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Theme] 이우정표 드라마 공식
[8월 Theme] 이우정표 드라마 공식
  • 김은경 (백석예술대학교 공연예술학부 교수)
  • 승인 2021.07.30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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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연출자인 신원호 PD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우정 작가에 대해 각별한 소회를 피력했다.

  “모든 스태프들에게 감사하죠. 그중에서 한 명을 꼽으라고 하면 이우정 작가겠죠. KBS 예능 때부터 같이 일을 했으니까. 벌써 15년 정도 됐네요. 드라마는 대본이 다예요. 대본을 가지고 저는 그냥 그림으로 만드는 사람일 뿐이지요. 재밌게 따뜻하게 글을 쓰는 이우정 작가를 만난 것은 기적이에요. 만약 그 인연이 없었다면 아마 연출자인 신원호도 없었을 거예요.”

  이우정 작가의 글이 지닌 “재밌게”와 “따뜻하게” 가 무엇이기에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는 “기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드라마의 공을 오롯이 이우정 작가에게 돌렸을까.

  ‘리얼’이라는 만능키

  2000년 MBC 〈백만송이 장미〉를 통해 처음 방송에 입문한 이우정 작가는 20년 동안 ‘이우정표 예능’ 이라는 독보적 장르를 구축해냈다. KBS2 〈1박 2일〉, KBS2 〈남자의 자격〉, tvN 〈꽃보다 할배〉, tvN 〈삼시세끼〉, tvN 〈윤식당〉 등 그녀의 여러 작품은 ‘국민예능’이라고 지칭될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성공의 비결은 예능프로그램의 최대 무기인 ‘리얼’, 즉 ‘사실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있다. 먼저 주어진 배경과 상황부터가 ‘리얼’이다. 실제로 여행을 떠나고, 합창 대회를 준비하고, 직접 요리를 만들어 손님에게 제공하는 식당을 운영한다. 구성과 캐릭터 또한 각각의 상황에 대처하는 출연자 개개인의 즉발적 행동과 말로 대부분 채워진다. 그로 인해 시청자들은 그 동안 익히 봐왔던 개그맨 혹은 가수와 배우로서가 아닌 인간 강호동, 인간 이순재, 인간 윤여정을 만나게 된다. 출연자와 시청자와의 심정적 밀착, 그것은 진정성으로 이어져 동시대를 사는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노하우는 이우정 작가가 집필한 여러 드라마에서 재미와 감동을 이끌어내는 만능키로 사용된다.

  이우정 작가는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실제 의사들의 생활을 그리는 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의학 드라마들이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괴짜 의사의 불운이나 병원 내 권력의 암투 같은 극적 요소를 서사의 중심에 놓았다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사들의 사실적이고 평범한 일상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이른 아침부터 수술하고, 진료하고 그 틈틈이 사랑도 하고, 친구도 만나는, 가끔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때때로 한계를 느끼는 의사들의 ‘리얼’한 삶. 여기에 실제 현장을 방불케 하는 수술장과 각종 장비의 위치까지 세심하게 재현되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사 들도 인정한 의학드라마”라는 평까지 받고 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의사들의 일상이 이우정 작가의 손을 거쳐 ‘리얼’하게 재구성되면서 환자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치유하는 다섯 명의 진정한 의사를 비로소 시청자들은 만나게 되는 것이다.

  덜어냄의 미학

  막장드라마가 득세하던 2010년대 초반, 이우정 작가는 출생의 비밀과 불륜, 기억상실과 같은 자극적이고 황당한 막장코드를 과감히 덜어낸 드라마를 선보였다. 첫사랑과 그 풋풋한 설렘이 가득한 〈응답하라1997〉을 시작으로 대학생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응답하라1994〉, 가족과 이웃에 대한 향수로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른 〈응답하라1998〉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이우정 작가는 첫사랑, 친구, 이웃, 가족과 같이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마음 한 켠을 묵직하게 채워주는 ‘이우정표 드라마’를 체계화했다.

우정 작가(왼쪽) 포스터. 출처_tvN

  이우정 작가의 덜어냄의 미학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더욱 확장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메디컬이라는 장르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는 최근 장르 드라마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빌런’이 등장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오래된 이야기 문법인 선과 악의 ‘대결’과 ‘갈등’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주요 등장인물들의 ‘선의’이다. 가난한 환자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하고 월급마저 기부하는 의사,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보호자를 위로하기 위해 말동무를 자처하는 담당 레지던트 등 그동안 의학드라마에서 쉽게 보이지 않은 의사들의 따뜻한 모습이었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이 “판타지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 었지만, 자문위원들이 밝혔듯 이우정 작가가 만든 에피소드는 실제 사례를 기본으로 삼아 약간의 구성을 더했을 뿐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울수록 행복해진다’라는 가치를 담은 미니멀라이프가 다시 유행이다. 하지만 주말 안방극장은 막장계의 트로이카인 김순옥·문영 남·임성한 작가의 귀환으로 인해 숨 막히는 현실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일까. 자가격리의 시대, 이우정 작가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백신 같은 희망으로 다가온다.

 

 


 

* 《쿨투라》 2021년 8월호(통권 8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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