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탐방] '2018 이병주국제문학제’가 열리는 하동 이병주문학관
[문학관 탐방] '2018 이병주국제문학제’가 열리는 하동 이병주문학관
  • 손희
  • 승인 2018.11.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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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김포에서 사천행 첫 비행기(6시 50분)를 탔다. 1시간만에 도착한 사천공항은 동화 속 세상처럼 정말 작았다. 2000년까지만 해도 항공교통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이용객수가 88만 명에 달했던 이 공항은 2001년 대진고속도로와 2010년 거가대교, 2012년 KTX 개통 등 대체교통수단 개발로 이용객수가 급감했다. 장난감 같은 공항을 빠져나와 하동으로 향했다.
  경남의 남서부에 자리 잡은 하동은 서쪽으로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남의 구례·광양과 이웃해 있다. 지리산의 장엄함과 섬진강의 평화스러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하동은 백제의 땅으로 ‘한다사군’이라 일컬어졌고, 삼국통일 뒤인 경덕왕 때 하동군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한다. 
  

  나림 이병주문학관
  너무 일찍 도착했나 보다. 직전리에 있는 작가 나림 이병주李炳注의 문학 기념관에는 오늘 이병주국제문학제 시상식을 준비하는 관리인만 몇 보이고 인기척이 없다넓은 마당에는 연못과 정자, 놀이터, 쉼터 등이 풍경처럼 앉아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흠잡을 데 없는 절경을 마주한 이병주문학관은 작가 나림이병주의 창작저작물과 유품을 상설 전시하는 문학기념관이다. 2,992㎡의 대지에 504.24㎡의 연면적 규모로 세워진 2층 건물로, 전시실과 강당 및 창작실을 갖추고 있다. 
  전시실에는 연대기 순서로 따라가며 작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관련 유품과 작품 등이 소개글과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시실의 내용을 따라가 보면,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역임하던 때의 언론인 이병주의 모습과 마흔네 살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후 타계할 때까지 27년 동안 월평균 1천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활동을 보여준 작가 이병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실을 둘러보니 그가 ‘기록자로서의 소설가’, ‘증언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대표작인 『지리산』의 한 장면을 모형으로 만든 디오라마와 작가가 원고를 집필하고 있는 모습의 디오라마, 그리고 영상 자료들이 함께 있어 더욱 생생하고 입체적이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의 균형성 있고 총체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는 문학 현장이다.
  이곳은 이병주 작가가 별세 후 2005년 11월에 이병주 문학관 건물을 착공하였으며, 이념과 성향을 초월한 각계 인사가 참여해 사단 법인 이병주 기념 사업회가 발기한 후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기념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2018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2018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버스 두 대가 툴툴거리며 세상 소식을 싣고 문학관 마당으로 들어선다. 임헌영(문학평론가), 김홍신(소설가), 김종회(문학평론가), 박상우(소설가), 구효서(소설가) 등 국내 문인 및 연구자를 비롯, 권혁률(중국), 마치다 고(일본), 카밀리아 박(러시아), 사바스테인 페트론(콜롬비아) 등 해외 여러 나라의 학자와 작가들의 얼굴이 보인다.
  ‘2018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는 지난 9월 28일 오후 2시부터 서울 경희대학교에서 ‘문학에 있어서의 체험과 상상력’을 주제로 국제문학 발표 및 토론회가 열렸다.
  29일에는 발표 및 토론자들이 경남 진주 경상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이번 문학제의 주제인 ‘문학에 있어서의 체험과 상상력’을 주제로 국제문학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경상대학교는 과거 이병주 선생이 교수로 교단에 섰고, 또 그의 장서가 경상대 도서관에 기증돼 ‘나림문고’라는 이름으로 소장돼 있는 인연이 있다. 
  오늘 30일 오전 10시부터는 이곳 하동 북천면 이병주문학관에서 제11회 이병주국제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다. 이와 함께 ‘하동·지리산·이병주’를 주제로 한 제4회 디카시 공모전 시상식과 제17회 전국학생백일장 초·중·고등부 시상도 함께 이뤄진다.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는 이병주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매년 이병주국제문학상과 이병주문학연구상 수상자를 선정 문학제의 마지막 날 시상식을 가진다. 
  이 시상식 행사는 정구영 공동대표와 하동군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김홍신 소설가의 추모강연이 있었다.
  김홍신 작가는 “필화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이병주 선생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반골정신과 대장부 작가”였으며 “가을에도 벚꽃이 피는 언어의 무덤·영혼의 무덤·향기의 무덤”을 우리에게 만들어주었다고 추억했다.
  참여한 많은 분들은 제각각 이병주 선생을 존경하며, 그분과의 잊지 못할 추억을 쏟아내었다. 그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날아와 한 해도 빠짐없이 행사에 참석한다는 신혜선 작가의 시 「우화의 강」 낭독은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마종기, 「우화의 강」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는 구절이 신작가의 낭송을 통해 절절히 전해졌다.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처럼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어진다.
  아마도 이병주 작가는 그녀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시원하고 고운 사람”이었나 보다.

이병주국제문학상을 수상한 구효서 소설가
이병주국제문학상을 수상한 구효서 소설가

  제11회 이병주국제문학상에는 구효서 소설가
  제4회 이병주문학연구상에는 한남대 손혜숙 교수
  
제11회 이병주국제문학상에는 구효서 소설가, 제 4회 이병주문학연구상의 수상자에는 한남대 손혜숙 교수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하동군이 주최하고 이병주기념사업회가 주관하며 경희대학교가 후원하는 이 상은 이병주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제정됐다. 이병주국제문학상은 매년 기 발표된 여러 나라의 문학작품 중 역사성과 이야기성을 갖춘 작가 또는 문학사적 의의를 보유한 단체를 대상으로 한다.
  구효서 소설가는 폭넓은 주제와 새로운 문체로 치열한 작가정신과 전위적 형식미를 보여주는 소설들이 문학사적 의미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아 수상자로 결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병주문학연구상 및 특별상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이병주 문학을 동서양에 널리 소개한 번역가 또는 참신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진전시킨 신진 연구자가 대상이다.
  이병주문학연구상 수상자 손혜숙 교수와 이병주 문학특별상 수상자 소망수필반은 이병주 문학 연구의 큰 진전을 이룬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병주문학관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에 어린이 문학 캠프도 연다고 한다. 관람 시간은 3월~10월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월~2월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공휴일 또는 연휴에는 익일]과 신정, 설날 및 추석 당일은 휴관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사방천지의 꽃들이 발길을 늦추게 한다. 더군다나 이병주문학관이 있는 이곳 하동은 북천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나들이 온 인파들이 많이 보였다. 북천역에서 양보역까지 레일바이크를 운영하는데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끝없이 펼쳐진 코스코스 꽃밭으로 풍경열차를 타본다는 상상만으로도 무척 황홀해지는 가을이다.

 

 

* 《쿨투라》 2018년 11월호(통권 5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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