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다: 서울 김종영미술관 & 조각가 김종영
[미술관 탐방]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다: 서울 김종영미술관 & 조각가 김종영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1.08.0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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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국·공립, 사립미술관 분포를 보면, 전체 50퍼센트가 서울과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예술대학까지도 밀집되어 있어 그야말로 한국문화예술의 중심지이다. 그러한 만큼 수도권 미술관은 일반 대중에게 홍보나 기사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어 조금의 발품만 팔면 다채로운 미술관의 다양한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미술관 탐방은 오랜만에 KTX를 타고 서울행, 김종영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 홈페이지에 있는 ‘오시는 길’을 참고해,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길음역에 하차 후 3번 출구 앞 7211버스를 이용하여 평창동 북악터널을  지나 평창동 롯데아파트 정류장에 내린 다음 북악정 골목으로 올라가니 언덕 좌측으로 미술관 입구가 보였다. “우와∼!!” 북악정 골목에서 바라본 산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비 그친 후의 산자락은 깨끗한 공기 탓에 너무나 가까이 서있다. 짙은 녹음과 큰 암석, 운무까지 어우러져있어 마치 조선화집에서 본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諸色圖)〉의 실제 배경을 보는 듯했다. 북악산도 인왕산도 북한산의 한 자락인지라 그리 보일만도 하다. 

  예로부터 북악산 기슭은 왕궁이나 관청이 가깝고 경치가 좋았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이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시문과 그림으로 남겼다고 한다. 현재도 이곳은 크고 작은 미술관과 작가들 작업실이 밀집해 있어 ‘미술관 산책’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우성(又誠) 김종영(1915-1982)은 한국 현대조각의 기틀을 마련한 1세대 조각가이다. 서양의 모더니즘과 동양의 무위자연적 인식을 접목한 추상조각을 선보이고, 깎되 깎지 않은 상태의 ‘불각(不刻)의 미’를 구현한 예술가이다. 또한 1948년 서울대학교에 미술대학이 창설되어 교수로 재직하면서 1980년 정년 퇴임하기까지 평생을 창작과 후진 양성에 힘을 쏟은 교육자이기도 하다.

  김종영미술관은 이러한 그의 업적과 예술혼을 기리고 조각에 전념하는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기 위해 2002년 12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문을 연 조각 전문 미술관이다. 북악산 기슭 경사면에 지어진 미술관은 두 채(본관과 신관)의 건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관람객은 마치 계곡을 따라 유동하는 계류(溪 流)인 양 공기, 물, 바람의 유연한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전체 400평 규모에 4층의 건물인 미술관 본관 ‘불각재(不刻齋)’는 깎지 않는 조각가, 즉 ‘불각도인(不刻道人)’이 되길 바란 김종영 작가의 염원이 담긴 공간이다. 각 전시실마다 벽을 두지 않아 탁 트인 하나의 전시공간으로, 마치 남해의 다랑논처럼 얕은 계단으로 완만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위에서든 아래서든 전시장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관람자가 서 있는 위치와 보는 각도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인다. 이것이 바로 평면 회화작품과는 다른 입체작품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신관인 ‘사미루(四美樓)’는 우성의 본가인 경남 창원의 사랑채 ‘사미당’에서 따온 별칭으로, 2010년에 본관과 연결되게 증축한 건물이다. 사미루의 건물 배치는 기존 건물과의 동선 연결을 가능하게 하면서 대지를 감싸 안은 형상을 취하도록 의도하여 각 건물들의 전시장과 마당이 서로 다른 특성을 간직한 채 연결되어 관람객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공간의 경험을 연출하였다고 한다. 3층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각 전시실이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어서 하나의 공간이 다음 공간을 보여주는 연계된 전시의 흐름을 부여하고 있어 깔 끔하고 소박한 느낌이다.

  특히 본관과 연결된 통로로 인해 생긴 중정(中庭) 안마당은 큰 조각상과 자작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고, 안마당에서 본관 앞마당으로 통하는 계단 길 끝에 마주한 아기자기한 돌다리는 깜짝 놀랄 정도의 반전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기존 건물의 유기적인 배치를 통하여 숨은 듯이 고즈넉한 분위기로 자리 잡고 있는 김종영미술관. 출입구가 너무 많아 어느 쪽에서부터 전시장을 둘러봐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전시는 처음 시작되는 곳부터 봐야 전시 흐름을 알 수 있어 본관 입구 안내 데스크를 찾았다.

  현재 미술관에서는 개관 20년을 맞아 전관에서 특별전 《김종영의 통찰과 초월, 그 여정》전을 진행하고 있다. 대자연의 성실함을 본보기로 삼은 김종영 작가의 작품 여정은 ‘동양의 뜻을 중히 여기는 사의(寫意) 전통을 기반으로 동서양을 관통하는 추상이라는 형식을 토대로 우리의 생명 미학을 조형하고자 한 탐구의 여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그가 남긴 드로잉 및 회화 작품과 글, 그리고 서예작품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작품제작을 할 때 어떻게 전개해나갔으며 어떤 탐구와 실험을 했는지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실증적으로 살펴보고자 전시를 기획하였다고 한다.

  우선 본관 1전시실은 우성 김종영의 사진과 연보로 이뤄져 있다. 김종영 조각가는 191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유교적인 교육을 받았고 한학과 서예를 통해 예술세계에 입문하였다. 특히 서예는 평생 그의 조형관을 형성하는 근저가 되었으며 심신을 수련하는 필수적인 활동으로 작용하여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새, 9×7×55.5cm, 나무, 1950년대 초

  본관 2전시실부터는 제작 시기별로 구성된 김종영의 대표 작품들이 그가 직접 쓴 서예작품과 작품소개 글로 전시되어 있다. 2전시실은 작가가 『도덕경(道德經)』의 한 구절을 서예로 임서(臨書)한 작품과 1953년 제2회 국전에 출품한 한국최초의 추상조각품인 〈새〉가 전시되어 있다. 〈새〉는 작품 제목 때문에 서양 현대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브랑쿠시의 작품 〈공간의 새〉와 연관되어 언급되곤 했지만, 동양의 우주관과 인간세계의 관계를 표현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근원으로 제작한 작품이라 한다.

  세상에서 지극히 부드러운 것은 세상에서 지극히 단단한 곳에서 마음대로 누비고 다니며, 형체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곳으로도 들어간다. 이로써 나는 무위(無爲)의 유익함을 알겠으니, 말 없는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은 세상에 어떤 것도 이에 미치지 못하노라.
  -『도덕경』 제43장 천하지지유(天下之至柔) 중에서

  작품과 함께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는 작품소개 글은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이해시키고 보는 관점을 확장시켜주었다.

전설, 65×70×77cm, 철, 1958

  1958년은 김종영 작가가 본격적으로 추상조각을 제작하고 작품 명제를 ‘작품‘으로 했던 시기로, 3전시실은 그 시기 대표작 4점이 전시되어있다. 점토로 제작해서 하얀 시멘트로 떠낸 작품 〈생성〉은 생성의 역동성에 방점을 두고 제작한 작품이며, 〈작품58-8〉은 이 작품을 더 추상화한 작품이라 한다. 작품 〈작품58-8〉은 음·양이 교감해서 만물이 조화롭게 생성한다는 의미의 작품으로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드러냈다고 한다. 〈전설〉은 창원 생가 별채인 ‘사미루(四美樓)’의 독특한 누각 형태의 문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기둥의 철선과 파편이 선이나 면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추상적 표현주의 경향을 보여준다. 이 시기는 나무, 브론즈, 철제 등 재료의 비정형성을 추구한 작품들로 형태의 상징성이 배제되고 대상에 대한 관심보다는 면이나 볼륨 등의 조형원리와 재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64년은 김종영이 그동안의 실험을 종합해서 자신의 추상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로, 4전시실에는 당시에 작업한 누드 드로잉 작품 2점과 조각품 4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모두 『주역』의 음양대대(陰陽對待)와 음양오행(陰陽五行)사상, 64괘(卦), 천지인 삼재, 천원지 방(天圓地方) 등의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누드 드로잉 작품 〈D-0108〉은 같은 포즈의 모델을 앞과 뒤쪽에서 크로키(croquis)한 것을 한 화면 위아래로 배치하여 자유분방한 선묘와 구도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역시 주역의 산수몽괘(山水 蒙卦: 위는 산이고 아래는 물인 괘)를 염두에 두고 드로잉한 것 으로, 이 작품 바로 아래 배치된 〈작품70-2〉 작품과 유리 너머의 개울 풍경이 같이 어우러져 또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나무에 색을 입힌 〈작품65-4〉는 착색을 통해 공간에서의 효과를 검토하고자 시도한 첫 작품으로, 작가의 작업노트에는 “원재(原材)에 착색을 하게 되면 재료의 특색을 소멸시킨다. 그러나 작품은 공간에서 힘을 더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추상미술을 접하고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지역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과의 조화 같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찾았고, 30여 년간의 작업 여정은 이러한 과제에 대한 탐구와 실험의 연속이었다.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을 개최하며 쓴 자서 (自書)에서

  이 시기의 조각 작품들은 비움과 채움이라는 서예의 조형성 을 조각의 입체적 조형으로 환원시킨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자 연의 재료가 본래 가진 형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순수한 추상 적 작업에 몰입하였다. 유기적인 형태를 지닌 추상조각을 심화 하면서도 전체적인 구성이 한 몸을 이룬 생명체처럼 긴밀하고 활발한 구성을 보이는 기하학적인 조각들을 제작한 시기이다.

  본관 4전시실에서 신관으로 연결된 통로로 이동하면 신관 3 전시실이 나온다. 이곳의 전시작품은 김종영의 말기 작품으로, 그가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라고 말한 바와 같이 극도로 표현이 절제된 ‘불각의 미’를 살필 수 있다. 자연석에 마치 두 개의 유기체 덩어리가 합쳐져서 하나의 돌이 된 듯 보이도록 홈(線)을 낸 작품 〈작품79-14〉 , 나무 조각 하나만 붙여 코 를 만들고 눈·귀와 입은 생략한 자각상(自刻像) 〈작품80-5〉 , 통 나무를 반으로 쪼개서 어긋나게 포개 놓은 〈작품80-6〉 등 별로 가공하지 않은 듯 보이는 작품들로 덜 깎은 것 같은 자연의 조형세계를 구축하였다. 즉, 나무와 돌 등 원재료가 지니는 본성적 진리인 중량감과 촉각적 재질감을 거의 손대지 않고 자연적인 물성을 그대로 살려 표현한 ‘불각의 조각’들이다.

드로잉, 34×42cm, 연필·수채, 1961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절대적인 미를 나는 아직 본적이 없고, 그런 것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것은 전지전능의 조물주에 속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개성이나 독창성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갖기 보다 자연이나 사물의 질서에 대한 관찰과 이해에 더욱 관심을 가져왔다
  -김종영, 『초월과 창조를 위하여-조각가 김종영의 소묘와 산문』 중에서

  가장 활발한 작업으로 인위성을 배제하고 형태의 근원을 추구했던 작가의 예술론을 완성한 시기이다. 신관 2층 2전시실은 김종영이 1950-60년대 중반까지 일본어로 출판된 소장 책들로 진열된 아카이브 공간으로, 당시 최신 서구 미술 담론과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1전 시실은 본관 3전시실에 전시된 작품들이 어떤 변주를 거치면서 작품화되었는지,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조각품 과 초기 에스키스(esquisse)한 드로잉과 서예작품, 설명글까지 상세하게 구성되어있다. 이렇듯, 이번 전시는 김종영의 조각 작품뿐만 아니라 드로잉및 서예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하나의 추상조각품을 완성하기 까지의 그 과정을 알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결코 접근하기 쉽 지 않던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친근하게 마주할 수 있어서 관람자로서 유익한 경험을 하였다.

  ‘무한한 가치’ 이것은 인간의 자각이다. 인생은 한정된 시간에 무한의 가치를 생활하는 것. 인생에 있어서 모든 가치는 사랑이 그 바탕이다. 예술은 사랑의 가공. 예술은 한정된 공간에 무한의 질서를 설정하는 것. 예술의 목표는 통찰이다.
  -김종영, 『인생 예술 사랑-조각작품집』 중에서

  ‘예술의 목표는 통찰’이라고 한 김종영 조각가.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었던 예술인.

  사색과 통찰을 통해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여 단순하면서도 유기적인 형태의 조형예술을 구축한 한국현대조각의 선구자.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 온 김종영의 삶과 예술은 오늘날에도 큰 감동으로 다가오고 추상조각 이후에 나타난 물질재료와 작품 구성의 구조를 지향하는 많은 후배 조각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종영 작가가 자작(自作)한 글을 서예로 작품화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와 옮겨본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만 그림을 알아보는 것은 더욱 어렵고, 세상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많으나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만약 그림을 그리는 자가 그림을 알아보는 식견을 모두 갖게 된다면, 그림의 수준이 반드시 성인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신해(辛亥, 1971)년 입춘에 각도인(刻道人) 김종영

 

 


출처

김종영미술관 http://kimchongyung.com/
「김종영의 통찰과 초월, 그 여정」 김종영미술관, 2021
「초월과 창조를 위하여」 김종영, 열화당, 1983
「인생 사랑 예술」 김종영, 2002, 김종영미술관

 

* 《쿨투라》 2021년 8월호(통권 8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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