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미국 현지에서 영화 '미나리'의 실제 주인공을 만나다: John Park & 정한길
[INTERVIEW]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미국 현지에서 영화 '미나리'의 실제 주인공을 만나다: John Park & 정한길
  • 김준철(미주문인협회 회장, 본지 미주특파원)
  • 승인 2021.07.08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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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시어터
돌비 시어터

  01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
  - 돌비 극장(Dolby Theatre)과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

돌비 극장과 이어진 쇼핑몰 뒤로 할리우드 싸인이 보인다.
돌비 극장과 이어진 쇼핑몰 뒤로 할리우드 싸인이 보인다.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에서 영화 〈미나리〉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급기야 윤여정 배우가 한국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게 되었다. 한국계 정이삭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제작한 〈미나리〉가 이렇게 엄청난 파급력을 전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더 놀라웠다. 덴버 영화제 관객 작품상,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플로리다 영화비평가 협회 각본상, 노스캐롤라이나 영화비평가협회 작품상, 각본상,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및 관객상 등 그야말로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상을 휩쓰는 쾌거를 이루었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상태여서 시상식을 개최하는 것 자체도 어려웠겠지만, 주최 측은 할리우드 의 돌비 극장(Dolby Theatre)과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으로 나누어 시상식을 거행하였고, 윤여정 씨는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

레드카펫이 깔리면 바로 시상식장이 된다. 좌우 기둥에는 역대 수상작의 제목이 새겨져 있다.
레드카펫이 깔리면 바로 시상식장이 된다. 좌우 기둥에는 역대 수상작의 제목이 새겨져 있다.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

  유니언 스테이션은 1939년 기독 선교원 건물과 비슷한 형태로 건축되었다. 당시 파킨슨 앤드 파킨슨 사(Parkinson and Parkinson company)가 여행자와 이주민들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에 대한 오마주적 의미를 담아 설계하였다. 19세기 스타일의 건축물이 주는 웅장함과 견고함, 높은 천장, 커다란 창문, 중후한 느낌의 대합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건물은 아르데코(Art Deco)와 스페인 식민지 시대 양식을 혼합해 지었으며 유리 병, 깨진 도자기, 편자 등을 이용하여 물결 모양의 콘크리트 칸막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색적 소품들이 많은 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유니언 스테이션 내부
유니언 스테이션 내부

  또한, 누아르 스릴러 영화 〈유니언 스테이션〉(1950) 의 배경이 되면서 역 자체로도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이후 〈블레이드 러너〉(1993), 〈스피드〉(1994), 〈이탈리안 잡〉(2003) 등의 영화에서도 유니언 스테이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암트랙(Amtrak)’, ‘메트로 링크(Metro link)’, ‘L.A. 지하철’이라는 세 종류의 열차 운행 노선이 중첩되는 유니언 스테이션은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시설이며, 역사적 건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암트랙은 미국 전역으로 오가는 장거리 기차이고, 메트로 링크는 캘리포니아 내에서 운행되는 열차로 L.A. 대중교통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차이나타운(Chinatown), 그랜드 센트럴 마켓(Grand Central Market), 올베라 스트리트(Olvera Street), 엘 푸에블로 드 로스엔젤레스 주립 역사공원(El Pueblo de Los Angeles State Historic Park) 등이 자리하고 있어서, 유니언 스테이션은 교통뿐만 아니라 관광의 요지이기도 하다.

올베라 스트리트 전경
올베라 스트리트 전경

  올베라 스트리트는 L.A.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 중 하나이다. 1918년 에스파냐 이주민들이 그곳에 오두막을 짓고 ‘천사의 거리(El Pueblo de la Reina de Los Angeles)’라는 정착지를 세운 것이 L.A.의 시초가 되었다. 1년 내내 멕시코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화려한 이 거리는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곳에서 도보로 한 블록쯤 떨어진 곳에 엘 푸에블로 드 로스엔젤레스 주립 역사공원이 있다. 그곳에는 1781년 L.A.가 태동하던 때부터 있었던 공원, 교회, 소방서 등의 역사적 유적들이 보전되어 있다. 차이나타운도 가까이 있어서 중국인 이민 역사의 유구함을 느낄 수 있고, 다양한 중국 음식문화도 즐길 수 있다. 1917년 개장한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한국 재래시장의 모습과 닮아 활기차고 정겨운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여러 문화가 소통하는 도시의 중심에 유니언 스테이션이 자리하고 있으니, 한국 배우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은 이 장소에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TCL 차이니즈 극장
TCL 차이니즈 극장

  할리우드의 돌비 극장(Dolby Theatre)

  역에서 지하철로 11개 정거장만 가면 돌비 극장이 있는 할리우드에 도착한다. 돌비 극장으로 가는 길에서는 워크 오브 플레임(Walk of Flame)과 유명 배우들의 핸드프린팅 등이 있는 TCL 극장(TCL Chinese Theatre) 등을 만날 수 있다. TCL 극장은 1927년 그라우맨스 차이니즈 극장(Grauman's Chinese Theatre)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1973년 Mann’s Chinese Theatre로 이름을 바꾸었고, 2013년 중국기업 TCL가 인수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이어오고 있다. 이곳은 오랜 시간,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의 개봉관으로 명성을 높였으며 어느새 극장을 넘어 그 자체로 할리우드 거리의 브랜드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

  거대한 중국 탑처럼 생긴 외관은 청동 지붕과 산 호색 기둥, 그리고 9미터에 달하는 용 조각이 수려하여, 앞에 서 있으면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TCL 차이니즈 극장 앞 바닥
TCL 차이니즈 극장 앞 바닥

  극장 내부 역시 얼마 전 리모델링을 마쳐서 예전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모습을 복원했다. 극장만큼이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극장 밖 바닥에 있는 유명 배우들의 사인, 핸드프린팅, 풋프린팅 이다. 배우 안성기, 이병헌의 핸드프린팅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의 손바닥을 찾아 자신의 손바닥을 포개고 기념사진 찍는 사람들을 1년 내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코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곳은 두어 블록에 거쳐 워크 오브 플레임이라는 거리로 이어진다. 그곳에는 미국 배우들의 이름이 별 모양으로 박혀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을 만나는 행운이 여기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워크 오브 플레임
워크 오브 플레임

  돌비 극장은 그 사이에 있다. 돌비 사(社)에서 인수하기 전에는 코닥 극장(Kodak Theater)이었는데, 2002년부터 아카데미 시상식 전용 극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원래 호텔에서 만찬 형식으로 치러졌으나 관객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16회부터 극장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1969년에는 L.A. 카운티 도로시 챈들러 파빌론(Dorothy Chandler Pavillon)에서 치러졌고, 이후 슈라인 오디 토리엄(Shrine Auditorium)과 번갈아 진행하다가 돌비 극장으로 옮겨와서 지금에 이르렀다. 2004년과 2007년에는 Miss USA 선발대회를, 2010년부터는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등의 공연을 유치하기도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매년 2월 개최되지만, 올해는 팬데믹 등 여러 가지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 4월 26일로 늦춰 진행하였다. 돌비 극장은 18만 평방 피트, 34,000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이다. 영화 애호가들이라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공간이 된 이곳은 30여 분의 가이드 투어로 관람도 가능하다. 역대 수상자를 확인하고, 레드카펫도 밟아보고, 진짜 오스카상도 직접 보고, 시상식 뒤풀이 파티 장소뿐만 아니라 백스테이지와 객석, 해당연도 수상자들의 자리를 패널로 만나볼 수도 있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거머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에 이어 올해는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또 다른 쾌거를 이뤄냈다. 배우 윤여정 씨가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은 한마디로 사건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야외극장을 빌려 〈미나리〉를 무료 상영하는 모습
야외극장을 빌려 〈미나리〉를 무료 상영하는 모습

  지인들과 여러 매체가 〈미나리〉를 칭찬할 때까지도 필자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민자에 관한 영화 대부분이 뻔한 사건이나 결말로 이뤄졌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기도 했고, 그보다 큰 이유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보며 아픈 기억들을 떠올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않고는 이번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시간을 내어 차분히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예상했던 전개로 영화 내용이 흘러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러닝타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아마도 영화를 보며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자연스럽게 겹쳐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할머니는 기도하는 방식이 달랐다. 세대가 다르다 보니 마음속으로 기원하는 것도 각자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도는 결국 같은 그리움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움은 떠나온 이들에게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영화는 내내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 삶의 힘겨운 순간들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를 끊임 없이 내게 물었다. 설상가상의 삶 속에서 잠들어 있는 손주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길. 젊은 이민자의 삶이 이어지는 영화 속에서 늙은 이민자 역을 소화한 윤여정 배우의 연기가 예기치 않게 필자의 감정을 건드렸다. 아마도 오래전, 미국에서의 삶과 그 기억의 흉터가 소름 돋는 리얼리티를 만들었을 것이다.

  감독의 자전적 시나리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미국 중남부의 아칸소(Arkansas)주,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촬영해야 했던 오클 라호마(Oklahoma)주 털사(Tulsa), 남자 주인공인 스티븐 연과 아역까지, 결국은 이민자의 삶을 살아 내야 했고 살아온 바로 자신들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시너지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배우 윤여정과 함께
배우 윤여정과 함께

  02 영화 〈미나리〉의 실제 주인공을 만나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L.A.의 두 장소에 대해 소개하며 뭔가 아쉬움이 컸다. 영화 〈미나리〉와 관련된 그 누구라도 찾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으로 며칠을 보내며 수소문하던 중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영화에서 아주 잠깐 ‘병아리감별사’로 출연한 분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아칸소 주에 사시는데, 놀랍게도 그분은 스티븐 연의 장인이셨다. 지인에게 연락처를 받아 떨리는 마음으로 연락하여 그분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병아리감별사 역의 존 박(John Park) 인터뷰

  김준철(이하 준) 선생님,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존 박(이하 박) 저는 1982년 아칸소 주로 이민을 와서 실제 병아리감별사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고, 3년 후에 요식업계에 투신하여 지금까지 식당 5개를 운영(Shogun Fayetteville Arkansas)하고 있는 John Park입니다. 영화 를 만든 정이삭 감독은 제 처 오빠의 아 들이고, 저희 딸의 남편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과 PD를 맡았던 스티븐 연입니다. 사위죠.

  준 영화에도 출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박 네, 병아리 농장 신에 단역으로 잠깐 출연했습니다. 예전 기억도 떠오르고, 제겐 아주 색다른 경험이 었습니다. 그 외에 영화 소품 배치하는 일도 함께 도왔습니다.

  준 정이삭 감독의 가족과도 자주 왕래하시나요?

  박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이곳에서 어릴 적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함께 살아서 추억도 많죠.

스티븐 연의 집에서 오스카 무대 출발 전 가족들과
스티븐 연의 집에서 오스카 무대 출발 전 가족들과

  준 영화에서 보면 아역을 맡았던 남매의 우애가 매우 좋은 것 같던데, 실제론 어땠나요?

  박 남매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할머니가 계셨기에 한국어도 능숙했지요. 시골에서 자라서 감성도 풍 부하고, 학교에서도 두 남매가 모두 우등생이어서 이 곳에서는 거의 기념비적인 학업 성취도를 보였습니다.

  준 영화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박 이곳에서는 영화〈미나리〉가 상당히 멋진 영화라고 종일 여러 매체에서 다뤘습니다. 시골 동네에 명물이 탄생한 거죠. 이 작은 동네의 학교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 없이 그대로인데, 한편으로 갑자기 굉장한 장소가 된 겁니다. 특별히 학교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영화의 배경인 아칸소 주의 작은 동네인 이곳은 인구가 4~5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정말 많은 뉴스매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곳을 포함한 도시 전체로 보면, 아칸소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긴 하지만 인구가 55만(전체 250만) 정도입니다. 남한 땅의 약 1.3배 정도라고 할 수 있죠. 벼농사 규모가 미국 전체에서 1등이며 닭, 소, 콩 생산량도 상위권인 도시로 사람들이 대체로 순박하고 순수합니다. 여기서는 이런 농담도 있습니다. “사슴도 ‘Stop Sign’ 을 지키는 살기 좋은 곳”이라고요. 무엇보다 영화 덕분에 한국의 위상이 여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칸소에서 팬데믹 상황을 감안해 야외극장에서 무료 상영을 했는데, 정말 많은 관객들이 찾아왔습니다. 문화의 전파력이 기술의 전파력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배우 한예리와 함께
배우 한예리와 함께

  준 영화에 참여하시면서 느낀 점이나 에피소드 같은 것들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박 한 편의 영화에 들어가는 열정과 노고에 놀랐습 니다. 배우들이 자신의 배역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촬영 장소는 주로 오클라호마 주의 털사(Tulsa)라는 도시였는데, 매일 화씨 100도(섭씨 37.8도)가 넘는 고온에 에어컨조차 없었는데도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고, 지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윤여정 배우의 경우, 이러저러한 악조건 속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잘 버티셨어요. 오히려 주위의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까지 챙기시니, 정말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스태프들의 끼니를 한식으로 챙기는 모습을 보며 전 놀라움과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준 바쁘셨을 텐데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중에 더 좋은 일들로 찾아뵙고 이야기 나눌 시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박 감사합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 일에 대한 열정과 수고와 노력이 보상받는다는 것을 제 삶을 통해서, 그리고 영화 속에서도 이야기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이국땅 어디에선가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분이 힘내시길 기도합니다.

  '제이콥'의 실제 주인공인 정이삭 감독의 아버지 정한길 선생님 인터뷰

  영화 〈미나리〉가 한인 2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많은 관심과 화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제이콥’의 실제 주인공이며 정 감독의 아버지인 정한길 선생님과도 어렵게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정이삭 감독 무명 시절에 뉴욕에서

  김준철(이하 준) 우선 간단하게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정한길(이하 정) 특별히 소개랄 것은 없습니다. 영화 정이삭 감독 아버지 정한길입니다.

  준 영화 〈미나리〉는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큰 관심을 가졌는데, 영화를 보신 소감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정 1975년에 갓 결혼을 하고 아내와 단돈 200달러 를 가지고 미국에 왔습니다. 제 이야기가 영화가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정이삭 감독의 이야기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정이삭 감독이 덴버시에서 태어난 1978년 10월 19일에 이른 첫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그때 한창 젊었던 저는 주차장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춤을 추었습니다.

  준 정 감독이 시나리오에 대해 의논하거나 이야기한 적이 있었나요?

  정 처음에 그런 이야기를 하길래 “뭐 할 얘기가 있다고 그걸 영화로 만드느냐”고 했습니다. 이민 생활이라는 게 사실 다 똑같거든요. 지금도 그 부분에서는 같은 생각입니다. 다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이기며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그 후, 아들이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영화를 찍는 동안 나를 아예 촬영장에 얼씬도 못 하게 하더라고요. 아마도 제게 한 소리 들을까 봐 신경이 쓰였나 봐요. 나중에 영화 개봉 전 추수감사절에 L.A.에 있는 아들 집에 가족이 모여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공개 전에 먼저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까 지난날들이 생각나 가족이 부둥 켜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준 결국 가족 모두가 영화 〈미나리〉의 실존 인물이시니 그러실 만도 하겠네요.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혹은 실제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끼셨던 장면들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주시겠어요?

영화의 배경이 된 농장은 주택과 창고 건물을 포함 25 Acres(약 3만평)으로현재 약초 재배 농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농장은 주택과 창고 건물을 포함 25 Acres(약 3만평)으로현재 약초 재배 농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 옛날 일이라 저 역시 다 기억나지도 않습니다만…… 영화에서는 농장에서 한국 채소만 키운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각종 채소와 3,650그루의 한국 배나무, 100여 마리의 엘크를 길렀습니다. 제법 큰 규모의 농장이었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고 절망했었던 화재 장면이었 는데, 사실 야채 창고만 불길에 휩싸여 전소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배 과수원의 절반이 불에 타 버린 대형 화재였어요. 그 이후 병충해가 심해져 결국은 과수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영화 속 할머니의 실제 모습
영화 속 할머니의 실제 모습

  준 무엇보다 이 영화의 중심축은 할머니(윤여정 분)라고 생각되는데요. 윤여정 배우가 연기했던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영화 속 할머니와 실제 할머니의 다른 점, 그리고 같은 점에 대해서도 조금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 ‘순자’의 실제 인물인 제 장모님 이영순 여사는 6.25 전쟁 미망인이셨죠. 동국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남편(고 김현태)이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가 전사했고, 당시 임신 중이었던 장모님이 지금의 제 아내를 홀로 낳으시고 키우셨으니까요. 인천 앞바다에서 조개를 캐며 외동딸을 건사하셨는데, 그런 딸을 제가 미국으로 데려온 것이죠. 이후, 장모님은 어린 손자 정이삭 감독을 또 그렇게 애지중지 돌봐주셨습니다. 장모님은 온화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일품이셨습니다. 거친 욕을 웃으면서 하실 때면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또 다른 의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윤여정 씨가 훨씬 세련되게 연기하신 부분은 있지만, 그녀의 연기에서 장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이삭 감독의 가족사진(최초 공개)
정이삭 감독의 가족사진(최초 공개)

  준 선생님의 과거에 대한 재현이라는 점에서 볼 때, 영화 〈미나리〉에 몇 점을 줄 수 있으신가요?

  정 아들이 옛날 일들에 대해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영화 속에서 제가 잊고 있던 기억들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정 감독이 7살 무렵 아칸소 시골의 허름한 트레일러 홈에 도착해 계단이 없었던 트레일러에 들어가기 위해 제가 아이들을 번쩍 안아 올려 주었던 일, 그즈음 입었던 옷들, 집 안에 있던 소품 하나하나까지 당시와 너무 똑같아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영화의 디테일로만 따지면 90점 이상 주고 싶습니다.

  준 주변 분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정 많은 분이 공감해주시고 또 자랑스러워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영화 개봉 이후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중심으로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소방관, 경찰관, 의사, 간호사 등에게 영화 티켓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더 많은 분께 선물해드리고 싶고, 그 영화를 통해 위로 받으셨으면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다 함께 살아낸 시간 속에 있는 분들이라 특별히 새로운 느낌을 받으 셨다기보다는 깊이 공감해주시는 것 같아 더욱 감사 할 따름입니다.

  준 영화 마지막 부분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는데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정 정 감독의 외할머니는 노년에 치매로 고생하셨고, 이곳에 묻히셨습니다. 저는 현재 콜로라도 주에서 딸과 손자·손녀와 함께 잘 지내고 있죠. 영화에 나온 고향 땅을 정리하지 않고 관리하며 가끔 다녀오곤 합니다.

  준 두 남매 모두 너무 잘 키우셨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정 네, 두 아이 모두 미나리처럼 착실하게 커서 둘 다 아이비리그 명문인 예일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아들이 영화로 진로를 바꿔서 크게 실망했었죠. 그때 정 감독이 “저는 영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준 아! 그럼 약속을 지키신 거네요. 정 감독의 첫 영화 〈문유랑가보〉(2007)를 비롯해 〈럭키 라이프〉(2010), 〈아비가일〉(2012), 〈미나리〉까지, 네 작품 모두 사람에 대한 깊은 애착이 배어있는 작품들이니까요. 혹시 따로 특별히 자랑하시고 싶은 가족이 있으시다면요?

  정 사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정 감독보다 더 인기를 끈 사람이 며느리였습니다. 귀한 집안의 외동딸로 르완다 고아원 봉사를 오랫동안 해 왔고, 지금은 교도소의 죄수와 소외된 저소득층 서민들의 아픔을 다독여 주는 심리 치료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늘 자녀와 남편을 위해 내조하는 현모양처 며느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정 감독,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L.A.에서 살고 있고요.

정이삭 감독이 두살 쯤 되었을 때 부부가 같이 찍은 사진.
정이삭 감독이 두살 쯤 되었을 때 부부가 같이 찍은 사진.

  준 〈미나리〉를 사랑하는 팬들, 그리고 앞으로의 정 감독 작품을 기대하고 축하하는 한국 팬분들과 《쿨투라》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정 영화를 사랑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또 응원해주신 많은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 영화는 가족을 향한, 그리고 이민자들을 위한 헌정 영화, 희망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유별난 흙 사랑으로 무모하게 농사에 도전한 제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견디며 아이들을 잘 키워준 아내가 사실 일등 공신입니다. 평생 그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수많은 한인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도 곧 지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또 많은 분이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하시기도 하는데, 저는 그 영화가 한 편의 시나 풍경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 다. 굳이 그 위에 또 따른 색을 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분이 를 통해 다시 희망을 품고 재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 습니다. 또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나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삶을, 영화를 통해서 더 많이 공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영화 〈미나리〉의 열풍, 배우 윤여정의 수상은 정한길 선생님이 인터뷰 말미에 남긴 그 한 마디를 통해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단순히 윤여정 배우와 한국인의 기쁨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화가 마주하는 유니언 스테이션의 역사이자 할리우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민자의 나라에서, 이민자의 언어와 이야기가 또 다른 이민자들에게 전달되며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킨 특별한 사건인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연결된 John Park, 정한길 두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이 영화의 탄생이 내게 절대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왔다.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에 담긴 감정들이 이민자들의 삶의 뿌리에까지 가 닿았다는 느낌을 인터뷰 내내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다른 어떤 결말도 필요하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고. 그리고 그게 이민자들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라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이겨냈는지, 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지, 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한 것인지…….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일상의 또 다른 한걸음, 그것이 미래가 보이지 않던 한 늙은 이민자의 모습이고, 또 내 모습인 것 같아서 오랫동안 무거움을 지워내지 못했다.

 

 


김준철
《시대문학》 시부문 신인상과 《쿨투라》 미술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꽃의 깃털은 눈이 부시다』 『바람은 새의 기억을 읽는다』가 있음. 현 미주문인협회 회장 겸 출판편집국장. 《쿨투라》 미주지사장 겸 특파원. junckim@gmail.com

 

* 《쿨투라》 2021년 7월호(통권 8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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