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박노련의 드로잉: 박노련 〈지중해의 바람〉
[Gallery] 박노련의 드로잉: 박노련 〈지중해의 바람〉
  • 서종택 (소설가, 고려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8.0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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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의 박노련스튜디오는 일 년 전 그대로였다. 오래된 철제 대문 사이로 보이는 마당의 풀들은 작은 숲을 이루었고, 풀섶 사이를 빠르게 내닫는 나비 한 마리 뜨락의 정적을 흩트리고 있었다. 기다란 복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실내의 풍경 또한 연전의 분위기 그대로, 다만 출타한 주인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을 뿐 언제라도 귀가한 주인이 꺼내 들어도 될 듯한, 여기저기 잘 정돈된 페인트 통과 이젤, 크고 작은 캔버스와 붓들이 실내를 채우고 있었다. 화가의 작업실이 된 초등학교 구건물은 그가 이탈리아와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2015년에 마련한 공간으로 교실들을 작업실과 전시실과 공방으로 꾸몄다.

  실내의 한켠에 작가가 생전에 오마주한 마크 로스코 풍의 아크릴 소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아직 개봉하지 않은 배송 물품들이 놓인 사이에 박스가 여러 개 쌓여 있었다. 앞뒤에 닥지닥지 붙은 알파벳이 어지러웠다. 이탈리아 여행 중 자가로 보낸 작가의 드로잉 묶음들. 상자를 열자 지중해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한동안 매달려왔던 매산리에서의 대지의 근원이나 생성에 대한 연작들이 대충 마무리되던 무렵, 2013년 겨울의 이탈리아기행이었다.

  드로잉은 주로 흑과 백, 혹은 점과 선으로 이어지는 작업이어서 즉흥과 감각에 의한 작가의 정서가 잘 드러난다. 드로잉은 이제 그림의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라는 점에서 회화와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밑그림이나 보조 그림 혹은 매재나 지질과 무관하게 자유로운 색조의 점과 선들로 대상에 대한 표현적 특성을 강화한다. 상자 속 작품들은 주로 선묘들이었다. 섬세하거나 혹은 무디게 그어댄 선이나 점들은 피렌체에서 아시시,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튀니스에 이르는 도시와 해안의 여정들을 담았다.

  반원 혹은 아치형의 선이나 점이 원근에 늘어선 배열은 균제된 조화미를 잘 드러냈다. 이는 그가 거닐었던 중세의 거리가 보여준 조형물에서의 모티프, 곧 로마적 양식의 어떤 것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원래의 단조함을 배제함으로써 조형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장방형의 사각형에 둘러싸인 이 흑백의 점과 색은 대조와 호응이라는 이름에 부합되면서 채우고 비우는 대비적 정조를 느끼게 해 주었다. 교회와 마을의 인상은 절제된 곡선 하나로, 산악과 들판의 형상은 고졸하고 두터운 붓터치로 지나갔다.

  균제와 결에 대한 작가의 평소의 이념은 그의 드로잉 도처에 드러난다. 두세 개의 대비항들을 연속무늬의 사각의 틀 위에 걸거나 정사각의 창살 무늬의 엑스자 창살을 부각시킴으로써 단조한 조형에 역동적인 긴장을 유도하고 있었다. 또한, 이 같은 사방 연속무늬 창틀에 대한 촘촘한 공간 묘사는 조화와 규범의 중세적 삶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종교와 예술의 성지로서 이탈리아는 우리에게 경배의 땅이지만 그곳을 찾는 순례자들의 소회는 각기 다양할 것이다. 신성과 예술적 천재들의 고향, 산악의 화산 분화구를 지나고 곳곳에 세워진 성소들을 지나는 동안 여행자들은 자연과 신과 인간의 교감 혹은 그 적막의 시간과 만날 것이다. 여행은 잠재적으로 자아에 대한 성찰이나 그 부정을 위한 자발적인 행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의 발견이나 회귀의 경이로움과 만나기도 한다.

  담양의 바람과 지중해의 바람은 다만 공간을 위한 대안의 바람이었는지 아닌지, 지중해를 돌며 그가 그어댄 선이나 점들은 중세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권태였을까.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나 귀향하여 느끼는 실향의식은 또 무엇인지, 신은 도처에 존재하지만 오직 기도를 위해 굳이 성지로 떠나는 순례자처럼, 그가 떠돌았던 이역의 도시와 섬들은 그러므로 명징한 자기 응시의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박노련 1954-2020
전남 광주 출생. 조선대학교 미술과 졸업(1977). 박노련·이수영·박광훈 3인전(1980), 구상전공모전 문예진흥원장상(문예진흥원, 1983), 신형상전(아랍미술관, 1984), 청년작가 7인전(제3미술관, 서울, 1985), 제3현대미술제(시민회관, 대구, 1987), 광주아트페스피발(광주, 1987), 인재미술관 개관기념전(1987), 광주청년작가전(1987), 새로운정신전(광주, 1988), Bi|der Zur APOKALYPSE(뒤셀도르프, 1988), 새로운 정신전(제3미술관, 서울, 1988), Biennale1989 Societe Nationa|e Des Beaux-Arts(그랑빨레미술관, 파리, 1989), 광주감성전(1989), 오늘의 지역작가전(1989), 무진화랑개관4인전(서울, 1990), 오늘의 작가-미술장터전(토아스트페이스, 서울, 1991), 구상전인도전(뉴델리국립미술관, 인도, 1992), 현대미술과 색언어전(1992), 청담미술제(무진화랑, 서울, 1993), 캠브리지갤러리(광주, 1993), 갤러리21(서울, 1994), 화랑미술제(예술의 전당, 서울, 1996), 박노련전(송원갤러리, 광주, 1996), 캠브리지갤러리 개관기념전(캠브리지갤러리, 서울, 1997), 박노련전(금호미술관, 서울, 1998), 광주비엔날레(2002), 박노련전(광주시립미술관, 2007), 팔레르모전(시칠리아, 2013) 등 개인전 7회 단체전 30여 회.

 

* 《쿨투라》 2021년 8월호(통권 8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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