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랜선 학교, 코로나 그 이후……
[9월 Theme] 랜선 학교, 코로나 그 이후……
  • 김세연(미디어평론가)
  • 승인 2021.09.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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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서울의 모 대학에서 메타버스 축제가 열렸다. 온라인 서버에 캠퍼스를 그대로 구현해놓고 학교 구성원들을 초대한 것이다. 학생들은 로그인한 아이디로 아바타를 생성해 가상 캠퍼스를 활보했다. 단과대 건물을 방문하거나 야외공연을 보고, 다른 아바타와 소통하기도 했다. 행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타 대학 학생들은 ‘우리 학교도 메타버스 축제를 했으면 좋겠다’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옛날 방식의 축제에 대한 그리움은 잠시 뒤로한 채 가상 캠퍼스 이야기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궜다.

  대면 소통을 고집하는 것은 이미 구세대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듯하다. 대학생활의 낭만을 경험했던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막상 요즘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대면 체제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매거진 한경》에 따르면 약 63퍼센트의 학생들이 당분간 비대면 수업 유지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것이지만, 현 체제에 단점밖에 없었다면 이와 같이 응답한 학생들은 더 적었을 것이다.

  현 비대면 체제의 장단점을 살펴보자. 우선 장점으로 강의실이 아닌 곳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른 지역 혹은 해외라도 접속이 가능하다. 강의 녹화 기능이 있다. 실수로 놓치거나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은 몇 번이고 다시 들어도 된다.

  긴 공강 시간을 보낼 장소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단점은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부분이 적어 지루하다는 것이다. 교수자의 준비 미흡이나 송신 상의 문제로 강의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전반적으로 단조로운 대학생활을 보내게 된다는 것 등이다. 대면 수업은 그 반대라고 보면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 종식 이후엔 어떻게 될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갈까? 아니면 하나둘씩 사이버 대학으로 전환하게 될까? 많은 사람들의 예측 중 하나는 현존하는 대부분의 대학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대면 수업을 재개하겠지만 점차 온라인 강의로 전환하는 대학이 늘게 되고, 그러면 소수 명문 대학에만 인원이 몰려 나머지 학교들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예 학교라는 기관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도 여전히 학교가 중요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대면/비대면 수업의 장점만을 취합한 형태로 학교가 재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다.

  미래형 대학과 관련해 주목받고 있는 것을 소개하자면 ‘미네르바 대학’을 빼놓을 수 없다. 미네르바 대학은 온라인 수업을 기반으로 하되, 학생들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장 학습을 하는 미국의 혁신 학교다. 지정된 강의실이 없을 뿐, 모든 공간이 배움터가 되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탐구하고 소통한다. ‘따로 또 같이’ 학습이다. 강원대학교 김상균 교수가 제안한 ‘교과목 특성화 전략’도 주목을 요한다. 말하자면 학점교류 프로그램의 진화 버전인데, 교수 전공에 따라 교과목을 세분화하자는 것이다. 가령 ‘기업가 정신’이라는 공통 교과목이 있다면 A대학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업가정신, B대학에는 글로벌 스타트업을 위한 기업가정신을 개설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교수의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다.1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소통’과 ‘개별화’라는 키워드다. 미래형 대학 모델이 지금과 다른 점은 집체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위주의 수업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사실 온라인 수업이라고 해서 무한정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것은 오해에 가깝다. 강의 공간 제한은 없더라도 과목마다 적정 인원은 분명 정해져 있을 것이다. 최근 대학에서 온라인 수업이라는 이유로 과목별 수강 인원을 증원하여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몇 명 더 늘어나는 게 대수인가 싶지만 발표와 토론, 개별 피드백이 중심이 되는 수업이라면 영향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온라인 강의는 TV나 유튜브 방송과는 다르다.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강의를 지켜보는 시청자가 아니며, 수업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인 것이다.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학생 중심 수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교육 여건상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온라인 강의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개별화 교육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나이에 따른 학년 체계를 따른다. 다수의 학생들이 한 반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다른 친구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는 도태된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학년이 아닌 단계별 분반이 가능하다. 개인 수준에 따라 반복 혹은 심화 학습할 수 있다. 관심사나 취미에 따른 분반도 가능하다. 줄 세우기보다는 각자의 역량을 키워주자는 방향이다. 기존 학교 시스템에서 우열반 편성이 야기하던 문제도 해결된다. 우반과 열반이 물리적 공간으로 나누어지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런 모델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력과 기관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수강 인원을 증원할 게 아니라 교원을 확충해야 하며, 다양하고 특색 있는 학교와 수업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그리는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학교가 존재한다. 작고 독특한 학교들. 랜선으로 연결되는 그곳에서 우리는 더 개성 넘치고 적극적인 인재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1 김상균, 「거점국립대를 온라인 메타버스로 묶자」 『한겨레』, 2020.11.09

김세연
미디어비평가.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소설집 『홀리데이 컬렉션』이 있다. 현재 동국대 다르마칼리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 《쿨투라》 2021년 9월호(통권 8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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