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Theme]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미련: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너에게 난, 나에게 넌〉
[8월 Theme]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미련: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너에게 난, 나에게 넌〉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1.07.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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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에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가 방영되고 있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에게도 그 소식이 매주 들려올 만큼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는 시리즈이다. 시리즈는 의사들의 업무 이면에 가려진 그들의 사소한 생활상과 인간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품 내의 인물들이 병행하는 직장인 밴드의 활동을 보여주는 음악극의 형식을 이용한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흥행을 이끄는 최고의 요인일 것이다. 99학번 동기들이라는 설정을 십분 활용하면서 당시에 유행했던 곡들을 극의 분위기에 맞춰 재소환하고, 극 중 인물들로 구성된 밴드를 통해 직접 입으로 불러내게 함으로써 극과 현실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입체적인 매력을 선사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실제로 온라인 콘서트를 통해 밴드의 모습을 현실에 내어놓았는데, 실시간으로 30만 명이 지켜볼 만큼 엄청난 열기를 자아냈다.

  그 인기의 중심에 바로 밴드 ‘자전거 탄 풍경’ 원작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보았을 법한 대표적인 포크 음악이다. 그렇다면 세대를 넘어서서 이 곡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먼저 ‘캐논Canon 진행’이라는 약간의 음악적 지식이 필요하다.

ⓒtvN

  한국에서 유행하는 대중가요의 70퍼센트 이상이 이 ‘캐논 진행’이라는 코드의 진행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진행은 ‘머니 코드’라는 이름으로 자주 다큐멘터리에 등장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이 코드에 맞춰서 멜로디를 붙이면 ‘평타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비틀즈의 〈Let it be〉라든지,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 같은 메가 히트곡 역시 캐논 코드 진행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캐논 코드가 성공을 보증하는 이유, 다시 말해서 대중들에게 익숙한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삶에서 겪게 되는 희로애락의 바이오그래피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G코드로 시작하는 캐논 진행 기준으로 1번 코드와 2번 코드는 각각 G와 D이다. 그리고 3번과 4번에는 Em7과 Bm7이 위치한다. 그런데 이 Em7과 Bm7에는 재미있는 비밀이 숨어있다. Em7의 구성음인 ‘미, 솔, 시, 레’에서 ‘미’를 떼면 G의 구성음인 ‘솔, 시, 레’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4번의 Bm7에서 맨 앞에 붙은 근음인 ‘시’를 떼면 D의 구성음인 ‘레, 파#, 라’가 등장한다. 따라서 1번에서 4번까지는 사실 그 코드의 뼈대가 G-DG-D의 반복 형태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3번과 4번 자리에 Em7과 Bm7이라는 마이너 성향을 지닌, G와 D의 친척 형태의 코드들이 들어옴으로써 슬픈 분위기가 더욱 강조된다.

  마찬가지로 5번과 7번을 살펴보자. 7번의 Am7에서 근음인 ‘라’를 제외시키면 ‘도, 미, 솔’ 즉, C가 나오게 된다. 7번을 연주할 때 C로 연주해도 노래를 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슬픈 음색인 마이너 성향의 Am7으로 변주되면서 D7의 희망찬 마무리 직전에 일종의 위기와 긴장을 심어 주는 것이다. G와 D의 힘차고 밝은 메이저 코드로 시작되었던 진행은 Em7와 Bm7에서 마이너의 긴장을 맞이하고, 다시 C와 G의 밝은 느낌으로 돌아왔다가 Am7가 주는 위기의 구덩이를 잠시 지나 다시 D7의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희망과 성공 사이사이에 위치한 굴곡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바이오그래피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가? 이러한 형식적 움직임을 품고 있기 때문에 ‘캐논 코드’가 우리에게 익숙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캐논은 정전(正典)이라는 뜻이다. 시대가 변해도 어떤 절대적인 규범으로 남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삶의 굴곡 속에서 얻는 희로애락은 인류의 어떤 세대라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정전과 같다. 이것이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세대를 넘어서도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 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그런데 가사의 화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캐논이 의미하는 ‘변하지 않음’이 실은 불가능한 것임을 노래한다. 화자는 “영원의 약속이 되어(1절)”, “영원토록 빛나고 싶어(2절)”와 같이 영원을 지속적으로 욕망한다. 그러나 흘러가는 것 중에서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화자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지속적으로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영원토록 빛나고 싶어”와 같은 자신의 바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을 표현하는 상황은 지금 자신이 그렇지 않은 상태이거나, 무언가를 열망하지만 현실과의 간극이 있을 때 발생한다.

  “그림처럼 남아주기를”에서 ‘그림’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간은 흘러가기 때문에 그 어떤 순간도 정지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림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그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한 형태 그대로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정지된 사물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화자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림이라는 단어는 그 순간을 정지된 상태로 남기고 싶다는 화자의 욕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그림은 해가 뜨고 있는 순간의 희망찬 기억이라고 할 수 없는 “해질녘 노을”과도 같은 그림이다.

  흘러가고 잡을 수 없는 시간 속에서 화자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바람을 외쳐본다. 자전거 탄 풍경의 원작에서 1절 이후에 등장하는 후렴구는 하이톤의 보컬과 로우톤의 보컬이 화음을 이루며 진행된다. 특히 후렴 파트에서 하이톤의 단단한 발성을 지닌 김형섭의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들보다 확연하게 들어온다. 이 특유의 하이톤은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일종의 절규로 다가온다.

  삶의 굴곡이 고스란히 그 형식에 담겨 있어 세대를 아우르는 정전이 된 캐논 진행, 그리고 그 변하지 않는 정전 속에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음”을 붙잡으려는 바람을 담은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것과 변화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지나감을 붙잡고 싶은 우리의 삶. 그 둘의 미묘한 간극 속에서 우리는 과연 ‘슬기로운 생활’을 하고 있을까?

 

 


 

* 《쿨투라》 2021년 8월호(통권 8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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