는 뜻인가요?

둘 다였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은 종이에 그려 셀(cell)에 입히는 작업이 많았는데, 캐릭터 아트의 경우에는 일단 전 방위적으로 모든 재료를 다 만질 수 있어야 하더라고요. 펜, 잉크, 연필, 물감…… 그리고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과 포토샵(Photoshop) 프로그램까지 능숙하게 활용해야 했으니, 도전할 것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러면 일반적으로는 더 지쳐서 포기할 마음이 생길 텐데, 김미란 씨의 경우에는 일이 정말 적성에 맞으셨나 보네요.

네. 저도 놀랐어요. 일하는 과정에서 적성이 재능처럼 디자인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8년을 일하며 영주권까지 받게 되었죠. 정말 미친 듯이 일했어요. 말 그대로 정말 끊임없이요. 사실 제가 한국에서는 생물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래서인지 늘 같이 일하는 친구들보다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남들보다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고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그려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놀랍네요. 생물학을 전공하셨다니. 그럼 원래 꿈은 뭐였나요?

당시 부모님들은 의사가 되기를 원하셨어요. 저 역시 공부를 제법 잘해서 부모님이 원하는 길을 향해 가고 있었고요.

Disney Campus 전경

 워너브라더스에서의 경력을 마치신 뒤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8년 만에 이직할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 ‘MGAE’에 입사하게 되었죠. 거기서는 거의 1인 5역을 소화했어요. 캐릭터와 장난감 디자인 일을 나누어서 하며, 그림뿐 아니라 ‘토이 디자인’에 대해서도 알게 됐죠. 거기서 그렇게 3년을 지냈던 것 같아요.

준 많이 지치셨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다시 대기업에 눈을 돌렸고, 디즈니를 선택한 거죠.

준 선택을 참 잘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그곳에서 편견이나 차별 등을 겪거나 극심한 경쟁의 상황에 놓이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에 대해,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에 대해 조금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디즈니에서 일한 지 14년 차입니다. 캐릭터 아티스트 일 자체를 시작한 건 1997년부터이지만요. 일단 이쪽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 좋아요. 일의 특성상 팀원을 쉽게 바꿀 수가 없어요. 장인(匠人)들처럼 말이죠.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 그림이라도, 연습만 한다고 해서 뚝딱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제 상사나 동료들이 일하는 걸 보다 보면 ‘천재’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노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능력까지 보여주죠. 그런 그들에게 경쟁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어요. 물론 남녀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그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차이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실력이 계속 오르다 보면 결국 그림 실력 이외에 ‘다른 것들’까지 갖춰야만 넘어설 수 있는 벽에 도달하게 되거든요. 프리젠테이션 능력, 비즈니스 회화술 같은게 더 필요한 거죠. 작은 농담 하나만으로도 파트너와 더 많은 교감을 할 수 있는데, 이건 현지인이 아닌 제가 따라잡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좀 할만하신가요?

30년 넘게 미키, 미니를 그리던 제 상사가 작년 11월에 회사를 그만두셨어요. 정말 애증의 사부였다고 할 수 있죠. 지금은 예전보다 미키, 미니를 더 많이 그려야 하니 많이 바빠졌죠.

선생님께서는 이제 이 분야의 독보적 존재가 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을 이 자리까지 오게한 필연 혹은 운명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가장 큰 부분은 노력이겠지만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조금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운도 많이 따라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운을 바라는 것 같아요. 제 경우는 정말 죽기 살기로 노력하니까 운이 기적처럼 생겼거든요. 그런 경험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라서, 노력에는 반드시 운이 따른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그걸 믿고 있고요.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려 왔어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어쩌면 제가 그런 근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이고 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제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선생님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여러 가지 요인(특별히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미디어 시장이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OTT(Over the Top) 플랫폼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당연하고도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OTT 플랫폼의 성장이 지금 당장 제 일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희의 주된 업무는 상품에 들어가는 캐릭터 아트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외의 일들(사업적인 부분)은 디즈니의 다른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OTT 플랫폼의 성장에 대해서는 디즈니에서도 계속 눈여겨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서 하겠습니다. 넷플릭스(Netflix), 유튜브(YouTube), 훌루(Hulu) 등등 많은 OTT 플랫폼들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중심에서 주목할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디즈니 역시 디즈니플러스(Disney Plus)로 OTT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중이라고 보는데요. 디즈니플러스의 장단점에 대해, 그리고 디즈니플러스만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디즈니에서는 디즈니플러스를 오래전부터 준비해오고 있었죠. 하지만 오랜 준비 기간에 비해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팬데믹으로 인해 극장 문이 닫히자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OTT 플랫폼이 영화관을 대체하게 된 거죠. 그렇게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공개된 〈뮬란〉이 상상 이상의 대성공을 거두면서, 디즈니에게 ‘한 줄기 빛’이 된 겁니다.

그럼 디즈니 자체에서도 많은 변화를 추진하고 있겠네요.

 물론이죠. 디즈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상당한 수익을 챙기고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그것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죠. 지구의 어느 오지에 있는 사람이라도 미키마우스를 알고 있는데, 굳이 라이선스 사업 확장을 더 궁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제 영화 산업에 힘을 더 기울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극장이 폐쇄된 지금의 상황에서 디즈니플러스라는 안방극장을 확보했으니까요.

왼쪽_캐릭터팀 그룹사진/ 오른쪽_토이팀과 동료들과(김미란 씨 오른쪽은 직속상사인 도로타)

준 경쟁사라고 하면 좀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OTT 플랫폼의 변화도 지켜보고 계신가요?

 이제는 많은 회사가 짧은 기간 내에 많은 ‘오리지널 시리즈’들을 개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체적인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해 낼 역량을 길러두고 있었던 거죠. 아마 그들 회사의 고위 인사들이나 업무의 실무자로 디즈니 출신들을 많이 영입했기 때문에 그런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니버셜의 드림웍스나 넷플릭스에서는 오래전부터 ‘정면 돌파로는 디즈니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체 콘텐츠를 짧은 기간 내에 많이 생산하는 전략을 채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디즈니 콘텐츠의 영상 퀄리티를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건 제가 속한 회사이기에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거든요. 디즈니의 영상 퀼리티는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단기간에 빨리 많이 만들고, 대신 영상 퀄리티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하는 방법을 택한 거죠. 그리고 거기서 반응이 오는 것이 있을 때 집중공략을 하는 거죠.

영상의 퀼리티보다 스토리에 중점을 둔다. 영리한 전략이네요. 자신들의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곳에 더 힘을 주는 거군요. 그럼 다시 선생님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캐릭터 아티스트로서, 혹은 선생님 자신으로서 앞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신가요?

김 다음 목표요? 사실 전 40대 초반에 방황을 좀 했어요. 그땐 ‘이다음은 뭘까’ 하는 것들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즈음 제가 바라고 꿈꾼 것들을 거의 다 이룬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그 때 다짐한 것이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정하면 안 되겠다’는 것이었어요. 상업적 예술의 세계에서는 ‘목표’에 대한 공식이 있고 답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개인 작업을 시작했죠. 상업적인 것이 아닌 내 개인적인 환상의 세계에 속한 나만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무언가, 끊임없이 목마름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 그런 것들이 지금의 저를 이끌고 있습니다. 전 그게 좋아요.

독특하시네요. 어쩌면 더 똑똑하신 것 같기도 합니다. 달고 맛있는 것을 계속 질리지 않고 먹는 꿈 같이 들리네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 익숙할 텐데 말이죠.

전 목표를 이룬 후에 찾아올 허무함이 너무 무서워요.

그럼 지금의 선생님께 ‘캐릭터 아티스트’란 어떤 의미로 정의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가장 재미있는 일’ 아닐까요? 전 지금의 제 일이 너무 즐거워요. 동료들보다 훨씬 더 제 일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즐겁고 재밌는 돈벌이’로서 제 일을 즐기는 것 같아요. 해도 해도 재밌으니까요. 이 즐거움을 계속 유지하면서, 제가 바라고 원하는 일을 아주 오래 하고 싶어요 .

어찌 보면 선생님은 이미 꿈을 이루신 것 같네요. 자신의 꿈과 목표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쿨투라》 독자분들을 위해 해주실 수 있는 얘기가 있나요?

‘잘못 꾼 꿈’은 허황한 것이 될 수 있죠. 제 책 때문인지, 저와 비슷한 분야를 지망하는 많은 분에게서 질문을 받곤 해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에요. 사실 예술 쪽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 풍족하지 못한 삶을 살아요. 저처럼 직장을 가지고 평범한 삶을 누리는 이들은 1퍼센트도 안 되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섣불리 무언가 해보라고 권하지는 않아요. 예술 쪽 일은 좋아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정글’에 입사했다고 다 끝이 아니잖아요. 그때부터 정말 목숨을 건 사투가 시작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꿈을 열망하는 분들은 제가 말려도 결국 그것을 향해 전부를 던지는 것 같아요. 전 인터뷰하는 지금도 제 꿈을 생각하면 심장이 간지러워요. 젊은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꿈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멈추지 말고 해라!”라고요.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엔가 일가를 이루고, 또 일가를 이루면 돈도 명예도 쌓이게 된다고요. 그렇게 그 나이에 맞게 성장하는 게 성공이라고 알려주고 싶네요.

긴 시간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장을 간지럽히는 ‘멈추지 않는 열정’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 왔고, 그것은 앞으로 또 다른 무엇인가로 그녀를 ‘성장’시킬 것이다. 인터뷰 내내 필자는 즐거움과 열정, 그리고 기쁨을 느꼈다. 그녀가 쓴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이제 나의 눈은 조금씩 먼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언젠가는 나에 대해 소개할 때 ‘디즈니’나 ‘캐릭터’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날이 올 것이다. 그 때쯤이면 아티스트 김미란의 작품세계도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라고.

  그녀의 ‘꿈’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내면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오는 환상을 현실이라는 노트 위에 계속 스케치하는 김미란. 지금의 성공은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그녀에게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며 그녀의 걸음을 응원해 본다.

  우리에게도 그런 ‘깊이 있는 한걸음’이 필요한 것 같다.

 

 


김준철
《시대문학》 시부문 신인상과 《쿨투라》 미술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꽃의 깃털은 눈이 부시다』 『바람은 새의 기억을 읽는다』가 있음. 현 미주문인협회 회장 겸 출판편집국장. 《쿨투라》 미주지사장 겸 특파원. junckim@gmail.com

 

* 《쿨투라》 2021년 6월호(통권 8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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