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직지』에서 구텐베르크까지’ 프로젝트: 유타대학교 매리엇 도서관 랜디 실버만 & 박지영
[INTERVIEW] ‘『직지』에서 구텐베르크까지’ 프로젝트: 유타대학교 매리엇 도서관 랜디 실버만 & 박지영
  • 김준철(미주문인협회 회장, 본지 미주특파원)
  • 승인 2021.08.07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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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 한국인이라면 교과서를 통해서든, 방송을 통해서든 이에 대해 한 번 정도는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역사와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직지』가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 동양문헌실 금고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직지’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 분도 있을 테고 말이다.

  말을 담는 그릇이 글이라면, 글을 담는 그릇이 책일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이 ‘인쇄술’이다.

  필자는 우연한 계기로 LA 문화원에 근무하는 박지영 씨를 최근에 만나 『직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책과 금속활자 인쇄 기술에 담긴 문화·역사적 의미를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분들의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은 ‘The From Jikji to Gutenberg(『직지』에서 구텐베르크까지)’였다. 제목을 듣는 순간 관심이 생겼고,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분이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유타대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는 기록보존 업무 담당자 랜디 실버만이었다. 이번 호 지면에서는 박지영씨, 그리고 랜디 실버만(Randy Silverman) 씨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다뤘다.

  김준철(이하 준) 급하게 인터뷰 요청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바쁘신 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박지영(이하 박) 아닙니다. 중요한 사업임을 공감해주시고 이렇게 알릴 기회를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준 그럼, 선생님 소개부터 먼저 해 주시겠습니까?

  박 네, 저는 2019년부터 LA 한국문화원에서 문학사업 분야 담당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원래 한국에서 통역사 겸 캘리그래퍼로 10여 년 정도 활동하다가 2019년에 미국으로 이민 온 후 문화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관련 통역을 주로 하였고, 한글 캘리그래피를 해온 경력도 문화원 업무에 크고 작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준 예전에 《쿨투라》 2020년 1월호에서 ‘붓끝에 맺혀진 검은 이슬’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선생님을 인터뷰한 기사를 다뤘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럼 이번 ‘The From Jikji to Gutenberg’ 프로젝트에 선생님께서 참여하게 된 과정에 대해 먼저 들어볼까요?

  박 하루는 제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유타대학교 도서관에서 기록보존업무를 담당하는 랜디 실버만 씨가 저에게 『직지』에 대해서 질문할 게 좀 있다고 하셨던 거죠. 그래서 『직지』에 대해서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 불교 철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직지』에 관한 기본적 내용은 알고 있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랜디 씨가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로, 본인이 직지와 구텐베르크 성서에 사용된 금속활자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한국의 공식 기관과 협업이 필요한 상황이니 LA 한국문화원에서 도와줄 수 있겠냐고 저에게 요청했습니다.

  준 아무래도 선생님은 캘리그래피를 하셔서 일반인보다는 『직지』에 대해 좀 더 관심이 있으셨을 테니, 절묘하게 인연이 닿은 것 같네요.

  박 네, 맞아요. 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요청을 워낙 많이 받는 데다, 연간 사업 일정이 이미 짜여 있어 바로 답을 드릴 수는 없었죠.

  준 맞네요. 문화원에는 수많은 협업이나 지원 요청이 쇄도할 테니 선뜻 답을 주진 못하셨겠네요.

  박 이후에 정해진 사업들로 고민이 많이 되었지만, 제안서를 유심히 살펴보고 여러 차례 통화가 오고 간 후에 점점 더 그 사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는 랜디 씨가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 팀을 꾸려 진행해 온 ‘The From Jikji to Gutenberg’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물을 그와 함께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준 랜디 실버만의 ‘The From Jikji to Gutenberg’ 프로젝트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 랜디 실버만의 설명에 의하면, 그를 주축으로 약 30명의 북미, 유럽 지역 해당 분야 전문가가 연구 패널로 참가했다고 해요. 미국 국회도서관 기록보존과 과장 엘머 유스만(Elmer Eusman), 과학적 연구 분석을 위해 섭외한 미국 내 다중분광영상 권위자 마이클 토스(Michael B. Toth), 『직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실무를 맡았던 이승철 박사(ICDH, UNESCO/청주고인쇄박물관) 등을 대표적인 참여자로 언급할 수 있겠네요.

  준 다양한 국적을 가진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셨다니 더욱 기대됩니다. 인류 역사에 혁신을 가져온 인쇄술, 특히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에 관한 이야기가 담기는 것인가요?

  박 물론 일찍이 동아시아 지역에서부터 발달한 인쇄술에 대해 조명하는 걸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직지』는 독일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0년 이상 먼저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도 면에서 저평가되어있죠. 그런 『직지』를 이번에 새로운 시각으로 다루게 된 것이죠.

  준 그 ‘새로운 시각’에 대해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박 일단 가장 큰 가닥은, 구텐베르크 성서와 직지를 병렬 연구함으로써 서구 중심의 세계 인쇄 기술사에 신선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준 그렇군요. 미국과 유럽 등지의 기록 관련 학계 종사자들은 『직지』가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먼저 제작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무구정광대다나리경』)도 한국에서 제작되는 등, 동아시아에서 인쇄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해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들의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구인들이 구텐베르크 성서는 알아도 『직지』는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 그렇습니다. ‘The From Jikji to Gutenberg’ 프로젝트는 구텐베르크 성서와 『직지』 인쇄에 이용된 금속활자 제작방식의 유사점 및 차이를 현대과학의 힘을 빌려 역추적해 봄으로써 동서양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어 인류 역사에 혁신을 가져온 금속활자가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에서 재평가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준 그럼, 영상은 완성된 건가요?

  박 네. 현재 완성된 영상은 LA 한국문화원 유튜브 및 소셜미디어 페이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LA 한국문화원 유튜브 채널은 https://www.youtube.com/user/VideoKCCLA 입니다. 현재 유타대학교 매리어트 도서관에서도 상영 중이며, 영구 상영할 예정입니다. 유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공원도 많이 있는데, 혹시 유타에 여행 갈 계획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유타대학교 도서관에 들러보실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준 저도 꼭 가보고 싶네요. 미국의 대학교에서 한국의 인쇄술 발전 양상이나 『직지』의 놀라움이 담긴 영상을 영구 상영한다니,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이어지는 행사나 프로젝트가 더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박 사실 이번 영상은 ‘The From Jikji to Gutenberg’ 프로젝트의 트레일러 성격의 협업 영상이었습니다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직지』를 만들고 제작한 백운화상 스님의 일생과 『직지』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시리즈도 제작해 볼 생각입니다. 또한 2027년에는 직지 65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 국회도서관 등 미국 내 주요 도서관에서 관련 전시 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준 그 어떤 문화 사업이나 지원 사업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긴 시간과 계획, 그리고 홍보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길 바라며 마음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박 감사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1377년 고려 우왕 때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은 목판으로 인쇄한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으로, 인쇄한 금속활자본 두 가지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금속활자본으로 여러 경전과 법문에 실린 내용 가운데 좋은 구절만 뽑아 편집한 불교 서적이다. ‘직지심체’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나온 말로,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직지(直指)’란 말 그대로 ‘곧바로 가리키다’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아마도 보이는 사물보다는 바라보는 시선에 무게를 더 두는 것, 다시 말해 우리가 반드시 봐야 할 것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는 뜻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외세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켜야 했거나 지키지 못했던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으나,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방법이나 태도에 있어서 적극적이지 못했던 부분도 없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세계의 이웃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대신 찾아 주기도 한다. 그것을 왜 잃어버렸는지, 누가 떨어뜨렸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이웃들이 찾아준 문화유산들을 또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역사를 부지런히 연구하고 우리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자세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문화 속의 역사, 역사 속의 문화는 우리의 눈에 잘띄지 않는 일상의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LA 한국문화원 유튜브 채널에 방문해, 잃어버린 우리의 한 페이지를 감상하고 『직지』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다.

  아래는 직지 관련 랜디 실버만 영문 인터뷰 원문의 일부이다.

Randy Silverman

  Q: What was your personal motivation to start a project like this?

  A: In 2006, I was invited to address a UNESCO conference called “Preservation and Access to D o c u m e n t a r y Heritage in Asia and the Pacific.” This educational meeting was held near the Cheongju Printing Museum where I first learned about Jikji simche yojeol and saw the restored Heungdeok Temple where the book was printed in July 1377. Discussions with colleagues from UNESCO, the Cheongju Printing Museum, and the Gutenberg Museum opened my eyes to the reason I had never heard of Jikji, and since that time I have wanted to learn more about this international treasure and share with others in the West the little-known fact that printing from cast-metal type originated in East Asia.

  Q: What's fascinating about Jikji other than that it's the oldest extant book printed with movable metal type?

  A: The From Jikji to Gutenberg project’s inspiration is a desire to help the Korean people address an injustice. In the Jewish tradition, this can be accomplished through the act of helping to repair the world (tikkun olam). The goal of our collaboration is to tell a more complete and global story about the creation and dissemination of printing, one of humanity’s most significant inventions.

 

 


김준철
《시대문학》 시부문 신인상과 《쿨투라》 미술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꽃의 깃털은 눈이 부시다』 『바람은 새의 기억을 읽는다』가 있음. 현 미주문인협회 회장 겸 출판편집국장. 《쿨투라》 미주지사장 겸 특파원. junckim@gmail.com

 

* 《쿨투라》 2021년 8월호(통권 8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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