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시인의 군산통신 7] 군산 동네책방 ‘마리서사’를 찾아서
[강형철 시인의 군산통신 7] 군산 동네책방 ‘마리서사’를 찾아서
  • 강형철(시인)
  • 승인 2021.07.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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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춘 시인의 시집 『죽편』에 「30년 전」이란 시가있다. ‘1959년 겨울’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 서정춘, 「30년 전」 전문

  서정춘 시인(1941〜)의 시를 말하는 글에서 이문재 시인은 이 시 「30년 전」과 「죽편(竹萹)·1」에는 시인의 전체 삶이 압축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말에는 그의 간난신고의 삶만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근대 이후 우리 모두의 삶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이른바 근대문명이 시작된 이래 대다수의 삶이 자신의 출생지를 떠나 타관 혹은 타향에서 이루어지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생을 마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보탤 말은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에서 ‘배불리’라는 부사는 요즘 말로 ‘부자가 되어서’ 혹은 ‘배타적인 자기만족’이란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은 아니로되, 실제로는 ‘배고픈 사람이 허기를 해소하여 배가 든든해지고, 그리하여 잠을 편히 잘 수 있을 정도의 충족감을 뜻하는 시골 ’애비‘의 소망이 담겨있는 ’따뜻한 부사‘라는 점이다.

  서정춘 시인의 아버지가 30년 전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떠나는 아들에게 하신 말씀,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에서 고향이란 내가 살았던 고향 그런 것에 집착하지 말고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진정한 의미의 고향이고 거기서 생애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 낼 때 오히려 그곳이 진정한 고향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한다면 지금 군산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우리들의 고향이란 말의 의미를 확장하는 일과 같지 않을까?

  그런 사례의 한 사람으로 나는 연고도 없는 군산에서 2017년부터 ‘마리서사’라는 동네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임현주 대표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는 “동네책방” 혹은 “독립서점”으로 통칭되는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요즈음은 작가나 시인의 초청 모임도 가끔 하고 있다. 그런 ’작가와의 대화‘나 ’저자 사인회‘는 Covid-19 이전부터 시작된 문화운동 혹은 풍속의 한 사례이겠지만 Covid–19 이후엔 더욱 빛나는 알짜배기 문화운동이라 하겠다.

  군산의 월명동(군산시 구영 5길 21-26 1층)에 자리한 마리서사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다. 단층 가옥의 도로 쪽 방을 개조한 서점의 실내는 대략 20여 평 정도의 크기였다. 책은 한 작가의 방처럼 단정하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어느 쪽에도 책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지 않았다. 여백을 두고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서점 운영자의 정성과 마음이 곳곳에 배어있다고 느껴질 만큼 여러 안내문과 쪽지 글이 핀에 꽂혀 있었다. 손님들이 이런방에서 책 읽으며 살고 싶다는 느낌이 들 만큼 정겨워 보였다.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입구에 점심시간 안내문을 걸고 인근의 식당으로 안내했다. 자신이 다니는 단골 식당이라며 집밥처럼 소박하되 맛이 있다면서 자랑했다. 식사 후 찻집으로 옮겨 몇 가지 묻고 대답하는 동안 두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한 차례 군산대의 유보선, 박성신 교수와 함께 식사한 바 있었지만, 책방과 관련한 실제적인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는 군산으로 이주하기 전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일을 하며 지냈는데, 언젠가는 복잡한 서울을 떠나 지방 소도시에서 덜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지녔었다고. 그래서 국내를 여행할 때면 그곳의 시장에도 가보고 부동산 사무실에도 찾아가 전세 가격을 알아보기도 했으며 살고 싶은 도시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그중 한 곳이 군산이었다고 했다. 군산은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고즈넉했고, 무엇보다 걷기에 좋은 점이 특별했고 좁은 생활 반경에서 단순하게 살기를 원하던 마음에 적합했다는 말로 덧붙였다. 평생 살 곳으로 정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지금 당장 살 곳을 정하자라고 생각하니 쉽게 결정되었다는 말도 했다.

  그가 89학번 열혈 운동권 학생이자 철학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 사회단체에서 일하던 중 제적된 지 10년 만에 졸업장을 받기도 했다며 처음으로 부모님의 비원을 성취시켜드렸다며 웃었다. 책방 ‘마리서사’ 운영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서울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긴 어려워 자신에게 익숙한 책과 관련한 일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형식이 책방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면서, 낯선 곳으로 이사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로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인식에 기반한 선택이었다고 겸허하고 소박하게 말했다.

  그는 책방 이름을 ‘마리서사’로 짓게 된 것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었다. 평소 김수영 시인의 시를 즐겨읽는데, 김수영의 산문 「마리서사」를 읽고 알게 되었으며 강원도 인제에 있는 박인환 문학관에 가서 1945년 종로 3가에서 열었던 ‘마리서사’ 복원모형을 보고 해방 직후 뭔가 새로운 것에 열광했던 그 마음에 이끌려 ‘마리서사’를 책방 이름으로 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웃음을 지었는데 마스크에 가려져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변이 환해졌다. 김수영, 김기림, 오장환, 배인철, 김병욱 등의 시인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화 아지트로 자리 잡았던 박인환의 ‘마리서사’가 어른거렸다. 그가 꿈꾸는 ‘마리서사’의 미래일 것이다.

  채만식의 『탁류』를 왜 출판했느냐에 대해 그는 ‘마리서사’만의 콘텐츠를 갖고 싶어서라며 멕시코 과달라하라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1년 남짓 했는데 거기에서 중남미 서점을 탐방할 기회가 있었고 그곳 서점마다 자체 콘텐츠를 갖고 있는 것이 부러웠고 어떤 서점은 출판사와 인쇄소를 겸하기도 하더라면서 군산을 대표하는 대중적인 콘텐츠를 지역의 시선에서 선별 출판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을 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지원을 받아 출판할 수 있었으며 500부를 인쇄해서 2021년 1월부터 ‘마리서사’에서만 판매했는데 400여 부를 판매했다며 놀라운 성과라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서점에 매일 새로운 책이 들어오며, 구간 중에서도 지금의 시점에서 읽으면 좋을 책을 찾는데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손님들 중 많은 분들이 책방에서 커피 등의 음료를 판매하라고 조언하는데, 혼자의 힘으로 두 가지를 하면 관심사가 분산되기 때문에 책만 파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책방에 자주 들르는 사람들을 위해 회원등록제를 하고 있는데 회원 수가 천 여명에 이르고 있으니 너무 놀랍지 않으냐면서 서점이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책방 앞 화분이 예쁘다며 꽃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신다는 할머니나 책방 오픈을 기념하는 선물로 생선을 구워주신 식당 사장님을 기억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책방에 들어왔다가 빈손으로 나가는 손님들을 꾸중하는 할머니도 기억한다며 웃었다. 그는 이미 군산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고 ‘마리서사’를 둘러본 뒤 나는 이제야 고향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느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이곳에 정주하면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더불어 한 공동체, 아니 고향을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편력을 끝내고 귀향하는 자가 확인하는 고향의 상징물 중 하나로 나에겐 ‘마리서사’가 자리 잡았다.

  자신이 발표한 시들을 다시 고치고 고쳐 지극히 적은 수의 작품만 실으면서도 세상살이의 깊은 통찰을 주는 서정춘 시인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시인의 시 「30년 전」의 통찰을 자신의 삶으로 선택하고 그것의 세속적 성과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군산의 동네책방 ‘마리서사’를 세워가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깊은 연대감이 나를 들뜨게 했다. 군산이 드디어 내 삶의 현장으로, 아니 진정한 의미의 고향으로 귀환하고 있는 것일까?

  『근대 항구도시 군산의 형성과 변화』라는 책(김영정 소순열 이정덕 이성호 지음, 도서출판 한울, 2006)에서 군산 역사 전체를 조망하고 그 역사를 식민도시 형성 발전기(1899-1945), 도시발전의 정체쇠퇴기(1945-1985), 자본주의 도시화 이행 도약기(1985년 이후)로 구분하고 이를 식민지 도시, 정체도시, 성장전략도시로 명명했던 학자들의 견해를 상기하면서 여기에 새로운 생태문화개념의 도시가 지금 시작되고 있다는 징후로 동네책방 ‘마리서사’를 거론한다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

 

 


강형철
1955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숭실대 철학과. 동대학원에서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5년 『민중시』 2집에 『해망동 일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해망동 일기』『야트막한 사랑』『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환생』과 평론집으로 『시인의 길 사람의 길』『발효의 시학』 등이 있다.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사)신동엽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치다 정년하였으며, 현재 고향 군산에서 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쿨투라》 2021년 7월호(통권 8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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