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덕 디카 에세이 『손톱 끝 꽃달이 지기 전에』
안성덕 디카 에세이 『손톱 끝 꽃달이 지기 전에』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1.09.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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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과 소소한 감성들로

세상과 사람을 이어주다

 

순간 포착 한 장의 사진과 감성적인 글로

사람과 사람을 다정하게 이어주는 안성덕 시인의 디카에세이!

 

안성덕 시인의 손톱 끝 꽃달이 지기 전에71편의 에세이에 사진이 어우러진 디카에세이집이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동네 앞 들길을 멀리 돌아오는 11월의 한나절같은 시인의 평범한 일상 속 한 장면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반짝거리는 소박함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그 반짝거리는 이미지들을 딛고 사람들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끌리듯 걸어간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 몰랐던 세계에 대해 알아가고,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나아가 세상을 알아가게 된다. ‘가 이 시집의 에세이와 사진들을 통해 각자의 세계에서 문을 열고 나아가 우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시인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이제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고 하며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세상살이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지금이 힘겹다는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려 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오늘이 어제 같고 또 내일이 오늘 같을, 한없이 지루해하고 못 견디던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사실 특별했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었는데, 알 수 없는 바깥의 힘이 우리의 평범함을 깨뜨리자 우리는 자신이 잃은 것이 그제야 특별하다는 것을, ‘평범한이들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 우리의 평범함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되었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애써 평범이라는 표현을 붙여서 소개하는 일상의 풍경들, 사진과 글로 표현된 풍경들은 그것에 대해 어떤 미사여구를 덧붙이지 않아도 특별해 보인다. 그것은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그렇게 멈춘 자리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다시금 눈길을 주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안성덕 시인의 디카에세이에는 아름다운 것에 자연스럽게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그의 순박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이 단순히 심미적인 욕망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시인은 이 책의 곳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 많아지고 길이 멀어지면서 세상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발로 걸어갔던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자전거로 오갔던 길을 자동차를 타고 달립니다. 더 빠르게 더 멀리 가봐도 무지개는 또 그만큼 멀어지는데 말입니다”(푸른 자전거)라고 하며, 시인은 내일을 향한 자신의 걸음에 제동을 건다. 사실 그것은 시인 스스로가 자신에게 건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다음 구절에서 시인은 씽씽 달리던 자전거가 멈췄습니다. 내달리던 세상이 빨강 신호에 걸렸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내면과 외면의 슬픈 하모니처럼 우연하게 자신에게 찾아온 이 멈춤푸름으로 명명한다. 그리고 그 멈춤을 소중히 여긴다. “잠시 멈추라고 나팔꽃 넝쿨이 붙잡았습니다 (중략) 달리던 자동차도 멈춰 섰습니다라고 하며, 이것이 자기 안에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남아 있는 문명의 속도를 비워내라는 신호로서 자신에게 찾아온 것임을 시인은 자연과 풍경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멈추어야 남이 달리고, 남이 멈추어야 내가 달릴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은 그래서 단순한 양보 혹은 뒤처짐이라기보다는, 그동안 몰랐던 외부 세계의 섬광과 같은 가르침을 비로소 받아들인 시인의 환희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디카에세이집은 이처럼 에세이로 표현되는 풍경(사진)’으로 표현되는 (혹은 세계)’의 만남을 통해 이뤄지는 아름다운 가르침들로 가득 차 있으며, 거기에 하나의 만남, 그러니까 독자와의 만남이 더해지면서 더 풍부해지는 순간을 담아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간소외,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끝을 모르는 인간의 탐욕과 도를 넘는 개인주의 등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우리의 내일을 다소 비관적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그런 시기에 시인은 풍경들과 말들, 멈춤의 기호들을 통해 사람들을 자기 곁에 붙들어두려 한다. 시인은 애써 그것을 평범한 일상이나 주변의 소소한 것으로부터 얻는 지극히 일상적인위안이라고 명명하려 하지만, 그 풍경들은 시인의 언어의 뜰 안에서 스스로 누군가에게 연줄이 되고 밧줄이 되”(무지개)어 그를 구원하고, “꽃반지 낀 손을 잡고 누구와 오솔길에 다정했던 각자의 추억이 되(박인희와 은희), “추석에 내려올 자식들 미리 기다리던 도란도란 파란 대문 집안방의 어머니가 되(빈집)기도 한다. 우리를 간절한 힘으로 품고, “무리해서 앞으로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하는 풍경들은 속도의 사회를 살아가며 우리가 항상 그리워했던 어머니의 손길 그 자체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내일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기, 인간과 인간 사이를 물질문명과 그 부작용인 팬데믹이 갈라놓은 이 시기에 안성덕의 디카에세이집손톱 끝 꽃달이 지기 전에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독자들에게 따뜻한 언어를 건넨다. 시인이 힘겹게 발견한 말과 풍경들을 통해, 우리는 잠시 잊고 있던 인간의 온기를 다시 기억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안성덕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에 살고 있는 안성덕 시인은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입춘」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몸붓』 『달달한 쓴맛』을 펴냈으며, 제5회 《작가의 눈》 작품상과 제8회 《리토피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속으로〉

입춘 지났으니 이제 며칠 있으면 우수, 다행히 올겨울은 작년처럼 춥지 않습니다. 하늘이 살펴주신 게 틀림없지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왜 늘 행복은 추레하고 행운은 토막일까요? 모두가 어려운 시절입니다. 우리네 닳고 해진 행복도, 깡총한 행운도 수선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 엄마는 횡단보도 옆 포장마차에서 뜨끈뜨끈한 붕어빵 한 봉지를 살 것입니다. 행여 식을세라 종종걸음치겠지요.

행복수선, 본문 13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건넜겠지요. 꽝꽝 얼어붙은 겨울에 나 왕래했겠지요. 큰비라도 내려 냇물이 불면 동동 발을 굴렀겠지요. 종아리 알밴 장정들이 영차영차, 멀리서 커다란 돌을 옮겨 와 다리를 만들었지요. 이편과 저편이, 그대와 내가 이어져 언제라도 건너오고 건너갈 수 있게 되었지요. 사람의 길 트려고 물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냇물을 아예 끊지는 않았지요. 아이들 걸음 간격으로 돌을 놓았지요. 섶다리처럼 틈새 없이 이어붙이면, 저쪽과 이쪽이 없고 나는 또 그대가 너무 환해 밤새 도란거릴 이야기가 없을 테니, 말없음표처럼만 늘어놓았지요. 어디 사람만 건넜을까요, 달을 초롱 삼아 별들도 오갔을 테지요. 늦도록 마실 다녔을 테지요.

징검다리, 본문 33

 

삼천 변에 억새가 푸릇합니다. 빛바랜 작년 것 틈에 햇것이 끼어들었습니다. 제법 목을 가눕니다. 굽이굽이 삼천을 끼고 마을을 이뤄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로, 아들로, 손자로 대를 이어 살아온 온고을 사람들 같습니다. 아비 억새는 슬쩍 발을 빼고 아들 억새는 슬며시 들어섭니다. 우리 아비들이 그래왔듯이, 저 아비 억새도 어린것들 장딴지에 알이 배고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까지 지켜줄 겁니다. 등판에 바람을 짊어질 때가 되면, 품 안에 개개비 떼를 품을 때가 되면 자리를 비켜 줄 것입니다. 스러져 거름이 될 것입니다.

연두가 초록으로, 본문 51

 

가을장마에 갇혀 답답했습니다. 어젯밤만 해도 걷힐 기미라곤 없던 하늘이, 쨍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이 고슬고슬합니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이 상큼합니다. 길바닥에 고인 빗물이 푸른 하늘을 품었습니다. 겨우 보자기 하나 자리, 한 바가지 빗물에 하늘이 담겨 있습니다. 한 바가지면 족합니다. 보자기 하나 펼칠 자리면 충분합니다. 내 마음속 창고.

길바닥에 고인 빗물이, 본문 103

 

꽃보다 더 꽃입니다. 기럭아비를 앞세운 사모관대 신랑은 초례청에서 벌써 벙글고 있습니다. 제 안의 꽃을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꽃가마에서 내린 원삼 족두리 신부는 이 세상의 꽃이 아닌 듯합니다. 아직 남아있을 배롱나무꽃이 그만 제빛을 잃었습니다. 청실홍실 엮어 늘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에 걸쳐놓은 초례청으로 사뿐 걸어가는 신부의 얼굴이 몰래 붉습니다. 한 쌍의 기러기 앞에서 표주박의 술을 나눠 마실 두 꽃송이, 갈채가 쏟아집니다. 전주 향교 대성전 뜰, 꽃 같은 시절입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 본문 105

 

 

 

손톱 끝 꽃달이 지기 전에차례

 

시인의 말

 

1부 우물거리는 이름

 

12 행복수선

14 무지개

16

18 봄의 속도

20 춘서春序

22 봄나들이

24 박인희와 은희

26 꽃병풍

28 새 신발

30 봄 봄

32 징검다리

34 툇마루

36 황홀한 감옥

38 고향의 봄

40 봄비

42 보리밭과 종달새

44 찔레꽃

46 고요하고 잠잠하다

 

2부 손톱 끝 꽃달이 지기 전에

 

50 연두가 초록으로

52 빨간 공중전화

54 빈집

56 백미러와 브레이크

58 마음 산길

60 여우볕

62 마당

64 전망 좋은 방

66 소나기

68 네잎클로버

70 꽃그늘

72 꽃살문

74 그 집 앞

76 기다려 버스를 타고

78 비와 막걸리

80 봉선화鳳仙花

82 매미

84 우물

 

3부 오마지 않는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88 가을 소나타

90 거울과 그림자

92 귀뚜리 우는 밤

94 벼꽃

96 걸음마

98 맛있게 맵겠다

100 인월 장날

102 길바닥에 고인 빗물이

104 화양연화花樣年華

106 코스모스

108 시월도 끝자락

110 가을 소리

112 갈대의 순정

114 노을

116

118 푸른 자전거

120 가을꽃

122 호박 같은

124 돌아간다는 것

 

4부 무릎 담요 덮어주듯

 

128 등대

130 쓸쓸한 등

132 더딘 길

134

136 소금과 노을

138 겨울나무

140 풍경이 있는 풍경

142 3학년 1

144

146 철 지난 바닷가

148 새들처럼

150 뿌리

152 파랑

154 낙엽

156 개밥바라기별

158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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