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여전히 생생한 소리의 공포, 망가진 세상에서 다시 일어서는 방법: 〈콰이어트 플레이스 2〉
[영화 월평] 여전히 생생한 소리의 공포, 망가진 세상에서 다시 일어서는 방법: 〈콰이어트 플레이스 2〉
  • 라이너 (영화 유튜버, 영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0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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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다가오면서 영화관에는 공포 영화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며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 〈클라이밍〉과 같은 작품이 차례대로 개봉하며, 코로나19로 잠시 잊고 있던 영화의 서스펜스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단연 빛나는 건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일 것이다.

  전작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명백히 ‘체험하는 영화’였다. 소리, 청각에 극한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의 구성, 영화는 소리를 지배했고, 관객은 작은 소리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영화에 빨려 들어갔다. 소리, 소음에 반응하는 괴물과, 그로 인해 숨죽인 채 생활해야 하는 극단적인 생존환경이 관객들에게는 생생한 체험의 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에 집중하던 경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소리를 참았던 그 시절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긴장을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성공적으로 영화로 구현했다. 서사나 미장센은 거들 뿐. 〈콰이어트 플레이스〉 안에서 영화란 체험의 예술이었다. 이른바 ‘소리의 영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자연스레 후속작을 기대할 수 있었고, 할리우드는 즉각 후속작을 만들어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전작의 성공에 대한 자신감과 고민, 그리고 우려로 시작했다. 보통 이러한 ‘깜짝 성공’의 뒤를 이어 선보이는 후속작들은 비슷한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전작에 비해 넉넉한 제작비와 쾌적한 제작환경 덕분인지 세계는 확장되고 볼거리가 많아진다. 말하자면 보다 ‘오락적’으로 변하고 보다 ‘할리우드식’에 가까워진다. 확장된 세계, 화려한 액션, 증폭된 스케일은 관객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요소다. 하지만 반면에 전작이 지니고 있던 장점들은 무시되거나, 소홀해지기 쉽다. 원초적 재미를 잃고, 고유한 맛을 잃어버린 채 대중의 입맛에 사로잡힌다. 혀에 닿는 순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그 개성 넘치던 맛이, 조미료로 범벅된 평범한 감칠맛으로 변질되는 순간에 우리는 익숙한 배신감을 맛보게 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변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후속작이 늘 그러하듯, 세계관을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외계에서 나타난 괴생명체. 그들이 처음으로 지구를 덮친 ‘첫 번째 날’을 묘사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전작에서 익숙했던 마을을 배경으로 괴물이 날뛰며 인간들을 도륙하는 모습은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장면이 바뀌고,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가장을 잃어버린 가족은,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긴장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작은 일상생활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 실수, 소음들이 주된 긴장의 요소였다. 물건 하나만 떨어뜨려도, 영화는 팽팽한 긴장으로 관객을 둘러쌀 수 있었다. 하지만 후속작에서 그런 긴장을 계속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상황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더 큰 긴장을 줄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괴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이 깎여 나가는 건, 안타깝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떤 괴물이든, 악령이든, 알면 알수록 무섭지 않다. 공포의 본질은 ‘미지’에 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영화는 괴생명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었다. 이제 주인공 일행은 괴생명체에 대항하는 방법도 알고, 관객들은 괴생명체가 어떤 위험과 약점을 지녔는지 알고 있다. 이미 알아버린 만큼 두려움은 희석된다. 결국 영화는 이러한 태생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서사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생존의 이야기였다면,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자립의 이야기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일어서는 한 소녀의 서사이기도 하다. 영화는 가장을 중심으로 뭉치는 고전적인 할리우드 서사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중심에 세운다. 아이들은 더이상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가 아닌, 주체적인 의지를 지니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답을 구하기 위해 일어서는 주요 인물로 그려진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빛을 발한다. 에밀리 블런트는 극의 중심에서 약간 빗겨서 있지만 전작 못지 않은 연기를 펼치고, 새로 합류한 킬리언 머피는 에밋 역을 맡아 리건(밀리센트 시몬스 분)의 조력자로 활약하며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하지만 영화를 끌고 나가는 건 두 명의 어린 배우들이다. 실제로도 청각장애를 지닌 밀리센트 시몬스는 언제나 그렇듯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깊은 표현을 해내는 배우다. 이번 작품에서는 또렷하게 보이는 신체적 성장만큼이나 성숙해진 연기력이 돋보인다. 마커스 역의 노아 주페 역시 성인 연기자 이상으로 활약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자립의 서사와 새로운 위기를 그려낸 부분은 좋았지만 결말은 시시할 정도로 평이했다. 고민이 부족해 보이는 선택이다. 마지막까지 괴생명체가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이미 공략법을 알아낸 관객들에게 필요한 건, 관객의 상상을 넘어설 새로움이다. 다른 종류의 크리쳐의 등장, 혹은 크리쳐의 적응 또는 진화와 같은 변수들이 등장했다면 이야기는 뻔한 전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캐릭터들을 여기저기 떨어뜨린 후 교차 편집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속도를 내는 데에 집착하느라 세밀한 연출을 놓치는 부분도 아쉬웠다. 무엇보다 괴생명체의 드러난 약점들과 새로 등장한 법칙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요소다. 섬에서 평화롭게 삶을 영위하는 생존자들의 모습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처절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성공에 힘입어 후속작도 흥행에는 성공해 자연스레 3편 제작에 돌입할 분위기다. 시리즈의 성공을 위해서 잊어서는 안 되는 건, 바로 서스펜스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어느 순간부터는 소리가 무섭지 않았다. 소리의 영화가 종국에는 소리를 잃어버렸다.

 

 


 

* 《쿨투라》 2021년 7월호(통권 8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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