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미스터 션샤인'이 선사한 낭만의 시대
[10월 Theme] '미스터 션샤인'이 선사한 낭만의 시대
  • 안현우(추계예대 일반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석사과정)
  • 승인 2018.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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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샤인(Sunshine)’은 결코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
ⓒ미스터션샤인
ⓒtvN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역사의 순환을 믿었던 혹자는 이렇게 주장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역사는 아직 희극으로 다가오진 않은 듯하다. 근현대사 책을 보면서 그다지 웃을 일이 없다는 것이 이 사실을 뒷받침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이 비참한 하루를 견딘다. <미스터 션샤인>의 뒷이야기가 어떻게 써내려 질지 뻔히 알면서도 낭만이 느껴지는 까닭은 작금의 우리에겐 딱히 들킬만한 낭만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자명하게 알고 있다. <밀정>의 김우진(공유)이 의열단을 조직해 싸웠고, <암살>의 안옥윤(전지현)과 단원들이 총구를 겨눴으며, <모던 보이>의 이해명(박해진)이 폭탄 속에 산화했지만, 장정들은 끌려가 <군함도>에 갇혔고, 소녀들은 여전히 <귀향>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20대 청년이 말했다. 태어나 보니 나라가 경제 위기로 망해있었고, 무한경쟁이라는 시스템 아래 청춘을 희생 당했지만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으며, 대학에 가면 푸른 하늘을 가르는 검은 새 한 마리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일을 하기 위해 빚을 지고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현실을. <브이 포 벤데타> 속 브이가 말한다. “이 마스크 뒤엔 살점만 있는 게 아니야. 한 사람의 신념이 있지, 총알로는 죽지 않는 신념.” 디스토피아적 세상을 살아가는 그에게 들려 있는 단 하나의 무기는 그것이었다. 저들이 왜 강제로 주둔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애신의 단호한 한 마디 “할 수 있으니까.” 이 말만큼 폭력적인 대사가 또 있을까 싶다. 어떠한 신념도 가치관도 없는 단순한 이 한 마디 속에 우리는 갈기갈기 찢겨 나갔으니 말이다. <매트릭스>의 모피어스는 제안한다. 파란 약을 먹을지 빨간 약을 먹을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 모피어스 같은 존재는 없다. 그저 매트릭스라는 시스템만 있을 뿐.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때 그 시절의 애신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애신과 유진의 시대로부터 백여 년 이상을 지나왔지만 여전히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년과 노인이 갈등하고 남자와 여자가 대립하며 주변은 여전히 간섭한다. 연탄재 함부로 걷어차지 말라던 한 시인과 꽃으로 사느니 불꽃의 삶을 택하겠다던 애신의 말 앞에서 하나의 주체적인 나로서 살아남기 참 힘든 삶이란 말이다. 현재는 끊임없이 불만스럽고 그렇기에 더 단단해져야 하지만 쉽지 않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개인의 문제조차 돌보기 힘들다. 네오같은 구원자가 등장해 주길 바라기보다 차라리 스미스 요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듯하다. <미스터 션샤인>이 선사하는 낭만의 시대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객관적으로 더 낭만적이라는 사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낭만이 단순히 경제적인 성장을 뜻한다면 말이다. 이를 제외하고 사실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찾아보긴 힘들다. 힘을 가진 자들은 불안과 공포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개인의 능력보다 집안의 능력이 성공으로 직결되는 사회에서 "어느 날엔가, 저 여인이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라는 애신의 대사 속 그 여인인 우리는 그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하거나 혹은 그조차도 하지 못하고 침묵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길(오웬 윌슨)은 말한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길의 말은 틀렸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원래 그런 거로 생각하는 사람만 있을 뿐. 신념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특히나 꽤 업그레이드된 매트릭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라면 더더욱 그렇다. 신념이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릇된 신념은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애신의 총과 브이의 칼날에 동의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신념이 옳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모두를 정면으로 관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신념을 가져야만 하는 세상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가냘픈 두 다리로 꿋꿋이 버티는 이유는 최소한 나는 불꽃으로 살더라도 다음의 누군가는 예쁜 꽃으로 살길 바라는 애신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쓰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가끔은 살려고 노력하느라 진짜 살 시간이 없는 것 같아.”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가 담담히 내뱉는다. <미스터 션샤인>의 김은숙 작가가 우리에게 전달하려한 메시지도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달라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끝없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가 아닐까 싶다. 딱히 어딘가를 다친 것도 아닌데 치유가 필요한 시대. 무언가를 하기 전에 두렵기부터 한 시대 안에서 우린 각자 자신의 심지를 열심히 태워가고 있다. 

 

 

* 《쿨투라》 2018년 10월호(통권 5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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