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제26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 시작과 오늘, 그리고 미래: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이사장
[INTERVIEW] 제26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 시작과 오늘, 그리고 미래: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이사장
  • 손정순(본지 발행인)
  • 승인 2021.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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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제1회 영화제 개최를 시작으로 올 2021년 제26회를 맞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 나아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되었다. ‘문화의 불모지, 부산’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꿈꾸었고, 이를 실천에 옮긴 장본인, 그는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 프로그래머, 부집행위원장, 집행위원장을 거쳐 현재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 10월에 개최할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준비에 한창인 이용관 이사장을 만났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의 구석구석부터 아시아 여러 도시와 연결, 취향의 공동체를 확산

  손정순(이하 손)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뵙게 되니 새롭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이용관(이하 이) 요즘은 얼마 남지 않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올 영화제는 초심으로 돌아가되 취향의 ‘공동체’에 방점을 두고자 합니다. 영화보기의 공공적 성격을 다시 강화하고자 기존 영화제의 주요 상영관에서 뿐만 아니라 부산의 구석구석에서 마을영화관을 운영하려고 해요. 영화를 통한 취향의 공동체를 싹틔우고 영화제가 개최되면 부산 곳곳이 영화로 들썩거리기를 희망해봅니다. 해외로도 확장할 계획인데요. 이제 영화는 필름이 아니라 DCP로 상영이 됩니다. 이를 적극 활용하여 BIFF in ASIA 프로그램을 준비 중 입니다. 동시간대에 부산과 아시아의 각국의 도시가 연결되어 함께 영화를 보고 온라인으로 실시간 감독과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자리도 기획 중입니다. 이미 작년에 태국 방콕, 베트남 호치민 두 도시와 연결하여 동시간대에 함께 영화를 보고 ‘아시아의 관객과 한국의 관객이 대면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의 마을 구석구석부터 아시아의 여러 도시와 연결하여 취향의 공동체를 확산시켜 나갈 것입니다.

  1996년, 부산이라는 도시의 빈 페이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지난 (사)한국잡지협회 발행인 세미나에서 들려 주신 특강 〈뉴노멀시대, K-미디어의 진화〉는 정말 유익했습니다. 1996년, ‘부산’이라는 빈 페이지부터 시작하여 ‘뉴노멀’시대, 지금의 빈 페이지를 언급하 셨는데요. 먼저 ‘문화의 불모지, 부산’이라는 빈 페이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기 전인 1990년대까지는 문화에 있어서 빈 페이지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부산이 대도시로 성장하게 된 매우 실질적인 계기는 사실 한국전쟁이었죠. 부산 일대는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이 시기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고, 몰려든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피난 도시가 부산의 정체성이었으니 문화의 기운이 흥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거친 생존의 절박함이 도시의 지배적인 정서였다고나 할까요. 이런 분위기는 영화 〈국제시장〉 (윤제균, 2014)을 보시면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항구도시 특유의 거친 분위기도 문화 불모를 가중해왔습니다. ‘부산사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친 남자라는 뜻이지요. 부산은 그런 거친 남성문화를 주된 정체성으로 가져왔습니다. 이는 〈친구〉(곽경택, 2001)이라는 영화를 보시면 잘 아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맞은 부산은 그러한 문화 불모지의 이미지를 벗어던질 필요가 있었지요, 세련된 문화도시, 감각적인 관광도시로 새롭게 태어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도시 브랜딩이 필요했던 것인데, 여기에 부산국제영화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부산이라는 새로운 도시 브랜딩,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

  손 부산을 문화 불모지에서 ‘영화의 도시’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출발 전후의 에피소드도 듣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의 작은 단초도 요즘 흔히 말하는 ‘영화라는 취향 공동체’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 오석근 전 영화진흥위원장, 전양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그리고 저는 부산에 터를 잡고 프랑스문화원을 들락거리며 영화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던 이들이었죠. 이후 저희는 누구는 감독으로 몇몇은 영화평론가로, 나아가 영화비평지 《영화언어》를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라는 묶음으로 묶여 있었던 부산의 작은 취향의 공동체가 부산국제영화제 창설의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부산의 프랑스문화원에서 발원한 이 모임은 영화운동으로, 이후 해외영화제를 다니며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영화제가 없을까, 우리가 이렇게 헌사를 보내기를 마다 않는 영화들을 국내에 소개할 수는 없을까하는 꿈, 혹은 고민을 시작으로 1996년 제 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하기까지 이릅니다. 물론 부산의 성공은 여러 가지 요인의 적절한 동인에 의한 것이기도 합니다. 당시 김동호 위원장님의 행정가적 관록과 국제적인 네트워크, 할리우드 직배에 대한 국내 영화계의 저항과 쇄신으로 〈결혼이야기〉(김의석, 1992)를 신호탄으로 하는 기획영화 제 작 등입니다.

  더불어 검열에 대한 관객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갈구,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씨네필에 의해 관심 받던 중국과 일본영화에 대한 소구 등과 1995년 《씨네21》의 창간까지 살펴본다면 ‘영화’라는 국내 관객-취향의 공동체에 부산국제영화제는 폭발의 촉매가 되었나 봅니다. 돌이켜 보면 부산은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영화의 도시, 브랜드 마케팅

  손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렇게 아시아의 허브로,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전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청년 영화비평가였던 이사장님을 비롯 하여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님, 오석근 전 영화진흥위원장님, 전양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님 등 그분들의 한국영화에 대한 열정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석을 다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국제 영화제, 도시 브랜드 마케팅을 어떻게 진행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계 3대 영화제는 프랑스의 칸 영화제, 독일의 베를린영화제, 이탈리아의 베니스영화제입니다. 이들 영화제는 영화제 이름 앞에 ‘도시’ 이름을 붙여 네이밍을 함으로써 영화제 개최에 따른 도시 브랜드 마케팅에 기여해 왔습니다.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를 중심으로 개최되는 축제인 영화제는, 영화라는 매체적 속성-종합문화예술과 대규모 자본의 투입이라는 점에서 산업과도 불과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칸영화제가 우위를 점하는 지점도 바로 이러한 영화라는 매체적 속성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필름 마켓은 상반기 5월 칸영화제와 함께 개최되는 칸필름마켓과, 하반기 11월경에 미국에서 개최되는 아메리칸필름마켓 (American Film Market, AFM)입니다. 칸영화제가 열리는 5월이 되면 영화감독, 배우 등과 함께 수많은 영화산업 관계자들이 칸을 찾습니다. 전 세계 120여 개국, 4,000여 편의 영화가 칸필름마켓에 참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칸필름마켓 덕분에 칸영화제는 세계 최고 영화제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칸영화제 다음으로 베를린영화제를 꼽는 이유도 유러피안필름마켓 때문입니다. 베니스영화제는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켓이 없기 때문에, 혹자는 베니스영화제가 캐나다의 토론토영화제에 뒤처진다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입 니다. 참고로 토론토영화제의 경우, 앞의 영화제들 처럼 정형화된 마켓 행사를 개최하지는 않지만 북미라는 공간적인 이점과 인더스트리 센터(Industry Center)를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인더스트리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집니다.

  저희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러한 영화제의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개최하였습니다. 해양도시 부산의 개방성과 수용성, 칸과 베니스와 같이 해안을 끼고 있는 공간적 특성 등을 고려했을 때, 수도 서울이 아닌 부산에 한국의 첫 국제영화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지역 출신 창설 멤버들의 적극적인 참여 또한 큰 영향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는 산업적으로, 예술적으로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었고, 세계 영화계는 조금씩 아시아 영화를 발굴·소개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심장’이라는 주제로 1996년 제1회 영화제를 개최하였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영화의 세계 진출 교두보라는 위치를 선점하여 매년 영화제를 개최할수록 세계에서 주목받는 영화제가 되었습니다.

  1998년 이러한 영화제의 산업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부산프로모션플랜(Pusan Promotion Plan, PPP, 現 Asian Project Market, APM)을 출범시켰고, 이듬해 1999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제안으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부산영상위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영화제가 개최된 지 10년이 되는 시기에 부산국 제영화제는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제로 성장하였으며, 부산은 문화 불모지가 아닌 영화의 도시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2006년 영화제가 10년을 넘어서는 이 시기에 부산국제영화제는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 칸영화제와 베를린영화가 그러하였듯 아시아필름마켓(Asian Film Market)을 출범시켰습니다. 아시아프로젝트마 켓(APM),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 아시아영화펀드(ACF)의 출범과 안착 그리고 성공에 힘입어, 영화 완성 이후 산업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자 결단이기도 하였습니다. 영화제가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만개한 꽃이라면, 마켓은 보다 많은 영화가 보다 많은 관객을 만나게 하는 나무이자, 자본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기둥이기도 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①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키우는 일,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 ②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과 아시아영화펀드(ACF), ③만들어진 영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 부산국제영화제(BIFF), ④소개된 영화가 세계 여러 나라에 유통되도록 하는 일, 아시아필름마켓(Asian Film Market), ⑤나아가 과거·현재·미래의 영화는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담론의 장, 포럼 비프를 통하여 영화의 A부터 Z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의 동반 성장

  손 ‘영화의 도시’라는 이미지 브랜드 마케팅에 주력했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가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이처럼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부산시와의 협업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반 성장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했는지요?

   지난 25여 년간 축적시킨 부산국제영화제의 여러 사업과 위상은 오직 부산국제영화제 스스로만의 성과는 아닙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교육-지원-상영-유통-담론에 이르는 영화 전반의 궤를 구축하는 동안 부산시의 자본과 정책적인 뒷받침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었던 성과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개최부터 지금까지, 영화제와 부산시는 동반자적인 관계로 25여 년의 시간 동안 부산을 영화·영상 중심도시로 육성하였습니다.

  부산시는 영화제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의 도시’ 라는 도시 브랜드를 영상위원회를 통해 확장, 심화시켰습니다. 영화 촬영하기 좋은 도시이자 촬영된 영화·영상물을 통해 스토리가 입혀진 도시로 변모시켰습니다. 이를 토대로 2014년 아시아 최초로 유네스코에서 인정하는 ‘유네스코 영화 창의도시’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2008년에는 ‘문화콘텐츠산업 조례’를 제정하여 영화뿐만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다양한 문화콘텐츠–게임산업 견본시인 G-STAR, 한류를 포함한 아시아 음악 콘텐츠 프로모션의 장인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까지 다양한 예술·문화적 기호와 가치의 인큐베이터로서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에 그치지 않고 AFA, ACF, APM을 통해서 영화를 발굴·지원했던 사례를 부산시가 영화 밖으로까지 확장 적용하여 가능했던 기획이기도 합니다.

  이제 부산은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지이자 아시아 대표 영화제와 한국 유일의 필름마켓이 개최되는 국가적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과는 부산국제 영화제를 시작으로 영화와 영화 산업, 영화라는 단일 콘텐츠에서 게임, 음악까지 아우르는 문화콘텐츠로, 나아가 문화 관광 콘텐츠로까지 확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산은 이제 쇠락한 2차 산업도시가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항만물류도시이자 영화·영상 산업과 콘텐츠가 입혀진 입체적인 유산·자원을 보유한 도시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뉴노멀, 영화제라는 빈 페이지, 앞으로의 영화제

  손 국제적인 브랜드 도시로 성장하던 부산이 지난해 코로나19라는 재난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작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치러내면서 뉴노멀 시대에 대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 배경과 뉴노멀, 영화제라는 새로운 빈 페이지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를 여쭙습니다.

   영화제에서 고민하고 내놓은 대답은 1996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라는 취향의 공동체를 더욱 확산시키는 것. Film Festival, 영화 ‘축제’로서 한 장소에 모여 함께 영화의 즐거움을 나누는 이벤트로 남는 것입니다. 사진에서 무성영화로, 다시 토키(유성)영화로. 텔레비전이 보급되면 영화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무색하게 영화는 시네마스코프(2.35:1 대화면비)로 돌비음향과 DTS(Digital Theater System, 멀티채널 음장 효과 솔루션)로 변화, 강화하며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문화잡지 《쿨투라》의 고민 또한 저와 부산국제 영화제 구성원들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20년 영화제를 개최하며 유일하게 온라인 상영을 하지 않은 영화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생각하는 영화제는 영화는 ‘본다’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영화는 ‘함께’ 본다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의 보이지 않은 심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1996년 부산이라는 빈 페이지에 ‘취향(영화)’의 공동체에 방점을 두었다면, 다시 채워야 할 빈 페이지에는 ‘취향의 공동체’에 방점을 두고자 합니다. 하지만 초기 영화제를 만들 때의 그것과는 다른 요소를 가미할 예정입니다.

  저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공공서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재 부산은 시의 지원을 받아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가능한 공공서점(라이브러리)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렸듯이 기존 영화제의 주요 상영관에서 뿐만 아니라 부산의 구석구석 마을영화관을 운영하고 해외로도 확장할 계획입니다. 이처럼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는 동시간대에 부산의 마을 구석구석부터 아시아 각국의 도시가 연결되어 함께 영화를 보고 온라인으로 실시간 감독과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자리를 기획 중입니다.

  손 부산의 마을 구석구석과 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연결해 취향의 공동체를 확산시켜 나갈 부산국제영화를 상상하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사장의 영화 사랑이 현재의 뉴노멀 영화제라는 빈 페이지 속에서도 지속되는 것 같아 존경스럽습니다. 팬데믹 시대에도 한류가 계속 이어지듯 한국영화도 세계 곳곳으로 계속 확산되리라 믿습니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저도 현장에 있었는데,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기생충〉의 쾌거는 2020년 아카데미상 4관왕으로 이어졌고, 올해는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되자 세계가 한국영화를 더욱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장과 발전이 한류와 K-무비의 가교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질문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이사장님께서 《쿨투라》 독자분들 에게 추천하실만한 ‘인생 영화’가 있으신지요.

   K-팝을 비롯한 K-드라마, K-매거진, K-무비 등 오늘의 한류는 한 장르만의 우월이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과 영상의 융합으로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문학책과 잡지를 많이 읽었고, 이후 영화잡지를 통해 영화를 공부하고, 그 속에서 한국의 영화제를 꿈꾸었던 사람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 인생 영화는 백여 편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일일이 다 말씀을 드려보고 싶지만, 인생에 감명을 받은 작품을 한두 편만 들려고 하면 뭔가 어색해지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가 왜 고전 문학을 읽느냐, 인문학 책을 읽느냐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볼 때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추천하는 영화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그런 영화들이 대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슬로건 중 하나인 ‘영화의 바다로 오세요’를 아십니까. 영화의 바다에서 아무 생각 없이 떠다니다보면 자기만의 배를 띄우고 어떤 영화들이 좋은 영화인지 스스로 느끼며, 그곳에서 인생을 배우고 영화의 의미와 기능, 미학을 느끼게 됩니다. 때문에 그런 바다를 유영하는 사람들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여 추천한 영 화들은 인생 영화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저는 그런 면에서 제 인생 영화가 백 편, 천 편이 넘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인생 영화’들을 통해 인문학적인 경험과 공부를 축적하고, 인생이 더욱 풍요롭게 변하는 것의 재발견과 같은 삶을 즐깁니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해버렸지만 그런 사람들이 추천하는 영화를 골고루 좋아하셨으면 합니다. 그런 좋은 영화들 사이를 떠다니다보면 그중에서도 자기만의 영역과 독법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손 인생영화가 백여 편이 넘다니! 감동입니다. 그렇다면 이사장님게서는 드라마도 좋아하시는지요? 요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가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되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혹시 드라마에 대한 인상이나 소감 같은 것들을 조금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좋아하는 드라마 배우가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드라마 역시 굉장히 좋아하고요, 좋아하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넷플릭스를 자주 보게 되었고 넷플릭스를 통해서 세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와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이 드라마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2년 정도 봤는데 아마 편수로 따지면 300편은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웬만한 시리즈는 다 본 것 같고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드라마들이 포맷이 다 비슷하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에 각기 그 국가, 그 사회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차이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집중적으로 6개월 동안 본 것이 중국 무협 드라마였습니다. 지금도 보고 있고요. 그래서 중국 드라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영화를 보면서 중국 영화의 장단점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드라마를 보면서 왜 중국 드라마가 영화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현실을 못 다루는가, 그리고 왜 판타지 세계에서 우리만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는가,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한국 드라마와 비교해 보게 됩니다. 한국 드라마는 현실에 충실하면서 미래 비전을 이야기 하는 반면 중국 드라마는 과거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서 미래를 찾으려고 하는 그런 흐름들이 한국과 다르다는 거죠. 하지만 그러한 다른 면모들을 발견하며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이러한 발견들이 앞으로 우리 부산영화제가 계속 한류와 관계된 것과 한국 영화 또는 드라마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어떤 해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감독이라든가 배우는 없고요. 드라마는 연기자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 틀, 그다음에 연출 그리고 거기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의 정신. 이런 것들에 오히려 더 관심이 있습니다. 즐겨보는 드라마의 몇몇 연기파 배우들을 살펴보면 한국 배우들은 세 가지의 요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 같아요 스타성, 연기성, 성격을 표출해내는 현실과의 연대, 이런 것들을 아주 잘 갈무리 하는 것이 한국 드라마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배우다. 어떤 작품이다. 꼭 집어서 말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 대한 이사장님의 식견과 관심이 놀랍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 드라마를 300편이나 보셨다니! 저도 분발해야 겠습니다. 마무리하기 전에,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 단계가 해제되어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전처럼 부산시민들은 물론 영화를 사랑하는 국내외 많은 분들과 영화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싶어요. 새로운 페이지를 준비하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들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오늘과 미래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쿨투라》 2021년 8월호(통권 8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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