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설화와 웹툰: 스크롤로 맛보는 스낵컬처, 웹 속으로 스며든 한국 설화
[10월 Theme] 설화와 웹툰: 스크롤로 맛보는 스낵컬처, 웹 속으로 스며든 한국 설화
  • 김용선 (민담학자)
  • 승인 2021.10.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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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와삭와삭, 바사삭. 봉지과자를 뜯고 입 안 가득 과자를 넣는다. 가루까지 삼킨다. 한 봉지를 먹어도 포만감은 없다. 입에 넣으면 곧 녹아버리므로. 여기 소리 없는 스낵이 있다. 웹브라우져나 스마트폰 화면 터치를 통해 스크롤로 맛보는 스낵컬처 곧 ‘웹툰’이다. “스낵컬처 콘텐츠(snack culture contents)는 인스턴트 엔터테인먼트(instant entertainment), 스마트 핑거 콘텐츠(smart finger contents)로도 불리며 2007년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 일회성이 높은 콘텐츠라는 뜻”(김희경, 『스낵컬처 콘텐츠』, 커뮤니케이션북스, 2020)을 갖는다. 리프레시 타임(refresh time) 기술의 실시간 픽셀 업데이트 덕에 스크롤로 빠르고 편하게 볼 수 있는 포털 플랫폼의 웹툰 서비스가 가능했다. 나아가 “만화와 기술의 결합인 웹툰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과 융합되며 트랜스미디어 확산을 세계적 추세로 이끄는”(이상원, 『웹툰의 영화 트랜스미디어전략』, 커뮤니케이션북스, 2021) 중이다.

  한국구전설화 전공인 필자는 몇 달 전 웹툰 전공 아내와 로봇만화 소재 학술논문(김용선·이황임, 「한·일 로봇만화 속 ‘소년’의 표상에 관한 만화기호학적 소고-〈철인28호〉와 〈3단합체 김창남〉의 비교를 중심으로」, 『미래문화』 1, 한양대ERICA부설 한국미래문화연구소, 2021)을 학술지에 게재했다. 이는 필자가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와 요즘 MZ세대의 웹툰을 비교한 것이다. 그런데 웹툰은 최신 만화 형식이면서 도리어 가장 오랜 것을 소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임석재 선생의 채록이 담긴 『임석재 전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시절부터 채집된 『한국구비문학대계』 등에 잠들어 있던 우리의 오랜 설화는 교과서나 동화책 속 옛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삭 작가의 〈헬퍼〉(2012)부터 〈가담항설〉(2016), 〈신과 함께〉(2017), 〈그녀의 심청〉(2019) 등을 통해 확인되듯 웹툰 작가들은 창작 소재를 한국 고전, 무속, 민속 등에서 찾기 시작했다. 웹툰을 통해 낡은 설화는 첨단 옷으로 갈아입고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런웨이 중이다.

  독자분들도 흔히 기억할 만한 『선녀와 나무꾼』은 백조처녀, 우의(羽衣)설화 등으로 호주를 제외한 동·서에 널리 퍼져있는 광포설화이다. 일본의 날개옷 설화는 와타세 유우의 〈천녀전설 아야(妖しのセレス)〉(1999)라는 장편 만화로 각색된 바 있는데, 선녀와 나무꾼 커플은 우리 웹툰에서도 마주할 수 있다. 돌베 작가의 〈계룡선녀전(1~5권)〉(2017)은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를 계룡산 자락 바리스타 할머니로 재해석했으며 웹툰 원작의 인기는 tvN 드라마 〈계룡선녀전〉(2018)에 이르렀으니 설화가 지닌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힘은 ‘말하는 사슴’만큼 신통하다.

  토미무라 코타의 일본만화 〈갸루와 공룡〉(2019)이 소녀와 공룡의 동거를 소재로 했다면 당과 작가의 〈우리집 우렁이는〉(2019)은 우렁총각과 여성의 동거를 소재로 한다. 이는 곧 『우렁각시』라는 오랜 옛이야기를 재해석한 사례이다. 우렁각시는 웹툰 속에서 우렁총각으로 바뀌었다. 앞서 〈계룡선녀전〉속 ‘집 나간 배우자 찾기’ 화소의 주연이 선녀로 바뀐 것처럼 웹툰은 오랜 설화의 설정을 조금씩 혹은 크게 바꾸어 뉴노멀 서사 전승을 펼치고 있다 .

  청각기호로만 전승되던 구술전승 설화는 이제 디지털 기반의 첨단 만화 웹툰이라는 무대를 통해 시각기호로의 전승을 시도하고 있다. 화톳불은 액정화면이 되었고 주름 가득한 할머니·할아버지의 목소리는 팬시처럼 다양한 캐릭터들의 말풍선으로 대체되었다. 웹툰 이전에도 우리 설화 모티프가 차용된 출판만화가 있었지만, 설화 화소를 자유자재로 끌어 활용하는 오늘날의 디지털 스낵 컬처 웹툰 콘텐츠에 비하면 초라할 지경이다. 고리타분할 수 있는 오랜 서사구조를 산뜻한 동시대 아이콘으로 재구성 해내는 웹툰 작가들의 기량은 단순한 ‘테크네’의 차원이 아니다. 설화와 웹툰은 ‘전승력’이라는 공통의 염기서열을 나눌 수 있었기에 변이와 전환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90년대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 〈은비까비의 옛날 옛적에〉 등의 아동용 애니메이션 차원을 넘어 오늘날 스마트폰 유저를 사로잡은 설화 차용 웹툰은 최근 국악계의 ‘이날치 밴드’, 댄스계의 ‘엠비규어스팀’처럼 오랜 소재도 얼마든 패셔너블하고 스타일리시할 수 있음을 디스플레이에 구현해 낸 사례라 하겠다.

  COVID-19,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는 낯선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출·퇴근의 일상을 반복한다. 바쁘고 버거운 하루 중에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은 이 시대의 도깨비방망이다. 스마트폰이라는 방망이는 금 대신 웹툰을 뚝딱 보여준다. 스낵 컬처인 웹툰은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 기술과 더불어 동행 가능한 콘텐츠 장르이다. 과자를 먹기 위해 슈퍼마켓을 찾던 우리는 이제 웹툰 플랫폼을 찾아 정서적 허기를 달랜다. 제9의 예술인 만화를 기반으로 한 한국 웹툰의 혈관에는 오랜 설화의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흐른다. 일상의 스트레스로 입은 상처는 오랜 서사를 재해석한 웹툰의 혈소판이 출혈을 막고, 옛이야기가 세균 잡아먹는 백혈구가 되어준다. 웹툰이라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까까’가 우리 곁의 오랜 과자들처럼 꾸준히 머물기를 기대하며 이만 스크롤바를 줄인다. 와삭. 이런, 어느새 두 봉지째구나!

 

 


 

* 《쿨투라》 2021년 10월호(통권 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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