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모두를 위한' 미래교육
[9월 Theme] '모두를 위한' 미래교육
  • 설규주(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21.09.0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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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프랑스어 원제는 〈L’avenir〉다. 우리말로는 ‘미래(未來)’ 정도로 옮길 수 있는데, 아마 영어 제목인 〈Things to come〉을 번역해서 우리말 제목을 정한 게 아닌가 싶다. L’avenir를 ‘Things to come’이라고 옮기든, ‘미래’라고 옮기든 그 제목이 담고 있는 동일한 것 한 가지는 그 무언가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점점 다가오는 (그)것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설렘과 염려가 교차한다. 다가오는 것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 인공지능 현상 등과 함께 팬데믹이 결합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점점 다가오고 있던 미래가 훨씬 더 빨리 성큼 와 버렸다고들 한다. 미래산업, 미래 기술, 미래의 먹거리 등을 키워야 한다는 논의 속에서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교육으로는 미래에 대응할 수 없으니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변화 앞에 늘 더디다는 비판을 받아온우리 교육과 학교 앞에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이미 1970년대에 『학교 없는 사회(Deschooling Society)』라는 책에서 학교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가 몇 가지를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교사가 가르치는 대로 학생은 곧장 배운다는 착각, 학생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 그건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이라는 착각, 학교 졸업 증명서가 곧 능력 증명서라는 착각 등이 그 예이다. 일리치는 요즘 교육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한국 교육을 비판한 것은 더더욱 아닌데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사는 우리가 왠지 뜨끔해진다.

  일리치는 굳이 국가가 세금을 들여 판에 박힌 학교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읽고 쓰고 문제 푸는 능력 같은 것은 학교가 아니라 그러한 기능 습득을 위한 별도의 센터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학교의 대안으로 학습망(learningwebs)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학습망은 교육 자료, 전문가, 학습 동료 등을 가리키는데 이것을 통해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배울 수 있다. 이러한 일리치의 주장은 당대에는 매우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 아닌가.

  그런데 요즘 미래 교육의 모델로 많이 제시되는 사례를 보면 묘하게도 50년 전의 일리치가 떠오른다. 일리치의 일갈에 뜨끔했던 게 우리만은 아니었는지 서구에서도 미래 교육을 위한 혁신 노력이 계속되었다. 최근 대표적인 대학 혁신 모델로 꼽히는 미네르바 대학도 학습자의 다양한 개성과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획일적인 대학 교육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2014년 첫 입학생을 받은 미네르바 대학의 운영 방식은 혁신적이다. 미네르바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학교 건물이 없고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한다는 점이다. 강의 대신 주로 토론이나 프로젝트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재학 중에 미국, 독일, 영국, 한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면서 문화 체험을 한다.

  이러한 방식의 교육을 통해 사고력, 창의력, 문제 해결력 등이 뛰어난 ‘글로벌 인재’를 기르고자 한다. 미네르바 대학의 시도는 분명 매력적이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며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미네르바 대학의 방식이 대학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수준으로도 일정 부분 확대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든다. 미네르바 대학으로 상징되는 미래 교육이 줄 수 있는 ‘빛’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래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일부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만 지나치게 주목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빛으로만 가득할 것 같은 미래 교육이 드리울 수 있는 ‘그림자’는 없는지,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크고 짙지는 않은지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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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대학의 학비는 연간 약 30,000달러 정도(2017년)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등록금보다는 싸지만, 일반 가정의 눈높이로 보면 버거운 수준이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 이는 입학 전부터 상당한 수준의 영어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를 이끌어갈 우수한 인재 양성을 추구하는 미네르바 대학의 입장에서 그 정도의 출발점은 당연한 조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조건이 누군가에게는 높은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이미 현실인 미네르바 대학이 누군가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로 남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유네스코에서는 2000년부터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 EFA)’을 강조해 오고 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은 지구적 차원의 교육 운동으로 지구상의 모든 어린이, 청소년, 성인의 학습 요구를 채워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배움을 갈망하거나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이 경제적 여건, 나이, 제도 미비 등을 이유로 원하는 만큼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미래는 교육 여건이 좋은 나라나 잘사는 사람들, 제법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마치 공기처럼 미래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다. 미네르바 대학 같은 혁신적인 학교에 들어갈 만한 인재들의 미래만큼, 물리적인 배움터로서의 학교에서 그저 무난하게 상호작용하며 배우고 자라길 원하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아이들의 미래도 소중하다. 또한, 온라인 학교냐 물리적 공간이 있는 학교냐, 강의식이냐 토론식이냐 등과 같은 선택 이전에 아예 기초적인 교육 기회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지구촌 수억 명의 미래도 소중하다.

  그러한 점에서 미래 교육은 두 가지 방향을 모두 지향해야 한다. 즉, 학습자의 창의력, 문제해결력 등을 탁월하게 키워주는 것 못지않게, 그 누구도 배움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공공성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는 것은 몹시 고단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교육이 짊어진 숙명이니까. 그래서 우리의 미래 교육은 그냥 미래 교육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미래 교육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추진하고 있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도 그러한 교육의 이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시도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 프로젝트는 전국 곳곳의 낡은 학교들을 완전히 새로운 공간과 구조로 디자인해서 환경친화적이고 디지털 사회에 적합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과거처럼 네모난 건물, 네모난 교실, 네모난 운동장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학생들을 집어넣는 방식 대신, 학교 구성원과 지역사회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학교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공간 디자인부터 함께 참여한다. 그리고 공부하는 곳만이 아니라 쉬는 곳, 노는 곳으로서의 학교, 학생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배움과 여가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지향한다. 미네르바 대학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미래 교육에 도전한다.

  아마도 우리가 꿈꾸는 미래 교육은 어느 하나의 모델이나 사례로 수렴될 수 없을 것이다. 미네르바 대학과 같은 혁신을 통한 엘리트 양성도, 그린 스마트 미래 학교와 같은 개방을 통한 학교 교육과 평생교육의 공존도, (혁신이나 개방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기초학습 지원을 통한 교육권 보장도 우리에게는 모두 필요하다. 미래 교육은 비슷한 특성의 졸업생을 한 가지 방식으로 대량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할 수밖에 없는 각 사람의 요구와 필요에 대해 맥락적으로, 정성껏 그리고 꾸준히 응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각각의 응답 조각이 모여 미래 교육이라는 퍼즐을 조금씩 완성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설규주
서울대 사회교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플로리다 주립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방문교수로 연구하였다. 저서로 『청소년을 위한 정치학 에세이』『시민교육론』『다문화교육의 이해와 실천』『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과정』 등이 있다. 현대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 《쿨투라》 2021년 9월호(통권 8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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