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39금이라 불러다오': 드라마의 다양한 얼굴 〈다크 히어로〉
[드라마 월평] '39금이라 불러다오': 드라마의 다양한 얼굴 〈다크 히어로〉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1.07.0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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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드라마에 19금 딱지를 붙인다는 건 시청률을 포기하겠다는 말이었다. 시작부터 시청자의 일부를 버리고 시작하는 데다 ‘19금’이라는 어휘가 뭔가 잔인하고 자극적인 뉘앙스를 주는 탓에 묘한 거부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인기를 끈 〈킹덤〉, 〈인간수업〉을 포함해 한국 안방을 뜨겁게 달군 〈부부의 세계〉와 〈펜트하우스〉까지 이제는 19금 드라마가 전혀 낯설지 않다.

  오히려 19금이란 명예로운 주홍글씨를 붙여야만 약육강식의 영상 콘텐츠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수백 수천 편의 드라마를 앞에 두고 선택 장애를 일으키는 게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OTT 세계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19금에는 19금. 무한경쟁의 개미지옥이다.

  마니아를 양산하며 역주행 신화를 일으킨 〈괴물〉은 제목답게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인간과 괴물의 갈림길에 홀로 남겨진다. “괴물 같은 놈들 잡으려면 괴물이 되는 거 말곤 방법이 없어요”라는 주인공 동식의 말처럼, 세상을 지키는 수호신의 권좌를 선이 악에게 양보한 상황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선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끔찍한 현실 인식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특정 회차만 19금으로 시청 연령을 제한했는데… 아, 39금이라 불러다오.

ⓒJTBC

  악의 한가운데서

  드라마 〈마우스〉는 모든 회차가 19금이다. 괴물 천국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하나의 드라마에 사이코패스가 옹기종기 모여 살아도 될까 걱정이 될 정도다. 의사 사이코패스, 알코올 중독 사이코패스, 친구 사이코패스… 특이한 것은 사이코패스의 탄생 배경이다. 이제까지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들은 대체로 과거의 비참한 사건에 의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어왔다. 하지만 〈마우스〉는 선천적으로 악인으로 태어난 연쇄살인범에 초점을 맞춰 순수 악을 전면에 내세운다. 100퍼센트의 순결한 악이랄까.

  극중 유전학을 전공한 대니얼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 엄마 배 속에 있는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하면 사이코패스를 미리 구분해내 사전에 무고한 희생, 참혹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정확도 99퍼센트. 당연히 태아의 유전자 검사를 두고 국회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진다. 태아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이 충돌하고, 공공의 안전을 위한 국가의 의무와 인권 침해를 야기하는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충돌하고…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지듯 다양한 시점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풀어낸다. 사이코패스 당사자를 시작으로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가진 아기를 임신한 엄마, 사이코패스에 의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 그리고 사이코패스와 함께 세상을 살아갈 불특정다수의 대중까지… 그 이야기의 끝엔 당연히 시청자가 있다. 과연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때 인류를 대표하여 십자가를 홀로 진 자가 나타났으니 그녀가 바로 최영신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인 그녀는 대니얼 박사로부터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가진 태아 명단을 넘겨받아 오랜 시간 관찰하며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상위 1퍼센트의 프레데터인 잔혹한 연쇄 살인범이 되어가는 걸 확인한다. 무고한 희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그녀는 사이코패스를 향한 대중의 분노가 극에 달하기를 묵묵히 기다린다. 이 모든 비극은 ‘사이코패스 유전자 태아 강제 낙태 법안’을 통과시킬 여론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아, 살인을 막기 위한 살인이라니. 그녀는 사이코패스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고독한 순교자인가. 아니면 연쇄살인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방조한 또 한 명의 사이코패스인가.

ⓒJTBC

  악마가 악마를 괴롭힌다

  잔혹한 연쇄살인마보다 더 섬뜩한 인상을 남긴 〈마우스〉의 최영신 비서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적 복수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밝힌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해결방식을 추구 한다는 점에서 최영신의 신념은 비교적 낭만적인 현실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는 셈이다. 아직도 법이 정의롭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아.

  2021년 화제작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 까사노 패밀리의 변호사 빈센조를 내세워 통쾌한 사적 복수극을 펼친다. 그런데 한국에도 변호사가 많은데 왜 굳이 저 멀리 외국에서 모셔온 것일까. 심지어 그는 한국에서 변호사 신분도 인정 못 받는 이탈리아 변호사인데. 극 중 빈센조가 재벌 바벨그룹의 반대편에 서자 홍 차영 변호사는 따끔히 충고한다. 이탈리아는 마피아만 마피아 짓을 하지만 한국은 전부가 마피아에 카르텔이라고, 국회, 검찰, 경찰, 관공서, 기업… 누구와 상대하든 개고생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마피아에는 역시 마피아.

  〈빈센조〉에서 법은 전혀 정의롭지 않다. 오히려 법은 악의 호위무사로 악용된다. 바벨그룹의 범죄행각에 합법적인 면죄부를 주는 곳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형로펌 이고, 바벨그룹의 진짜 실세 장준우 회장이 신분을 속이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대형로펌 변호사다. 악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바벨그룹으로 표상되는 악의 무리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달라진 것은 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박재범 작가가 집필한 〈열혈사제〉(2019)와 〈빈센조〉(2021)는 두 주인공 모두 소중한 사람을 잃고 흑화의 순간을 맞이한다. 〈열혈사제〉의 국정원 출신 신부님은 살인범을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살려줌으로써 용서와 화해의 선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피아 출신 변호사 빈센조는 “정의는 나약하고 공허하다”라는 신념 아래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전면전을 펼친다. “너와 나는 똑같은 인간이야”라는 또 다른 악당 최명희의 비난에도 그는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최명희를 홀로 남겨두고 차갑게 돌아선다.

  빈센조는 바벨그룹과 싸우는 과정에서 “쓰레기 치우는 쓰레기”를 자처하며 이탈리아 마피아로서 습득한 모든 기술을 총동원한다. 아니,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장준우 회장을 죽일 때 그는 다른 악당에게 하듯이 총을 쏴서 죽이지 않는다. 천천히 고통을 느끼며 죽도록 날카로운 철이 심장을 서서히 관통하게끔 고문장치를 설치해놓는다. 배부른 고양이가 “쥐를 갖고” 노는 것처럼. 아, 빈센조는 가엾은 피해자인가 냉혹한 가해자인가. 착한 영웅인가 나쁜 악당인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악은 견고하며 광활하다.” 드라마는 빈센조의 무시무시한 경고로 끝난다. 두려움 때문일까 답답함 때문일까. 택시기사 김도기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을 다룬 드라마를 향한 시청자들의 호응이 뜨겁다. 연출을 맡은 박준우 PD는 제작진 출 신으로 사회고발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직접 해결에 나선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이 비록 판타지일지라도 말이다.

  극중 조폭의 보복운전으로 어린이들이 위험에 처해 있는 걸 목격한 김도기는 직접 응징에 나선다. 이때 택시에 타고 있던 손님이 겁을 먹고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건다. 하지만 그사이 김도기는 혼자 조폭을 가볍게 처리하고 그 모습에 감탄한 손님은 경찰에게 “바쁘시면 안 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며 전화를 끊는다. 언제 어디서나 콜택시를 부르듯 우리의 억울한 사연에 귀 기울여줄 ‘다크 히어로’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일까. “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대신 복수해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말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아, 언제부터 우리 삶의 장르가 잔혹한 복수극으로 바뀐 것일까. 경찰과 검사, 그리고 이놈의 법은 어디 가고 우리끼리 죽고 죽이는 배틀로얄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이 고약한 느낌은 뭘까. 아아, 그것이 알고 싶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 《쿨투라》 2021년 7월호(통권 8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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